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지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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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은 길지."

정철민은 그 자신이 알려준 검술을 펼치고 있는 이성재를 바라보았다. 봐줄 만한 독기를 제외하고는 별 볼일 없던 어린 깡패 하나에 불과했던 녀석은, 이제 괴물이라 불리기 충분한 녀석이 되었다.

이성재의 몸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론 백태양이나 그 회장에 비할 바는 아니나, 일반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육체의 한계에 도달한 완벽에 한없이 가까운 육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완벽한 육체는 아니다. 여기서는 보통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자신의 한계에 만족하거나, 끝없이 노력해서 그 한계를 돌파하거나.

하지만 후자는 너무나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정상적이지 않은 또 다른 길이 하나 있었다.

정철민은 검술에 집중하고 있는 이성재를 향해 검을 던졌다. 단검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성재의 급소를 향했다.

"흐읍!"

그러나 이성재는 흔히 있던 일이었던듯이 가뿐하게 검을 쳐 냈다. 하지만 정철민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반응이 늦다."

정철민은 검을 들고 이성재에게 달려들었다.

이성재는 미간을 좁혔다. 정철민의 움직임이 끊겨 보였다.

"한수 넘어를 생각해라. 경지를 넘어설 수 없으면, 먼저 올라가기라도 해야지."

이성재는 입을 다물고 정철민의 움직임을 따라가려 애썻다. 그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가 알려준 기술들은 그 격차를 좁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언제나 본능만으로 싸워왔던 그가 조금씩 예측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철민은 희미한 미소를 띄고는 이성재를 걷어찼다.

"크윽."

"이성재. 지금까지는 네 신체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오늘부터 할 일은 그 육체의 한계 자체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성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까지 한게 튜토리얼이었다 이 말입니까?"

"그렇지. 네놈은 내 검이 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글쎄다. 지금 이 수준으로 삼대천 스포츠에서 몇등이나 될까? 팀장급은 말할 것도 없이…여민지나 투이나나우만 해도 너보다 훨씬 강하지 않나."

이성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친년이랑 상어대가리는 강하죠. 하지만 죽이라고 하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철민은 혀를 쯧 찼다.

"그 녀석들이 쌓은 경지를 겪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겁이 없어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헤. 그런 놈이니까 회장을 죽이는 칼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여민지는 잡는게 어렵지 한번 칼 박으면 이길 것 같고…투이나나우는…"

"나는 어떨 것 같은가?"

그 말에 이성재는 웃으면서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투이나나우. 멸망한 사미오말리에의 추방자.

일반적인 사미오말리에 남성보다 훨씬 거대한 몸을 지닌 그는 상어'인간'이라기보단 '상어'인간에 가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이성재는 그 기괴한 덩치에도 쫄지 않고 이죽거렸다.

"쓸데없이 크기만 한 망치는 안 맞으면 그만이고, 한 백번 정도 칼침 놓으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해볼까?"

투이나나우는 이성재의 도발에 자신의 망치를 쓰다듬었다.

"이 망치는 부족의 상징이었지. 이걸 드는 자는 메갈로돈의 힘에 다갈 자격이 되는 거다. 쓸데없이 큰 게 아니라 다 이유가 있는 게지. 그리고 이 몸은 처음으로 망치를 든 남자고. 웬만한 여자들보다…"

이성재는 하품을 하며 투이나나우의 말을 끊었다.

"어쨌든 실전에선 안 맞으면 그만이잖아. 쫄았어?"

"허허. 망치를 들지도 못하는 애송이랑은 주먹을 섞고 싶지도 않은데?"

투이나나우는 웃으며 이성재를 도발했고, 이성재는 제대로 걸려들었다.

"난 칼잡이라. 회는 주먹으로 치면 맛없어지거든. 오늘 상어회 맛 좀 보겠네."

"사람 고기는 맛 없던데 말이지."

칼을 빼든 이성재의 앞을 가로막은 건 정철민이었다.

"그만. 자네도 진정하게."

이성재는 정철민의 제지에 칼을 내려놓았다. 투이나나우 역시 웃으며 망치를 내려놓았다.

"애송이의 칼솜씨를 보고 싶기는 했지만 어르신 말씀이라면."

"오늘로서 확신을 가졌다. 네 녀석에게 경지를 넘어설 가장 확실한 길을 보여주마."

