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
第〇〇二五番 - 「蕃神」
원작: http://scp-jp.wikidot.com/collected-item-no0025
저자: ©︎shirasutaro-
역자: Salamander724
번蕃신神수집물각서장목록 제영영이오번
538년 포착. 쿠다라(百済)국의 성명왕(聖明王)이 석가불(釈迦仏)이라는 금동상 하나, 그 금동상을 꾸미는 장식구, 관련 서적 몇 권을 흠명제(欽明帝, 제29대 킨메이 천황)에게 증여하였다. 금동상은 머리통이 둥글고 귀가 길쭉한 매우 진기한 꼴을 한 것이 지금까지 미증유의 용모로서, “번신(蕃神, 외래의 신)”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전한다. 서적에 쓰인 내용은 “번신”을 모시는 법이며, 쿠다라국보다 서쪽에 있는 나라들은 모두 이 법을 배우고 익힌다고 하는데, 그 법은 수집물 제일번 “국진신(国津神)”을 노하게 하는 것들이다.
소가노 오오오미 이나메 스쿠네(蘇我大臣稲目宿禰)는 “번신”의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미카도(帝)에게 주상하였고, 미카도는 “번신”의 금동상이 용모단정하다고 평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번신”에는 정신을 오염시키는 효과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신과의 혈연이 멀고 도래인과 관계가 깊은 소가 씨족에게는 이것이 특별할 것이다. 미카도가 시험삼아 이나메 스쿠네에게만 그 동상을 갖고 신앙해 보라고 명하여, 이나메 스쿠네는 무카이바라(向原)의 자기 저택에 동상을 안치하고 모시게 되었다. 조속히 수집이 시급하다. 또한 “번신”과 관련된 다른 수집물들은 모노노베노 오오무라지 오코시(物部大連尾輿)의 저택에 수집하였다.
569년, 야마시로(山城)와 츠쿠시(筑紫)를 시작으로 온 나라에 역병이 일어났다. 기간도 길고 사망자도 많은 것이, “국진신”의 분노에 의한 재액이 분명하다. 모노노베노 오오무라지 오코시가 “번신” 신앙을 멈출 것을 주상하였고, 미카도도 이를 받아들였다. 소가노 오오오미 이나메 스쿠네에게 주어진 “번신” 금동상을 폐기를 가장하여 수집하고, 이동이 불가능한 무카이바라 소가씨 저택은 불태워 버렸다. 이렇게 하자 바로 역병이 가라앉았다.
(記・나카토미노 무라지 카마코[中臣連鎌子])
첨부문서・하나(壱)
壱 야마시로에서 소규모 반란.
弐 츠쿠시에서 지방호족이 납세를 거부. 모반의 움직임.
参 쿠다라에서 전해진 금동상 이외 물품 여러 점을 수집물로 지정. 현재는 소가씨가 소유.이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노노베・나카토미 양 씨족의 부곡(部曲)에 명하여 주술의식을 개시한다.
30년을 기준으로 완수, 소가씨가 옷을 벗는대로 종료될 예정.
584년 재포착. 쿠다라국 사람 카후카노 오미(鹿深臣)가 “번신”의 일종으로 보이는 미륵(弥勒)이라는 이름의 석상을 가져와, 소가노 우마코 스쿠네(蘇我馬子宿禰)가 “번신”의 법도를 재흥하겠다고 한다. 또한 “번신”의 중증오염자로 보이는 혜편(恵便)이라는 중에게 부하의 딸을 붙여 오염자를 늘리려 들고 있다. 이는 “번신”의 정신오염에 의한 행동으로 사료된다. 동시에 그것은 이 나라에 또다시 재앙을 불러올 행동이므로, 다시금 수집이 시급하다.
익 589년 3월, 또 돌림병이 유행하여 민중이 모조리 절명, 소가노 우마코 스쿠네도 이환하였다. 모노노베노 유게 모리야 오오무라지(物部弓削守屋大連)가 민달제(敏達帝, 제30대 비다츠 천황)께 “번신” 신앙을 멈출 것을 다시금 상주, 미카도도 긍정의 뜻을 표했다. 선례를 따라 “번신”의 온상인 사찰 따위를 불지르고, 불타고 남은 석상은 수집하였다. 병은 가라앉았으나 “번신”에 대한 경계를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겠다.
