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커피

싸구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커피 특유의 씁쓸함과 자판기의 불량한 향, 그리고 약간의 달달함이 입 안을 감싼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뜨뜻한 커피는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빈 속을 가득 채운다. 일을 끝낸 뒤에 마시는 자판기 커피와 담배 한 개비는 업무의 고단함과 피로를 달래주기엔 충분하다.

제145K기지에서 죽은 시체를 치우는 일은 매우 흔한 편이다. 격리 파기, 인체 실험, 자살과 타살이 빈번한 이 곳에서 바닥에 추잡하게 피를 흩뿌리며 죽은 싸늘한 시체는 이틀에 한번 꼴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편이다. 나는 그럴 때 마다 시체를 주워담고, 피 묻은 바닥에 락스를 뿌리고, 물걸레질을 나는 반복할 뿐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일이 익숙치 않아 많이 미숙했고, 싸늘한 시체를 볼 때마다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느라 힘들었지만, 이 일을 한지 벌써 수년 째. 물론 가끔씩 시체를 볼 때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긴 하나, 그래도 처음에 비해서는 많이 무뎌졌다. 이젠 시체는 그저 치우기 힘든 쓰레기 덩어리로 보일 뿐이다.

다시 싸구려 커피를 한 모금. 첫 모금 때의 달달함은 온데간데 없이 이제는 커피 특유의 씁쓸함과 자판기의 불량한 향만이 입 안을 감싼다. 방금의 온기보다는 덜 따뜻하지만, 그래도 미지근한 편은 아닌 약간의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위 속을 채운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니코틴 향이 코 끝을 자극한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폐 속은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찬다. 나는 그것을 뱉어내고 다시 마시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오늘따라 담배가 입에 맞지 않는다. 오늘 따라 유독 업무가 고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이전의 상쾌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텁텁한 연기와 씁쓸함만이 폐 속을 맴돌 뿐. 그나마 느껴지는 니코틴 향으로 기분을 달래보지만 효과는 그닥. 한숨과 함께 폐 속의 담배 연기를 바깥으로 뱉어낸다.

오늘, 최근에 들어온 청소부 한명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듣기로는 격리실 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지우다가 격리 파기로 인한 사고에 휘말려 도망치지 못하고 찢겨 죽은 듯 했다. 나는 내 손으로 직접 그 시체를 바구니에 하나하나 옮겨담았다.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이 처참하게 찢겨 치우는데 손이 많이 갔다. 피는 얼마나 고여있던지, 치우던 도중 핏방울들이 튀여 작업복 전체가 빨간 핏자국으로 얼룩졌다.

평소와 똑같이 그것을 치우고 바닥을 닦아나갔다. 살아있었을 시절엔 나름 대화도 주고받았던 성실하고 건강한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쓰레기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것을 치우면서 나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또 다시 싸구려 커피를 한 모금. 이제는 커피의 씁쓸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자판기의 불량한 향만이 감도는 탁한 구정물일 뿐. 담배를 피우는 동안 따뜻한 온기마저 사라져 미지근하다. 그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윗 속을 채워 속이 쓰라린 느낌이다. 나는 얼굴을 찡그린다.

방금 내 손으로 청소한 시체의 주인에 대해 생각한다. 주변 지인의 추천으로 제145K기지로 떠났지만 생각보다 치울게 많아 적잖히 당황했다면서 웃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게 내가 기억하기론 죽기전 봤던 마지막 모습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그의 유일한 모습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나방 한마리가 날아와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그 추잡한 날갯짓으로 붕붕거리는 녀석의 모습이 거슬려 담배를 입에 문 채로 팔을 휘둘러 녀석을 쫒아낸다. 발을 휘휘 저을때마다 담배연기도 함께 흐느적거린다. 녀석은 내 손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그대로 손에 쥐고 있는 종이컵에 담긴 싸구려 커피에 처박힌다.

기분이 더럽다. 나는 그대로 피던 담배를 털어 재를 털어내고 그 담배 꽁초를 커피에 담궈 담뱃불을 끈다. 담배꽁초와 나방 사체가 구정물 위로 둥둥 떠다닌다. 나는 그것을 쓰레기 통에 던지고 흡연실을 나와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걸레와 바구니를 든다. 아직 청소할 것들이 남았기에. 나는 그저, 재단에서 일하는 비루한 청소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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