네 개의 별과 두 개의 붉은 줄이 달린 계급장과 군복을 입은 남성이 부관과 함께 시설의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하전사의 굳은 경례뿐만 아니라, 마주치는 모든 이의 경례를 그는 목례로 답하는 것으로 빠르게 지나쳤다. 빠른 발걸음으로 그는 평소보다 빨리 시설 안쪽의 철제 격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건물 실내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격문과 이를 지키고 서 있는 군인들. 이 너머가 사실상 시설이 존재하는 목적이자 그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였다.
비유적 표현만이 아니라, 그가 시설의 입구에서부터 걸어서 도착하였음에도 아직도 격문이 닫힌 채로 있었던 것이다.
발걸음을 재촉하였음에도 격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야하는 상황이 그의 성미를 건드렸다. 하지만 그가 직접 화낼 필요는 없었다. 이미 눈치빠른 그의 부관이 대신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얼빠진 아새끼가 련대장 동지가 도착하신 지가 언젠데 아직도 개방을 안 하고 있어! 쳐졸고 있었어?"
"아닙니다, 대위 동지!" 부관의 호통에 멍청히 경례만 하던 상위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야이 좀 파먹힌 새끼야, 어디서 거짓 변명을—" 부관은 그 말과 함께 상위의 뺨을 치려고 했지만, 그의 제지로 행동을 멈췄다.
"그만 됐다. 문이나 열어라."
그 덕분에 겨우 뺨을 간수한 상위는 그제야 부하들에게 격문을 열라고 닦달했다. 하지만 닦달할 필요도 없이 이미 격문은 삐그덕거리며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격문이 열리고, 상위는 다시 굳은 자세로 경례했지만 그와 부관은 목례조차 하지 않고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경사진 계단. 계단이 향하는 곳은 시설의 지하이자, 시설이 위치한 개성보다도 더 넓은 거대한 땅굴.
다른 말로는 차경택 대좌의 73련합특수임무련대 작전지라고 할 수 있다.
***
"련대장 동지, 계단 조심하십시요." 부관이 깜빡이는 천장등 밑을 지나는 그에게 말했다.
우둘투둘한 빛바랜 옥색의 시멘트 벽과 천장, 그리고 그 위로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천장등. 거기에 내려갈수록 점점 지하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듯, 공기는 점점 차가워졌다.
"너도 발밑 조심해라." 대좌는 대답했다. 계단의 경사는 완만했지만, 깜빡이는 천장등과 균일하지 못한 단의 높낮이는 정말로 주의를 요했다.
앞에 금강산이 그려진 그림이 걸린 모퉁이가 보였다. 저 모퉁이를 지난다면 계단을 반 내려왔다는 뜻이다. 그림 위의 천장등 하나가 나가 금강산은 절반은 그림자가 졌고 절반만이 보였다. 꼭 반이 접힌 것처럼. 계단의 모퉁이와 잘 어울렸다.
이 계단은 땅굴을 드나드는 대좌 같은 고위 군관 전용으로 새로 지어진 통로였다.
시설은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난 해에 발견됐다고 알고 있었다. 국방군의 기습 공격에도 인민군은 영웅적인 반공격을 가해 남조선 국방군이 개성까지 버리며 패주하게 하였고, 자연스레 개성을 해방한 인민군은 시설까지 접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속절없이 패주하는 국방군을 섬멸하고 남조선을 해방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한 당시 군은 시설의 본래 목적과 땅굴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3년간 미제와 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여러 차례 바뀌며 시설은 방치되게 되었고, 7.27절을 기점으로 조국해방전쟁이 공화국의 승리로 끝난 뒤 드디어 군은 시설을 제대로 살필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시설은 3년 동안의 전화(戰禍)와 방치로 황폐해져 있었고, 일제가 조선 반도에 지어놓고 버린 방공호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지하의 땅굴 진입지대는 차라리 수용소의 폐탄광이 더 나아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시설이 너무 낙후된 관계로 공병건설련대가 투입되어 새로 짓다시피 할 정도로 시설을 탈바꿈했다고 한다.
