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병원에 산다. 머리가 돈 건 아니다. 아마도? 사실 잘 모르겠다. 머리가 돈 이는 자기가 머리가 돌았다는 걸 알까? 아마 그걸 알았으면 내가 정신과 의사겠지. 아무튼 여기 사는 건 좋다.
세인트 크로스 정신병원(Saint Cross Psychiatric Hospital)은 정말 살맛 나는 곳이다. 변변찮은 나한테도 자고 쉴 곳과 씻을 곳을 제공해 주고, 먹여주고 보호해 주며, 쓸데없이 재롱을 떨어보라며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여기에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무미건조한 흰색 벽에 흰색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까지, 보다 보면 정신이 멍해지는 건 사실이다. 다만 내가 그런 걸 가릴 처지는 아니고, 사실 뭐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는 사항도 아니니까 다 참고 사는 거지.

나는 새다.
내가 언제부터 새였냐는 질문은 받지 않을란다. 그러면 당신은 언제부터 사람이었나? 다들 그냥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나는 거 아니겠나. 새의 삶은 정말이지 좋다. 특히 누군가가 기르고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먹이를 먹고, 정신병원 앞에 조성되어 있는 공원을 한가롭게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이따금 예쁜 나뭇잎이 있으면 들여다보고, 꽃향기도 좀 맡고, 물웅덩이에서 찰박거리기도 하고 그런다. 매일같이 해도 전혀 질리지 않는 일들이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다시 들어가서 먹이를 먹고, 졸리면 잔다. 이게 조생이다. 무언가를 책임질 필요도 없고, 치열하게 살아갈 필요도 없다. 야생에서 살면 치열하게 살았겠지만 누군가 보살펴주는 이들이 있으니 그럴 이유가 없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떴다. 늘 먹이가 놓여있는 곳에도 역시나 아침의 몫이 놓여있다. 하지만 나는 품격 있는 새이니, 눈 뜨자마자 밥이 있다고 해서 좋다구나 하면서 머리를 박고 먹지 않는다. 언제나 아침은 방 안에 있는 물웅덩이 위에 붙은 거울을 보면서 몸을 가다듬는 것으로 시작한다. 깃털도 정돈하고 부리도 씻어주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내가 누구? 품격 있는 상모솔새. 그런 말을 혼자 떠올리며 작게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면 기분도 좋아진다. 그제서야 비로소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날개를 퍼덕이며 복도를 거닐고 있으면, 나를 알아보고는 사람들이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 붉은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푸른색의 옷 위에 흰색 가운을 걸친 사람들. 모두 여기 정신병원 사방에서 나는 것과 같은 세척제 냄새가 난다. 하지만 이따금, 완전히 다른 옷을 입으면서 세척제 냄새가 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내가 복도나 바깥 공원을 거닐고 있으면 깜짝 놀라곤 한다. 정신병원에 새가 있는 게 이상한 모양이지. 물론 몇 번 방문을 반복하면서 익숙해졌는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정기적으로 오면서도 나를 미묘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뭔가를 적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난 도리어 뽐내듯 돌아다닌다.
복도를 조금 걸어 내려오니, 곳곳에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과 색다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함께 앉아있는 탁자들이 즐비한 장소가 나왔다. 색다른 옷을 입은 사람들 쪽이 이따금 찾아와서는,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다. 나는 평범하게 새의 삶을 살다가도, 이따금 이곳에 와서 이 탁자 저 탁자를 돌아다니곤 한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새로 살면서 좋은 점 하나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주변에 누가 오고 그러면 보통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는데, 내가 근처에 간다고 해서 딱히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나 한가롭게 돌아다니고 있는 입장에서는, 좋은 습관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슬쩍 듣는 것도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어차피 고작 새일 뿐인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즘은 좀 괜찮아지긴 했는데,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그래, 아휴…. 그래도 괜찮아졌다니까 좀 다행이다…."
딸과 어머니처럼 보이는 이들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줄무늬 옷을 입은 쪽이 딸이고, 색다른 옷을 입은 쪽이 어머니인 것 같다. 살짝 웃어 보이는 딸을 보던 어머니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내가 옆을 지나가며 살짝 날갯짓해 보이니, 딸이 살짝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모습에 어머니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가, 어머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나타났다.
"봐도 봐도 신기하네. 정신병원에 새가 다 있고."
"귀엽잖아. 보다 보면 마음도 편해지는 거 같고…."
두 모녀의 말을 뒤로 하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보았다. 이번에는 남녀 한 쌍이 앉아 있었다. 남자 쪽이 줄무늬 옷을 입고, 여자 쪽은 흰색 가운을 걸친 사람이었다. 다만 흰색 가운 밑에는 자주 보는 파란색 옷은 아니고, 색다른 옷이었다. 게다가 얼굴에도 뭔가를 바른 것 같았다. 가끔씩 느끼는 건데, 얼굴을 칠하는 데에 뭔가 의미라도 있는 걸까?
