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위해 정착할 즈음에도 선선한 공기는 낮의 극심한 더위를 희미하게나마 담고 있었다. 오아시스에 둘러싸여 모닥불이 하나둘 피어올랐고,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유랑자와 방랑자들은 먹고 농담하며 이론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나독스는 오아시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한쪽 눈으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른 눈으로는 하늘 위의 별을 바라보고 그 패턴을 두루마리에 옮기는 중이었다. 일이 끝나면 그도 곧 사람들 사이에 낄 것이었다. 음식과 음료와 잠은 당연히 메카네만큼이나 나독스에게 익숙지 않은 것이었지만, 데르데케아스Derdekeas와 그의 학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언제나 나독스의 지친 영혼을 위로했다.
대개는.
무언가가, 나독스를 심히 불편케 하는 무언가가 지난 몇 주간 변하고 있었다. 다에바의 천더기가 되었던 나날들이 증명하듯 그는 고통에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그 무언가에 관련된 기분은 이상할 정도로 낙인보다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나독스는 한쪽 눈을 데르데케아스에게 돌렸다. 수사대사는 이전에도 수십 번 그랬던 것처럼 불가에 다리를 꼬고 앉아 부지런히 해진 두루마기를 신선한 파피루스에 옮겨적고 있었다. 지앙시가 그에게 무언가를 말했다(나독스는 눈에 어떤 청각도 불러오지 못했다). 그러자 데르데케아스는 메카네인의 방식으로 소리 없이 웃었다. 아래턱을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이며, 동시에 광대뼈의 기어가 기이하지만, 매력적인 방식으로 빙글빙글 돌게 하는 그 모습-
예상치 못한 다른 이미지가 나독스의 마음에 떠올랐다. 이온. 피 흐르고 멍든, 그 운명적인 날에 자신의 왕좌에 앉았던-
나독스는 즉시 시야의 시신경을 잘라냈고, 흔적으로 남은 눈이 빠르게 시들어가게 둔 채로 다시금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늘땀의 구멍으로 조심스럽게 호흡하며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처음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데르데케아스의 앞에 있을 때면 바라지 않은 이온의 형상이 마음속에서 자꾸만 소환되었다.
달콤한 목소리에 독이 묻은 날이 선 어조로, 한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라지 않은?
지금은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를 성가시게 하는 것은 단지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에 담긴 기묘한 감정이었다. 부끄러움의 감각인가? 아니다, 그보다는 다른…
죄책감. 나독스는 데르데케아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가 메카네인이기에? 실상 부서진 신의 교회는 언제나 낼캐와 그 추종자들을 궁극의 적으로 여겼지만, 그들은 이온의 가르침에 이름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신성한 예속자들을 숭배하는 모든 이들과 같이, 낙원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다른 한 벌의 장애물일 뿐이었다. 당연히 이온은 나독스가 그들 중 한 사람과 어울렸다 해도 신경 쓰지 않을 터였다. 나독스 본인과 로바타아르는 다에바 혈통이었지만, 이온은 개의치 않고 그의 스승과 배우자를 사랑했지 않은가.
나독스는 그 단어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죄책감의 감각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 자신부터 네가 여기 있는 이유를 해명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목소리가 그에게 다시 속삭였다. 이 추방자와 이단자들 사이에서. 너는 아뒤툼에 남았어야 했지만, 도망하고 말았어. 네 자리는 예언자의 곁이었다.
도망하다? 이온이 그에게 떠나가라 명했다. 나독스는 이온에게 남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다투고, 애원하고, 간청했다. 심지어 도시가 불타고 있었을 때도 그러했다. 그러나 나독스는 오즈르목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다. 영겁이 지난 지금에도 그는 아직도 이온의 형상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고통이 역력히 드러난 얼굴로 왕좌로의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너는 도망했다. 하지만 아뒤툼의 손이 닿지 않는 것처럼, 신실한 이들에게 향하지 않았어. 너는 하층민들 사이에서 네 나날을 보내기로 했다. 낼캐의 목자, 이온의 계승자라는 정당한 위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낼캐? 낼캐는 사라졌고, 추종자들은 서로 다른 부족이 되어 세계 구석구석에 흩어졌다. 이온과 아뒤툼은 사라졌고, 로바타아르는 매장당했으며, 오로크는 오랫동안 잊힌 전장에서 수백만의 창과 검에 쓰러졌다. 사아른도 그러했겠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독스는 사아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사아른은 비밀과 그림자의 영역을 맡았고, 그 그림자 중 하나가 나독스가 자기 살과 피처럼 사랑했던 작은 하인 소녀를 훔쳐 간 듯싶었다.