정철민은 반투명한 화면의 타블렛을 꺼냈다. 타블렛 뒷면의 마크는 이성재도 예전에 얼핏 본 적이 있었던 그림이었다.

"세라믹파…?"

그 혼잣말에 정철민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눈썰미가 좋군. 세라믹파 역시 크게 보면 이들과 같다고 볼 수 있지. 그들이 그 말을 들으면 서로 엄청나게 싫어하겠지만."

"그 기곗덩이랑 경지를 넘어서는 방법이 연관이 있는 건가요?"

"…일부분의 규격화를 할 거니까."

"규격화라고요?"

"그렇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

정철민의 말에 이성재는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분명히 규격화는 한계를 결정짓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본인이 규격화를 그렇게 욕하셨으면서."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규격화를 받아들었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교리를 부정하고 있으니.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다면 굳이 선택하진 않았을 거다."

"그럼 왜?"

"네가 받을 건 규격화라 하기에는 훨씬 국소적인 '시술' 이니까. 물론 그들의 기술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니 그들의 명명에 따라야 하지만."

"몸의 일부만 바꾼다고요? 그게 가능한 거였어요?"

정철민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불가능하다. 원래는. 내가 전신을 잃었을 때 내 몸을 복구하고 강화시켜준 곳은 한국의 수신도였다. 세라믹파의 보증을 통해 나는 신도가 아니었음에도 규격화를 받을 수 있었지만, 특별대우는 거기까지. 규격화를 받으려면 전신을 빠짐없이 개조해야 하는 건 그들의 대원칙이었다."

"그렇다는 건…예외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 여느 종교가 그렇듯, 다른 종교들 처럼 원칙을 비틀어 그런 어중간한 짓을 허용하는 분파도 있다. 맥스웰파. 여전히 미친 놈들이긴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규격화의 장점만 살리고 치명적인 단점은 도려내는 합리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지. 물론 단점도 많지만."

정철민은 타블렛을 건넸다.

"라이트닝?"

"전뇌신경. 이를 통해 신경계의 반응속도를 극한으로 향상시킨다. 이 시술을 받고 나면 세상이 느리게 보일 거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속도의 경지'에 오른 이들과 대등한 시야를 가지게 되는 거지. 정점에 오른 육체를 한 단계 가속시킨다. 일반인들은 통으로 규격화시키지 않는 한 육체가 과부하를 못 버티겠지만, 너라면 가능할 거다."

이성재는 정철민의 움직임이나 여민지의 발차기가 끊겨 보였던 것을 생각했다. 그것은 신경계의 한계 때분에 압도적인 속도를 인식할 수 없어 생기는 현상이었다. 기술으로도 메울 수 없던 육체의 격차. 그 격차를 단숨에 좁힐 수 있는 기회였다.

"그게 있다면 여민지의 속도도 따라잡을 수 있겠군요."

"어디까지나 규격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후 네놈이 과부화를 버텨낸다면, 그렇지."

정철민은 이성재가 '속도'에 있어 자신을 따라잡는다면, 자신이 기진 모든 '기술'을 전수해 줄 생각이었다. 같은 시야에 있어야만 제대로 펼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검법들. 이를 통해 이성재는 훨씬 더 강력한 존재로 도약할 수 있을 터였다.

"지금까지는 내 명령에만 따랐지만, 이번 일은 선택권을 주마. 상당히 위험한 수술이고 이게 아니더라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니."

"하겠습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눈 앞에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떡하니 있는데, 위험하다고 안하는게 말이 됩니까?"

정철민은 속으로 웃었다. 이게 이성재였다. 녀석은 공포라는 걸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면 그 모든 걸 뛰어넘을 만큼 압도적인 향상심이 있거나.

둘 중 무엇이 되었든 지금의 정철민에겐 거세된 것이었다. 삼대천의 회장, 임한영을 죽이려면 그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음. 그래봤자 힘이 약하면 아무 소용 없겠지만 말이지."

투이나나우는 비장하게 대답한 이성재에게 농담을 건넸고 이성재는 거대한 상어인간을 향해 살기 섞인 웃음을 보내며 화답했다.

"여, 상어. 힘 세서 좋겠수다."

"…그럼, 가 보도록 하지."

"규격화를 바로 받으로 간다고요? 어디로요?"

정철민은 다양한 길이의 검들을 챙기며 입을 열었다.

"일본."

"일본이라니."

