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오늘도 평화로운 제27K기지.

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강윤상이었다. 제04K기지는 하루도 바람 잘 날 일 없이 시끌벅적했지만, 이웃사촌인 제27K기지엔 그럴 일이 잘 없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였다.

"뭐가 문제일까?"

"지난번 윷놀이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니."

"그러면 그거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니면 고라니? 혹시 그분께서 다시 오신다고 언질이라도 하신 것인지요?"

한은영 인사이사관보는 지금 당장 한명회가 살아돌아오더라도 당신이 진정한 간신이오. 하고 인정하고 구름 타고 홀홀 떠나버릴 만큼 입에 발린 말을 잘했다. "시정하겠습니다."가 그녀의 인삿말이었으며 헤어질 때는 "살펴가십시오."라고 말했다. 모든 직원들은 그녀의 능력싸제용어로 빨아준다고들 하는 그런 능력을 부러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측은지심을 갖고 있었다.

"아니, 아니, 아니야. 다 틀렸어. 답은 직원이야. 우수한 직원이 우수한 기지를 만든다."

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고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린 한은영은 말했다.

"직원 청산 절차는 이미 지난주에 치렀긴 하지만, 아직 배고픈 벨로시랩터는 찾아보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사관님."

"아니. 그런 문제가 아냐.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이때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시찰 말씀이십니까?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27K기지' 라는 주어 없이 말한 한 마디에 한은영은 90도로 깍듯한 인사를 한 직후 뒷걸음질로 이사관실을 빠져나가고 곧장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녀의 책상에는 크고 빨간 버튼이 놓여있었다. 그것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자, SCiPNET을 통하여 곧 04K기지의 모든 인원에게 하달사항이 내려졌고 점심을 먹는 시늉을 하던 연구원,이것은 04K기지에서 꽤 중요한 여가였다 휴게실에서 잠자던 연구원, 벨로시랩터에게 자신의 오른팔을 먹이로 주던 D계급까지 할 것 없이 비상식량으로 놓아둔 빗자루를 들고 바닥의 먼지를 쓸으며 본격적인 미화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사이 강윤상은 자신의 자동차를 몰고 유유히 04K기지를 빠져나갔다.








강윤상이 굳게 닫힌 27K기지 철문을 두드리자, 직원들이 익숙하다는 듯 버선발 차림에 레드카펫을 깔고 있다. 강윤상은 이때 항상 별로 흡족하지 못하다. 빼짝 말라 있어야 할 직원들이, 마치 한국사령부에서 지급된 보급품을 정당한 권리를 통해 쟁취해낸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런 직원들을 데리고도 기지 꼴이 잘만 돌아갈 수 있는거지?"

강윤상은 효율적인 기지 운영강윤상 개인 의견입니다을 중시하는 자신과 달리 복지라는 명목 하에 돈을 흥청망청 쓸어담고 있는, 한국사령부에 아첨하여 분명 뒷돈을 받고 있을것이라고 스스로 예상하는 제27K기지 이사관의 낯짝을 보기 위해 응접실의 문을 발칵 열었다.

응접실의 끝에는 이사관이 앉아있었고 그 유명한 그의 이름은…

황보현욱?














(스튜디오 안, 수많은 참가자들이 웅성거린다.)

27K 급양부 이시연: 와, 심사위원으로 누가 나오려나.

27K 급양부 이시연: 솔직히, 누가 나와도 저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04K 급양부 오주원: 즐겁게 합시다!

04K 급양부 오주원: 저는 떨어져도 괜찮아요. 한 1년 간 SCiPNET 안 보면 되니까.

나레이션: <흙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100인 중 가장 뛰어난 요리사를 선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을 심사할, 심사위원 두 분을 소개합니다!

27K 연구원 장성훈: 오! 위층에 실루엣이 보여!

(참가자들이 일제히 위층을 바라본다.)

