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이라는 숫자에는 다소 간략한 의미가 있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하나씩. 무력화하든 죽이든 끌고 나온다.
한가로운 길가에 몇 사람이 모인다. 모두들 이경은의 일행이 밀항 첫날에 해안가에 당도했던 모습처럼 흑암색의 새까만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더플백, 서류가방, 점퍼 안주머니, 바지춤 속에 자동소총과 기관단총, 권총들을 숨기고 있다.
부대장이 전파 무전을 받는다.
"기동특무부대 입실론-16("작약탄"), 전원 위치 도달했습니다."
"대기하라."
부대원들은 주변을 둘러본다. 지나가는 차는 겨우 한두 개 정도나 가끔 지나가는 수준이다. 그들은 도로를 계속 주시하면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현대 스타리아 세 대가 차례대로 부대원들 앞에 정지한다.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는 더 많은 수의 검은 병사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각자 부대를 확인한다.
"기동특무부대 카이-676("우레폭풍"), 전원 위치 도달했다."
"기동특무부대 알파-12("천왕성 작전"), 전원 위치 도달했습니다."
"기동특무부대 크시-87("집행명령"), 전원 위치 도달했습니다."
"현재 귀 연합부대는 요주의 단체 "혼돈의 반란"의 거점으로 확인된 건물에 진입하고 있다. 적대 의사가 확인될 경우 사살을 허가한다."
"이해하였습니다."
부대원들은 소리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길을 걸어간다. 일이 분 정도 길가를 따라가자 "경은자동차운전전문학원"이라는 글씨가 적힌 간판이 보인다.
"내가 먼저 확인하겠다."
입실론-16("작약탄")의 대장이 먼저 건물의 정문 출입구 쪽으로 다가간다. 당겨 보자 펜스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다.
"잠겨 있군."
"돌아오십시오. 부숴서 열겠습니다."
대장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 부관이 M1001을 소총에 장착한다. 부관은 총구를 출입구에 겨눈 뒤, 총류탄을 발사한다.
폭발음이 난 곳에 혼돈의 반란 대원들이 다가가 내려다보자, 입구에서 검은빛의 병사들이 진입해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대원들은 당장 재킷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자마자 기동특무부대원들의 총격에 쓰러진다.
"셋 쓰러졌다."
그 다음, 정면의 사무실 쪽에서 문이 갑자기 퍽 하고 열리더니 소총이 튀어나온다.
"2시 방향에 적이다!"
부대원들이 사무실 방향에 사격을 집중한다. 아군 부대원 한 명이 쓰러지면서 동시에 적군도 쓰러진다.
"내부 확인해!"
열린 문으로 부관이 내부를 확인하려 하자, 총격이 날아들어 온다.
"내부에 적이 있습니다."
"수류탄!"
사무실 내부에 수류탄이 날아들어와 시간차를 두고 터진다.
"진입!"
수류탄이 폭발하자마자 먼지가 섞인 연기 사이로 부대원들이 진입한다. 폭발의 충격파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총구 화염이 방 곳곳에서 빛나고, 적들이 쓰러진다.
먼지구름이 완전히 걷히자, 사무실 내부에는 쓰러진 형체들과 특무부대원들만이 남아 있다.
"사무실 확보되었습니다."
부관이 무전을 남기는 사이, 같이 들어온 입실론-16("작약탄")의 대원들이 내부 곳곳을 살핀다. 그 중, 한 대원이 사무실 반대쪽 끝에 있는 형체에 다가간다. 그 형체는 쓰러져 있다. 대원이 그를 확인하고 넘기려던 찰나, 그의 손이 조금씩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다.
대원이 손 쪽을 바라보자, 그 부근에는 소총이 놓여져 있다.
대원은 재빨리 소총을 쏘려고 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겨도 총탄이 발사되지 않았다. 탄창이 빈 것을 깨달은 대원은 뒤로 빠진 뒤 총열 하부에 있던 도어브리칭용 샷건을 그를 향해 몇 발 쏘았다.
산탄의 쇠구슬들은 그에게 맞는 것과 동시에, 그 벽 너머에 있는 직원실의 벽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로 직원실의 벽장이 있었다.
벽장 속에 있던 폭발물들이 총탄을 맞고 격발되며, 동시에 다른 폭탄들까지 유폭시켜 커다란 폭발을 이루어 냈다.
쾅!!
갑작스러운 폭발의 섬광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덮쳐오자, 주변에 있던 모든 인물들은 그 폭발에 휩쓸렸다. 가까이 있던 대원들은 그대로 날아가 죽거나 크게 다쳤고, 좀 멀리 떨어져 있던 운 나쁜 대원들 몇 명도 파편을 맞았다.
"방금 뭐야?!"
"… 사무실 벽 쪽에서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대원들 몇 명이 죽은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다른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주의하며 적을 빨리 찾아 제거하라."
부관과 그 부대가 직원실 내부로 들어가자 적들 몇 명이 겨우 일어나고 있었다. 대원들은 그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총탄을 맞자 그들은 종잇장처럼 쓰러졌다.
