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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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해안가를 거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의 불빛이 탁한 물결을 일으키며 주기적으로 점멸했다.

조그만한 낚시배 하나가 강릉항 인근의 해안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크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배 위에는 총 여덟 명의 사람이 있었다. 바다낚시와는 크게 어울리지 않는 검은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밀도가 높았지만 선체가 물을 가르는 소리만이 흐를 뿐, 말소리는 한 마디도 흐르지 않았다.

선체가 정지하자, 여덟 명의 사람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준비되어 있던 복장으로 빠르게 갈아입은 후 방금 전까지 괴한 일당 같던 집단은 일이 분도 채 안 되어 순식간에 평상복 차림으로 변했다. 준비를 마친 인원들은 차례대로 선체의 끝부분에서 해안의 모래밭으로 착지했다. 뭍으로 내려온 각각의 사람들은 옷에 붙은 모래를 털어냈다. 그들이 모두 내리자마자 선박은 재빨리 뱃머리를 돌려 바닷가 쪽으로 질주했다.

일행 중에서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여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다 내렸나?"

"예에, 하나 둘 셋… 일곱, 저까지 해서 여덟. 다 내렸습니다."

그녀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좋아, 이런 야밤에 여러 사람이 돌아다니면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따로 나뉘어서 움직인다."

그녀가 두세 명씩 사람을 나누었다.

"너희 셋은 저기 산책로로 올라가서 벤치에서 기다렸다가 차를 탄다. 너네 셋은 내리막길로 내려가서 해안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그리고 너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은 가로등에 기댄 채로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너는 날 따라와."

"저요?"

"그래. 너. 너랑 나는 차를 가지러 간다."

"…알겠슴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뒤따라갔다.

그들이 차에 도착하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조수석 쪽으로 갔다. 다른 사람은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운전석 쪽으로 가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물었다.

"아니, 잠시만, 왜 또 제가 운전임까?"

"그럼 내가 운전할까? 연해주에서 여기까지 배 끌고 오느라 잠도 못 잤는데."

"저는 계속 멀미했는데요."

"졸음운전보단 낫지. 애들 기다리겠다. 빨리 가."

그는 재촉에 못 이겨 차 시동을 걸고 조작한 뒤 액셀을 밟았다.


그들이 새벽의 끝에 출발해 강릉의 중심 시내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해가 뜨고 있었다. 일행이 모두 탄 승합차가 이제 막 굳게 닫혀 있는 펜스 출입문 앞에 멈춰 섰다. 그녀가 뒤를 향해 손짓하자 뒷자리에서 깨어 있던 인원 하나가 문을 열고 나가 출입문의 잠금을 푼 뒤 밀어 열었다.

차가 내부 공터로 들어가며 보이는 큼지막한 표지판에는 "경은자동차운전전문학원"이라는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차가 주차하자마자 내려 사무실 안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그녀가 가져온 가방 속에는 여러 가지 물품들이 들어 있었다. 형식적인 절차에 필요한 여러 서류, 위장용 사업을 진행하면서 쓸 각종 문구류들과 집기가 있었다. 그리고, 가방의 맨 마지막 바닥 밑에서 그녀는 "원장 이경은"이라는 사무실용 명패를 집어냈다. 그녀는 짐을 정리하다 멈추고 그 물건을 지켜보다가, 피식 웃고는 책상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짐 정리를 끝마친 뒤 경은은 바로 직원실에 들어가 누웠다.

직원실에 잠시 누워있던 경은은 이제 막 잠들려다가 문 입구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 일행 중 한 명이 정리를 끝내고 따라 들어온 것이었다.

"벌써 자심까?"

"밤 내내 배 끌고왔는데 그럼 자야지."

"차에서 잘 자시던데요."

"그거 얼마나 된다고. 저기서 시내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잖아. 아, 보일러나 켜 봐라."

그는 입구 쪽에 있는 보일러의 작동 버튼을 눌렀다.

"아 참, 니 이름이 뭐라 그랬지? 지석이라 그랬나?"

"지섭이요. 송지섭."

"입단한 지는 얼마나 됐는데?"

"3년 정도 됐죠?"

"아직 신참이구만!"

경은은 그러고는 뒤돌아 누웠다. 지섭은 벽을 기댄 채로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몇십 분이 지나자 직원들이 하나 둘 속속히 직원실로 모여들었다. 어느새 직원실 벽에는 화이트보드 하나와 도시 전경이 그려진 판이 걸려 있었다. "명목상" 자동차 면허시험의 도로주행 코스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도로구간이 색칠되어 있었지만, 실은 재단 주요 거점들의 위치가 붉은색 핀으로 마킹되어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지섭은 문득 생각이 떠올라 여전히 누운 채로 보드를 쳐다보고 있던 경은에게 물었다.

"저희 다음 일이 언제죠?"

"일? 공작 말이야?"

"예에, 그거요, 그 뭐냐, 재단 애들 건물 부순다고 한 거."

"모레에 할 거야."

"그렇게 빨리요?"

"상부에서 빨리 강원지역에 거점을 세워두라고 했다던데. 재단 애들 청소 좀 하고, 다른 조직들이랑 관계 좀 트고."

"그렇군요."

"아 참, 너네 장비 정리는 했니?"

"장비요?"

"폭탄이랑 총, 무전기 같은 거. 그런 건 숨겨둬야 될 것 아냐."

"아, 그것들… 무기 아닌 건 전부 관제탑 밑에 놔뒀고, 권총, 소총이랑 폭탄은 전부 여기 직원 사물함에 있어요."

지섭이 직원실 한쪽 벽에 있는 붙박이장들을 전부 열었다. 한 쪽에는 슬리퍼, 수건, 각종 침구류들이 들어차 있었다. 반대편에는 총기류, 수류탄, 사제폭탄, 도검류 등이 종류별로 정리된 채 쌓여 있었다.

"어우, 폭탄이랑 같이 잔다니. 좀 께름칙하긴 하네."

"강릉에 대형 기지가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네요. 그랬으면 미사일도 줬을 테니까요."

"아마 그래서 우릴 여기로 보낸 거겠지. 여덟 명이서 재단 대형 기지랑 싸워서 이길 방법은 없어."

지섭은 다음 주에 있을 재단 분소 습격을 머릿속에서 그려 보았다.

경은은 폭탄이 담긴 벽장에 기댄 채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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