나레이션: 힘들게 모신 두 분입니다. <속초통큰물회>의 오너, 황보현욱 씨, 그리고 특별출연해주신 제04K기지 이사관 강윤상씨입니다!

반밈 전문가 이한석: 시발 뭐?

(참가자들이 환호한다.)








(첫 번째 참가자의 완료를 알리는 종 소리가 울린다.)

황보현욱: 빨리도 완성하셨네. 설명 부탁드려요.

145K 지속가능격리개발부장 임찬미: 한국식 육회 베이스에 프랑스식 타르타르의 터치를 가미한 요리입니다.

(두 심사위원이 젓가락으로 고기를 시식한다.)

강윤상: 특이한데. 이건 무슨 고기에요?

145K 지속가능격리개발부장 임찬미: 팔뚝살이요. homo sapiens sapiens 고기입니다.

강윤상: 저는 고기의 익힘 정도를 중요하게 보거든요. 이 고기는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 탈락입니다.

145K 지속가능격리개발부장 임찬미: 아니, 이거 육회인데…

(강윤상이 버튼을 누르자 임찬미의 발 밑에 있던 발판이 열리면서 불구덩이로 빨려들어간다. 일말의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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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남은 참가자의 종소리가 울린다.)

강윤상: 이 요리 이름은 뭔가요?

기아스모다이: 소고기 비빔밥입니다.

(기아스모다이가 마법진을 연성하고, 박자에 맞춰 괴상한 춤과 함께 의식을 치른다.)

기아스모다이: 비비비… 비빔… 비비비비…

(비빔밥 위로 심령독립체의 모습이 나타나고 현신하여 비빔밥은 곧 붉은 점성의 액체질이 된다.)

기아스모다이: 시식해 주십시오.

(난감해 하던 차에, 황보현욱이 누군가를 부른다.)

황보현욱: 즈소씨 내려와봐유!

나레이션: 특별 심사위원으로 제27K기지 연구원 즈소입니다!

강윤상: 먹어봐.

(즈소 연구원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액체를 쳐다본다.)

강윤상: 먹으라고.

(즈소 연구원은 애원하는 눈빛으로 숟가락을 든다. 잠시 망설이다가 입에 넣어본다.)

(즈소 연구원이 뒤틀린다.)

황보현욱: 탈락입니다.

(기아스모다이는 발판이 열리기 전 이미 지옥불로 변하여 사라져있다.)








"…야, 27K에 지금 무슨 일 일어났는지 들었지?"

"오브-코오스.1 노래마인=ㅅ…"

"내가 방금 전에 말했을 텐데. 말투 어떻게 하라고?"

"인살어를 사용하지 않고 표준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관님."

"그렇지."

"이사관님께서 현재 제27K기지에 일어난 SCP-825-KO 사건에 대한 질문을 주신 것에 대해 여쭈어보는 것에 대해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래. 너가 가서 강윤상이 좀 잡아와."

"혹시 제21K기지의 이사관인 제가, 현재 제21K기지에 발생한 중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27K기지의 소요를 다음 업무로 미루는 것에 대해 여쭈어보는 것에 대해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2

노래마인 이사관은 종이 한 장을 흔들어 보인다.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제21K기지 디스먼스-인포 도-모 닌자 소울 노래마인=상. 이강수입니다. (이하 생략)'

"…알겠습니다. 이사관님의 명을 받들어 지금, 즉시, 현시간부로, 곧바로 제27K기지로 향하여 제04K기지 이사관인 강윤상을 포박하여 이 자리에 금일 5시까지 대령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레이션: 1라운드가 종료된 현재, 총 생존자는 50명입니다!

(참가자들의 환호성.)

강윤상: 어. 잘못 눌렀다.

(불구덩이가 열려 47명이 추가로 사망한다.)

나레이션: 총 생존자는 3명입니다!

(참가자들의 환호성.)








(이한석 박사가 나레이터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말한다.)

