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이야기 - "12월 5×5일"

이신하 요원은 실타래로 어질러진 어떤 방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형형색색의 실들, 그리고 저 멀리 벽에 난 약간의 붉은 균열만 보였다.

"대체 여기는 어디지…"

이신하 요원은 웃을 기운조차 없는 까무잡잡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다. 이때, 눈에 띄는 마크가 그녀의 눈에 띈다.

재단 마크였다, 정확히는 뒤집힌. 그제서야 요원의 눈에 마크의 배경이 들어왔다. 복장을 보아하니, 그 주인공은 바로 실에 거꾸로 매달린 또 다른 재단 요원이었다. 하지만 숨은 붙어 있지 않은 듯 싶었다. 목 위로 성한 곳이 없었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똑같은 배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실들에 재단 인원들이 크리스마스 장식마냥 매달려 있던 것이었다. 붉은 균열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매달린 시체들의 진자운동이 시작되었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이신하 요원은 균열을 바라봤다. 밝은 붉은 색이 마치 그녀를 유혹하는 듯 하였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저 선명한 색에 의식이 마치 끌려갈 듯 어지러웠음이다. 요원은 인식재해에 대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눈을 감고 최대한 붉음에 대한 생각을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녀는 더듬거리며 시체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매달려 있을 시체들과 부딪히며 그녀는 걸었다. 도통 여기가 어디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위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지막 기억은 어제 기지 숙소에서 잠들려고 침대에 누운 것이 끝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으로부터 찬바람이 훅 불어왔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무의식적으로 그만 눈을 떴다. 그리고 눈 앞에 다시 보인 건 그 붉은 균열이었다. 반대로, 반대로 이동했는데 분명. 거기까지가 이신하 요원의 끝이었다. 그대로 붉은 균열에 머리를 들이밀고는, 순식간에 닫힌 균열 탓에 시체밭의 하나를 일구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신하 요원의 몸은 형형색색의 실에 감겨 거꾸로 매달렸다. 마찬가지로 바람이 불자 다른 시체들과 같은 주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편 이신하 요원의 머리는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다른 시체들의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머리들이 있었다. 머리들은 모여서 하나의 큰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그 모양은, 별이었다.

이윽고 머리로 이루어진 별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가, 빠르게, 더 빠르게, 속도를 높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공간이 요동치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별에서 피가 쏟아져 내리며 거대한 손이 그 별을 뚫고 아공간 너머에서 건너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그 손은 이신하 요원의 온 몸을 살포시 쥐어잡아 그녀의 촉감을 섬세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그리고 손은 요원을 꽉 쥐어잡아 뭉친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철 냄새와 붉은 물감이 진하게 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정신이 듭니까?"

"악! 뭐… 뭣? 나… 나는?"

"이번에는 어려운 꿈이었나 봅니다."

거친 신음. 이신하 요원은 푹신한 침대에서 눈을 뜬다. 실험 용도로 구성된 푹신푹신한 방에는 침대와 이신하 요원 둘만이 남아 있고, 천장에는 둥근 스피커가 박혀있다.

"수면의 과학 연구소…"

"예, 바로바로 진행합시다. 제 이름은요?"

이신하 요원이 멈칫한다.

"음… 최수면?…헤헤"

"…망각 반응 미발생."

최수면 연구원이 펜으로 끄적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래서, 중요한 건, …관점이 어떻게 보였나요?"

"아, 네네. 그게…관점이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지금까지의 꿈들과는 뭔가…조금 달랐어요."

"예상대로네요 뭐. 돌아가시고 푹 쉬세요 일단. 같은 꿈이 갑자기 떠오르거나, 아니면 -"

"예, 예, 예. 같은 꿈을 꾸면 연구소로 오라고요?"

이신하가 돌아간 이후, 최수면 연구원은 조용히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최수면. 제04K기지 수면변칙부 상담소장인 그는 딱딱한 '상담소'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개조할 만큼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였다. 최수면의 걱정은 그래서 생겨난 것이였다. 기지의 인원들이 계속해서 공통되는 꿈을 꾸는 것이였다. 붉은 틈새와 목이 잘려 매달린 시체, 오각성과 다섯 손가락의 손…… 이런 꿈은 우연으로라도 꾸기가 쉽지 않은데, 공유몽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였다. 더구나 확실히 드러나는 변칙 현상도 없다면 더더욱 그랬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속이 울렁거렸다.

