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두운 형태의 색

방랑자의 도서관 기슭,
공포의 기록자인 제비꽃 알로게르두스의 기록에서:


제비꽃의 세계들의 무참한 다양성이나, 가면왕국의 눈이 아픈 강렬한 쾌락계를 차치하더라도 무수한 외부차원 혹은 외우주 세계가 소재하고 있다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 내부의 생물들에게는 하나의 세계지만 나와 같은 관찰자들에게는 하나의 역사에 지나지 않으니, 아이러니하다 할 만하지 않은가? 허면 모든 생물들은 각자의 역사 속에서 거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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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기록자.

나는 내가 거하던 제비꽃 세계로부터 떠나온 수없는 이단자 중의 하나겠으나, 물론 그것은 "손이 열셋인 왕"과 같은 인간성이나 다른 괴팍한 버러지 형태 미물들의 생존 본능과도 다른 지식욕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세계들의 기원은 어디인가? 그것을 파헤칠수록 세계 곳곳의 음험한 밤들의 시선을 눈치채게 되고, 점점 어떠한 신적 존재들의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방랑자의 도서관을 누비는 극히 드문 제비꽃 존재자인 나는, 수없는 세계의 말로를 관찰한다. 그 중 하나인 기록된 389번째 세계— 아주 이전, 지구 너머에 존재하는 어느 어두운 세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세계의 존재조차 몰랐기 때문일까, 그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그 나라를 ""이라고 부르자.

"봄"은 다른 어떤 세계와도 연결점이 없었는데 가장 가까운 세계와도 한참 멀었다. "봄"에는 무수한 꽃이 피고 꽃나무가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들은 몇 개의 나라로 이루어졌으나 실상 사람의 나라라고 할 수 없었다. 그들 중 외곽의 야만한 것들은 서로 잡아먹었고 장미 가시 같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동지의 내장을 헤집어 먹었다.

그러나 중심부에는 가장 발달한 나라가 있었다. 이들은 그 나라를 "꽃의 나라"라고 칭하였다. 물론 이 나라의 사람들도 본성은 외곽의 야만한 짐승들과 같으니, 이렇게 발전하기 전에는 역시나 서로를 잡아먹었다. 몇 명, 능력 강대한 존재들은 싸운 끝에 더 이상 결판이 나지 않았고 차라리 협력하여 나라를 세우기로 한 것이 "꽃의 나라"인 것이었다.

꽃의 나라


아주 옛날, 에는 딱히 나라도 없고, 하늘도 없고, 땅의 마법을 빨아올리는 무수한 꽃나무 뿐이었다. 이들 꽃나무는 유일한 영양이었던 토양의 마법을 뿌리로 빨아올려 가지를 뻗고 하늘에 꽃을 피웠다.

그러나 영원히 피어 있는 꽃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꽃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꽃잎은 나무뿌리의 위에서 썩었다. 그렇게 문드러지는 잎이나 꽃잎, 혹은 거기 내려앉는 습기에서 생물이 무수하게 생겨났다. 이 생물들은 말하자면 미물이었고 손바닥만한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생물들이 많아지자 이들은 쉴새없이 서로 먹었다. 잡아먹은 자는 먹이의 힘과 총명함을 섭취하여 끝없이 성장했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다. 드넓은 에는 수백이 넘는 생물을 잡아먹은, 몇 마리의 강대한 생물들이 떠돌고 있었다. 이네들은 어느 시점에서 지성과 힘의 한계까지 올라간 자들이었다. 먹이의 수를 고려하여 보면 그들은 세계의 사방에서 각각 나타난 맹수였던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나 짐승과 닮아갔고 세계 그 자체가 그들에게 고개 숙여, 나무조차도 생물의 의사에 맞게 자라나 그들의 성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야수가 영역을 두고 서로를 불가침하듯이 이들 역시 침범하지 않는 것이 상책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주황색이 가득한 능소화 숲의 주술을 다스리던 자는 짐승들 중에서도 특히 영리하였다. 그는 왜 세계의 만물이 서로 먹고 먹혀야 하는가를 탐구한 끝에 그것은 세계의 마법이 무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세계 중심의 커다란 꽃나무로 나아갔다.