"아시아에서 맥스웰파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곳이 일본이다. 그 중애서도 전뇌수술의 경우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나지."

"그렇군요. 그래도 이렇게 바로 간다는 건."

"전뇌수술은 음지의 수술이지. 이들의 활동은 매우 은밀하게 진행된다. 모든 건 즉시 이뤄져야 한다. 3주 전 이런 건 없다. 재단이나 GOC에게 꼬리가 잡힐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어떻게 예약도 하지 않고 곧장 가는 겁니까?"

정철민은 피식 웃었다. 이성재는 본인도 깜짝 놀라게 할 기지를 지녔지만,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애송이였다.
"내 직위가 뭐냐?"

"삼대천 스포츠의 사장 입니다."

"그 전에는 40년간 부사장이었다. 내 임무는 대부분 일본의 음지 사업을 관리하는 거였고."

"허, 그러면 지금 가는 곳도 사장님 나와바리라는 거에요?"

"그런 셈이지. 공식적으로 나는 규격화된 내 몸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러 가는 것이다. 겸사겸사 수금도 할 겸. 투이나나우와 너를 데려가는 건 그걸 조금 더 수월하게 하려는 것 뿐이고."

"허, 왜 그런 귀찮은 짓을."

"네가 회장의 눈에 띄어서는 안되니까. 네가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은 비밀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성재는 납득한 듯 침묵을 유지하다 입을 열었다.

"이 정기 검사는 몇번째입니까? 전 몇번째죠?"

그 말에 정철민은 입을 다물었다.

"꽤나 단골인가 보군요."

이성재의 말은 정철민의 정곡을 찌른 셈이었다. 정철민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투이나나우는 대한해협을 헤엄쳐서 가고, 우리 둘은 배를 타고 간다."

"밀항인가? 물고기 밥 되지 말고 잘 건너오라고. 어이 꼬맹이. 같이 헤엄쳐 오면 조금이라도 근육이 붙을지도 모르는데."

"상어 좆이나 까세요."

이성재는 투이나나우에게 중지를 치켜들었다. 설령 자신이 처음이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지금까지 이 수술을 받았던 정철민의 '후계자' 가 여럿이었다면 뭐하는가. 지금 후계자는 자신 뿐이며, 살아남으면 되는 것이다.


일본. 8148기지.

"우짜지…"

코우가 마나는 볼을 크게 부풀리고 고민에 빠졌다. 상어 괴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8148기지에서 감시하고 있는 주요 요주의 단체 중 하나인 맥스웰교 전자교회에서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였다.

동족일 가능성이 있다면, 만사를 제치고 가보는게 맞았다. 코우가 마나가 재단에 투신한 이유는 그뿐이었으니까!

그녀가 끙끙거리자, 마다라자 요원이 다가왔다.

"이 임무는 우리가 처리할 수 있어. 어서 가 봐."

"그치만…"

"그럼! 네가 얼마나 동족을 찾아헤맸는지 아는데 어떻게 안 보내줄 수 있겠어."

"응! 고마워예!"

코우가 마나의 기뻐하는 모습에 마다라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피부는 그만 만지고예."

"……미안."


맥스웰교 전자교회 일본지부.

정철민과 이성재는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인간과 전혀 다를 것 없는 남자가 둘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성재는 이 남자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남자는 정철민을 곧바로 알아보고는 긴장한 듯 말했다. 정철민은 아무렇지 않게 용건을 말했다.

"라이트닝 시술을 받으러 왔다. 대상은 이 녀석이다."

"저, 그것이…"

"곤란한가?"

"아, 아닙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정철민은 유창한 일본어를 통해 순식간에 수술실을 잡았다.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괴상한 기계장치를 잔뜩 단 존재들은 정철민을 보자마자 두려움에 떨었고, 그가 하는 말에 의문을 달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

이성재는 수술대에 누웠고, 마취가 시작되자 정철민은 기계인간에게 물었다.

"수술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지?"

"대략 다섯 시간 정도 걸립니다. 다만 한가지 말씀드릴 점이…"

"뭔가?"

"현재 작파토 조약에 의해 규제단체로 지정된 이후 규제가 심해졌습니다. 해당 시술 역시 그 규제의 대상에 해당되는지라 현장 적발될 경우 특정규제대상단체로 지정되며 이 경우엔 재단이나 GOC에서 저희를 섬멸할 수도 있습니다."

"말이 길군. 할 수 있나 없나만 말하라."

