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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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초록빛 자켓에 검은 슬랙스를 입고, 머리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1로고가 그려진 야구 캡을 썼으며 눈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입에는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는 금속제의 금빛 육각기둥 모양 물체를 콘트라베이스 케이스 속에서 꺼내 들었다. 손가락이 방아쇠를 잡아당기자 잠깐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전방의 공간이 균질하게 분해되었다가 압축된 공기가 터지듯 부서져 나왔다. 몇 층짜리 건물이 무너지자 주변은 순식간에 혼비백산이 되고 그는 인파 사이에 끼어 거리를 빠져나왔다.


카페는 사람이 많지 않고 한적했다. 이 카페는 SCP 기지와 가까이 있는 몇 개의 카페보다 조금 더 멀리, 한적한 위치에 떨어져 있었다. 가끔씩 이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들을 빼고는 이 가게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신서준 연구원은 평상복 차림으로 카페의 바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이제 막 입사한 지 3년 즈음 된 정보부의 신입 연구원이었다. 그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따금씩 뉴스를 둘러보았다.

뉴스 채널들을 둘러보던 중, 화면의 스크롤을 계속 올리던 그의 손가락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 화면에서는 분명히 "강원 강릉시", "다발적인 건물 붕괴"라는 글자들이 큼지막하게 적힌 썸네일 사진이 보였다. 그는 그 건물들에게서 기시감을 느꼈다. 그는 영상을 클릭해 뉴스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공인중개사, 회계사 사무실, 네일샵, 정비공업사… 하나같이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건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건물들의 공통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재단 감시망에 연결되어 있는 위장건물들이었다.

화면에서는 그에 이어서 붕괴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재생된다.

[영상 재생]

공인중개사 건물이 입주해 있는 3층짜리 건물이 화면에 나온다. 공기가 잠깐 일그러지는 듯 화면에 다양한 각도로 빛이 반사된다. 그리고 공간이 균질하게 분해되더니, 건물이 통째로 조약돌 깨지듯 잔해로 찢어진다. 수 초 전까지 그 자리에 건재했던 건물이 산산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다음, 화면은 강 건너 다른 동네에 있는 정비공업사 건물을 화면에 담는다. 지지대 위에 올려져 있던 차량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다. 폭발의 여파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정비공업사 사무실의 벽까지 통째로 반파시킨다. 그다음 화면은 정비공업사 사무실 내부의 CCTV로 연결되고, 방금의 일로 인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진 사람, 반대편 벽 한쪽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천장의 지지대가 부서져 천장이 붕괴하고, 이후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신서준 연구원은 그들을 알고 있다. 일부는 위장 영업을 위한 진짜 공인중개사, 정비사들일지 몰라도 대부분은 관련 능력이 있는 재단 직원들이다. 방금의 사무실 내부 영상에 나온 직원들 대부분이 재단 직원들이었으리라.

재단은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몇몇 인원들을 잃었다. 대개는 사고였지만 재단은 이것이 사고로 "위장된" 것임을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었다. 각 사건들 모두 기적술이나 초상기술 등이 깊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그냥 사제폭탄이라던가.

신서준 연구원은 영상을 더 보려고 했으나 갑자기 뜬 전화 화면에 영상이 가려졌다.

"여보세요?"

신서준 연구원은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SCP 재단 제141K기지2 인사부에서 연락드립니다."

"예."

"제141K기지 정보부 신서준 연구원님, 현재 귀하를 대상으로 한 강제 휴가 복귀 명령이 집행되었습니다."

"예?"

"복귀 기일은 1일 후 자정까지입니다. 해당 시각 이전까지 복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에, 알겠습니다."

"현재 사태로 인하여 조사 인력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입니다. 되도록이면 빠른 복귀 부탁드립니다.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휴가일자는 추후 인사부 복지과에 신청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에."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신서준 연구원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긴, 이런 사태에 계속 휴가를 쉬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컵에 남은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컵을 버린 뒤, 카페의 문을 열어젖히고 다시 기지로 가는 길에 발을 올렸다.


이경은은 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카페모카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이 카페를 좋아했다. 카페모카에 휘핑크림을 얹어주면서 항상 그 위에 작은 다크 초콜릿 조각을 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가끔 부조화적인 아이러니함으로, 혼돈의 반란 부대 중간 간부로서 파괴 제거 공작을 수행하고 나면 꼭 그녀는 달착지근한 것을 먹으며 느긋한 시간을 즐기고 싶어 했다.