지나친 자세함, 공유몽의 특성상 지나치게 자세하다면 어딘가의 차원에서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그 차원이 어디냐, 그리고 우리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신하 요원은 꿈 감응이 좋아 여러번 실험을 도와주었었다. 위험하지는 않으니 다행이지만, 이런 꿈이 계속된다면 이신하 요원의 정신건강이 걱정이었다. 이신하 요원의 평가에 높은 점수를 적어주는 것 정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리라, 생각하는 최수면 연구원이었다.

그리고 최수면 연구원의 걱정은 사실이 되었다.


이신하 요원은 바로 그 다음날 찾아왔다.

이신하 요원의 온 몸에는 알록달록한 색의 실이 걸쳐져있었고, 목에는 붉은 색의 전구가 감겨있었다.

"신하 씨? 괜찮으세요?"

이신하 요원은 초점 없는 눈으로 최수면 연구원을 응시하더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신하 씨, 제 말 알아들을 수 있나요? 젠장. 어서 표준 의식 복구 절차를-"

그때 최수면 연구원은 이신하 요원이 어떤 곳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최수면 연구원은 이신하 요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빛을 받아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겨울을 맞아 준비한 별 모양 장식이었다.

별 모양 장식은 매료하듯이 빛났다. 빛이 별에서 빠져나와 최수면 연구원의 볼을 감쌌고 천천히 그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빛은 마치 최수면 연구원은 온 몸을 쓰다듬는 것 같았고, 그 움직임에 최수면 연구원은 홍조를 띄며 몸을 떨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별빛이 온 몸으로 속삭였다.

"너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최수면 연구원이 바라보는 화면 안의 이신하 요원이 대답했다.

"좋아요…"

"정말로 변태구나."

그녀를 어루만지는 빛은 곧바로 손으로 바뀌었다. 갑작스레 방탕함이 그녀의 몸 속에 스며든다.

"하아…"

최수면 연구원은 좋지 않은 낌새를 눈치채고 서둘러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이신하 씨. 지금 비상용 복귀 프로그램을 가동했습니다."

"최수면… 연구원님…"

"1분 정도면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제발 버텨주세요!"


"아 역시 당연하지. 또 새로운 자매님이 오셨군. 백단향 좋아하시나? 이번에는 전구도 있다네."

이신하의 눈 앞에 무언가가 있었다. 코일향이었다. 그 위에서는 조금씩 분홍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피어오르지 않는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다 - 없었다.

이신하 요원의 눈이 뜨였다. 분홍색 연기가 몸 주변에 가득했다. 무슨 냄새인가? 연예인의 냄새이다. 방금 내려 짓밟힌 눈의 냄새이다. 붙들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 질퍽임의 냄새이다. 크리스마스의 냄새이다. 붉은 코와 웃음이다. 저 멀리 너머의 냄새이다.

숨이 가빠졌다. 연기를 내보내야 했다.

"괜찮아 자기? 지난번 연구원도 그랬었어. 심호흡 하라고. 옷에 배인 연기는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까 말이야. 발목에 매달린 실처럼."

이신하는 응시했다.꿈과 현실이 기묘해져 가는 이 순간, 안개는 가시덤불처럼 자신을 덮었다. 이신하는 다섯째주의라는 것을 몰랐다. 그럼에도

붉은 틈새와 목이 잘려 매달린 시체, 오각성과 다섯 손가락의 손……

꿈에서 보았다.

이신하는 꿈결에서 인식재해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꿈과 달리 이번에는 코를 막고 기침을 연거푸 하면서, 단번에 자리를 박차고 방을 벗어나려 했다. 모든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최수면은? 꿈은? 그리고 나는? 이신하는 울었다. 눈이 매웠다.

….

최수면 연구원이 이신하 요원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오후 5시 5분이였다. 꿈 때문에 기지를 벗어나지도 못하게 지정된 사람이 어디를 갔다는 말인가. 최수면은 알 수 없었다.


이신하 요원은 길을 헤메었다. 아니 길인가? 알 수 없는 가시덤불과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사랑의 틈새와 붉은 빛과 손 사이를 헤메었다. 그러다가 눈을 마주쳤다. 누군가, 아니 누군가이긴 한것인가? 눈만이 이신하 요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이신하 요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눈이. 눈. 눈 눈 눈 눈 눈





다섯째란 무엇인가? 이신하 요원은 이를 아는가? 모르는가? 다섯째란 정의가 내려져 있는가?

이신하 요원은 그래서 존재하였다, 아무것도 정의되지 않는 것을 정의하려 시도하였기에. 다섯에 집착하였으나 다섯을 몰랐기 때문에.

그리하여 이신하 요원을 창조하고, 잔인함과 손길과 붉음과 다섯 사이에서 이리저리 비틀리어버린 것은, 당신이었다.





왜냐하면 다섯은,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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