오직 그만 남았다. 나독스는 성도(星圖)를 바라보았다. 수 세기의 생존, 수집과 흥정과 도둑질, 그 모든 노력의 성과가 이것이었고, 절박한 희망은 사막의 모래 위에 흩뿌려졌다. 언제 종결될 것인가? 언제가 되어야 적당할 것인가?
바보 같은 업무일 뿐이다. 너는 다만 필연성을 지연시킬 뿐이야.
그럴지도.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대 진리의 필사적 추종자가 아니고서야 그는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나독스가 신화적 해답의 한 글자를 추적할 때 제국들은 흥망성쇠를 거듭했고, 나독스를 성자나 괴물 이상의 존재로 알았던 모든 남녀노소는 역사의 끊임없는 톱니바퀴에 갈려 먼지로 흩날렸다. 이 연구가 없다면 그가 가진 다른 게 이 세상에 남아있기나 할까?
부드러운 모래 으스석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르데케아스가 나독스에게 다가오며 사구들을 오르고 있었다.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누군가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새에 접근하게 놔둔 셈이었다. 오직 사아른만이 그 진기한 업적을 가까스로 달성한 적 있었다.
"곤란에 처한 듯싶군." 데르데케아스가 논평했다.
"그리고 그댄 확실히 화가 나 보이고." 나독스가 데르데케아스의 얼굴에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는 것은 그들 사이서 오래된 농담이었다. 대개 데르데케아스는 이 농담을 듣고 웃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나독스가 생각하기에, 무언가가 데르데케아스를 괴롭히고 있었다. 내면의 평화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팽팽하게 들어찬 내부 구성요소가 희미하게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나독스의 옆에 조용히 앉아 말하지 않기를 택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나독스가 성도로 다시 주의를 돌릴 즈음에 데르데케아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를 어떤 방식으로든 거슬리게 한 바가 있나?"
나독스가 깃펜을 옆으로 치우며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가?"
"최근 그대는 자리를 비웠지. 낮이면 그대는 우리 동행자들 뒤에서 방랑하며 그대만의 시간을 보냈고, 밤이면 그대는 두루마리와 그림 사이에 묻혀 모든 밤을 지새웠어. 그대의 시간은 마땅히 그대의 소유이고, 나나 다른 이의 소유가 아니니…" 데르데케아스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전에는 우린 꽤 주기적으로 대화를 나눴어. 그대가 다른 이들과 그랬듯이. 내가 만일 어떤 종류의 죄를 그대에게 범했다면, 용서해 주게."
나독스가 너무 자리를 비웠던가? 너무 무례했던가? "그댄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어. 그리 느끼게 했다면 미안할 따름이네. 내 보기에 내가 근래 상당히… 옛 기억들에 사로잡혀 있었던 듯싶군. 지금의 나와는 별개로 예전의… 이전의 내 삶. 내 옛 동료들에 대한 기억들 말이야."
"아." 데르데케아스가 제 자리를 옮겼다. "이온 말인가?"
데르데케아스가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나독스는 알아차렸다. 이온은 언제나 그들 사이에서 어려운 주제로 남았다. 데르데케아스는 나독스란 사람을 꽤 잘 알게 되었지만, 데르데케아스는 어디까지나 부서진 교회와 그 가르침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자주 이에 대해 논의하는지는 상관없이, 악마 이온과 구원자 이온의 이미지를 조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었다.
"난 한때 아무것도 아니었어. 설교자로 단순한 삶을 살고 있었네. 그리고 다에바의 추방자가 되었지. 그러고 나선 스승이자 낼캐의 클라비가르가 되었고. 이윽고 아뒤툼이 완전히 파괴되자, 다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네." 나독스가 깊이 생각했다. "본디 나 자신을 생존자로 여겼지만, 실상 삶 위에 서 있다기보다 죽음에 더 가깝게 기대어 있었던 셈이야. 방랑자 카인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이방인처럼 지냈지. 살아갈 희미한 가닥을 준 유일한 것이 이 진리였어. 세기는 오가고, 인류는 거대한 문명을 건설했지만, 그 모든 시간 내가 가진 건 등에 걸친 누더기와 두루마기 몇 개였지."
데르데케아스가 그를 살폈다. "지금은?"
