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오늘도 그걸 먹고 있냐?"
그 말을 듣자마자 입가로 가져가던 숟가락을 슬며시 그릇 안에 다시 내려놓았다. 참 귀찮은 일이다. 매번 듣는 소리니까. 이러는 게 나뿐이 아닌데, 저 양반은 꼭 나한테만 저런 말을 던진다. 왜 또 시비냐는 말을 툭 내뱉고 싶었지만, 나도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 변칙적인 것과 비변칙적인 것 양쪽 다 — 해온지 5년이 되었다. 사나운 속마음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로 상대방과 어울리는 것쯤은 이제 기본 소양이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 여전히 눈앞에 식판을 든 채로 서 있는 선배에게 싱긋 웃으며 부드러운 말을 건네었다.
"왜 또 시비세요?"
이런.
"선배한테 시비냐니, 재단이 요즘은 정말로 거꾸로 돌아간다 야."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식판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는 내 건너편에 앉았다. 절로 한숨이 나오려던 것을 이번에야말로 씹어 삼켰다. 내 밥은 이제 막 세 번째 숟가락을 뜨려던 참이었고, 선배는 이제 막 앉았다. 앞으로 한 20분은 잡혀있어야 할 것이었다.
"윗물이 맑아야 말이죠."
"그건 그래."
선배는 피식 웃고는 숟가락을 집었다. 흘낏 대체 뭘 받아왔나 봤더니, 스테이크 정식이다. 그것도 오늘이 크리스마스랍시고 고깃덩어리 한가득 위에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장식까지 꽂아준 특식이었다. 사실상 그릇에 담긴 건 그게 전부였다. 고기에 밥 한 덩어리. 저 양반은 항상 저렇게 먹곤 한다. 고기, 튀긴 거, 고기, 기름진 거, 고기, 고기. 대체 야채는 언제 먹냐고 하면 그제서야 보란 듯이 샐러드도 좀 곁들여 먹는다. 그러고도 군살 하나 없는 걸 보면 이놈의 기지가 얼마나 사람을 굴려 먹는지 대강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니 근데 진짜, 매번 궁금한데 그게 잘 넘어가?"
"왜 또 시비냐고요."
마치 보여주듯 한 숟가락 크게 퍼서 입 안에 집어넣었다. 입 안 가득 들어찬 걸 우걱우걱 씹고 있자니, 선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마귀비빔밥 모니터링하느라 이제 비빔밥은 꼴 보기도 싫은데, 넌 매번 비빔밥을 먹고 있단 말이지…"
"아니 뭐 나만 먹어요? 여기 다른 사람들 다 멀쩡하게 먹더만."
"그냥 비빔밥만 먹는 것도 아니고, 협약으로 지원해 주는 50% 할인 쿠폰 매번 타서 거기로 직접 먹으러 가기까지 하는 놈은 너밖에 없어."
"그게 다 정보 수집 작전의 일환이에요."
"정보 수집은 무슨. 그냥 밥 먹으러 가는 거잖아. 보고서도 매번 그냥 '별일 없었다'로 퉁치면서."
그리고 뭔 크리스마스 특식 나오는 날까지도 비빔밥을 처먹고 있냐고…라며 투덜거리는 선배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한 술을 더 떴다. 50% 할인 쿠폰을 주는데 안 가면 그게 호구 아닌가? 게다가 뭐 식재료가 변칙적인 것도 아니고, 조리 과정이 변칙적인 것도 아니고, 가게가 변칙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모든 직원이 악마, 타르타로스 독립체이고, 비빔밥을 팔고 있는 건 '한국인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라는 점일 뿐이다. 악마들이라 그런지 인간이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잘 알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 위함인데 그렇게 맛있게 만들어도 되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들긴 했지만—
"타르타로스 독립체들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
—일전에 선배에게 물어봤더니 퉁명스러운 대답만을 돌려받았다. 타르타로스 독립체들의 사고방식은 물론 인간인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봐도 또 마귀비빔밥 관련 얘기라 생각하기 귀찮아서 대충 대답한 것이 분명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딱히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고, 악마학과 내에는 물론 다른 부서의 인식/인지/논리/모순/항밈-면역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딱히 별생각들이 없길래 나도 그에 대한 생각은 더 안 해보았다. 어차피 보통 깊게 생각하는 건 높으신 분들이나 하얀 가운 입은 양반들 일이다.
"근데 점심 드시는 거 보니까 오늘 아침에 업무 있으셨어요?"
고기 한 점을 입가로 가져가는 선배를 무심하게 쳐다보며 툭 질문을 던졌다.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에는 기본적으로 자율 출퇴근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휴일에 선배가 출근하는 걸 본 건 작년 부처님 오신 날에 마귀비빔밥 지점 중 하나에서 생긴 식중독 사건이 터지고, 관련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 하나가 악마의 존재를 알아내 버린 일 이후로 처음이다. 당시에도 오늘처럼 일이 좀 남아서 출근해 있었는데, 오후에 똥 씹은 표정으로 나오던 선배를 본 건 좀 웃겼었다.
"일거리는 딱히 없고, 그냥 너 일하러 나오는 거 보러 온 건데."
"예?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머릿속에서 선배의 말을 소화하고 있자니, 선배가 냅다 숟가락을 뻗어서는 내 그릇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비빔밥 한 숟가락을 뺏어 먹어버렸다. 아니 시발 내 점심의 마지막 한 숟가락이!!!
"내가 놀 때 일하는 사람 얼굴 봐두려고 말이야."
내 점심밥을 그렇게 끝장내 마지막 한 톨의 밥알까지 오물오물 씹어 삼키고는 그렇게 말을 내뱉은 뒤, 선배는 얄밉게 웃으며 혀를 베- 내밀어 보이는 것이었다.
창밖으로는 흰 눈이 흩날리는 크리스마스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