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와 결 사이

와 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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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리들: SCP-1381-KO
분서꾼들: KTE-1381-그린 ("세탁물 투입, 제령물 배출")
광명빨래방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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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단원 풍속도첩》



예로부터 세척이라는 행위는 무엇인가의 부정함을 제거하는 상징으로서 이어져왔다. 특히나 의복의 세척은 원시적인 생활상 이후부터 발달하여 통상적으로는 오염과 균을 제거함으로서 인간의 안정을, 더욱 더 깊은 의미에서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과 사교적 예의1를 위한 행위까지 이어져왔다. 당연하지마는 세탁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세탁을 전담하는 직업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초상세탁이라는 분야는 탄생했다.

이 서적에서 우리는 좀 특별한 세탁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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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방 내부 사진.

지식

특징: 이 서적에서 서술하는 빨래방은 "광명빨래방" 으로, 기준차원에서 매우 불안정한 좌표축을 가진 공간이다. 이 빨래방은 한국 전역에 나타나는 "길" 을 통하여 진입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길" 은 무언가 혼란스러운, 뒤섞임의 상징, 예컨대 강물과 같은 곳에 자주 나타난다.

"길" 을 통해 들어가는 순간 진입자는 파란색과 흰색의 모던한 벽으로 둘러싸인 세탁소를 마주하게 된다. 벽지는 밝은 노란색이며, 진입자의 앞에는 광명빨래방의 주인이 보일 것이다. 대부분의 "정상 세탁" 은 왼쪽 벽을 따라 일반 세탁물 칸에 들어가서 할 수 있다. 오른쪽 벽을 따라가면 초상세탁을 위한 작업실, 그리고 완료된 세탁물들을 걸어놓은 방이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광명빨래방의 1차적 목적은 초상세탁 고객을 위한 서비스이다. 만약 초상세탁물이 있을 경우, 앞에 보이는 주인에게 걸어가 세탁물을 맡기면 된다.

성질: 여기서 성질이라 함은 빨래방과 그 건물의 성질이 아닌, 그 주인의 행동거지와 특징에 관한 기록일 것이다.234 직접 가본다면 가장 명확하겠지만, 다수의 정보원들, 그리고 실제로 이 장소를 방문했던 뱀의 손 인원들에게서도 이 "빨래방" 의 주인이 결코 범부의 범주에 들어간 이는 아니라는 증언을 여럿 입수했다. 이 빨래방의 주인, 밝혀진 이름 한울5은 그저 초상세탁과 잡학에 해박한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는 결론이 그 요지이다.

겉으로만 볼 때, 한울은 경이없는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외형과 여러 부분에서 인간, 그리고 대부분의 빨래방 이용자들은 차이점을 눈치채지 못 한다. 유일한 차이점은 경이적, 특히나 마법적 소양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데, 바로 빨래방 내부에 흐르는 이질적인 생명약동에너지EVE 패턴이 이것이다. 보통의 마법사가 가진 흐름은 인간이라는 한계에서 일정 수준을 넘지 못 한다. 이러한 흐름은 아주 불규칙적이며, 이것이 바로 마법과 경이 근처에서 가끔 느껴지는 비현실감의 정체이다.6 놀랍게도 이 "광명빨래방" 내부 영역에서는 흐름의 불규칙성이 매우 미미하다. 혹자는 이것이 무언가 군기잡힌 것에게 꽉 구속된 기분이 든다고도 한다. 일반적인 인간이 그러한 안정적 흐름을 만드는 데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모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을 거의 항상 유지하는 한울은 명백히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울이나 빨래방의 운영방식 그 자체에서 어떠한 특정성이 느껴지는 바는 없었다. 휴일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찾아오는 의류의 청결을 관리하며 가끔씩 수작업이 필요할 경우 경이를 이용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끝이었다.

내력 및 관계: 광명빨래방의 시작은 대략적으로 2020년도 초반기에서 2019년도 후반으로 추정된다. 한국 초상사회에 초상세탁이라는 기술은 극히나 생소했으며 (사실, 애초에 복잡한 아시아 초상세탁 수요의 대부분은 대만에 소재한 대규모 초상세탁기업 "세탁부"에서 해결됐다.), 경이를 다루는 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돈 것이 2019년이 시작이기 때문이다.78

