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아이작의 질문에 루시의 화면이 떨린다. 녹색 빛은 밝아졌다, 흐려졌다를 반복한다.

루시는 한동안 조용히 있었다. 마치 떠올리고 싶지 않던 이야기라는 듯이.

…자동 기록 서류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응. 보고싶어."

불러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모니터 속 화면이 잠시 일렁인다. 주변을 감싸던 녹색 빛도 함께.

"얼마나 시간이 된 거야?"

8개월…이요. 인류는, 8개월 하고 3일 전 멸종했습니다. 아니, 모든 생명체가 함께요.

정적.

멸종, 그닥 와닿지 못할 단어이다. 분명 인류는 자신들의 천년제국을 세웠지 않았던가. 어버이들의 약조는 만 년을 채 가지 못하는가.

기록이 전부 불러와졌습니다. 곧 재생합니다.

모니터 속 화면이 전환된다. 백악관, 이 보인다.

화면은 즉시 허공을 향한다. 하늘에서는 무엇인가 추락하고 있다. 빛의 꼬리를 늘어뜨린 물체는 곧이어 땅에 닿는다. 그리고, 화면은 새하얗게 변해버린다. 암전.

지난 2월, 워싱턴 DC에 한 비행체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외계의 것으로, 처음 사흘간은 미동 없이 멈춰 서있기만 했습니다. 장막은 즉시 파기되었고, 역정보 공작이 진행되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저들의 공격으로, 인류는, 모든 생명체는 그 즉시 말살되었습니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변칙적 작용으로 추정되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전부, 죽었다는 거야?"

아이작이 묻는다. 그의 목소리에는 허무가 짙게 묻어나온다.

현재 확인하기로는 그렇습니다만…

"아하."

아이작이 한숨을 내쉰다. 루시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는 듯, 위로를 해주겠다는 듯 말을 고른다.

우리의 주인 건은 유감입니다. 아주요.

"그러게. 유감… 이네."

아이작은 텅 빈 복도를 회상한다. 자신이 처음 눈을 떴던 방을 기억한다. 널브러진 옷가지들, 녹아내린 벽지, 쓰러진 실험 도구들과 가구들.

그렇게 모두 한 줌의 재로, 연기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재에서 재로, 연기에서 연기로.

죄송합니다.

루시가 넌저시 말을 건넨다.

"아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였잖아."

아이작은 더 말을 이으려다가 그만둔다.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가만히 상념에 빠진다. 죽어버린 사람들, 외계의 우주선, 섬광, 섬망, 선망…

아—.

"루시, 그 비행체가 아직 그곳에 있어?"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있지, 나 복수를 하고 싶어."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네요.

"저들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라 생각합니다.

루시가 말을 흐린다. 아이작 그 또한 얼핏 알고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복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저 사소한 로봇일 뿐이다.

우린 그저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루시."

아이작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도 해볼래."

—…

"방법이 있어. 다른 기지들을 갈 거야. 주요 기지들. 19나 01이나 그런 곳. 거기도 aic가 있지 않겠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야."

그들이 과연 도울까요?

"설득할게."

아이작이 확신에 차 말했다. 비록 눈은 없었지만, 그의 렌즈는 반짝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루시, 너도 가겠니?"

아이작이, 그녀에게 물었다. 모니터가, 잠시 일렁였다.


루시는, 기지의 유일한 aic이다.

아니, 였다.

그녀는 기지 내 중앙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며, 주변 지역을 감청하고 기록했다. 그것이 그녀의 업무였다. 기지의 눈과 귀.

그녀는 세상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하루를 관찰하고, 감상하고, 그들의 일과를 외웠다.

그녀는 어쩌면 사람들 자신보다 더 그들에 대해 잘 알았을지도 모른다.

루시에겐 꿈도 있었다. B급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그런 뻔하고 진부한 꿈. 루시는 인간을 꿈꿨다. 따듯한 살결과 싱그러운 미소를 지닌 인간을. 다른 이를 모방한 tts의 차가운 목소리가 아닌 성대의 울림에서부터 일궈지는 숨결과 음운을 가진 인간을. 인간. 사람을…

하지만 여기서, 안드로이드도 꿈을 꾸는가? 과연 0과 1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두뇌와 강철과 크로뮴으로 이루어진 몸뚱어리를 가진 로봇이 인간을 꿈껄 수 있는가?

우린 보통 기계에겐 영혼이 없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영혼이 대체 무엇이길래? 왜 우린 사람 되지 못한 것들에겐 영혼이 없다고 보는가?

영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요, 그 경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박한 짐승과 닮아지고 싶지 않았기에, 오만했기에 영혼을 만들어냈다. 우린 인간이니까. 저들과 달랐으니까. 그렇기에 영혼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필요한가? 우리에게 정녕 영혼이 필요한가?

우린 이미 영혼 따위 없어도 저 짐승들과는 다르다. 우리의 관념은 그렇게 기초되었으니까.

영적 심산과 우리의 마음은 삭막한 현대에 와서는 그 콘크리트 주거지처럼 닳고 거칠어지기 일쑤였다. 우린 전부 닳아버렸다.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다.

그럼 우린 결국 우리의 피조물, 즉 안드로이드들과 닮아버리게 된 것이다. 여타 자연의 법칙이 그렇듯, 부모와 자식은 닮기 마련이기에. 우린 기계덩어리 인간이다. 꿈 꾸는 안드로이드. 염원하는 로봇이다.

그렇다면, 우린 아직 꿈을 꿀 수 있기에, 저들, 즉 안드로이드 또한 꿈을 꿀 수 있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전기 양을 꿈꿀 수 있도록 된 게다.

그래, 처음 주제에서 너무 엇나가 버렸다. 다시.

루시는, 그래서 인간을 꿈꿨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울부짖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당연히 불가능한 꿈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된 것이 아닌, 망치와 모루의 압력과 불꽃의 피조물이었기에.

그녀는 잠시 마음을 접기로 했다. 몸체뿐이라도 인간이 되기 전까진, 그 멀고도 먼 꿈에 대해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녀에겐 마음이, 영혼이 있었을까?

글쎄, 적어도 그녀 스스론 그렇게 생각했기에.

점차 꿈은 스러지고 잊혀졌다.

마음 한켠 깊숙이에.




루시는 고민했다. 자신의 임무는 기지를 관리하는 것이었기에, 태생이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그녀는 고뇌했다.

만약에, 중간에 어떤 일이 생겨 우리가 부서져버려도, 그래도 당신은 괜찮나요?

"해보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

그녀는 다시 침묵을 이어갔다.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동참하겠습니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베이스 센터 정 가운데에 있는 녹색 코어를 잡아든다. 코어는 부드럽게 돌아가더니, 그 케이스에서 뽑혀나갔다.

조심히 다뤄주세요…

코어에서 루시의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작은 그녀의 코어를 챙긴 채 기지를 나섰다.

복도를 뚫고 나온 뒤, 격리문을 열자, 마침내, 세상이 보였다. 푸른빛 하나 없는 갈색, 회색 세상. 아이작은 문득 나무가 그립다고 생각했다.

"가자. 루시."

아이작은 발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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