커다란 꽃나무는 무수한 꽃나무의 어미이자 아비요, 세상을 떠받들고 있었다. 능소화의 짐승은 고뇌한 끝에 갈고리발톱을 드러내어, 나무 등걸을 내리찍었다. 거대한 나무에서는 수액처럼 빛이 폭발하여 땅을 내달렸다. 땅의 힘을 흡수하던 꽃나무의 왕이 쓰러졌다. 그러자 땅에서 하늘로, 다시 땅으로 이어지던 순환이 끊겼다. 끝없이 떨어지던 꽃들도 지지 않게 되었고 떨어자 꽃잎에서는 새로운 생물도 태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생물들은 살생을 하지 않아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었고, 또 약한 자들이라 하여도 잡아먹히지 않았다.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끝나 무수한 꽃들은 영원히 피어 있을 수 있었다. 자원의 무한함과 순환이 끝나고, 세계는 시간이 멈춘 듯이 정체되었다.

이를 눈치채고서 세계의 강한 짐승들은 죽은 나무로 몰려들었다. 벚꽃 우거진 지역에서 마법이 흐르는 강가를 지배하던 가 갈고리발톱을 세우며, 유독한 힘과 벚꽃색의 힘을 내리치며 북방으로 나아갔다. 벚꽃의 신이, 죽은 나무에 앉아 있던 능소화의 신을 응시하여 보았다.

벚꽃이 말했다. "너는 어떤 이유로 이런 짓을 꾸민 것이냐? 세계의 순환은 미물들에게는 살상의 굴레인것이 사실이나 신과 같은 힘을 두른 우리들에게는 삶의 기본이었다. 매일매일 신이 내린 재앙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면 우리들 신은 곧 쇠락하여 다른 짐승처럼 평준화될 것이니라."

벚꽃은 능소화를 죽이고서 다시 세계를 순환시키고자 하였다. 천 년간 축적한 역병이 능소화와 그 영역에 드리웠다. 능소화는 그를 저지하기 위하여 천 년을 모은 무수한 불의 비를 흩뿌리려 구름을 불렀다. 그들이 긴장을 일으키는 것만으로 세계가 떨었다.

그러나 이윽고 또 다른 자들이 나서 그들의 사투를 중재하였다. 동쪽으로부터 온 양록색 독초 사이를 거니는 신과 서쪽의 밝은 금색을 띈 민들레의 신이었다. 이네들은 각기 둘을 말리고서 순환의 처우에 대해 토의할 것을 권하였다. 베여 쓰러진 세계의 기둥을 원탁 삼아 네 신이 만났다.

벚꽃은 아까와 같이 능소화의 잘못을 논하였다. 그 말에 능소화는 반발하여 논했다. "순환은 악이다. 약자들이 성장하는 것은 만 마리의 존재가 죽고 그것을 먹은 한 마리가 강해지는 것이므로 무수한 희생을 낳는다. 세계와 우리들은 지금껏 그러한 악을 범해 온 것이므로 내가 붕괴시킨 것이다. 이제 누구도 해를 끼치거나 해를 입지 않아도 좋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자들은 고민하였다. 그들 모두 능소화가 단독으로 세계를 바꾼 것에는 탓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정체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그에 대하여 민들레는 말하였다. 민들레가 말하자, 그 목소리만으로도 꽃이 피어났고, 창조의 숨결이 일었다. "능소화의 이야기는 무례하고 독단적이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외다. 세계가 잡아먹기를 강요했기 때문이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태어났다면 분명 그러지 않았을 것이오. 그러나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다오. 우리 중 세계의 순환을 쳐낼 방안을 알았던 이도 능소화 뿐이었으니 말이오. 그렇지만 벚꽃의 말대로 변화 없는 세계가 수만 년을 지속되면 우리는 어떠한 자극도 새로이 얻지 못해 시들어 버릴 것이오."

이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독초가 발언하였다. 그는 그들 중 가장 어렸으나, 미소를 띄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의 이야기가 맞습니다. 우리가 만인에게 공포나 경외를 얻지 못하면 신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순환이라는 변화에 의존할 필요는 없습니다."