설립 이후부터 다양한 곳에 생성되는 차원문, 그리고 한국에 생소한 초상세탁이라는 기술인력이라는 점에서 많은 수요가 광명빨래방에 모였다. 초상세탁에서 빨래란 일반적으로 "옷" 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일종의 추상적 성격이 강한 개념인지라, 심령독립체가 자신을 구성하는 심령질을 세탁하러 오거나91011, 옥리나 분서꾼들이 장구에 묻은 경이적 성질의 자국을 지우기 위해서 이용하기도 하고, 옷보다는 일종의 마법장구 관리의 개념으로 완드나 주술적 경이를 청소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광명빨래방과 기타 집단들의 관계는 그야말로 강력한 정보망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빨래라는 사소한 행위지만 그만큼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들르는 인물의 상태나 행동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직업은 상대방에게서 사소한 신뢰를 쉽게 얻을 수 있기도 하다.1213 이런 기묘한 관계망은 여러 집단들이 최소한 이 빨래방과 근처에서는 뒤엉키거나 싸우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141516 이렇듯 광명빨래방은 기묘한 관계들이 서로 엉키고 풀리는 곳이기에, 옥리나 분서꾼들도 협잡질이나 폭력을 휘두르기 주저한다. 이를 이점으로 삼아 행동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빨래방은 옥리와 분서꾼들의 관리 하에 있는 이상공간 "해원읍"을 닻 삼아서 운영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맥을 따른 수많은 장소에 일시적 "길" 이 열리기에, 원하는 이는 적절한 시간만 맞춘다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접근법: "길" 은 흐름을 통해 생성되고 파괴된다. 광명빨래방에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자연적 흐름으로 생성된 길을 타고 건너가는 것, 두 번째는 해원읍 근처에 연결된 닻 형태의 길을 따라 들어가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두 번째 방법이 가장 쉽고 안전하지만, 상술되었듯 해원읍은 이미 옥리들과 분서꾼들이 점거한 상태라는 점에서 일부 부류의 이용객들에게는 상당히 안 좋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17

언제나 말하듯, 내부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은 선택이다. (옥리, 분서꾼, 나머지 경이술사들과 우리에게도.) 적당히 뭔가 일어나겠다 싶으면 눈치껏 빠져나가라. 출구는 다양하니까.

관찰 및 이야기

SCP-1381-KO의 유동성으로 인하여, 대상의 완벽한 격리는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재단은 SCP-1381-KO가 민간 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것을 필두로, 다양한 변칙개체 접근을 차단, 또는 위장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격리 절차의 주요한 전적을 열람하려면, 제145K기지 데이터베이스를 참조하라.

현재로서 제145K기지는 SCP-1381-KO-1에 대한 외교적 접근을 진행 중이다. SCP-1381-KO-1이 다양한 요주의 인물들과 접점이 있는 점, 재단에 그리 적대적이지 않은 점을 보아 양질의 휴민트 정보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 번째 변칙성은 SCP-1381-KO의 소유자에게서 관찰된다. SCP-1381-KO-1은 유사인간의 형태를 띈 종속성 신격독립체로, 외견상 30-40대의 남성으로 보인다. 대상이 착용하는 복장은 다양한데, 주로 다양한 옷 위쪽에 검은 두루마기를 걸치는 것을 선호한다.

SCP 재단 내부 자료

잠깐… 신격독립체? 그러니까 지금 저 안에 있는 주인이 신이라는 말이예요? - Y.L.

옥리들이 만든 자료이니 확실하지는 않죠. 그래도 확실히 무언가 느껴지긴 했어요. 제 안의 무언가가 저걸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느낌, 그런데 뭔가 떨어진 듯한 위화감 등등… 조만간 우리 할매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어요. - R.D.

머리카락이라도 한 올 정도 있다면 도대체 뭔지 알 수 있을건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라도 주워와야 하려나? - M.G.

머리카락 줍는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지난번에 시킨 일이나 제대로 끝내라. 이미 기간 지났어. - Hx

아! 대장… 그건… 어, 나중에 끝낼게요. - M.G.


기원불명의 타입 그린 유사인간형 초상존재. 현재 넥서스 내부에서 '광명빨래방'이라는 특정 가게를 운영 중이다. 여러가지 존재운동역학 및 초상능력이 있으나, 비적대적 성질과 넥서스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력으로 인해 청산 대상보다 정보 공급책으로서의 가치가 우선된다. 타입 블랙 ("반신")으로서의 특성이 있는지에 대해선 조사 중이다. 수권대응기준 2.

세계오컬트연합 극동부문, "해원읍" 종합문서.