이 계단도 그들이 새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대좌는 계단의 마감이 엉망인 것이 시설과 역사를 함께한 것과 새로 지은 것에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대좌와 부관은 계단 끝까지 내려왔다. 그들 앞으로 다시 옥색 철문이 보였다.
그리고 철문 위로 색상이 어울리지 않는 진갈색의 고풍스러운 나무 명패가 달려있었다. 명패에 적힌 글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천장등이 빛을 집중시키고 있어 문 앞에 선 사람은 누구나 명패를 읽을 수 있었다.
저 천장등은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빛이 또렷하고 깜빡이지도 않았다. 분명 계단의 모든 전력을 저것이 다 잡아먹고 있으리라.
명패에는 '위대한 수령 동지의 11.7 교시를 총폭탄 정신으로 반드시 수행하자!'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11.7 교시란, 김일성 수령 동지가 11월 7일 시설을 방문하셔,
"이곳은 아주 중요한 곳이야. 공화국의 번영과 인민의 새 터가 될 옥토가 될 거라고. 미제의 항공 포격에도 끄떡없는 인민의 락원을 지을 수 있겠지. 당과 군이 공화국의 미래를 그리는 일에 머뭇거려야 되겠어? 잘들 해보라고."
라고 하셨던 것을 의미한다.
본래 수령이 직접 방문해 독려하고 교시를 내린 곳은 기념비가 세워지곤 하지만, 시설은 존재 자체가 기밀에 속하는 관계로 다만 11.7 교시와 이렇게 명패만 시설 곳곳에 걸어두는 것으로 끝났다.
대좌가 명패 앞에 선 사이, 부관은 발 빠르게 철문의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드디어 대좌는 땅굴에 도착했다.
***
련대장실에 도착해 의자에 앉은 대좌는 종아리를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매일같이 오가는 저 계단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부관은 대좌의 한숨을 다르게 해석했다.
"걱정마십시요, 련대장 동지. 제가 아까 그놈 상급자에게 단단히 일러 다신 같은 일 일어나지 않게 해두겠습니다."
대좌는 잠시 부관을 바라보았다. 부관은 눈치도 좋고 행동력이 좋은 데다 상관 모시기를 제 부모보다도 더 극진히 하는 것이 태도까지 아주 바랐다.
다만 흠결이 있다면 아까나 지금 같이 그것이 조금 지나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까 격문이 닫혀있었던 이유는 며칠 전 검열에서 련대 정치지도부장이 상급 군관 전용 통로가 아무렇지도 않게 열려있다는 사실을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보안 문제가 지적을 받고나서는 통제 구역의 입출구는 상시 폐쇄가 련대 기본 방침이 되었다. 아까 상위는 련대장이 왔다는 소식을 전파받고도 느긋이 격문을 개방하다 그의 도착과 개방 시각을 맞추지 못한 것이었다.
피차 격문이 닫혀있는 것과 그것이 조금 느리게 열린다는 것을 련대장도 알고 있을 테니 약간 늦어도 문제되지 않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것이 대좌가 상위의 뺨을 치려는 부관을 제지한 이유였다. 당연히 상위에게 동정심을 느꼈다거나, 부하의 실수를 눈감아주는 성인군자를 연출하려는 것이 아니다.
련대 정치지도부장이 지시한 사항을 두고 실랑이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퍼졌다간 좋을 것이 정말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치지도부장이 호위사령부에서 온 군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없다. 한 번 혼쭐이 났으니 저능아가 아닌 이상 또 실수하진 않겠지." 대좌는 마지막으로 종아리를 쓸어내리며 답했다.
사실 상급 군관 전용 계단만이 아니라 전용 승강기 역시 존재했지만, 역시 정치지도부장이 련대 간부 총화에서 전기 부족을 이유로 사용을 '자제'하자고 말한 날, 간부 전용 승강기는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보급이 줄어들면서 발전기를 돌릴 연료도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정전도 잦아졌다. 때문에 승강기를 사용할 전력이 있다면 간부 전용이 아니라 화물 전용 승강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정치지도부장의 논거였다.
승강기의 경우,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 리용할 수 있었지만, 정치지도부장은 그 날 이후 한번도 승강기를 리용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곳 73련대에서 정치지도부장을 거스를 군관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련대장인 그조차도.