그녀도 이번 작전에 간단하게 참여했었다. 그녀는 외부 물품을 이용하는 것보다 내부에서 사고를 유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개별 LPG 가스통을 쓰는 식당이 설비 노후화로 인한 가스 유출로 폭발하고, 마침 그 건물에 새 LPG 용기를 배달하러 찾아왔던 LPG 운반트럭이 폭발에 휘말려 2차 폭발로 번졌다는 레퍼토리는 건물 붕괴가 연쇄 사고만 아니었다면 기막힌 우연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을 법한 일이다.

경은은 커피를 먹다 말고 가볍게 혀를 차며 입을 닦았다. 일을 끝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건축 자재가 불타면서 나는 매캐한 유독가스 냄새가 마치 커피 속의 카페인 향과 겹쳐 느껴지는 듯했다. 경은은 결국 카페모카를 반도 다 먹지 못한 채 휘핑크림과 그 위의 초콜릿만 떠내 먹고 나머지는 전부 버려 버렸다.

그녀는 컵과 트레이를 반납하고 자리로 돌아와 자기 물건을 정리했다.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핸드폰과 가방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핸드폰 케이스에 꽂혀 있던 신용카드가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경은이 그것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을 때, 그 손길은 무언가를 보고 멈추었다.

그녀의 신용카드 옆에 무언가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흰빛의 네모난 형태로 얼핏 보면 또 다른 카드나 명함 정도로 착각하기 쉬운 형태였다. 하지만 그것을 가까이서 본 그녀는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동시에 교차했다.

그것은 재단 직원 식별용 ID 카드였다. 분명히 카드 자체에 "SCP 재단"이라고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거나 그 원형의 로고가 그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그 형태만 보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혼돈의 반란 요원으로서는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카드에는 증명사진과 이름, 식별용 바코드 정도의 정보만이 적혀 있었다.

경은의 머리에 제일 먼저 스친 생각은 방금 공작을 끝내고 오는 자신의 바로 주변에 재단 직원이 벽 하나조차 사이에 두지 않은 채 같은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는 공포감이었다. 당장 머리 뒤에 총구가 닿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그다음으로 그녀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재단 ID 카드를 그대로 두는 것이 맞을까? 가만히 두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그녀 본인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을 가져간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였다. 재단이 CCTV를 조사한다든가 해서 자신을 추적해 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위장용 학원에까지 재단이 찾아오고, 그러면 자기뿐만이 아니라 한 그룹 자체의 목숨이 위험했다.

이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이 카드를 가져가지 않음으로써 목숨을 보전할 수도 있고, 재단의 귀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중요한 키 카드가 될 수도 있다.

그녀는 고민 끝에, 묘수를 하나 떠올렸다. 카드를 챙겨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이 물건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그녀는 그 재단 ID 카드를 카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핸드폰으로 카드 앞뒷면의 사진을 찍었다. 경은은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카드 앞뒷면의 바코드가 모두 제대로 나왔다. 그것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자마자 입구 쪽에서 무언가 부산스럽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신서준 연구원이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재빨리 다시 카페로 들어왔다. 경은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 카드를 그대로 테이블 위에 놔둔 채 능청스러운 연기를 하며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다. 혼돈의 반란 간부와 재단 정보부 연구원이 겨우 팔 한 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지나친다. 경은이 입구의 문을 밀며 카페를 떠나려고 할 때, 그녀는 서준이 카운터의 알바생에게 무언가를 마치 간곡하게 빌듯 질문하는 것을 들었다.

"혹시 여기에 있던 하얀색 카드 못 보셨나요? 그거 진짜 중요한데, 그거 없으면 안 되거든요-"

경은은 가게 밖 외부로 나서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치 모든 것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짜여진 듯, 모든 행위가 적절하게 구성되었다. 카드 정보도 챙기고, 재단 요원에게 들키지도 않고. 비록 자주 먹던 카페모카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오늘의 하루가 문득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이 일의 마무리가 완벽하게 끝나는지를 지켜보기 위해서 카페 앞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카페 1층을 찾아다니는 서준을 몰래 주시했다. 그는 여전히 다급한 표정으로 점원에게 무언가를 물어봤다가, 자기가 앉았던 바테이블 자리 근처를 살펴보다가, 또 다른 곳으로 갔다가 하며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은 그가 생각보다 색적 능력이 좋지 못했단 데서 비롯되었다. 경은은 본인이 앉았던 자리도 그렇고 카드 사진을 찍기 위해 올려뒀던 그 옆 테이블도 생각보다 구석진 자리라서 서준이 거기까지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못하자 그녀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추론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혹시 저 녀석이 정말로 재단 ID 카드를 못 찾고, 그래서 결국 CCTV를 찾아본다든가 해서 - 재단의 도움을 빌리든 아니든 간에 - 카드를 집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담긴 나를 발견하면 어떡하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 바닥에서 얼마나 산전수전 다 겪고 수많은 전투와 공작을 수행했는데, 겨우 이런 해프닝 하나로 정체가 발견될 수는 없다. 그녀는 카페를 주시하다 말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구석진 자리에 있는 그 흰빛의 카드를 집어 든다. 경은이 그에게 카드를 돌려주기 위해 그쪽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아직도 카드가 어딨는지 찾고 있었다.

