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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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喪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하굣길에 아버지께서 전화하셔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머리가 띵했다. 치매 기운이 있으셔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바이러스성 뇌병변에 의한 치매.
그 끔찍한 병명에 나는 차마 끝까지 듣지 못해 전화를 끊어버렸다. 버스에서 꾹 참았던 눈물은 방에 와서도 터지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께서 우시는 모습을 보았다. 유머 감각이 넘치시던 아버지, 가장이 되되 가정의 군주는 되지 않으셨던, 그야말로 모범적인 아버지상이었던 우리 아버지, 그 아버지의 큼지막한 등이 할머니의 싸늘한 몸 앞에 무너져내렸다. 어째서인지 난 그때까지도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우리가 나오고 장의사가 염을 하기 시작하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차피 눈물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지만, 감정이 벅차올라 할머니께서 수의를 입으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방 밖으로 뛰쳐나와 벽에 기대어 서서 울기만 했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성경책을 가슴 위에 양손으로 꼭 잡고 관 안에 누워 계신 모습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고생하던 모습과 대비되어 너무나 평안해 보였다. 저승에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할아버지는 만나셨을까. 은은한 냄새 코를 간질이는 하이얀 저 구름 위 국화꽃밭에서 두 분은 어떤 모습으로 만나셨을까.

사람이 많이 왔지만, 분위기는 차분했다. 의연하게 조문객을 맞이하시던 아버지는 목사님이 오셔서 찬송가를 부를 때 또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셨다. 말없이 꼭 안아 드렸다. 아버지의 품은 여전히 단단했지만, 힘은 없었다. 화장터에서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육신 일부만을 남기고 연기로 화해 하늘로 날아가는 동안, 그저 맑은 정신을 되찾고 평안하시기를 바랄 수밖엔 없었다. 재를 뿌릴 수목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날씨는 눈치도 없이 화창했다. 창밖 하늘에 뭉게구름 두 점이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연기로 화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닐까, 그렇게 제멋대로인 상상을 해 보았다.

수목장을 끝내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3일간의 피로가 몰려와서 매우 피곤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러 밖으로 나왔다. 상복을 입은 사람 한두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냄새가 역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가까워 보였다. 뭉게구름이 여전히 떠 있었다.

많이 뵙지는 못한 할머니였지만, 명절에 뵐 때마다 항상 웃음을 지어 주셨던 할머니였다. 집안의 기둥 같던 아버지께서 의지하시던 주춧돌 같은 할머니께서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가시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을 떨칠 순 없었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집안 어른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셨던 할아버지도 떠나가셨으니, 더더욱…

갑자기 하늘을 구름이 뒤덮었다. 비가 올 건가? 일어서서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고 다시 쳐다봤다.
잠깐. 아직 해는 쨍쨍한데, 뭐지?
파란 하늘이 구름에 더 많이 가려졌다.
잠깐만, 저거 구름 아닌데?

구름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깝게 떠 있었고

더이상 어떤 생각도 못 했다.


2015년 7월 ██일 대한민국 경기도 하남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SCP-797-KO가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함. 이 사고로 하남██병원 장례식장에 있던 인원 전부가 사망하는 등 대규모 사고가 벌어져 ██명 부상, ██명 사망함.
사건은 인근 화학 공장에서 나온 오염 물질이 바람을 타고 떨어져 일어난 사고라고 역정보를 퍼트렸으며, 사망 인원의 사인은 거품 속 독극물에 의한 중독사로 위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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