일반적으로, 공화국의 군 지휘 권한은 그와 같은 행정군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민군은 당의 군대이다. 그렇기에 로동당 총정치국의 정치군관들은 부대의 정치통제를 담당하며, 부대 지휘권마저 나눠 갖는다.
거기에 보위국의 보위군관까지 있으므로, 인민군의 지휘권은 사분오열되어 독자적인 지휘가 불가능하게 설계되었다.
이는 공화국의 행정군관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했지만, 차경택 대좌의 제73련합특수임무련대만큼은 다르다.
'련합'은 그의 부대가 온전한 인민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련대에는 전연군단 부대만이 아니라 국가보위부 제9국, '이상교화국'의 파견 부대와 정찰국의 독립 부대들로 구성돼 있었다.
제9국은 이곳 땅굴에서 발견되는 각종 자연섭리와 맞지 않는 유물 내지 '이상'을 분석하고 그것이 공화국에게 이득이 되는 방안을 연구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정찰국 소속의 독립 부대는 땅굴이 남조선 괴뢰 정권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까지 닿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남조선에 도달할 수 있는 땅굴을 찾아내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연히 차경택 대좌에게 이들의 지휘권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특수임무'는 그의 련대가 이 땅굴 속에서, 적을 제거하고, 새로운 거주지를 탐색하고, 유물을 채굴하며, 땅굴을 확장하고, 땅굴 거주민을 사상교육하며, 공화국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수령의 교시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가 진짜로 책임지고 지휘할 수 있는 부분은 쥐꼬리만 하지만, 실제로 그가 짊어져야 할 책임은 집채만 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는 73련대의 련대장이 되기 전에는 공화국의 땅굴 속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사실 보위부의 제9국을 제외한다면, 련대의 그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인민군이 시설과 땅굴을 발견했을 때, 이곳에는 그들만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로부터 살해당한 알 수 없는 군복의 군인, 살아 움직이는 기계, 사람의 말을 하는 인간이 아닌 것들, 공화국과 전혀 다른 독자적인 문명을 이룬 땅굴의 거주민들.
그는 공화국을 위해 싸워야 한다면 당연히 남조선의 국방군과 미제를 상대할 줄로 알았다.
땅굴 속에 처박혀서 정체도 모를 것들을 상대해야 한다니. 그에게 만약 선택지가 있었다면 결코 땅굴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일 보고 올려라." 그는 부관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오늘도 련대장으로서의 직무는 해야 한다.
1대대 휴가자 2명, 2대대 휴가자 2명, 4대대 휴가자 1명 복귀.
모란봉 구역 담배 보급 지연으로 인한 거주민 항의.
큰첨서 구역 외곽 제3초소에서 2340시에 신원 불상 인원이 초병의 제지에도 불응, 지속 접근하여 초병이 경고 사격을 가함. 불상 인원은 사라짐. 현재 수색 중.
대좌는 부관이 건네준 간략하게 정리된 일일 보고서를 대충 훝어보았다. 휴가자 복귀, 거주민의 불평불만, 알 수 없는 것의 접근. 어젯밤은 무탈했군. 대좌는 종이를 넘겼다.
다음 장은 어제 발견된 유물들의 목록이다. 물론 어제 발견된 것들이기에 면밀히 분석되지 않아 아주 대략적인 정보만이 적혀있었다.
진갈색의 재질 불명의 표지의 도서. 「수수꽃다리와 비의」,두께 2cm, 무게 156g, 발견장소: 애국풀 구역 제2통행로 부근
청색의 재질 불명의 표지의 도서. 「수와 나」, 두께 3.4cm, 무게 201g, 발견장소: 벽오동 구역 제1지대
적색의 재질 불명의 표지의 도서. 「그들의 유산」, 두께 10.1cm, 무게 1kg, 발견장소: 큰첨서 구역 제2지대
대부분은 역시 도서류였다. 하지만 땅굴에서 발견되는 도서 대부분이 공화국의 문자로 쓰여있기만 할 뿐, 공화국에게 도움이 되거나, 땅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 따위를 담거나 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분야를 마치 통달한 것처럼 떠들어댔고, 아주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 속에는 어떤 결정적인 사고나 논리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한 그 속에는 공화국의 사상과 체제와는 맞지 않고, 되려 읽는 이를 혼란시키기만 할 뿐인 것들로 판단되어 대부분은 주간 보고서에, 불온서적으로 판단되어 소각됨.이라고 줄 하나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끝인 것들이었다.
