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겨울이 내렸다.
모처럼의 휴일이라 바깥에 나갈까, 하다 운전이 무서워 그만두었다. 그래서 그저 흔들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아직 머리가 멍했기에 아래로 내려가 원두를 한 움큼 집었다. 블렌더에 넣고 갈자 드르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우울감과 리듬을 담아 내 정신을 두들겼다. 나는 그 원두를 가지고 드립 커피를 하나 만들었다. 맛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추웠다. 찾아갈 친구도 없을 정도로 추웠다. 그는 저번 주에 죽었다. 트럭이 그의 몸을 덮쳤고, 그는 그 도로에서 사라졌다. 그것이 그의 피날레였다.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좋은 퀄리티였고, 그래서 더 슬펐다. 우리는 5년을 기다렸다. 그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에필로그가 선언되었다. 나는 딱히 장례식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밤만 새웠다. 나는 그 선고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모두가 그랬다. 그건 맵지 않고 썼다. 지독하게 속이 쓰렸지만 얼굴을 붉히게 만들지는 않았다. 한숨 소리가 울음을, 혼잣말이 비탄을, 탄식이 절규를 대신해 퍼져만 갔다. 짐작컨대 우리 모두는 내심 그가 죽었다고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멀쩡한 기혼자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숨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우리는 이미 몇 년 전에 각자 장례식을 했으면서 또 장례식을 했다. 가짜 장례식은 성대했다. 많은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나는 달디 단 커피의 힘을 빌려 밤을 새웠다.
그날에 우리는, 그저 그가 멀리 가 버렸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문득 창밖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눈사람이 하나둘 굴러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친구의 아이는 이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아이는 더 이상 눈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하루 종일 게임에만 몰두했다. 그는 장례식에 오지도 않았다. 게임은 핑계였을 뿐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내 친구의 젊은 아내는 차마 뭐라도 하지 못한 채 홀로 장례식을 주관했다.
그녀의 앞에 놓인 길은 가시로만 가득했다. 내가 도저히 도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운 가시였다. 나는 차마 그녀의 처지에 선 자신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너지지 않기만을 빌었다. 그녀가 실종선고를 들었을 때 한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맞았다.
내 친구는 갔다. 정말로 멀리 가 버렸다.
우리 모두에게 버리는 일이 너무 늦게 시작되었다. 그녀가 매주 청소하던 그의 방은 천천히 비워졌다. 내버려둔 지 오래되어 이젠 버리기조차 애매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버려야 했다. 제때를 놓친 물건들이 내보내는 향수와, 추억과, 기억들과, 감정들의 편린이 힘든 선택을 강요했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난 그에게 보내려고 썼었던 연하장들을 다 버려 버렸다. 재활용 통에 덩그러니 널브러진 연하장들의 표지가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상사의 상투적인 안부 메세지였다. 난 그에게 이미지를 섞어 성심성의껏 답장을 한 뒤에 갈 곳 없는 눈을 벽으로 돌렸다. 오래된 사진을 걸어 놓은 곳이었다. 그와 내가 파리에 여행을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을 앨범에 담아서 전시해 두었다. 나는 내심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건 일종의 위안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어떻게든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내가 완벽히 그를 포기했다면 난 저 사진마저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버리지 않았다. 나는 버리지 않았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크랩해 뒀던 기사를 떠올렸다. 흥신소의 보고서가 새록새록 기억났다. 내가 그를 버리지 않았던 시간 동안 했던 모든 노력들은, 아직도 내가 그런 걸 하고 있다는 마냥 내게 위로를 속삭였다. 난 충분히 했다. 할 만큼 했다고, 그러니까 이제는 괜찮다고 알려주는 그런 속삭임이었다.
눈물이 났다.
아아,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울면서 안도했다. 정신을 차리면 이 안도감이 사라질 것 같아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넘치는 눈물을 막으려고 하지도 않은 채, 울면서 그 액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벽에 걸린 싸구려 위안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흐느꼈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눈길을 밟는 소리가 사박사박, 하고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