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하게 쌓아올려졌던 파도의 형상은 갑작스레, 하지만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듯이 무너졌다. 축적되었던 포텐셜 에너지 역시 분산되어 그저 사람들의 얼굴에 바닷물을 튀길 뿐이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물벼락을 맞고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 일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무엇이 자신을 불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비틀어 뒤를 돌아보자, 상당히 흥분해 있으면서 동시에 분노를 참고 있는 복잡한 표정의 여성이 작은 보트에 서 있었다.
"풀무치들을 냅둔 게 잘못이지,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모질게 힐난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해변에 앙칼지게 울려오자 사람들의 이목이 그 출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서른이 조금 안 되어 보였고, 상아색 블라우스와 연청바지 위에는 검은 머릿결과 눈동자에 어울리는 새카만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목마의 타격대원 마르크스가 슈츠 헬멧에 장착된 인식장치로 그녀를 스캔했다.
"저거, 누구야?"
"등록된 위협존재는 아닙니다. 능구렁이 손 소속의 심령술사 H.H.로 식별됩니다."
"뭐? 뱀 녀석들이 여긴 무슨 일이지?"
코세인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그 이야길 엿듣고 있던 리처드는 상황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H.H., 그러니까 홍희지 입장에선 BE에게 역정을 낼 만도 한 것이다. 소녀를 구해보겠다더니 재단과 GOC를 견제하려는 자신들의 목적만 앞세우며 소녀를 사지에 몰아넣었으니까.
희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전투원들이 즉시 소총을 겨누었지만, 코세인과 백마 모두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 저 "괴수"가 멈춘 것이 저절로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는 어려웠기에, 홍희지가 이 상황에 뭔가 개입했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섣불리 그녀를 건드렸다가 괴수가 다시 날뛰기라도 하면 감당할 수단이 없었다.
두 존재를 중심으로 물결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고, 그 간섭 무늬가 아름답게 만을 채웠다. 거체와 바다에 흩뿌려져 있던 푸른 빛의 알갱이들에 조금씩 부드러운 녹색이 섞이며 아름답게 음영을 이뤘다. 소녀는, 비록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지만, 희지를 쳐다보며 바다를 울리는 저음으로 물었다.
"그듸레, 담텬 성선님네 훗자식이라 말갇는가?"
희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눈과 입을 꼭 다문 채였다. 곧 소녀도 눈을 감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바다를 메운 녹색 빛이 두 존재의 심장 박동에 맞춰 반짝거렸다.
"놈들이 모종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뭔진 몰라도… 잘 되가는 건가?"
전투원들 사이에 기대 섞인 웅성거림이 퍼져나가는 한편, 현장의 지휘관들은 괴수가 멈춘 것에 대한 안도감과, 뱀이 저 통제불가능한 재앙을 채갈 지 모른다는 불안함 사이에서 대책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희지는 주변의 소란을 완전히 무시하며 오직 소녀를 설득하는 데에만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금세 바닷가를 다시 뒤덮기 시작한 안개가, 새벽 어스름을 몰아내려 멀찍이 동터오기 시작한 태양으로부터 그늘을 만들며 그들을 둘러쌌다. 바다와 소녀가 내뿜는 영롱한 녹색과 청색이 안개에 반사되어 한 폭의 몽환적인 그림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 순간만큼은 공포도 걱정도 잊은 채 넋을 잃고 지켜볼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희지가 고개를 들어올리면 녹색의 빛 알갱이가 힘을 얻었고, 소녀가 팔을 뻗으면 푸른 빛이 그녀의 몸에 차올랐다. 두 빛은 힘겨루기라도 하듯이 한참을 밀고 당기며 감응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조금씩 자취를 감추는 것만 같았던 푸른 빛이 소녀의 몸 깊숙히에서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초록빛 광채가 소녀를 달래려 애를 썼지만, 사반세기의 폭력이 후벼파놓은, 천년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소녀의 상처를 어루만지기에 희지의 도량은 너무도 얄팍한 것이었다.