"음, 저기, 혹시 찾으시는 게 이거인가요?"


서준은 아주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휴가 중에 가지고 있던 식별용 재단 ID 카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시발, 그거 없으면 복귀도 못 하는데.'

재단 제141K기지 구내식당 키오스크 주문기도 그 카드로 인식하고, 관내 기숙사 사물함도 그 식별용 ID 카드로 열고, 마찬가지로 휴가 복귀 및 출근 시간 확인도 그 카드를 식별기에 찍어야 한다. 한마디로 제141K기지의 생활에 있어서 모든 것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꽤 난감한 상황에 놓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카운터랑 가까운 자리인 바테이블에서 아메리카노를 먹었던 게 기억상 분명한데, 중간에 화장실을 갔다던가 하지도 않았고. 그런데 그 주위를 아무리 찾아봐도 그 카드가 보이지가 않았다.

그때 서준을 불러세우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가 이미 찾아보았던 복도를 4번째로 또다시 찾아보려던 즈음이었다.

"음, 저기, 혹시 찾으시는 게 이거인가요?"

서준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자줏빛이 도는 머리의 여성이 그에게 다가와 바로 그 중요한 흰색 카드를 건네는 모습을 보았다.

"오! 정말 감사합니다! 이걸 어디서 찾으셨어요?"

경은은 아주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듯 입구 바로 주변에 비치되어 있는 소화기의 뒤를 가리켰다. 서준은 차마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이마를 탁 치는 시늉을 했다.

"아, 소화기 뒤에 있었구나, 저길 확인할 생각을 못 했네. 감사합니다."

서준은 그 카드를 되찾았다는 생각에 엄청난 기쁨을 머금은 채로 어린아이처럼 생글생글 웃었다. 그 모습을 본 경은은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예로부터 정보를 찾는 제일 좋은 방법은 당사자에게서 캐내는 것이었다.

"근데 이건 무슨 카드에요?"

그 질문에, 방금까지 엄청난 행복감에 젖어 미소로 가득 차 있던 그의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그, 그, 그- 그건 왜요?"

"아뇨, 그냥, 단순히 궁금해서."

걸려들었구나, 하고 경은은 생각했다. 당황하는 티를 보니 딱 봐도 상황에 익숙해져 본 적이 없는 신출내기 재단 직원이었다.

"그냥 회사 명함 카드예요."

"무슨 회사인데요?"

서준의 얼굴은 화색이 번졌다가, 질문을 거칠수록 푸른빛에서 어두운 빛으로 변해 갔다.

"그- 그냥 정보 회사예요."

"정보 회사요? 정보를 어떤 식으로-"

경은은 거기서 질문을 더 이어가려고 했으나 무언가에 막혔다. 서준이 그의 옷자락을 팍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 스스로도 생각지 못한 행동이었다. 경은은 더더욱 신참내기 연구원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왜, 왜 이러세요?"

"당신 정체가 도대체 뭐야?"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정체라뇨, 전 그냥-"

"기자야? 아니면 뭐 무슨 블로거인가? 아니면…"

경은은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했으나 서준의 거친 손짓에 의해 제지당했다.

서준은 더욱 추궁하려고 했으나 주변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채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방금까지와는 달리 무언가 어수선해진 대화 상황 때문에 이쪽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점점 늘어나고 있던 것이었다. 서준은 하는 수 없이 경은을 내려놓았다.

경은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이전에 만들어낸 새 명함을 꺼내 들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새것이었다. 그 위에는 "경은자동차운전전문학원"이라는 상호명과 함께 "원장 이 경 은" 이라는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서준은 건네받은 명함의 글자들을 보고, 경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명함을 바라보았다. 직업이나 직책에 비해서 상당히 앳되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냥 동안이겠지.' 하곤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좀 착각이 있었던 것 같군요."

서준은 낮은 걸음걸이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경은은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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