땅굴 속에서는 누가 만들어, 누가 묻은 건지 알 수 없는 유물이 가득했다. 땅굴의 구조가 일부 고정지역을 제외한다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유물의 출처를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유물들의 종류는 도서류 외에도 다양했다. 기계부속, 냉병기, 단파송신기, 지도, 발광석, 장화 등등.
기원과 원리가 공화국의 이해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들인데다가, 땅굴의 가짓수만큼이나 유물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유물 모두가 공통으로 공유하는 하나의 속성이 있었다.
바로 '땅굴을 벗어나면 쓸모없어진다'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땅굴을 비롯, 지상의 시설을 벗어나는 유물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기능을 잃거나 죽어버린다. 이는 땅굴의 거주민도 해당됐다.
바로 이 속성이 공화국의 땅굴 사업을 곤란하게 만드는 골칫거리이자, 대좌의 인생을 위기에 놓이게 한 주범이었다.
차경택 대좌는 황해남도 송림시에서 태어났다. 제철련합기업소에서 일하는 아버지 덕에 그는 나름의 단란한 집안 속에서 하나뿐인 아들로 사랑받으며 커왔다.
그러나 안락한 일상은 그의 아버지가 속한 작업반 전체가 '성과 부족, 기만적 근무 태만, 패배주의적 작태'를 이유로 경고와 함께 전원 자아비판 처분을 받으면서 끝나버렸다.
공장의 지배인은 처분 이후 공장의 모든 노동자들을 몰아붙였다. 아버지를 비롯한 공장의 작업자들은 초과 근무를 해야했고, 사고는 예정된 결과였었다.
3주 만에 병원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왼 팔과 왼 다리가 사라져 있었다. 돌아갈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아침에 수족과 직장을 잃은 아버지는 대신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대좌의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집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집에 어두운 구석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술에 취해있을 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집안의 사물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대좌와 그의 어머니는 결국 그를 사물처럼 대하는 데 익숙해지고 말았다.
적어도 사물인 쪽이 술에 깬 쪽보다는 나았었다.
입에 죽을 떠먹이고, 술병을 제때 바꿔주고, 오줌 지린 속옷을 갈아입혀 주는 것이,
술에 깨서 눈을 희번덕이며 앙상히 마른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소리질러 우는 광인을 '아버지'로, '사람'이라는 것을 재인식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2년 만에 아버지는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차경택 대좌가 성년이 되던 해였다. 그는 일찌감치 학업은 포기했기에,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차경택은 인민군에서 1년은 경보병중대에서, 1년 반은 독립정찰중대에서, 2년 반은 사단 직할대에서 보내면서, 인사참모의 눈에 드는 데 성공했다.
참모는 그에게 임관을 제안했고, 마침 공화국이 4대 군사노선을 외치며 인민군의 위상이 드높았던 때라 그는 참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단 직할대로 오는 데까지, 그리고 인사참모의 눈에 드는 데 뇌물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는 정당한 실력으로 인사참모의 추천장을 받아 제1종합군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자신했다.
2년 뒤, 차경택은 소위의 계급을 달고 인민군의 정식 군관이 되었다. 로동당의 문장이 그려진 군관학교 졸업장과 소위의 계급장을 본 어머니는 말없이 울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군관이 된 이후의 목표는 단순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출세하는 것. 하나 남은 가족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가 중위로 진급하고 몇 달 뒤, 그의 가족은 한 명 더 늘어나게 되었다.
군관 전용 이발소에서 만난 미용사였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머릿물비누 향과, 찰칵거리는 손가위 소리, 짧게 친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헤아리는 듯이 쓰다듬는 손길이 기억난다.
말을 걸 때 부끄러워 눈을 피하는 것과, 조신하게 웃는 모습이 좋았던 것도 기억난다. 그가 청혼했을 때도, 눈물을 감추기 위해 눈을 피하면서도 입은 웃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 어쩌면 그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가끔씩 그는 생각했다.