소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경호여도,"
희지가 눈을 떴다.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느네 사름은 사름의 늴을 직한다며 바르사름의 목솜을 빼아싰고,"
영롱한 녹색으로 반짝이던 빛 알갱이들이 점차 다시 파랗게 변색되어갔다. 압도적인 의지가, 감정이, 희지의 생각과 무관하게 그녀의 능력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희지는 자신의 힘을 빌려 실체적 간섭력을 갖게 된 그 의지에 자신의 몸이 짓이겨지는 것을 느꼈다.
"안됩니다, 부디 제 말을…!"
"권약을 메박히 비여 백신을 직하디 못케 햤고,"
소녀의 목소리가 다시 노기를 띠었다. 희지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을 모두가 눈치챌 수 있었다.
"좁작한 옹댕이에 날 가치였다."
괴수가 한 단어씩 끊어 말할 때마다 희지의 온 혈관이 울컥댔다. 희지가 피를 토하며 한 쪽 무릎을 꿇자, 멈춰 있던 괴수의 몸뚱이가 쿵 하고 거칠게 휘청였다. 험악한 너울이 해안에 퍼져나갔다.
"어어, 움직인다!"
"파도가 다시 올거다! 피해라!"
"사름은 늴을 바렐 수 엇스리라!"
괴수가 포효했다. 명백한 적의로 가득 찬 외침은 폭풍이 되어 해안을 덮쳤다. 버려진 부양정과 고속정이 출렁였고, 파도가 제방을 덮쳤다. 괴수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 움직임을 따라 바닷물이 출렁였다. 희지는 억지로 소녀의 정신에 간섭해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희지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을… 본래의 당신을… 찾아야…"
희지는 곧 주저앉으며 정신을 잃었다. 마지막 사슬을 끊어버린 괴수는 다시 거대한 해수의 벽을 일으키며 해안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처음에 만들었던 것보단 작았지만 기지와 인근 주거지를 부숴버리기엔 충분할 것이다. 그 다음엔 또다른 해일을 만들 것이고, 해일을 만들 것이고, 해일을… 그렇게 자신을 제압할 인간을 쓸어버린 뒤에 다시 자손을 번성시킬 것이다. 공존의 여지는 없었다.
"…끝장이군."
백마 상사는 자신이 막지 못한 파멸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재단은 SK급 권력이동 시나리오를 발령할 테지만, 그것을 전해듣기도 전에 그는 저 해일에 휩쓸려 명을 달리하리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될 눈 앞의 광경을 백마 상사는 유심히 시야에 새겼다. 그 구석에서, 저 멀리 남쪽 바다에서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물보라를 발견한 것은 그 때였다.
"서둘러요, 놓치면 안돼요!"
"으랴아아아!"
BE가 몰고 왔던 무레나급 장갑 부양정이 55노트의 최고 속력을 밟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유리와 제임스는 기관 출력을 최대에 고정해둔 채 앞뒤 재는 것 없이 단 하나의 목표, 괴수의 다리를 향해 돌진했다.
괴수는 뒤늦게 유리의 부양정을 발견했지만 대처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전투 부양정의 육중한 무게는 있는 힘껏 올려낸 속력을 만나 어마무시한 운동 에너지가 되어 괴수의 정강이와 정면 충돌했다. 그야말로 묵직한 한 방이었다. 전진하고 있던 괴수는 다리를 잃자 그 거체를 더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앞으로, 해안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드높여두었던 해일이 꾸물텅하면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괴수의 몸뚱이가 중력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넘어진다아!!"
"충격에 대비해라!"
"피해—"
괴수의 거대한 몸뚱이가 무릎부터 순차적으로 땅에 충돌하며 무너졌다. 온 세상이 바다가 산산조각 갈라지는 소리로 가득 찼다. 충격이 뒤흔들어놓은 대지 위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웅크리고 엎드려서 재난을 버텨내고 있었고, 괴수가 붕괴하며 풀려난 수십만 톤의 바닷물이 그들을 덮쳤다.
...
바닷물이 천천히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동안, 무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해졌다. 안개가 찢겨나간 틈으로 비쳐드는 햇빛은 다시 땅과 바다를 데우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고 있던 전투원들이 물을 토하며 하나둘 일어났다.