"내가 너 언젠가 큰일 날 줄 알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타르타로스 독립체들이 만드는 걸 그렇게 뻔질나게 먹는데 탈이 안 나는 게 이상하지."
"아니 민간인들은 다들 잘 먹고 다니거든요?"
"니가 민간인이냐?"
남성 쪽이 목소리를 조금 높이길래 혹시나 싸우는 것인가 했지만, 정작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보아하니 남자 쪽이 뭔가를 잘못 먹은 바람에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 같았다. 근데 뭘 잘못 먹어서도 정신병원에 들어올 일이 있나? 변변찮은 새일 뿐인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렇게 한동안 더 주변을 돌아다니고, 밥을 먹고, 공원을 돌아다니고 하다 보니 어느새 하루의 끝이 찾아왔다. 품격 있는 새는 자기 전의 몸가짐도 단정하게 하는 법. 아침과 비슷하게 몸을 정리하고 잠에 들었다.
"…반 차도가 없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오는 바람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흐린 눈으로 창문 밖을 내다보자 아직 어두웠다. 내가 눈을 뜨는 시간은 언제나 환한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올 시간대였다. 방 한가운데에 흰색 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었다. 둘 다 가운 밑에 색다른 옷들을 입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이들은 아녔다. 이따금 오면서도, 나를 보면서 미묘한 표정을 짓고 서로 쑥덕대다가 돌아가는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여자 쪽은 '최세희', 남자 쪽은 '박하진'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가능성이 높진 않았어요. 그래도 본인의 의지가 워낙 확고하니까…."
"두 가지 정보가 뒤섞여 모순 상태로 공존하는 상황에서, 상모솔새의 정보만 끌어올리면 균형을 맞추고자 인간의 정보가 돌아올 것이라는 발상은 신선하긴 하지만…."
"이 이상 내버려두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거예요. 오늘 오후가 경계점이니까요."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이런 시간대에 방에 멋대로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서,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것으로 가냘픈 새의 잠을 깨운단 말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비록 종의 차이로 인해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나 같은 새라도 항의 정도는 할 수 있다. 어디 나처럼 거친 상모솔새의 항의성 울부짖음이나 한번 들어봐라, 인간 놈들아.
그런 생각을 하며 목을 가다듬으려 하자마자, 여자가 가운 주머니에서 무언가 원기둥 모양의 물건을 꺼내더니 돌렸다. 그러자 몸이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눈앞이 흐려져 갔다.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는 느낌이었다. 몸 가장 안쪽부터, 머릿속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이제 돌아올 시간이에요, 이율 선배."
— 그리고 세상이 뒤집혔다.
발신자: 이율 ten.pics|k541_eelluy#ten.pics|k541_eelluy
수신자: 김성현 ten.pics|k541_miknoeyhgnoes#ten.pics|k541_miknoeyhgnoes
발신일: 2021.09.16 10:33
제목: 본인의 상황을 위한 타개책에 대하여
김성현 박사님께,
간만에 연락드립니다, 박사님. 제 안부를 물으신다면, 썩 좋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이중사고 상태인 동료들 이외에는 저를 다 상모솔새로 인식한다는 상황에는 결코 익숙해지질 않네요.
거두절미하고 첨부 파일을 확인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론을 기술한 제 논문의 초안입니다.
최신 논리공학 기법을 이용한 준안정 모순 정보의 불안정화와 기존 정보의 회복.docx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부디 해당 기법을 제가 시행해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 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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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자: 이율 ten.pics|k541_eelluy#ten.pics|k541_eelluy
발신일: 2021.09.17 14:42
제목: Re: 본인의 상황을 위한 타개책에 대하여
이율 연구원에게,
보내주신 초안 읽어 보았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 발생할 변수의 통제가 너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논리공학적 수식의 구조를 봤을 때,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을까도 싶네요. 논리공학의 제1원칙은 이율 연구원도 알지 않습니까.
"논리공학적 수식은 최대한 단순한 구조로."
상황과 마음은 이해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 김성현
발신자: 이율 ten.pics|k541_eelluy#ten.pics|k541_eelluy
수신자: 김성현 ten.pics|k541_miknoeyhgnoes#ten.pics|k541_miknoeyhgnoes
발신일: 2021.09.17 14:53
제목: Re:Re: 본인의 상황을 위한 타개책에 대하여
김성현 박사님께,
거시적 규모에서의 검토는 끝났습니다. 설사 논리구조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 여파는 제게로 한정될 것입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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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자: 최세희 ten.pics|k541_iohciuhes#ten.pics|k541_iohciuhes
발신일: 2021.09.18 13:23
제목: 잠깐 도와줄 수 있을까
세인트 크로스 정신병원 쪽에 자리 좀 알아봐 줘. 한 6개월 정도.
— 이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