미용사에게 청혼했던 중위 차경택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 대좌가 되었다.
그 사이에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고, 두 아이가 생겼다.
정말 어렵게 아이를 가져서 더욱 소중한, 둘 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었다.
개성에 대좌의 아버지가 기업소에서 다닐 때보다도 더 큰 집도 얻었다.
그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그의 가족들은 배곯는 일도 없었고, 가정도 화목했다.
이웃의 부러움 섞인 질투까지 받을 정도로 유복하고 단란한 집안을 꾸렸고, 군생활도 그간 흠 잡힐 것 없이 모범적으로 보내왔다.
덕분에 그의 아이 중 하나는 공부를 잘해 평양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하나는 그를 따라 군인이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차경택 대좌는 인식하고 있었다.
'고작' 장령의 끝, 대좌 따위로는. 총참모부도, 총정치국도, 보위국 소속도 아닌 일개 행정군관으로는, 자기 련대조차 지휘할 수 없는 대좌는 가족을 지키고, 현재에 안주하기에는 너무나 위태로운 자리였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장성조차도 너무나 쉽게 해임당하는 것이 인민군의 현실이었다. 차경택 대좌 또한 지금의 지위까지 오르는 데까지 숱한 위기를 겪어왔었다.
게다가, 군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고, 수령이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금, 공화국의 정국 역시 날로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어제 평양에 살림을 차려도 오늘 로동교화소로 끌려갈 수 있는 법이다.
아차의 실수가, 불의의 실패가 그동안 대좌가 쌓아온 모든 것을, 그가 이뤄낸 가족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
아버지와 같은 수순을 밟을 수는 없다.
같은 실패를 자식에게 물려줄 순 없다.
다시 땅굴로 돌아와서, 땅굴이 유물에게 부여한 속성은 땅굴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가장 치명적인 문제 요인이다.
땅굴에서 73련대는 지하 수경 재배 시설과 그외 공화국의 경제 여건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몇몇 기계 시설을 발견해 왔다. 지상락원을 정말로 이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유물들이었다. 땅굴의 바깥에서, 유물을 대량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9국의 긴 연구에도 불구하고, 땅굴 바깥에서 유물의 반영구적인 활용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유물을 역설계해 원리를 파악하는 것 역시 지금까지 9국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추세로는 수령의 11.7 교시를, 공화국의 땅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실패는 군관으로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오점이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닌 수령이 직접 지시한 사항이라면 더더욱.
73련대가 실제론 그의 련대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련대장은 바로 차경택 대좌이다.
모든 실패는 그가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닌 그의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사실 땅굴과 관련된 공화국의 대부분의 이들은 땅굴 사업이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땅굴 사업이 인민군만의 것이 아닌 여러 기관이 함께 참여했기에, 먼저 실패라고 시인한 쪽이 비난받을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며,
또한 11.7 교시를 내린 수령께서 세상을 떠나셨기에, 사업의 향방을 가를 결정권자의 부재로 사업은 그저 표류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 있다면 목 빼 들고 도살장을 기다리는 닭대가리와 다를 바가 없다.
이 상황을 바꿀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련대장 동지, 정치부 전홥니다. 지도부장이 광장에서 뵙자고 합니다."
집무실에 놓인 내선 수화기로 부관이 갑자기 소식을 전했다.
"류 대좌가?" 차경택 대좌가 되물었다. 정치지도부장이 갑자기 그를 왜 불렀는지 가늠되지 않았다.
"지금 가겠다고 전해라." 하지만 이유를 미리 알았다고 해서 이쪽이 정치부를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차경택 대좌는 수화기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광장은 인민군이 발견한 땅굴의 커다란 공동이다. 6개의 통로로 이어져 있으며, 각 통로는 일개 중대가 행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이곳이 광장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이유는, 땅굴 속 여러 거주지의 교차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첫째 통로로 1 킬로메다 쯤 가면 모란봉 구역이,
둘째 통로로 2 킬로메다 쯤 가면 벽오동 구역이,
셋째 통로로 2.5 킬로메다 쯤 가면 참매 구역이 나오는 식이다.