벚꽃이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군림하겠는가?"

독초는 말하였다. "우리가 세계를 바꾸면 되겠습니다. 죽은 어머니 나무의 힘으로 궁정을 짓고 건물을 세워 뭇 미물들을 백성으로 두고 우리는 다스리면 됩니다. 그들의 삶을 바꾼 개척자이자, 왕들으로서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욱 낫습니다."


꽃의 정지


그들은 이곳에 동의하였으니, 능소화의 목숨을 바침으로서 세계를 재순환시킬 수 있을지 아닐지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다. 쓰러진 나무의 힘을 세계로 뻗으니 나무들은 궁궐과 도시와 마을이 되어 살아나게 되었다. 미물들은 그 힘을 받아 더 이상 짐승이 아니요, 하나하나가 지성을 갖춘 백성이 되었던 것이다.

넷 신은 그 궁궐에 진좌하였으니 모두가 그들을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오직 누군가만은 그들의 치세를 염려하였다. 그것은 그들과 동등한 힘을 가진 신, 회람색 붓꽃의 왕이었다. 그는 정지된 세계를 염려하여, 자신의 힘을 모두 빼내며 이렇게 말했다.

"두렵도다! 교만한 자들이여. 본디 세상이 멈추는 것은 그야말로 주검이 되는 징조가 아니냐?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도다. 앞으로 정체된 세상은 힘을 잃을 것이다."

붓꽃은 이 말을 남기고, 세계의 길을 열고서 달아났다. 그들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는 시간이 달랐다. 그는 지구의 바다에서 오랫동안 바다의 신으로 군림하였으며, 미물들을 위해 살아갔다. 그는 죽은 혼들을 위한 저승의 입을 열고 땅의 독기를 제거하기 위한 구멍을 파려 했으나 힘이 다하였다. 그리하여 탈진한 채 고래 전사들에게 맞아 죽기 직전, 마침내는 형체를 버린 채로 지구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한편 꽃의 나라를 세운 자들은, 붓꽃이 예상했던 사건에 당면했다. 외계로부터 흩뿌려진 아버지 나무의 마법에 이끌린 강대한 침입자가 나타난 것이다. 침입자는 야수요, 뭇 나무들보다도 크고, 이빨은 단검과 유사하며 껍데기는 암반과 같았다. 반딧불 같이 형형한 눈은 도합 열셋이었다. 그것과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노거수가 날아가고 바위가 하늘을 날았다. 화산암과도 같이 검고 거북마냥 견고한 외피를 두른 짐승은 그와 비슷한 모든 족속의 어미이자 아비였다.

야수는 실로 신과 같았다. 그것의 아가리와 심장은 둘이었으니 그 머리는 각각 수용과 거부의 표상이었다 전해진다. 한쪽 머리로 무언가를 삼켰다 하면 그것을 갑절로 토해내니, 불을 마시면 대화재를 일으켰고 벼락을 잡아먹으면 뇌우가 내렸다. 다른 쪽 머리로 숨을 들이쉬면 짐승은 모든 것들을 무시하는 힘을 얻어 몸을 기체로 바꾸어 공격을 거부할 수 있었다.

야수가 신의 궁궐에 돌입했고, 네 신이 맞서 힘을 합하여 싸웠다. 싸운 끝에 신들은 두 머리의 아가리를 봉쇄하여 야수의 권능을 묶어두었다. 그리고 짐승은 목을 베고 다리를 부수며, 꼬리를 토막내었다. 야수의 뼈는 흩뿌려져 귀족들의 저택을, 껍데기는 천더기들의 집을 두르는 울타리를 형성하였다. 둘러앉은 신들은 내장과 살을 파먹으며 동맹의 약속을 재확인하였다.