엉망으로 구겨진 부양정의 함교 문짝이 덜커덩하고 열렸다. 부양정은 소녀의 다리를 분질러 버릴 때 그 충격으로 같이 튕겨나가 지상의 전봇대 하나를 반쯤 넘어뜨린 채 처박혀 있었다. 유리 요원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손으로 짚으며 부양정에서 기어나왔다.
"어으, 우리 진짜 용케도 안 죽었네요… 우윽."
"이봐, 나도 좀 도와줘…"
"아이고. 괜찮으십니까, 소위님?"
유리는 헛구역질을 하다가, 뒤이어 부양정에서 나오려는 제임스를 부축했다. 요란한 헬기 로터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자 제 몸을 건사한 사람들이 저마다 상황 수습에 나서고 있었다. GOC 전투원들은 각자 슈트의 은폐 능력과 기동 능력을 이용해 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괴수의 껍질이 무너지면서 모습을 드러낸 SCP-331-KO-A를 장진호 하사와 전투원들이 포위하고 있었고, 간신히 괴수 붕괴의 피해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뮤-39 전투원들도 험비를 몰고 달려와 있었다. 조심스럽게 부양정 잔해에서 내려온 유리가 제임스를 부축한 채로 한 손을 흔들며 도움을 청했다.
"이봐요오! 여기 사람 있어요!"
"유리! 살아있었나!"
그걸 본 기선이 병사 몇 명과 함께 달려와 두 사람을 부축했다. 유리는 충돌할 때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정도였지만 제임스는 파편 몇 개가 복부에 박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기선이 둘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자 유리가 걱정하며 말했다.
"제임스는 괜찮을까요? 기지가 크게 파손돼서 당장 의무 지원도 받을 수 없을텐데…"
"너무 걱정하지 말아. 헬기가 오고 있으니까, 광양의 제222K기지로 이송하면 금방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다. 우선은 파편으로 상처가 더 심해지지 않게 어디 안전한 곳에 눕혀놓는 게 좋겠군. 조심해서 캠프로 옮겨."
기선이 지시하자 병사 두 명이 간이 들것을 가져와 제임스를 그 위에 뉘였고, 일행은 조심스레 뮤-39가 차려놓은 임시 지휘소 천막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하늘에서 헬기의 로터 소음이 들려왔다. 추락기의 부상자를 싣고 이탈했던 알파 강습대의 치누크 헬리콥터가 SCP-331-KO-A 재격리에 필요한 물자와 장비를 싣고 급히 날아온 것이다.
소녀, SCP-331-KO-A는 푹 젖은 몰골로 힘없이 웅크린 채 가만히 주저앉아 있었다. 치누크에서 하역한 격리용 캡슐 수조에 녀석을 집어넣는 과정을 감독하고 있던 백마 상사가 걸어오는 유리 일행을 보고 반갑게 다가와 경례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 소령님."
"아닙니다, 중요한 일은 이 친구가 다 했죠."
"정말 대단한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인사가 늦었지만, 알파-88의 백마 상사입니다."
"아, 유리 요원입니다. 천만에요. 상사님께서 GOC가 헛짓거리 못하게 막아 주신 덕분이죠."
"아니오, 저희는 정말 당신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겁니다. GOC 녀석들도 결국 도망쳐 버렸고… 그런데 다리를 노리면 놈을 붕괴시킬 수 있을 거라고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러니까… 스코프로 보다 보니까, 안에 본체는 그대로 있더라고요. 지상으로 엎어트려버리면 바다와 이격되어서 변칙성을 발휘 못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엔트로피 놈들이 부양정을 버려 놨길래, 이판사판 하는 심정으로 던진 도박수였는데… 잘 먹혀서 다행이네요."
"과연. 그 사실은 재격리 보고서에 반영할 필요가 있겠군요."
들것을 옮겨온 병사들이 의무병의 도움을 받아 제임스를 눕히는 동안 그들은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으며 지나간 전투를 평가하고 있었다.