"하, 하지만…"

"할 수 있나?"

기계장치로 몸이 뒤덮인 의사는 고개를 떨구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 대답에 정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말고 수술에만 집중해라. 적이 온다면 우리가 책임지고 쓰러트리도록 하지."

"투이나나우. 정문은 내가 맡지. 후문은 자네가 맡게. 이번 일 성공하면 한달간 자유 시간을 줄 테니."

"책임지고 후문은 신경 안쓰게 하도록 하겠네. 영감."

2시간 후.

정철민은 정문에 홀로 서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수술을 매우 섬세하게 진행된다. 수술실 내에서 그 어떤 돌발상황도 발생되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이성재는 정철민의 최고의 패였으니까.

그 순간 정철민의 감각에 이상행동이 감지되었다.

'여덟 명…'

정철민은 회전 역장을 이용해 스텔스 모드를 작동시켰다.

"수술이 진행 중일때 포획해야 한다! 녀석들의 무장 수준은 변변치 읺지만 절대 방심해서는 안된다."

"옛!"

불청객들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정철민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기동특무부대 さ-21. 속칭…물어뜯어 죽임. 요주의 단체 격멸에 특화된 단체. 무장이 약할 리 없다.'

정철민은 몸 안에서 검 두 자루를 꺼냈다.

'경시청에서 기본 무장으로 사용하는 권총이 셋. 소총이 셋. 권총탄은 맞고, 소총은 쏘기 전에 팔을 벤다.'

정철민은 당황했지만 확신이 있었다. 기습을 한다면 분명 승산은 있다. 녀석은 수술을 받으러 온 존재의 무력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자신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결코 이 정도 무력으로 침공해오지 않았을 터였다.

무장한 여섯명은 두렵지 않다. 문제는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듯 보이는 두 명. 기동특무부대 さ-21은 섬멸에 특화되어있는 부대다. 이곳이 맥스웰교의 거점임을 고려했을 때, 이들의 능력은 짐작할 수 있었다.

'기계사냥꾼 인가.'

정철민은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어떻게 하면 최선의 수를 둘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수술이 방해받지 않는 것이었다.

정철민은 두 검을 교차해서 들었다. 역장 바깥으로 나가서 기습을 거는 순간 시작이었다.

정철민은 순식간에 사각지역에서 달려들어 대장으로 추측되는 존재의 목을 베었다. 목을 베는 감각이 시원하지 않았다.

총구가 일제히 정철민에게 겨누워졌다. 정철민은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탄환은 발사한 순간 네 몸이 아니지."

격발 시 잠깐 달라지는 호흡.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은 '예측'할 수 있다면 총기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극한으로 달련된 정철민의 검은 빠르면서도 정확했다.

정철민이 대원 넷을 쓰러트렸을 때, 부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장갑을 벗었다. 순식간에 어두운 복도가 밝게 빛나고, 무수히 많은 광탄이 쏟아져 나왔다. 정철민은 서둘러 피했다.

"탄막인가…쯧. 전투용 신체를 가져올 걸 그랬나."

"부대장님! 광탄은 시간 제한이 있지 않습니까! 예상치 못한 강자입니다만, 저희가 충분히…"

"시끄러어! 니들 저 자가 누군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정철민은 규격화를 저주했지만, 규격화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대체 누구길래…"

규격화는 실력을 보전한다. 살덩이는 썩지만, 강철은 녹이 슬 지언정 그 자태를 유지한다.

"오사카의 왕! 고쿠도가리(極道狩り)다!"

정철민이 광탄을 향해 달려들었다. 겁에 질린 부대장은 패닉에 휩싸여 자신이 가진 전부-대인 전용 EMP-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것은 행운이 되었다. 규격화된 대상에겐 즉효약이었다.

정철민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삐걱거렸다.

"하, 하하…개조인간이었던 거냐! 죽여버리겠어!"

부대장은 광탄을 난사했다.

정철민은 쓰러지면서도 검을 놓지 않았다. 그의 규격화는 하체와 신경 일부에 한한다. 그것만으로도 큰 제한인데다, 몸 상당수가 광탄에 꽤뚫려 구멍이 뚤렸다.

하지만 죽음이 드리울 때, 칼은 더욱 깊게 살을 파고든다.