그럼에도 야수의 두 능력을 갖춘 심장 두 개는 부수지 못하였다. 이에 신들은 주술을 쏟아 심장들을 희귀한 보구로써 만들었다. 수용의 힘을 갖춘 심장은 검이, 거부의 힘을 갖춘 심장은 방패가 되었다. 넷은 약조하여 두 보구를 땅에 봉하여 세계의 위협이 한 번 오기 전에는 꺼내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오래되지 않아, 그곳에 방문자가 나타났다 한다. 실상은 내방자가 아니라 도적이었다. 그리워하지 말지어다. 그는 익숙한 고향 땅에서 온 사내요, 녹색 옷을 입고서 무수한 검을 슬하에 둔 수집가였다. 어느 야밤 그 남자는 담을 넘어 봉인된 검과 방패를 두드려 깨웠다. 훗날 수용의 힘을 지닌 검의 심장은 그 남자에게 거두어져 '온트'로 불리게 되었으나, 방패는 행방이 묘연하였다.


꽃의 절멸


이백 년이 된 어느 날, 머나먼 세계의 땅에서 여름의 신이 죽었다. 왕들도 신이라 불리지만 그들은 진정한 신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땅을 기는 미물들에게 신이었듯이 여름은 그들에게 신이었던 것이다. 여름의 죽음은 폭풍이 되어 '봄'의 세계를 휩쓸었다. 정지된 봄의 세계의 생물은 이것에 맞추어 대응하는 능력이 없었다. 꽃이 떨어지고 나무에선 여름의 푸른 잎이 태어났으니 모두 이제껏 없었던 재해였던 것이다. 미개한 백성들은 이를 끝이라 여기고 모두 외곽으로 도망쳐 버렸다.

신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여름이 오는 것을 억눌렀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그네들이 실패하자 백성들은 모두 땅을 파고 여름잠을 자기 위해 숨었으니 더 이상 경외를 바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언쟁이 심해지고 말았다. 내전이 일어날 기미까지 보이던 어느 밤 저택의 지붕에서 하나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것은 "거미"였다. 이름을 부르지 말아라. 그것은 대죄인으로 도망자였으며 여름 본인의 천벌을 사 이름도 몸도 신의 권위도 뜯겨나간 말하자면 아주 오래된 무허가 존재였던 것이다. "거미"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몸뚱이가 없이 단지 허깨비로서 나타났던 것이다.

거미가 나타나자 신들은 동요했다. 혹자는 천한 것이 환영을 보인다 죽이려 하고, 다른 자는 이방인임을 인지하고 냉정히 관찰하였다. 거미가 말하기를 이 세계의 현상은 여름이라는 옛 신이 죽은 탓이며 그들로는 해결할 수 없고 세계는 서서히 무너질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무너질 것이라 덧붙였다.

민들레가 걱정하며 말하기를, "더 이상 이 세계의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면 우리를 믿는 백성들도 떼몰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그들에게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벚꽃이 대꾸했다. "어리석구나. 몇백 년 전 말하지 않았느냐?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다시 신의 공포만으로 지배하여, 나라를 거리고 만인이 만인을 잡아먹으면 되느니라."

거미는 곧 사라졌고, 다섯 신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튿 날 후에는, 이번에는 또 다른 이방인이 왔다. 그는 신이 아니며 신의 도를 따르지도 않았다. 그는 본 적 없는 복식을 하고 있었으니 옷은 검고 머리는 이글거리는 횃불이었다. 보랏빛 불꽃을 일렁거리는 남자는 다섯 신들에게 문안하고서, 자신을 소개하였다.

남자는 이야기했다. "저는 플러그소프트에서 온 그곳의 제9서버장입니다. 제가 온 것은 지엄하신 별빛 아래의 여러분과 계약하고자 함입니다."

이방인인데다 신이었던 적도 없는 이가 왔다 하여, 벚꽃은 피보라를 일으키려 하고 민들레는 독니를 세웠다. 그러나 독초만은 그 존재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플러그소프트라는 자들이 우주적인 권세가 있음을 알고서 동료들을 진정시키고는 마주보며 무엇을 원하느냐 물었다.

남자는 말했다. "이 세상이 스러지는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여름이 죽음으로 인하여 봄의 시간은 말라가고 텅 빈 세상만 남게 되겠지요."

독초는 대꾸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본론을 답하라."