한편 치누크와 함께 복귀한 호크 아울은 홍희지가 쓰러져 있는 보트를 확보하기 위해 상공에서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보트 위에는 감당할 수 없는 상대를 억제하려 모든 기력을 소진해버린 희지가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측면 출입문 앞에선 크리스 하사가 희지를 확보하기 위해 호이스트 장비를 전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긴 호크 아울-1, 탱고 호텔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응?"
조종사는 무난하게 작전을 진행하려다가 흠칫 놀라서 보트를 다시 쳐다봤다. 방금까지 꺼져 있던 보트의 모터가 부릉거리며 보트를 전진시키고 있었다. 분명 보트에는 기절한 여자밖에 없는데 말이다. 크리스 하사 역시 눈을 비비고는 보트를 겨누며 스코프로 상황을 살폈다. 그는 모터 옆에서 묘한 일렁임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쳇, GOC가 선수를 쳤어!"
"호크 알파, GOC 전투원으로 추정되는 비가시성 객체가 탱고 호텔의 보트에 먼저 탑승했다. 지시 바란다."
"뭐? 이런 썩을…"
백마 상사는 고민하다가 지시를 내렸다.
"일단은 포기하라. 당장은 이송해야 할 환자가 먼저다. 즉시 캠프로 올 것. 백사장에 유도 요원을 배치하겠다."
"…알겠다. 호크 아울-1, 응급 이송 임무로 이행한다."
호크 아울이 기수를 돌려 해변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던 코세인이 손목의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은폐장을 해제하며 입을 열었다.
"…십년감수했군. 우리랑 이 녀석을 쫓기는 포기한 모양이다. 서니사이드, 현재 전력 보고해."
"랜달과 우드를 잃었습니다. 그 외에는 전원 있습니다."
"그래… 면목이 없다."
"최종적으로는 부문 사령부가 내린 지시에 따른 것 뿐입니다. 자책하실 것 없습니다."
"대장님의 빠른 결정 덕분에 제때 도착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거죠."
"우선 가까운 거점으로 복귀하겠습니다."
마르크스가 모터의 출력을 높이며 말했다. 코세인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보이고는 방금까지 교전이 펼쳐졌던 여수반도의 해변을 내다보았다. 사람이 점으로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거리가 벌어졌지만 그는 재단의 인원들이 분노를 담아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리처드, 3사령부에서 복귀 명령을 내렸어요."
"…"
벨라가 말을 걸었지만 리처드는 아무 말 없이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등대기지 전투가 각 세력에게 모두 참혹한 결과만을 남기고 끝난 지 24시간이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악몽 같았던 전장을 겨우 빠져나온 리처드와 벨라는 무진역 근처에 마련된 안전가옥으로 도주해 은신하고 있었다. 흠뻑 젖어버린 전투복과 장구, 무기들을 처분한 뒤 티셔츠와 후드 집업을 대신 걸친 것은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한참 동안 리처드가 대답을 하지 않자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한 벨라가 답답함을 못 참고 소리를 질렀다.
"리처드!"
"…진에게선 연락이 있었나?"
그제서야 리처드가 입을 열었다. 벨라는 마음이 풀리지 않은 듯 뾰루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기지 복구가 바쁘다고 딱 한 통만 보냈던데요."
"내용은?"
"재단 제64K기지는 지상 주출입구가 건물 째로 무너지긴 했지만, 지하 구조물은 저희랑 교전한 피해를 제외하면 멀쩡했다는 것 같아요. 지상 건물의 잔해만 철거하고 가건물을 설치한 뒤 그대로 운용할 모양입니다. "소녀"는 다시 격리 절차를 재개했다네요."
"사령부에서 디메트로돈 이야기는 없었나?"
"어… 있었네요. '성공적'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리처드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고는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겼다. 사령부에 제출할 임무 보고서를 작성하는 그의 모습은 쓸쓸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벨라는 지난 하루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 만큼 그에게도 가혹했으리란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이 바닥에 투신하고 본 것 중에, 어제가 제일 끔찍했어."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역겨운 존재를 우리 손으로 풀어놨지. 그게 뭔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나는… 난…"
"리처드."