지금은? 나독스의 머리에 그 단어들이 메아리쳤다. 나독스는 그 단어들을 저울질하고, 검사하고, 그 단어들의 사소한 결함과 함축을 모두 연구했다.
데르데케아스는 자동인형이지, 나독스처럼 살과 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니었으나 또 보기 흉한 자는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꽤 인상적이었다. 그는 (증명했듯이) 가공할 투사였고, 기민한 정신과 혀를 지녔으며, 여러 주제에 대해 길게 논의할 수 있는 학자였으며, 자신의 신뢰를 얻은 이들을 맹렬히 보호할 수 있는 자였다.
나독스는 할 수 있었다. 지난 이천 년간 그의 모든 존재를 정의해 온 연구를 던져버리고, 두루마기 모음을 불태우고, 진리에 매달리기보다 세상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을 그의 것으로 여기고 써버릴 수 있었다.
낼캐는 말라비틀어지고 시들어갈 테지만, 그는 살아있을 터였다. 그걸 원했구나, 하고 나독스는 깨달았다.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갈망한 게 언제쯤이었는지… 이제 기억해 낼 수도 없었다.
나독스가 클라비가르였을 때였던가? 혹은 설교자로서의 삶을 살던 때 이전인가? 혹은 그가 아직 아이일 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동네에, 더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와 함께 살던 때인가? 나독스는 산 사람으로 살기보다 걸어 다니는 송장으로 산 시간이 더 길었다.
그는 이미 한 번 죽었다. 천더기 시절에, 수난자로 다에바가 인장 찍은, 영구히 추방되어 방랑자로 강제된 삶을 살면서, 진실한 죽음의 자비를 영원히 거부당한 때에. 탈진이 지속되는 고뇌를 압도할 때마다 최소한 잠에 들 수는 있었고, 어느 날 도래하여 다에바의 멍에에서 나독스를 자유롭게 할 구원자의 꿈을 꿀 수 있었다. 그저 누워 죽기를 바란 수많은 순간이 있었으나 나독스의 꿈은 그에게 나아가라고, 견디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이온을 만났다. 이온은 나독스가 꿈꿔왔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고 용감했으며 제 나이에 비해 현명했다. 육의 메시아, 다에바의 압제에 고통받는 모두를 구하러 온 자. 나독스는 이온의 옆에서 영원히 그의 가장 신뢰받는 조언자 중 한 사람으로 그를 섬길 것이었다. 나독스는 한때 죽었으나, 이온이 그를 다시 살게 했다.
지금은?
지금은…과연 할 수 있을까? 자신의 탐구를 저버리고, 영겁의 시간 동안 나독스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던 단 한 가지를 버릴 수 있을까? 그리함은 구원자의 기억에 침을 뱉는 것이리라. 나독스는 그걸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데르데케아스 같은 사람을 위해서일지라도.
그는 이온이 아냐. 목소리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는 그 사람이 될 수 없어.
이번만큼은 둘 다 동의할 수 있었다.
"할 일을 다시 붙잡아야 할 듯하네. 최근에 너무 방해를 받았거든." 나독스가 무시하듯 말하며 깃펜을 집어 들었다. "그대의 관심은 고맙네.. 가봐도 좋아."
잠시간 나독스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데르데케아스에게 뿜어져 나오는 아득한 침묵뿐이었고, 그 침묵은 곧 데르데케아스를 이루고 있는 철처럼 차갑고 열정 없는 것으로 빠르게 변했다.
"그대 뜻대로, 클라비가르." 수사대사가 아래의 오아시스로 다가가며 남긴 말이라곤 그뿐이었다.
클라비가르. 데르데케아스는 그 단어를 욕으로 내뱉었으나, 그것이 진정으로 그의 정체였다. 그는 학자도 아니요, 동행자도 아니요, 친구도 아니었다. 그는 낼캐의 전시자All-Seeing, “수난자”Sufferer, 이온의 예기Anticipation of Ion 클라비가르 나독스였다. 그것이 나독스가 수천 년 간 존재해 온 바였다. 그것이 그가 되어야 할 전부였다.
이온. 로바타아르. 오로크. 작은 사아른. 모두가 떠났으나 나독스만이 남았다. 수천 년 간의 반란과 피와 눈물이 그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그는 그 모든 걸 허위로 돌릴 수 없었다. 아니, 돌리지 아니할 것이었다.
아뒤툼에서 다시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