남자는 사죄하며 대답했다. "저희는 멸망한 후의 이 세계를 원합니다. 그리하고 세계를 재구축하여 하나의 오락으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또 다른 문명을 게임으로써 이루겠습니다."

독초는 말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너희가 이미 이곳에 쳐들어오지 않은 것이 행운이구나."

남자는 이야기했다. "그것은 게임 개발자의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은 턱을 괴고서 이야기했다. "허나 거래가 아닌가? 그리하면 너희는 곧 스러질 우리에게 무엇을 주겠느냐?"

남자는 불꽃을 일그러뜨리며 웃음을 지었다. "세계의 적합한 포식자요 왕이신 여러분께는 두 가지의 이익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온존히 힘을 보존하여 다른 세계로 떠날 기회입니다. 하나는 저희 게임사가 쓰는 더미용 인간 3만 개를 여러분의 이름으로 목전에서 참수하여 권위를 드높이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떠나고, 넷 사이에서 회의가 벌어졌다. 독초의 신은 동의하였고 나머지도 저마다 동의하였다. 그러나 민들레는 분노를 토하고 사악한 꽃의 말을 외치며 말했다. "이 땅에서 가장 강대하여 지배자의 자리에 오른 그대들이 줏대 없이 고향과 먹잇감들을 버리려느냐? 그리하려면 나를 막고 가거라."

싸움이 벌어졌고, 그가 패했다. 세 신은 민들레의 목을 베어 피를 세계 너머로 쏟았고 살점은 모조리 잘라먹었다. 민들레의 피는 무한히 떠돌아 아주 오랜 후 전혀 다른 곳에 불시착하였다. 그리하여 그곳의 촌민들은 소리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꽃의 의미로 대화하게 된 것이다.

한편 약조한 날짜가 되었다. 플러그소프트 서버장이, 3만이나 되는 더미 데이터나 NPC며 다른 모든 인간인 것들을 포박하여 묶었다. 그리고 약조대로 저택 앞마당에서 목을 쳐 하나하나 죽였다. 피와 데이터 조각과 살덩이가 부유하고 네 신은 피를 마셨다. 거래가 완료되었다. 맹약대로 네 신은 자신들의 나라를 버리고 떠났다.

서버장은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단 한 번의 저주가 세계를 뒤엎었다. 세상은 스테이지가 되고 미물들은 피격되어야 하는 적이 되었다. 그나마 우등한 것들만이 세계를 파내어 도망칠 수 있었다. 서버장의 관리 하에 '봄'은 제9서버가 되어 거대한 디펜스 게임으로써 첫 발을 내딛었던 것이다.

삼신은 지구로 추락하였다.

  • 가시나무로 이루어져 그 가지 끝에서 꽃을 피우는 분홍색의 신은 일본 열도로 추락하였다. 그곳에서 젊은 여자로 화하여 벚꽃잎을 흩뿌리며 질병을 퍼뜨리고 사람을 죽이려 날뛰었다. 천성이 잔학한 신은 귀신으로 여겨졌고 인간들과 싸운 끝에 힘을 회복치 못한 상태에서 패하였다. 절벽으로 몰려 결계에 가두어졌으나 이후로도 지구상에 흉한 손길을 드리울 것이었다.
  • 무한한 피로 땅을 뒤덮으며 그림을 그리는 양록색의 신은 은둔하였다. 그 자는 아마도 가장 은밀하고 교활할 것이었으며 인간으로 완전히 화하였다. 추측컨대 여전히 그는 사람 사이에서 걸으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것이다.
  • 추모의 그늘을 드리우며 눈이 멀 듯한 빛을 퍼뜨리는 주황색의 신은 이에 좌절하였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을 외면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구의 성층권으로 치솟아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산산조각내어 그 조각을 흩뿌리려 했다. 그러나 천벌로, 죽어도 죽을 수 없었기에 세계에 떨어진 그는 여전히 악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 오래되었기에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어두운 봄 탁한 색의 꽃이 피면, 세계의 잔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여즉 모든 이야기를 삼킨 플러그소프트의 서버 역시 여전히 새로운 세계를 게이머들에게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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