"…말이 길었다. 이건 상부에는 말하지 말아줘."
"…당연하죠."
두 사람은 다시 한동안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사실 그의 심정도 알 만한 것이었다. 상부는 세포원들이 희생당하리란 것을 뻔히 알면서 이런 작전을 세우고 지시한 것이다. 재단만 상대해도 피해가 컸을텐데, 그렇게 위험한 개체를 통제 밖에 풀어놓고 GOC까지 제손으로 거기에 불렀으니 무사히 빠져나오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도, 이사회가 바랐던 전개는 사실— 벨라는 고개를 저으며 뇌리에 스친 생각을 흐트려 없앴다. 피해가 커진 것은 살모사가 양동을 펼치다가 도리어 발이 묶여 교전 병력이 급감했던 탓이 컸으니까. 하지만 결국 BE가 받아든 결과는 교전세포 네 부대의 전멸과 두 명의 생존자라는 게 현실이었다. 벨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복귀하면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있는 그대로 보고하면 될 뿐이야."
"하지만, 이렇게 작전 수행에 실패한 패잔병을 곱게 받아줄까요?"
"뭐? 패잔병이라니.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건 임무 성공에 대한 보고서라고. 이번 전투의 전략적 목표는 이미 달성했어."
"예? 하지만…"
"음… 제때 도착하려면 나머지는 열차에서 써야겠군. 가면서 얘기하자고."
리처드는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을 덮고 옆에 던져놨던 야구모자를 주워 깊게 눌러썼다. 어리둥절해 있던 벨라도 황급히 바람막이를 걸치며 짐을 챙겼다. 리처드가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판단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근거 없이 자기 희망에만 기대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
세계 오컬트 연합 극동부문 근거지-FE-357의 작전회의실은 조명을 낮춰두어 어둑어둑했다. 중앙의 테이블에 설치된 입체영상 시연장치에선 코세인의 모습이 출력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피로함과 긴장감,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했다는 부담감이 가득했다.
"—이상의 경위로 인하여, KTE-19133-러브록-레드 청산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19133은 재단이 다시 확보하여 전과 같은 위치에 보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번에 확보한 PTE-32591은 분류 대기 중이며, 뱀의 손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즉시 청산하지 않고 구류했습니다."
그의 최종 보고도 마무리가 되어갔다. 가만히 보고를 듣고 있던 프톨레미 분과의 연구과장 예일이 코세인에게 질문했다.
"전사한 랜달 요원의 장비는 잘 처리했나?"
"은폐 장치만 회수하고 나머지는 기폭 처리했습니다."
"그래. 보고는 여기까지 듣지. 고생 많았군."
예일이 피로에 쩔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이런 초라한 결과를 보고하게 돼서 유감입니다."
코세인이 절도있는 자세로 경례한 뒤 접속을 끊었다. 예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목마"가 희지를 연행해 간 근거지-FE-885에서부터 그녀의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레예스 박사가 다가와 그에게 키 카드 하나를 넘겨주었다.
"정신 간섭 능력이 식별된 개체입니다. 부디 주의해주십시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누군가. 걱정하지 말게."
회의실을 나가 복잡한 통로들을 지나자 예일은 한 취조실 앞에 도착했다. 카드를 인식한 금속 차단문이 자리를 비켰고 동시에 달큰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방은 어두웠고 가운데 작은 조명 하나가 켜져 있었다. 그 등불 아래 테이블에서 희지가 도넛을 먹고 있었다. 두 손에선 수갑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예일은 방을 슥 둘러보았다. 수갑과 사슬 외에도 갖가지 장치가 그녀의 돌발행동을 제어하고 있었다. 벽에는 룬 문자들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물리적 행동을 억제하는 기적술식을 구현하는 진이 그려져 있었다. 희지가 마지막 도넛까지 맛있게 먹어치우고는 손가락까지 빨고 있단 걸 제외하면, 모든 것이 표준 대응 절차대로였다.