꼭 이곳을 거치지 않더라도 한 거주지에서 다른 거주지로 이동할 방법은 많지만 광장만큼 지상과 가까우면서도, 여러 거주지로의 길이 한 번에 교차하는 지점은 이곳 하나뿐이다.
그곳에서, 련대 정치지도부장 류철 대좌가 차경택 대좌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그를 기다리는 류 대좌를 불편해하며 조용히 지나가는 련대원들이 보였다.
류철 대좌는 73련대원들에게 '석조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당연히 좋은 의미로 붙은 별명은 아니었다.
큰 키와 전등이 있다하더라도 유난히 희게 보이는 그의 살갗은 어디서나 그를 눈에 띄게 했다.
햇볕에 상하지 않은, 군관스럽지 못한 흰 조각상 같은 그에대한 경멸조가 일부 담긴 별명이었지만, 그의 외모만이 그를 석조인간이라 불리게 한 모든 원인은 아니었다.
련대 정치부의 임무는 땅굴의 유물, 특히 도서류의 사상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유물의 사상성이 공화국의 것과 맞지 않다면 류 대좌의 최종 인가 하에 유물이 폐기 처분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매일 같이 발견되는 유물 중에서도 도서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그것들의 두께와 분량이 차 대좌가 보기에도 버거울 정도란 것이다.
련대 정치부가 처리해야 할 업무량은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류 대좌의 지도 아래 폐기 및 주간 보고서 일정이 밀린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러나 류 대좌의 업무는 이뿐만이 아니다. 공화국의 땅굴 사업은 유물의 발견과 활용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인민의 지상락원을 이곳 땅굴에 건설하는 것.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거주민의 사상화가 필수였다.
땅굴에 학교를 지어 거주민에게 수학과 력사, 유물론,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거주 구역 일부나마 공화국의 화폐를 통용시키고, 거주민의 입에서 수령 동지 만세!가 나오게 한 것은 그의 공로이다.
또한 거주민 교육 말고도 73련대 간부 및 일반 병사 사상교육과 생활총화, 정치지도 계획 및 수행까지 그가 담당하는데,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놓치지 않고 완벽에 가깝게 류 대좌는 업무를 수행했다.
독보적인 업무량에도 지친 기색 없이 매일 업무를 수행하는 류 대좌의 탈인간성을 두고 73련대원들이 경외를 담아 부르는 별명이 바로 '석조인간'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쁜 류철 정치지도부장이 바로 차경택 대좌를 찾은 것이다.
***
차경택 대좌는 류 대좌에게 가까이 다가가, 지도부장의 앞에선 모든 이들이 그랬듯이,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며 그에게 인사했다. 둘의 키 차이 때문에 차경택 대좌는 그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지도부장 동지, 절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아, 련대장 동지,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논의할 사항이 있는데 일단 걸읍시다."
논의? 나랑? 의아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류 대좌는 이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선택은 모란봉 구역으로 이어지는 첫째 통로였다.
두 대좌의 군화의 발굽 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그들의 옆으로, 통로의 이쪽부터 저쪽까지 쭉 이어진, 너비 762mm의 협궤 철도 2개가 가지런히 통로 중앙에 놓여 있었다. 철도의 좌우로 일정한 간격으로 위아래로 적색등과 녹색등이 달려있는 신호기가 아무 불도 들어오지 않은채 배치되어 있었다. 통로의 천장에도 미약한 천장등이 배치되었지만, 철로가 놓이면서 닦인 바닥과는 달리 천장은 울퉁불퉁한 날 것 그대로였기에, 천장등의 배치는 철로만큼 가지런하지 못했다.
"지도부장 동지, 발 밑 조심하십시요." 차 대좌가 말했다. 대좌는 부관이 그에게 했던 말을 류 대좌에게 반복했다.
"련대장 동지도 조심하시오." 류 대좌도 차 대좌가 부관에게 했던 대답을 반복했다.
차경택 대좌는 여전히 류 대좌가 그를 부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류 대좌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고, 류 대좌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듯, 잠자코 걷기만 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드디어 류 대좌가 입을 열었다.
"련대장 동지는 지상의 시설의 력사에 대해 알고 있으시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었다고 해서 의문의 기류가 해소되는 일은 없었다. 류 대좌의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은 차 대좌를 혼란에 빠트리게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