에— 이런 곳에서 갑자기 초대받아서 말하라고 하면 조금 부끄러운데 (・´з`・) 아니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구 그냥 뒷거래 하는 김에 맡은 잡일 정도라구여. 여하튼 하라고 하셨으니 이야기 시작하겠슴다!

일본 쪽에서도 초상세탁 업체나… 뭐 여러가지나 있긴 합니다만 그 기술이 대만이나 아메리카 쪽 전문가들에 미치지는 못 하거든요. 그래서 말임다, 저희 쪽에서 관련 문제가 있을 때 여러번 큰일이 났었죠. 사실 뭐 시로 씨가 집안일이나 잡무나 정화의식이라던가 찐으로 잘하셔서 별 문제가 없긴 했는데 말이죠 ¯\_(ツ)_/¯ 그래도 여전히 큰 규모의 정화 의식이나 마법 장구의 관리는 아무래도 저희가 하기는 조금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 뭐냐, 아무튼 이게 위탁이라는 것은, 아노말리-메이드라던가 그런 자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장구를 관리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 때문에 한국에서 광명빨래방에 한 번 간 적이 있었죠. 저, 나름 파무왁 출신이니까 형이상과 형이하의 관계와 청결에 대해서 신경쓴단 말이죠. 그러니까 요하자면, 쇼우의 비늘과 여러가지 주구의 형이상적 얼룩 세척 관련해서 간 겁니다. - K.K.

하이고, 대장노릇도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다 듣고 요약 좀 해봐. 난 담배나 한 대 피고 올란다. - Hx

대장, 말이 너무 심한데요. 뭐, 나중에 오시면 요약해서 말해드릴게요. - Knr

계속하자면 말이죠, 그 때 쇼우의 얼룩을 씻기러 갔을 때 말임다. 크리스마스 씨 덕분에 빠르게 갈 수 있었어요. 아무튼 가보니까 의외로 제가 생각하던 ☆수퍼-아노말리-세탁☆ 같은것들과는 다른 모던한 빨래방이 있는겁니다. 제가 옥리들 쪽 탐지망에는 그리 크게 경계할 만한 놈이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사람들도 다들 순둥순둥했슴다.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보는데 검은 한국식 전통 복장 (두루마기라고 하던가요?) 을 입은 간지나는 아저씨가 서있었져. 그래서 에에또, 뭐라고 했더라, 암튼 이매지내니멀과 관련한 설명을 해주고 얼룩에 관해서 얘기하니까 바로 오케이 해주더라고요. 아, 진짜 번역기 쓰다가 전파가 끊겼는데, 돌아버리는줄 알았슴다.

그래서 작업을 시작하는데, 우와, 진짜 저희 쪽에서도 분명 오래 걸릴 일인데 한방에 얼룩을 지워버리는거 있죠? 작업실로 데려간다고 해서 좀 쫄렸는데 지잉— 하니까 바로 없어지는게 테크니컬한 무언가보다는 강력한, 둠-슬레이어마냥 힘으로 빛을 만드는 그런 느낌의 무언가여서 정말 놀랐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말이죠, 그야말로 은둔고수— - K.K.

그쯤이면 됐다. 끝내자꾸나. 이 녀석한테 말을 맡긴 내 잘못이다. 능구렁이의 맹원들이여, 용서해다오. - Shr

괜찮습니다. - Knr

그 때, 케이가 데리고 온 쇼우의 흔적을 봤다. 주술에 정통한 사람으로서 알 수 있었다, 그 집을 운영하는 자는 필시 인간이 아니다. 주구와 형이상생물에게서 필요한 부분만 섬세하게 세탁했더구나. - Shr

의문점

몇 번이고 나오는 의문점이지만, 가장 큰 것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 빨래방의 주인은 무엇인가? 인간으로 위장한 신일까? 변칙적 독립체? 바리스타나 지니와도 같은 정령? 개념의 현현?

만약 정말로 이런 존재라면, 목적이 무엇일까? 도피? 신이 부여한 의무? 자신의 업보에 관한 속죄? 어쩌면 아예 목적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목적이 목적을 찾는 것인 사람을 몇 번 봤고, 나 자신도 휘영과 함께 그리해왔으니까. - K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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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읍, 오후 5시.