부관은 직원실 내부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른쪽에는 머리에 파편이 꽂힌 시체 하나가 또 있었고, 왼쪽을 돌아보자 문 옆에 시체 하나가 또 있었다. 시체는 왼쪽 허리가 폭발의 여파로 한 뭉텅이 뜯어져 나가 있었다. 그가 시체들을 확인하고 움직이려던 찰나, 시체가 미약하게 기침했다.
"콜록… 아… 아…?"
부관은 깜짝 놀라 그쪽을 돌아보았다. 허리 한쪽이 뜯겨져 나갔는데도 움직이다니. 다행히 이번에는 손이 닿는 곳 근처에 총기는 없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더니, 그제서야 자신의 고통을 알아보고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으…. 으아아악…!!!"
제 딴에는 고통 속에 비명을 내지른 것 같았지만, 그 소리는 생각보다 미미했다.
직원실과 사무실의 상황이 정리된 사이, 곧 다른 방향에 있는 건물들을 정리한 다른 부대의 대원들이 속속 무전을 보내 왔다.
"여기는 카이-676("우레폭풍"), 대기실 확보되었습니다."
"여기는 알파-12("천왕성 작전"), 주차장과 연습장 확보되었습니다."
"여기는 크시-87("집행명령"), 창고와 관제탑 정리되었습니다."
"전 구역 확보되었습니다. 교전 종료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내부에 존재하는 자료나 생존자가 있으면 확보하여 집결지점으로 귀환하십시오."
모두에게 내려진 무전을 듣고 부관은 생각했다.
'생존자라.'
생존자라, 보통은 이런 상황에선 적대 요주의 단체 소속원이 아닌 일반 직원들을 지칭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자신 앞에 생존자가 있었다. 비록 지금은 의식이 거의 끊긴 듯 보였지만서도 말이다.
지휘관이 무전을 보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전 구역 확보되었습니다. 사살한 적 9명, 경상 하나 있습니다."
"지휘관님."
"뭔가?"
"중상을 입은 적 하나가 살아 있습니다. 복부 일부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럼 데리고 오게. 빨리."
부관은 그 사람을 들쳐 메고 빠르게 직원실을 뛰어 나갔다.
지휘관은 보고를 수정했다.
"사령부, 교전 결과 보고 수정합니다. 전 구역 확보되었습니다. 사살한 적 8명, 중상 하나. 경상 하나 있습니다."
지휘관은 입술을 가볍게 달싹였다.
"운송에 생포자 둘 추가 요청합니다."
"알겠습니다. 응급의학부 긴급환자 운송 라인을 통해 긴급차량을 추가로 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부관이 지휘관에게 중상자를 데리고 와 적당한 벤치 위에 눕혔다.
"상태가 심각하군."
다른 대원이 적당한 천으로 복부를 덮었다. 흰빛의 천은 바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대원이 적당한 응급처치를 하는 사이 주변의 부대가 전부 입구로 다시 모이자 부관이 다시 중상자를 들었다.
"차가 왔다."
긴급 출동한 구급차가 현장에 재빠르게 도착해 부상을 입은 대원들과 생포자들을 차에 실었다.
남은 대원들은 타고 왔던 승합차들 쪽으로 다시 돌아가 현장을 떠났다.
경은이 눈을 뜬 것은 가히 수 주일은 채 되었을 즈음이었다. 그 정도로 그녀의 회복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녀가 그 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바로 드러난 것은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었다. 순백색의 새하얀 빛 천장. 마치 아직도 깨지 않은 꿈 속 공허 안에 있는 듯한 그런 백색.
그녀가 팔을 움직이려고 했을 때, 오른쪽 손목에 미약하게 자신을 붙잡는 제지력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손목에 박혀 있는 길다란 플라스틱 관이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 빼고는 아무런 정보도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 없었다.
흰 옷의 간호사가 환자실에 들어오다가 눈을 뜬 채 지켜보는 시선과 마주쳤다. 간호사는 깨어난 그녀를 보자마자 급하게 당황하여 병실 바깥으로 나갔다. 경은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본인의 핸드폰조차 찾을 수 없었다.
간호사가 회색빛 셔츠를 입은 직원들 두 명을 데려온 것은 몇 분이 지난 일이었다. 그들은 본인이 재단 직원이란 것을 면전에 대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병실에 들어오면서 간호사를 내보내고 문을 잠그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경은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목이 메었다.
"일어나셨나요?"
그것이 그녀가 깨어나고서 처음 들은 첫 인사였다. 경은은 손을 뻗어 생수병을 집으려고 했으나 팔에 관이 붙어 있단 걸 다시금 상기하고는 다시 팔을 내려놓았다. 직원 중 젊은 쪽으로 보이는 사람이 물을 종이컵에 담아 한 모금 먹여 주었다. 그제서야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긴… 재단이군요. 아니면 적어도 위장건물이거나."
"…"
직원들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직원들 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쪽은 클립보드에 붙은 종이에다가 무언가를 마구 휘갈겨 쓰고 있었다.
"계약서에 동의하시면, 며칠 이내로 절차를 통해 안전하게 사내 치료센터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그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서 클립보드와 펜을 건넸다. 경은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서명하지 않으면?"
직원은 이전에도 그 말을 들어본 듯,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러면 비공식적 으로 집행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없군. 갈 땐 가더라도 차라리 편하게 가는 편이 낫지.
경은은 펜을 들어 서명란에 이름과 사인을 적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