"접시를 다 비웠군. 내 몫도 있었는데 말이야."
예일이 들어와 의자를 당겨 앉으며 물었다.
"혹시 마실 것은 더 없나요? 커피나 물이라도."
홍희지의 당돌한 대답에 예일의 눈살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의심이 없는 뱀은 처음이네."
"물어봤거든요."
희지가 대답하고는 목이 메는지 가슴을 콩콩 찧었다.
"… 가져다주신 분한테."
"흥. 능력을 쓰는 데 거리낌이 전혀 없나보군?"
"그게, 좀 다르지만 아무튼 나도 내 몸은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약이라도 타놨으면 어쩌려고."
능글맞게 대답하는 희지의 방어적인 태도를 보며 예일은 답변을 기대하기보단 그녀의 말과 행동에 무심코 끼어있는 단서를 유심히 살폈다. 자기를 가둬 놓은 연구진을 상대로 고작 저정도 정신간섭만 시도했다는 것에서 그녀가 정신조작계보단 정신감응계, 독심술계에 가까울 것이라는 가설을 도출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희지도 예일의 의도를 금세 알아챘다. 교과서적인 방법이지만, 기묘한 노련미를 풍기는 이 남자에겐 조금 더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었다.
잠시 후 취조실 문이 열리며 레예스 박사가 들어왔다. 레예스는 희지와 예일 앞에 음료 한 컵씩을 내려놓았다.
"와, 고맙습니다."
희지가 숨을 돌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 다시 자리를 비키려는 레예스에게 예일이 말했다.
"올 때 도넛 좀 더 가져오게."
"예, 그러죠."
희지는 그러든 말든, 자기 안방에라도 있는 양 편히 앉아서는 시원하게 잔을 비우고 있었다. 예일은 그런 희지의 태도가 거슬렸다.
"후, 좋아. 그러면 심문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능구렁이 손' 조직에서 네 직책은 뭐지?"
"보통은 서류 정리나 기록 업무를 도맡고 있죠. 한마디로… 서기랍니다."
"서기라고? 서기가 현장에 나서다니 어지간히 인력이 모자란가 보군?"
"마음대로 생각하시죠."
"그러면 무진에 모습을 나타낸 건 어째서지? 듣자하니 너희의 동맹이라는 BE를 구원하러 간 건 아닌 것 같던데."
"헹, 누가 동맹이래요? 저는 바르사름의 어멍을, 그러니까 당신이 KTE 뭐라 부르는 그녀를 구하러 간 겁니다. 달리 말하면 풀무치들과 옥리들, 그리고 댁들 분서꾼들이 벌인 짓거리를 수습하러 간 거죠."
"수습? 주제 넘는 표현이군. 너희 때문에 KTE-19133을 청산할 중대한 기회를 놓쳐버렸어."
"당신네의 바로 그런 정신머리가 그 사단을 낸 거라고요."
희지가 말하다 말고 한숨을 푹 쉬었다. 예일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희지는 그의 심리를 건드려 약점을 잡아내기 위해 더 과감하게 도발에 나섰다.
"이 시설에서만 해도 수많은 인격체들이 초상 위협이라는 허울 좋은 낙인이 찍힌 채로 죽어나갔겠죠? 느낄 수 있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려는 듯 예일은 펜을 딸깍이기를 멈추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희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일의 표정과 행동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이상하리만큼 영기가 흐르지 않는 장소. 그것은 얼굴에 복면이 씐 채 이곳에 끌려올 때부터 알아채고 있었다. 근거지 시설에 펼쳐져 있는 반경 수십 미터의 반구형 영역 안에는 그 흔한 지박령 하나조차 없는 것 같았고, 다른 이의 정신과 교감하는 것도 평소보다 갑절은 힘이 들었다. 애초에 희지같은 존재들을 다루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일 테니 당연했다.
희지는 천진난만하게 구는 척하면서 흘깃 눈을 돌려 벽에 새겨져 있는, 얼핏 보기엔 무의미한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 룬 문자의 띠를 살펴봤다. 바닥의 술식과도 비교해보고, 조금씩 자신의 인지 능력을 외부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심적 과정을 거치면서 희지는 이 공간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인식의 초점은 밑으로, 밑으로 계속 내려갔다.