해원1구 거리에는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이 북적였다. 내리쬐는 태양 사이 많은 인파가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이 마치 사람으로 이루어진 물고기 떼인 듯 싶었다. 그 인파 속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은 약간의 갈색과 다량의 회백색이 겹쳐진 산업혁명 중기의 공장과 비슷하게 생긴 카페였다. 자신을 뒤덮은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를 부정하듯 매끈한 유리문이 열림과 동시에 한 남성이 카페로 들어왔다. 강나루는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창가에 자리잡은 다른 남성 옆에 앉았다. 주변 테이블도 이들을 배려하듯 비어있던 참이었다.

처음 입을 연 것은 이미 창가에 앉아있던 남성이었다.

"편지가 참 자세하던데요?"

"그런가요?"

여기서 남성, 다른 이름으로는 광명빨래방의 주인, 또는 한울이 언급한 "편지" 란 옆에 앉은 미상의 발신인이 보낸 편지를 말했다. 여러 의미로 흥미로웠던 이 편지에는 호야에게 두들겨 맞지 않을 정도로만 적은 능구렁이 손에 관한 소개, 강나루의 한울에 대한 흥미, 카페에서 만나자는 이야기, 그리고 혹여나 들춰볼 옥리들을 위한 몇 겹의 마법 보안이 적혀있었다.

"시원하죠?"

한울이 강나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유자 에이드가 유명해요. 하나 마셔보실래요?"

"아… 저는… 괜찮습니다."

기묘한 아우라가 있다, 라고 강나루는 생각했다. 왜인지 모르게 이 사람이 누군지 두려워하거나, 옥리의 스파이라거나 하는 생각을 접어놔도 된다는 안도감. 애초에 무언가 다 타있는… 숯같은 느낌의 인상. 결론을 얻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추측했다.

"단걸 잘 안 먹어서, 커피 정도면 되겠네요."

카페의 회전율은 의외로 빨랐다. 강나루와 한울이 자리에 앉고 얼마 안 가서 음료가 완성된 것이다. 한울은 자세를 바로잡고는, 타이밍 맞춰 울리는 진동벨에 따라 카운터로 나가 음료를 가지고 왔다.

"…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데없는 질문에 강나루는 머리칼을 꼬집었다.

"네?"

"그… 여기. 해원읍. 해원읍에 대해서 어떤 생각하시냐는거죠."

"아, 그, 그건…"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람 소리가 집중력을 흐렸다. 사실, 한국에서 재단이 "통치" 하는 곳 중에서는 잘 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명천구라던가, 율도라던가, 그들이 나가거나 혹은 사라진 뒤에나 그나마 제 구실을 하는 지역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해원읍은? 재단과 연합의 손아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삶이 가득하지 않은가.

"초상성이… 사람들이 살아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나루가 보낸 편지에는 두 가지 이유가 딸려있었다. 하나는 인간이 아닌 강력한 존재자에 대한 개인적 호기심, 다른 하나는 동질감.

"좋은 평가네요. 여기 사람들이 꽤나 활발하죠."

인간 이상의 기적술 출력, 그에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정밀도. 강나루가 바라보고 있는 이 남자는 그 모든 기술을 그저 빨래라는 사소한 일에 사용할 뿐이었다. 무언가 놓은 것이 있다, 자신이 큰 일을 치루고, 휘영을 데리고 방황하다 능구렁이 손을 찾아온 것처럼— 이 남자는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뭔가 중요한 거겠죠. 굳이 이런… 바깥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한 걸 보면?"

"음,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사소한…"

"요청입니다."

강나루가 목을 낮추고 말했다.

"한울 씨도 손으로 오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멤버가 되거나… 투쟁에 함께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사상을 나누는… 그런, 네. 그런 관계라도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선전이나 안위를 위해 말한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혹은 비슷해 보이는 처지의 사람을 보면 느껴지는 쓸쓸함, 그리고 능구렁이 손에서 그런 방랑을 잠시 끝낼 수 있었던 자신을 바탕삼아 말했다. 그는 거울상을 보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그, 미안합니다. 하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예요. 제안이죠, 제안."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한울이 기겁하며 말을 이었다.

"아뇨! 아니, 그런건 아니고요. 네, 그… 아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예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많이 어려울 것 같아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한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미 재단이 절 지켜보고 있거든요. 지난번에는 사람도 한 명 보내던데요?"

"빨래방에 재단 채용이라도 시키려고 보낸답니까?"

"아니, 아니 그, 제가 뭐, 그쪽 편이라는 얘기는 아닌데. 그냥 절 끌어오는 순간… 보는 눈이 더 많아질 것 아니예요?"

"그리고, 애초에 전 힘들거든요. 들어가기만 해도 지칠 것 같아서."