나레이션: 좋습니다. 이번 라운드부터는 흥미진진한 진행을 위하여, 심사위원도 서바이벌에 참여합니다!

04K 급양부 오주원: 그런 게 어딨어!

04K 급양부 오주원: 와,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어요. 난감하죠.

27K 급양부 이시연: 오히려 좋은데요?

27K 급양부 이시연: 드디어 재단 최고의 생선 요리사 황보현욱씨와 함께하다니. 이건 가문의 영광이에요.

반밈 전문가 이한석: 음…

반밈 전문가 이한석: 다행이다. 계획을 변경하여 황보현욱을 타겟으로 팀전에서 떨어뜨리고자 한다. 강윤상이 현재 높은 인지저항성으로 서사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니 황보현욱과 반대 팀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나도 인지저항성으로 인하여 아직까진 서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가 삼겹살 한 근만 구웠는데 살아남고 불구덩이행도 피한 게 여기에서 기인할 것이다.

나레이션: 아뇨, 그냥 맛있게 잘 구우셨어요.

반밈 전문가 이한석: 아.









나레이션: 2라운드에 심사위원이 참여하는 관계로, 음식의 공정한 심사를 위해 강윤상 씨와 황보현욱 씨의 각 팀이…

이강수: 코마데다!!!!3

(5명의 참가자가 카타나를 들고 있는 괴한을 일제히 쳐다본다.)

이강수: 도-모 강윤=상. 한때는 같은 곳을 바라봤지만… 당신이 허튼 짓을 하는 것을 막는다면 폭발사산만큼은 면하게 해주겠다는 노래마인=상의 명이 있었기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받아랏-!

강윤상: 뭣, 뭐야? 이럴 줄 알고… 쓰리, 투, 원, 어서옵쇼!

(강윤상은 능숙하게 연어초밥을 다룬다. 연어초밥과 카타나가 부딪히며 맹렬하게 불꽃이 튄다.)

(칭-! 칭-! 촤앙-! 쿠와아앙-! 챙-! 챙-! 와장창-! 탕-! 탕-! 우당탕-!)

이한석: 엄청난 대결이다…!

황보현욱: 이봐, 전투 중에 한눈을 팔지 않는 건 기본 상식이다!

(황보현욱은 이시연을 들고 돌리면서 던진다. 이시연이 맹렬하게 회전한다.)

오주원: 이대로 질 수는 없어요!

(오주원이 꼬챙이 자세로 사출되어 이시연과 격렬하게 부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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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전투가 계속된다. 칭-! 챙-! 치잉-! 키잉-! 캉-! 츄우웅-!)

이강수: 강윤=상. 이제 그만 포기하십시오. 당신의 연어초밥 따위 이 초밥 앞에서 무력화됩니다!

(이강수 이사관은 3축 초밥을 사출한다. 연어초밥이 회전을 멈춘다.)

강윤상: 아니, 이거 뭐야! 왜 안 돌아가!

이강수: 3축 초밥. 참 매력적인 초밥이다. 초밥이 돌아가지도 못하게 만든다니. 이제 카이사쿠 해주마!

(이강수는 카타나를 핥으며 강윤상에게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다.)

강윤상: 그 정도가 겨우 비장의 무기인가?

(이강수의 걸음이 멈춘다.)

이강수: 뭐?

(강윤상이 접시 위에 놓인 생선 필렛처럼 보이는 걸 들어 올린다.)

강윤상:피쉬. 너 아까 점심에 뭐 먹었다고 했지?

피쉬 박사: 아, 불고기 백반 먹었습니다.

(강윤상은 피쉬 박사에 단촛물을 뿌린다. 눈이 맵다.)

강윤상: 그럼 초밥 맞네.

(피쉬 박사는 공포에 떨고 있다.)

피쉬 박사: …네.

강윤상: 쓰리, 투, 원. 어서옵쇼!