"네놈의 처지를 좀 이해하지 그러나. 그럼, 얌전히 네 초상 능력에 대해—"
예일이 무뚝뚝하게 심문을 이어가려고 할 때 희지가 말을 잘랐다.
"지하에 있는 기계는 뭔가요?"
"뭐?"
"영능력과 관계된 건가요?"
"무슨—"
"맞구만. 여기서 개발한 기술이에요?"
"이봐!"
"회수한 거로군. 어디에서―"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쏟아내는 희지의 질문을 끊으며 예일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됐어, 틈을 내준 것 같았나?"
예일이 짜증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싸늘하게 말했다. 희지는 우물거리던 턱을 멈추고는 1초 뒤에 꿀꺽하고 삼켰다. 예일이 안주머니에서 뭔지 모를 리모컨을 꺼내 버튼 하나를 누르자 벽의 기호가 웅웅거리며 무작위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빠른 호흡으로 상대를 당황시키면서 텔레파시로 원하는 정보를 빼낸다라. 그런 얕은 수작이 통할 줄 알았다면 아쉽게 됐군. 내가 수 십년간 봐온 게 너 같은 것들이야. 그래, 좀 어떤가? 아직도 내 머릿속이 보이나? 이 장치가 없어도 나는 최면, 세뇌, 행동 억제, 정신조작 등등 그런 술수는 안 통해. 내 인지 저항력이 그러질 못하게 만들고, 그게 날 이 자리까지 앉게 해 줬단 말이지."
희지는 딱히 감명받지 못했다. 방금 것은 뱀들의 평범한 독심술사, 아니 심리학을 익힌 평범한 심문자라도 파악할 수 있는 정보였다. 반박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괜히 입을 놀렸다가 즉석에서 "청산"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일이 이렇게 흥분해 주는 것이 희지에게는 유리했다. 예일이 열 받은 속을 식히려는 듯 음료를 들이켰다.
"그러니, 내 머리에 장난질 치려는 수작은 그쯤에서 접어두라고. 지금부터는 묻는 말에만…"
예일이 다시 질문을 시작하려던 찰나, 고조되어가던 분위기를 망치며 레예스가 취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손에 들려있는 도넛 상자는 막 냉장고에서 꺼낸 것처럼 물기가 반들거렸다. 소리의 정체를 확인한 예일이 시큰둥하게 다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총성이 갑작스레 터지며 예일이 들고 있던 리모컨이 박살났다.
희지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귀신 잡는 GOC라길래 기대했는데… 고작 하급 악귀에 뚫렸네요?"
예일은 뒤늦게 돌아보았다. 레예스의 손에 쥐여진 권총이 그의 손에서 머리로 천천히 조준점을 옮기고 있었다. 아마 도넛 상자에 숨겨온 것이리라. 심안을 뜨고 그를 살펴본 예일은 그제서야 박사의 육체에 낯선 심령체가 심어져 있는 것을 알아챘다.
"저를 너무 얕보셨네요. 이정도 억제 술식이라면 당장 여기서 영을 부리는 건 몰라도, 밖에서 이미 씌인 거는 유지시킬 수 있단 말이죠. 이 시설로 오기 한참 전에 이미 심어뒀지만, 이렇게 제게 가장 유리해지는 순간에 써먹으려고 꼭꼭 억눌러 숨겨놨었답니다."
"네놈…"
당했다는 모욕감과 당혹감으로 예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가운 주머니에서 착신음이 울리자, 희지가 그를 비웃으며 명령했다.
"당신의 안부를 묻는 전화인가보죠? 뭔진 몰라도 휴대폰은 꺼서 바닥에 버리세요."
"…크윽."
예일은 레예스 쪽을 흘깃 보고는 휴대전화를 던졌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원치 않더라도, 커피에 탄 자백제 덕분에 훨씬 수월할 거에요. 지하에 있는 장치, 기술은 어디서 난 거죠?"