(記・나카토미노 카츠미 마헤츠키미[中臣勝海大夫])
첨부문서・둘(弐)
우마코가 또 쿠다라국에서 번신상 여러 점을 들여 왔다. 신의 피가 옅은 소가씨는 짐작컨대 번신을 들여와 신들의 위엄을 추락시키고 이로써 자기들의 권위를 끌어올리고자 함일 것이다.
조령신(祖霊神)의 어력(御力)으로 지배하고 있는 지방호족들도 요즘 반기의 색이 농후하다.
번신이 힘을 가지면 왕권의 기반은 흔들린다. 어떻게든 타개책을 강구해야 한다.
일단 선대에 했던 주술을 다시 쓰기로 한다.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첨부문서・셋(参)
민중들에게 만연해 있고 나 자신도 지금 걸려 있는 이 병은 부친 대에 유행했던 그것과 완전히 똑같다.
아내 말로는, 모노노베씨는 수인제(垂仁帝, 제11대 스이닌 천황) 때부터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의 신보관장(神宝管掌)을 맡아서 그 안에 신보를 수집・검교・관장하고, 동시에 주술을 맡아 왔다고 한다.
역병이 그들의 부곡에 의한 것이라면, 이 장애물을 배제하지 않는 한 이 나라에 불법이 널리 퍼져 우리 소가씨가 권위를 갖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차기 미카도는 혈연이 가까운 오오에 황자(大兄皇子)다. 그 대에 조략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587년, 용명제(用明帝, 제31대 요메이 천황)가 병석에서 “번신”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그 여하를 의논하라고 조유하였다. 직후에 아나호베 황자(穴穂部皇子)가 “번신”의 오염자인 법사를 데리고 갔다. 이로 보건대 조정 사람들은 대부분 “번신”에 정신이 오염당해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감염경로는 아직 불명하다. 경계를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
회의 중에 오시사카베노 후히토 케쿠소(押坂部史毛屎)로부터 모노노베노 오오무라지 모리야에게 전갈이 있었다. 신하들이 반기를 들고 오오무라지 모리야를 모살하고자 획책하고 있다고 했다. 이 사례도 “번신”의 정신오염에 의한 이상현상인지 의논할 필요가 있다.
(記・나카토미노 카츠미 무라지[中臣勝海連])
첨부문서・넷(肆)
다음 미카도로 세워야 할 아나호베 황자가 암살당했다. 이래서야 무엇을 위해 용명제에게 주술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우마코의 소행일 것이다. 혹시 역병 건이 새나간 것일까?
나카토미노 카츠미도 죽임당했고, 신하들의 모반은 점점 확실하다. 꺼림칙하여라… 꺼림칙하여라.
동 587년 7월, 정미년 싸움에서 소가노 오오오미 우마코가 승리하여 모노노베 오오무라지 모리야를 멸하였다. 이로써 주술부 구성원들은 그 임무를 해제하고, “번신”의 수집물 지정을 해제하였다. 이후 우리는 일시적으로 소가씨의 부곡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이후 직무에 관해서는 첨부문서 다섯째를 참고하도록 한다.
(記・토네리 토미노 이치이[舎人迹見赤檮])
첨부문서・다섯(伍)
이 나라 사회는 이미 조령신의 영력의 분배를 지배의 기둥으로 삼는 것만으로는 통치가 성립되지 않는 단계에 있다. 주력(呪力)과 영력에 의존하는 체제가 작금의 지방호족의 반란, 그리고 시라기(新羅)국을 비롯한 서쪽 나라들의 위협이라는 과제를 초래하였다.
군부(君父)를 따르지 않는 원시적 습성을 극복하고, 예법과 질서에 입각한 제도를 세우는 데 이용되기 마땅한 것이 불법(仏法)이다. 재래의 체제에 없는 통일적 신분질서를 토대로, 집권적인 새로운 지배원리를 불법으로써 세울 것이다. 근시일 내에 우마야도 왕(厩戸王, 쇼토쿠 태자)의 입 ― 아니 붓으로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지금까지 모노노베 씨족의 부곡이었던 제신(諸臣)들을 씨족이 아닌 조정에 속하는 조직으로 편성하고 일하도록 하기 위한 시설을 오하리다(小墾田)에 조성한다. 이 시설과 그 조직을 이름하여 “수집원(蒐集院)”이라 부르도록 한다.
소가노 우마코 스쿠네 오오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