나레이션: 아, 피쉬 박사의 컴퓨터에 관한 지식이 본인이 쿼터니언 좌표계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각을 통해 3축 초밥을 깨부수었습니다!

이강수: 무, 무슨 그런 억지가!!!

강윤상: 이강수, 이젠 끝… 아니 너희 식으로 말하겠다. 하이쿠를 읊어라, 카이사쿠 해주마!

이강수: 으오오오-! 사요나라!

이 강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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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발 사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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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격렬하게 부딫히던 오주원과 이시연은 스튜디오 한 켠에 나란히 뇌수가 흐르는 채로 누워있다.)

나레이션: 남은 생존자는 셋! 과연 우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강윤상과 이한석은 황보현욱을 노려본다.)

황보현욱: 받아랏!

(황보현욱은 물회를 돌려 선제공격한다. 물회가 맹렬하게 강윤상의 진영을 덮친다.)

이한석: 크아악!

(강력한 한치회와 광어회의 콜라보레이션이 강윤상의 외투 밖으로 노출된 신체 부위들을 공격한다.)

강윤상: 으윽! 발은 건들지 마!

황보현욱: 만든 초밥도 이젠 다 쓰지 않았냐! 이젠 끝이다!

강윤상: 태양과 바람의 우화를 들어봤느냐?

황보현욱: 뭐?

강윤상: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태양이었지. 넌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강윤상은 문어 숙회와 점다랑어회가 끈적하게 달라붙은 트렌치 코트를 그대로 벗어던진다.)

이한석: 어 잠깐만. 이거 서사가-

강윤상: 쓰리, 투, 원, 어서옵쇼!

<흑백요리사> 원작의 서사가 12세 관람가인 관계로 강윤상이 나체로 활보하는 순간 서사재해가 발생해 해당 서사와 관련된 모든 것이 붕괴되었다. 이한석 박사는 이를 미리 인지하고 대피하였으나, 황보현욱과 강윤상은 그대로 기지 잔해에 깔리고 만다.

한편 제21K기지 이사관 이강수는 죽은 척을 하다 몰래 잔해 사이를 빠져나와 제01K기지 이사관 그레이스 최에게 이러한 메세지를 보내 작전 성공을 알렸다.

제 2 7 K 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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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발 사 산









오늘도 평화로운 제04K기지.

에서는 제 주인이 언제 올까 전전긍긍한 강아지같이 한은영 인사이사관보가 목을 빼고 강윤상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강윤상이 제 발로 남의 기지를 찾아가는 경우는 제27K기지가 아니면 없을 터인데, 제27K기지를 갔다올 때면 항상 1시간 내로 제04K기지로 돌아와서는 직원의 용모싸제 용어로는 똥군기를 비교하며 매우 흡족한 모습을 보이는 강윤상이었기에, 혹 가끔 찾아가는 제21K기지에 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제145K기지? 어쩌면 제01K기지? 아니야, 죽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토끼는 없을 것이야. 하고 한은영은 생각했다.

방금 내가 그를 토끼에 비교했던가? 그런 탈권위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윤상이 없는 제04K기지는 팥 없는 호빵이요, 슈크림 없는 붕어빵이었다. 오랜 시간 그가 기지에 없다면 기강이 해이해지고, 기강이 해이해진다면 깨어난 이가 나타날 것이고 과연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그녀의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곧 있을한은영에 의하면 시찰을 위하여 군말 없이 청소를 하고 있는 제04K기지 직원들은 목적성을 잃은지 오래였다. 그러나 청소가 시작된 지 한나절이 지나서도 강윤상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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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관님께선 도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

"그러게요. 벌써 그분이 그리워요."

강윤상이 사라진 지 이틀째, 끔찍한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져버린 라은희 박사는 한은영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영영 우리를 떠나버리신 걸지도 몰라."

"과연…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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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고라니일지도 모를 지친 발걸음 하나가 정문 앞을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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