"멍청하긴, 내가 고작 자백제 따위에 넘어갈 것—"
"그럼 이것도 버텨보시고."
희지가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레예스 쪽에 삿대질을 하고는 가리키는 방향을 슥 틀었다. 레예스 박사가 앞으로 넘어지고는 심령체가 빠져나왔다. 그것은 곧 예일의 의식으로 날아와 엉겨 붙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인지 기능은 단단히 버텨냈다. 마치 같은 극의 자석처럼, 강하게 몰아붙일수록 더 세게 반발했다. 예일은 신경계가 화끈거리는 통증에 두 눈을 꽉 감고는 심안을 완전히 개방했다. 그것이 홍희지의 심안을 정확히 꿰뚫고 노려보았다. 희지는 낯선 압박감에 흠칫 놀랐다. 예일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희지의 정신에 직접 폭언을 퍼부었다.
'너희… 고작! 너희 까짓게! 통할 리가—'
갑자기, 방 안에 총성이 메아리치며 예일의 말이 끊어졌다. 예일의 배에 난 작은 구멍 서너 개가 붉은 육수를 토해냈다. 깜짝 놀란 희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 힘 풀린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넘어질 뻔했다. 예일이 쓰러지며 문 쪽에서 흰색과 검은색으로 얼룩덜룩한 전술 복장 차림의 형상이 보였다.
옥리들이었다.
"목표 발견! 즉시 생포하겠다."
희지는 그제야 복도에서 크고작은 총성이 울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공격은 한참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초감각으로 건물을 다시 읽어들이자 다급하게 기동하는 병력들과 날아다니는 총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각 층을 돌파하며 그녀에게 곧장 다가오고 있는 기운은 조금 더 익숙하고 반가운 것이었다.
"홍희지!"
몸에 쇄자갑을 두른 여걸이 옥빛으로 빛나는 영검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능구렁이 손의 국제 연락책이자, 둘째 가라면 서러운 최고의 전투 요원, 모리안이었다. 재단과 GOC의 전투원들은 소총을 쏘며 저항하려고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희지의 취조실에 진입해 있던 전투원들이 엄폐를 시도하자 모리안은 그들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검에 새겨진 기하학적 패턴이 현란하게 뒤집히더니 영혼의 비명이 검 주위에 소용돌이쳤고, 적색 증기와 함께 전투원들의 의식이 흐려졌다. 모리안이 취조실로 뛰쳐 들어와 희지의 수갑을 끊었다.
"모리안! 제때 와주셨어요."
"후후, 옥리도 널 노리고 분서꾼들을 친다길래 기회를 노렸지."
그들이 취조실 밖으로 도망가려 하자, 바닥에 자빠져있던 예일이 꿈틀댔다. 그가 고통에 겨운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희지에게 감응했다.
'헛수고다. 너희가 발버둥친다고 해도 삼각분쟁의 판도를 바꿀 순 없어… BE 놈들은 이번 발버둥이 실패한 이상 몰락할 수 밖에 없고, 그 다음은 너희 차례가 될 것이다!'
그 꼴을 보며 혀를 차던 모리안은 손가락 총을 만들고는 예일의 뒤통수에 겨누었다. 그녀가 마탄을 발사하려 했으나 희지가 그녀를 말렸다.
"이제 됐어요. 그냥 가요."
그러고서 희지는 마지막으로 예일에게 전했다.
'글쎄요, 엔트로피는 실패하지 않았어요. 옥리와 당신네가 이 지경이 된 것만으로 그치들에겐 충분하니까.'
그리고 두 사람은 빠르게 출구를 향해 달려나갔다. 예일은 가까스로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구멍 난 폐에서 나는 쌕쌕거리는 소리도 옅어져 갔다.
복도는 끝없이 이어지는 총성이, 바깥은 장갑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상공은 헬리콥터의 엔진 소리가 가득했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간에, 재단과 GOC는 BE의 의도에 말려들게 되었다. 제64K기지에 대한 GOC의 공격은 두 단체의 암묵적인 공동 전선을 깨트렸고 그 균열의 증거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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