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행동의 전가람 대표는 두레원 전남 지부를 방문하여 농업 기술 혁신을 위하여 녹색행동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평화민주연합과 수신당, 두 정당의 오랜 갈등이 이제 검찰에까지 불똥을 튀겼습니다. 오늘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평민련 최고위원인 안승한 이맘이 직접 '사이비'라는 말을 언급할 만큼 분위기가 험악하였는데…"
"산 사람, 죽은 사람 모두 평등한 세상! 미래심령연대가 만들겠습니다!"
"사회변혁네트워크 공동대표인 호야 씨의 전과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SCP 재단에 간무하였던 익명의 제보자가 2012년 재단 요원과 충돌하면서 신체적 폭행을 가했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 뽑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 명천구 이 동네는 바깥 세상이 싫다는 예술가란 예술가는 다 모여 사는 곳인데, 어느 쪽이든 당선되면 분명 저 너머에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테니까요. 아니, 예술 하면서 ××도 하다가 피 좀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올해 총선의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더 이상 북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그동안 북한이라는 존재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가치관을 하나로 합치시킨 기제로 작용해 왔는데, 이제는 그 효과가 사라졌으니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특이한 사상과 이념이 속속 나타나 돌풍을 일으킬 겁니다. 그 돌풍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할지, 아닐지는 두고 볼 일이고요…"
오후 8시 정각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아무 생각 없는 듯 리듬에 맞추어 까닥거리고 있다. 맹소단 연구원은 하품을 크게 쉬고 보조 배터리로 충전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얼마 후, 휴게실에 들어온 유희성 요원이 TV 화면을 바러보고 맹소단에게 말한다.
"뭐가 재밌어서 뉴스를 보고 있는 거야? 안 보면 끈다?"
"아니, 아니. 끄지 마. TV 뉴스야말로 최고의 배경 음악이라고. 또 생각보다 재밌더라."
말문이 턱 막힌 유희성은 맹소단 옆에 조용히 앉아 TV 뉴스를 시청한다.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아나운서가 새로운 보도문을 읽을 때마다 어디선가 낯익은 이들이 익숙한 장소를 뒤로 하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가끔씩 제21K기지가 자료 화면에 나오면 반가운 기분이 살짝 든다. 물론 좋은 맥락으로 출연한 것은 아닐 테지만.
맹소단은 여전히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나운서가 고개를 숙이며 작별 인사를 건네고, 광고가 이어진다. 광흥전자의 새 냉장고 모델. 초상 기술을 사용했음을 버젓이 선전하고 있다. 유희성은 조그맣게 남아 있던 관심마저 식어 버려 자리를 뜨면서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익숙한 뉴스네."
뉴스는 끝났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한반도의 절반이 사라지든 말든 선거는 해야만 했기에.
D-60
그들끼리의 이합집산
자고로 이름이란 처음 보는 사람의 뇌리에도 오래 남을 강렬한 인상을 주어야 하는 법이죠. 물론 가나다순으로 정렬되는 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 최대한 위쪽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그래서 [판독 불가]당 어떻습니까?
"이…… 이 씨발 진짜!"
한 정당의 대표나 되는 그가 결국 분노로 가득한 욕설을 퍼부은 데는 합당한 이유가 당연 있기 마련이었다. 그럴 만한 대참사였다. 창당식 때 멋지게 깃발을 흔들어 새로 뽑은 당 로고를 뽐낼 줄 아는 이가 한 명쯤은 있어야 했다. 모두가 '인'재 영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실행 안건 후보:
제안 방안 | 안건 평가 |
---|---|
xxx당의 비례대표 공천 신청. | 부정적. xxx당에서 인재로 영입한 자가 과거 템페스트에 근무했던 사실이 드러나 회원들의 반대가 심함. |
회원인 전직 정치인이 무소속으로 출마. | 중립적. 이와 같은 결정으로 인하여 클럽에 대한 외부의 인식이 좋지 않게 될 수 있고, 정치인 출신 중 출마할 의향이 있는 회원이 현재 전무함. |
- SCP-2115-KO - 스팸 전화 사절
20██월 2월 초에 이르러 SCP-2115-KO의 영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한국갤럽, 한국리서치, 리얼미터와 같은 여론조사 업체에서는 2월 1주차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였다.
D-40
0교시 공천 영역
"내가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방법이 마땅히 없다고?"
"그야 상대 측은 미혼인 데다가, 사는 곳은 몰라도 아파트에 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고, 징병 대상이 아니니 병역 문제에도 자유로운걸요. 거기에 SNS를 한 적도, 할 일조차 없으니 구설수 논란이 일체–"
"사람만 한 나방이 페이스북을 하면 그거야말로 논란이니까 그러지!"
나는 갈 곳을 잊어 버리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것을 밟고 말았다. 살면서 처음 보는 이사관의 웃는 얼굴에 발바닥 모양의 진흙이 묻어 있었다. 그 '웃는 얼굴'을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을 말한 것이었다.
- 20██. █. ██. 부로 선거 운동 기간이 공식적으로 시작됨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 후보와 선거 운동원들의 명천구 출입이 허가됨. 예기치 못한 백색 테러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관할 경찰서의 인력을 추가로 동원하여 상대 후보 간의 충돌에 대한 예방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음.