단호한 거절이군, 하고 강나루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다. 원래 설득이란 이런 거니까.

"재단 정도의 추적이야 저희는 쉽게 따돌릴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산증인이죠."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어 자길 가르키는 강나루였다. 확실히 능구렁이 손의 위장술은 극에 달해있었다. 재단 관계지에 들어가 두 발로 능글맞게 빠져나간 적이 몇 번이던가?

"여기 들어온 것만 봐도 확실하잖아요?"

한울이 설득력 있다는 듯 고개를 약간 숙이며 강나루를 바라봤다.

"해원읍에 오래 살았던 분이라면, 해원읍 역사는 알고 계실까요?"

"예전에 떡갈나무에서 따로 역사전을 연 적이 있었죠."

역사, 해원읍의 역사는 특별하다. 앞서 말했듯 해원읍은 본디 재단의 식민지였지만, 놀랍게도 유랑극단의 부드러운 힘이 재단을 몰아낼 수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장막으로 덮는 것 만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역사의 불가항력을 보여준 곳인 것이다.

"이 곳은, 원래 재단이 지배하던 곳인 건 아실겁니다. 그 독재 사이에, 원래 있던 경이들은 전부 재단 뱃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 곳 출신의 사람들도 전부 포함됐어요."

한울은 아무 말도 없었다.

"지금은 평화롭지만, 다음에 언제, 어디서 이런 일이 일어날지. 혹은 다른 커뮤니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지는 모를 일이예요. 그리고 저희는, 손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는걸 막고 싶습니다."

"한울 씨는 사람과 대화하는 직업이잖아요. 최소한, 대화는 아니라고 해도… 그 요구를 들어주는 직업을 선택하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는 물어보는겁니다. 그 대화가 이어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냐고요."

기나긴 이야기였다. 주변에서 풍겨오는 향내음이 이어질 이야기를 계속했다. 확실히 해원읍은 평화로운 곳이지만, 하지만 해원읍의 전기에서, 그런 안락함은 대비되는 비극으로 변한다.

한울에게 김치국물을 앞에 둔 허연 옷의 심상이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른다.

"… 죄송합니다만,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려울까요."

"사실, 정말 이상한 이유가 하나 있거든요. 아까 전에 한 말들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요상한 거. 들어볼래요?"

거절할 것 없이, 강나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상세탁이라는 기술은 일반적인 빨래와는 다릅니다. 마도구와 형이상학적 옷들을 취급하는 순간부터, 저희는 조금 더 근본적인 더러움과 깨끗함… 멋지게 말하면 "오와 결 사이"에 대해 알아야 해요."

"그리고 나서는 일종의… 균형 감각이랄게 생깁니다. 더러움과 깨끗함 사이에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겼는지 아는 거죠. 기술보다는 제육감에 가깝죠. 진짜 애매하게 걸쳐있는 그런, 네. 무언가인데."

"초감각 현상이네요. 기적술사의 멀미라고도 하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요즘 제 감각으로는 말이죠, 이 균형 사이에 무언가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네?"

한 순간, 한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만간 어마무시한 더러움이 한국 어딘가에서 나타날 겁니다. 그게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저는… 그걸 처리하는게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빨래방 운영 뿐만이 아니라요."

"이상한 이유죠, 말도 안 되니까. 네. 직감, 그래요."

"직감 때문에 안 간다, 라고 합시다. 괜찮을까요?"

상대는 진지하다. 강나루는 확신했다. 단순하게 입은 모던한복 안쪽에 있는 저 사람, 혹은 무언가는, 깊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 이것이 자신이 찾던 새로운 길일 수도 있다는 기대감,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자신 또한 느꼈던 감정이니까.

"그렇다면야 뭐… 알겠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뭐 더 먹고 갈래요? 여기 빵도 맛있는데."

강나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만히 한울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세를 돌려 얼음이 살짝 녹은 음료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별 일 없다는 듯이 보이고 싶은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미안합니다. 제가 밥파라서. 빵은 안 끌리더라고요."

"…"

아무래도 결착인 모양이군. 강나루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영수증 한 장을 집어 만지작거리고, 테이블에 놓는다.

"필요하면 부르시죠. 다 방법이 있을 거니까."

해원1구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였다. 강나루는 유리문을 열고 나가 인파 속에 몸을 맡기고, 조용히 길 사이로 빠져나갔다. 인더스트리얼 카페 속에는 이제 모던한복을 입은 기묘한 남자와 영수증만이 남아 있었다.

태양이 쨍쨍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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