정철민은 희대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맞아도 되는 탄은 맞고 아닌 탄은 쳐낸다. 힘 조절은 하지 않는다. 적은 반으로 갈라 죽인다. 뒷감당? 그런 것은 강자에게 필요치 않다.

40년 전에도, 지금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끄아악!"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피와 비명만이 남았다.


코우가 마나는 나머지 기동특무대원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따로 후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적중했다.

바라던 대로 코우가 마나의 앞에는 '상어괴인'이 있었다.

코우가 마나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저게' 정말 동족인가? 골격도, 키도, 근육도, 생김새도, 피부의 질감마저도 평범한 사미오말리에인과는 크게 동떨어졌다.

투이나나우는 그런 코우가 마나를 보고는 손을 들었다. 서로 다른 클랜에 속한 사미오말레인을 보았을 때 하는 전통적인 예법이었다.

"오랜만에 동족을 만나서 반갑군."

그 예법과 오랜만에 듣는 사미오말리에 공용어. 코우가 마나도 곧바로 답례 인사를 행했다.

오랜만에 쓰는 거라 더듬더듬거렸지만, 적어도 사투리로 놀림받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잠깐 그녀의 머리속에 스쳤다.

투이나나우는 어린 동족의 예법에 오랜만의 미소를 띄었다.

"추방자에게 예를 표할 이유는 없소. 어린 이여."

그 말에 약간의 온기를 느낀 코우가 마나는, 순간 느꼈던 공포를 뒤로한 채 침을 꼴깍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여긴 왜 온 거죠?"

"어르신의 은혜를 값기 위해서요."

"어르신…? 삼대천의 사장을 말하는 거죠? 저도 삼대천에 대해선 알고 있어요. 그들은 악당이에요!"

"…재단에 있는 입장이니 그럴 수 있지만, 선과 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겠소?"

"하지만, 그들은 인체실험을 하고 장기밀매도 서슴지 않잖아요."

"재단은 그렇지 않나? 게다가 본인은 삼대천 덕에 한계 이상의 힘을 얻었소."

"……"

"어린 이여…난 수컷이고. 보통의 암컷 사미오말리에보다 약했소. 끊임없이 단련하여 망치를 들어올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지. 그러나 이 육체에 대한 열등감은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네. 그러다 금기를 어겨 추방당했고…하지만 우리 종족의 몸은 인간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해 질 수 있더군. 약물과 훈련을 통해 강해질 수 있는 한계가 훨씬 높아…그렇기에 삼대천의 기술과 사미오말리에의 육체는 궁합이 매우 좋았소. 나는, 추방당한 치욕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다시 삼을 수 있게 되었고…이젠 그 빛을 갚을 차례요."

"추방?"

그 되물음에 투이나나우는 잠시 당황했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가. 나를 모르는가. 나는 사미오말리에의 대통령이었고 추방자였다. 그들이 상어 죽빵 센터에게 멸망당하기 이전에."

추방. 코우가 마나는 그런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도 말로만 들었었다. 그렇다면 눈 앞에 사미오말레인은 누구보다 사미오말레 공동체를 증오할지도 몰랐다. 코우가 마나는 서글퍼졌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동족이, 동족을 혐오하게 된 이라니.

"그럼…spc 놈들한테 복수할 생각은 없는거지?"

"날 추방시킨 놈들인데 복수는 무슨 복수인가. 내가 그들의 창자를 다 씹어먹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만."

"그렇다면 왜 나한테는 반가움을 표했지?"

투이나나우는 씨익 웃었다.

"그땐 어린아이였을것 아닌가. 그런 이에게까지 죄를 묻는 정도로 미친 놈은 아니라서 말이지."

"……재단에 들어올 생각은 있어?"

코우가 마나의 그 말에 투이나나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한참 동안 뜸을 들었다.

"하하…내가 들은 제안 중 가장 신선했네. 그건 오랫동안 고민해 보겠네. 지금은…"

투이나나우는 한참 동안 뜸을 들이다 갑작스럽게 벽을 망차로 내리쳤고,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코우가 마나는 급류를 이겨내려 노력했지만, 결국 급류에 휩쓸렸다. 그녀는 쓸려 내려가면서 한 마디 말을 들었다.

"다시 볼 날을 기대하지."


"미끼는 모두 당했나?"

"그렇습니다."

"예상보다도 더 강하군. 정철민이란 자. 3일동안 철저히 방벽을 무력화했는데. 역시 이 바닥은 한 명의 변수가 너무 심하단 말이지."