우리는 최근 한국 정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前 국회의원 『메카』 맹형규씨와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소위 『맹형규법』의 주인공이기도 한 맹 씨는 지난달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닷새 후 서울의 톱니장치 정교회 성당에 나타나 송파구 갑에 출마하겠다고 전격 밝혔다. 그는 전신을 톱니장치 정교회의 스타일로 개조한 모습을 기자들에게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다.
D-20
불붙은 선거 레이스
- SCP-2975-KO - 국회의사당 돔 아래에는 태권브이가 잠들어 있다
[호야가 태구련과 언쟁을 벌이다가 돔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른다. 붉은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V 모양의 구조물이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더이상이온님을매도하지말자(39470) : 오늘부터 지지 관계에서 벗어나 조██와 한 몸으로 일체가 된다 조██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ㄴ 상어먹이기♦ : 이 새끼 위험한데
— 호야 씨. 그동안 후원금을 얼마나 받으셨길래 지역구 출마한 후보들에게 지원금을 주고도 돈이 이리 남습니까?
— 에이, 우리가 그렇게 많이 받았을 리가. 저희 막내 기적술 솜씨를 좀 빌렸죠. 농협 같은 데서 겨우 1원 주는 거 가지고 뭐라 하겠어요?
제21K기지 시설의 일부가 민간인에게 개방된 것은 요즈음에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본래 투표소로 곧잘 이용되던 초등학교가 폐교하면서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 ██구선거관리위원회의 일관된 답변이었다. Y 이사관은 그저 우리에게 투표를 독려할 좋은 기회라고 자조했다. K 이사관보는 작년 봄에 벚나무를 심지 않아 포토 스팟이 되지는 않겠다고 실없는 농담만 던졌다.
황두연(미래심령연대): 무진에 관한 첫 공약으로, 저는 문제의 64K기지를 전면 개방하여 그동안 은폐되어 온 진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을 추진하겠습니다.
오서형(녹색행동):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볼 게 별로 없던걸요.
D-Day
운명의 그 날
[기표소에서 얼굴이 가려진 SCP-2030-1이 나타남. 인주에 적신 투표지 수십 장을 투표함에 쑤셔 넣자, 현장의 참관인들이 강박적으로 웃기 시작함.]
SCP-2030-1: 같이 투표해요! 투표해! 투표하자! 투표로 저희와 하나가 됩시다!
[공익광고협의회 로고. 징글 재생됨.]
- SCP-2253-KO - 중립적 기계
SCP-2253-KO가 인터넷 외부에서 목격된 최초 사례는 그날 대전광역시 유성구 어은중학교에서 발생하였다. 하얀색 상하의의 남성이 교문 앞을 약 2시간 18분 동안 배회하다가, SCP-4633 손동작을 취하고 투표소 안내 표시 옆에서 셀프 카메라를 찍었다.
임찬미 과장: 네, 2482님. "제13K기지에서 근무하는 무속학부 연구원입니다. 조천읍에서 신적 존재 스물 몇 명이 집단 강림해서 투표했단 이야기 때문에 부서가 난장판이에요." [웃음] 참 특별한 팬미팅이었겠네요.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삶"이란 연극의 주연입니다. 그러나 이를 항상 몸소 느끼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딱 하루만이라도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신하며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해 드릴 아름다운 합주곡을 여러분께 바칩니다.
달마저 구름 뒤로 사라진 지금, 하늘 아래의 서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야성이다. 다만 꺽꺽 터져 나온 울음이, 상대를 축하하는 웃음이, 태엽의 삐걱거림이, 벌레가 윙윙거리는 잡음, 스산한 폴더가이스트 효과음이, 술잔이 부딪히는 소음만이 어딘가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그 기나긴 하루가 마침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정치는 생물이다.
김대중,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하나의 우주를 두 세상으로 나누었던 장막이 마침내 무너지고, '초상', '변칙', '비정상' 따위의 말은 더 이상 얇은 오컬트 잡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명한 학자의 논문, 공신력 있는 언론의 사설, 정부 기관 발표에서도 쉬이 볼 수 있는 전문 용어로 탈바꿈하였지요. 하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오랫동안 나뉘었던 세상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못하였습니다.
졸지에 섬나라가 되어 버린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비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말입니다.
엄연한 대한민국 사회의 일부가 된 초상 세계에 살던 이들은 정상 세계의 이들과 마찬가지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이들은 무질서에 익숙하였고, 저들은 질서에 익숙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한반도의 절반이 그야말로 사라지면서 피해가 없지는 않았던 대한민국은 이를 복구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만 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 계층을 공략하게 된 정계 역시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들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한 이는 장막이 무너지기 전부터 비밀리에 진실을 알고 있던 극소수에 불과하였지요.
20██년 겨울, 서울특별시 명천구를 중구에 포함하는 선거구 획정안이 극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제██대 국회의원 선거를 향한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여의도의 푸르스름한 돔 아래에 머물던 낯익은 정치인들은 다시 한 번 전국으로 흩어졌고,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전략을 짜내는 데 몰두합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건은, 2000만 명에 달하는 새로운 성향의 유권자들을 어떻게 하면 자신들을 지지하게 만들지입니다. 한편, 초상 세계에서조차 외면되고 무시를 받던 이들은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또는 이에 준하는 존재들이 모여 장막 붕괴의 여파로 신음하고 분열된 사회를 회복할 길을 모색하여 갑니다.
이번 선거의 승자와 패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2천만 초상 세계 유권자는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요?
초상 세계 인간을 대표하는 새로운 흐름이 국회에 입성할까요?
재단 직원들의 선택은 어느 정당을 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