기동특무부대 さ-21의 진짜 본대는 정철민에게 들키지 않을 수준의 스텔스를 키고 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규격화 된 육체라 할지라도, 정철민의 인지 범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이들의 진짜 목적은 전뇌수술의 기술 그 자체였다. 삼대천은 불청객일 뿐.

이들은 "미끼"를 뿌렸다. 초상세계의 강력한 흉악범들을 모아놓은 D계급으로 이루어진, 매우 강력하지만 전술적 움직임은 부족한 미끼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 한명에게 전멸당할줄은 몰랐지만, 그런 의미에서 기동특무부대의 진짜 목적인 수술실 잠입은 성공한 것이었다.

"어, 어떻게…"

"잠시 주무십시오."

푹.

기동특무대원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수술을 집도하는 인원들을 마취시켰다. 곧이어 삐이이 하는 소음과 함게 수술은 멈추었다. 이성재는 여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이 남자는 어떻게 합니까?"

"냅둬라. 전뇌수술은 아주 민감한 수술이다. 수술 중 중단되었으니 뇌사 상태를 면치 못할 거다. 그래도 경계를 늦추진…"

그 순간, 문 앞에 넝마가 된 상태의 정철민이 나타났다. 기동특무대장은 진심으로 놀란 듯 작게 감탄했다.

"대단하군."

정철민은 대단 없이 재단 인원들을 노려보았다. 승산은 없다. 자신의 몸은 EMP와 광탄으로 망가졌고, 지금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은 투이나나우가 일으킬 급류를 통해 탈출하는 것 뿐이다. 이성재는 버려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정철민은 그들에게 무작정 달려들었다. 당연히 진영과 대비를 철저히 갖춘 이들에게 정철민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당신은 아주 이성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미끼 여덟을 혼자 잡았다고 자신을 과하게 믿은 건가."

쓰러진 정철민은 피를 토하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난 평생 살면서 나 자신을 믿은 적이 한번도 없었어…다른 사람은 딱 두 번 믿어봤는데 다 당했고…"

"…무슨 말이 하고싶은 거지?"

"…이번이 세번째라고. 남자가 세번은 믿어봐야지."

그 순간, 뒤에서 기동특무대원들이 쓰러졌다. 기동특무대장은 바로 대비태세를 취했지만, 적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 움직임이 끊겨서 보였다.

"하! 이게 여민지가 보던 세상이구나."

이성재였다.

"…적은 전형적인 과부하 상태다. 섣불리 달려들지 마라. 10분, 아니 5분 이내에 반드시 상대는 쓰러진다."

기동특부부대는 금세 전열을 정비했다. 그들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제 막 수술을 끊마쳐 적응도 되지 않았는데 신경회로를 마구 태우고 있는 이성재는 그 속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게 뻔했고, 정철민은 이미 쓰러지기 직전의 망신창이였다. 하지만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한 가지 변수가 남았었다.

"어르신!"

투이나나우였다. 그는 거대한 급류를 이용해 아주 빠른 속도로 돌진하여 이성재와 정철민을 낚아챘다.

"따라갑니까?"

"아니. 시설은 이미 확보했다. 저들은 변수였을 뿐이야. 항전해왔다면 격멸했겠지만…지금은 온전한 시설의 확보가 우선이다."

그렇게 재단과 삼대천. 두 단체는 변수가 있었으나 서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다.


3개월 후.

"이제 슬슬 적응 된 것 같다니까요?"

"아니, 아직 위험하다. 첫날의 과부화의 여파가 아직도 뇌파에서 발견되고 있다. 임한영을 마주하기도 전에 뇌가 타죽고 싶지 않다면 닥치고 체력훈련이나 해라."

이성재는 입술을 삐죽였다. 3개월 전 그날의 시야는 잊을 수가 없다. 한순간이나마 여민지가 보는 세계를 공유했던 감각은 짜릿했다. 경지를 넘어 무엇에 도달해야 하는가. 그것보다도 경짐을 넘어서는 것 자체에 도취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서 속도의 경지는 넘었다. 다음은…

이성재는 톤 단위의 벤치프레스를 하는 투이나나우를 힐끗 바라보았다.

"상어 아재. 요즘 왜 그렇게 열심히 운동해?"

"…마음에 드는 아이가 생겼다."

"허, 뭐래는 건지."

힘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 그것도 참으로 재미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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