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워, 예상보다 열렬한 환대로구만. 진정하게. 어차피 오늘 이후로 나랑은 얼굴 마주치기도 힘들 테니. 오늘은 그냥 기분 전환 삼아서 직접 나왔을 뿐이야. 그래, 거기 날붙이는 집어넣고, 적극적인 친구. 고맙네.
보아하니 다들 날 알고 있는 것 같군. 베르나르 엥엘베르트, 저명한 기업인이자 저술가. 거대한 다국적 기업을 이끌면서 수전노마냥 벌어들이는 막대한 부를 어디론가 빼돌리는 악덕 경영인에, 비난을 피하려는 꼼수로 어디 붙어먹었는지도 모를 괴상한 환경 단체나 후원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의마저 체면치레의 수단으로 삼는 비열한 위선자! 자네들 대부분이 나를 이런 인물로 보고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아는 바일세. 사실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러한 시각에는… 가장 결정적인 고리가 결핍되어 있네.
대강 눈치챘나? 자네들이 지금부터 합류하게 될 초국가적 환경 조직, "엔트로피를 넘어서" 말일세.
식용 음식물쓰레기 커뮤니티는 밖에 내세우기 위한 눈속임 단체일 뿐, 내가 마련한 자본은 모두 이곳 BE로 흘러든다네. 일종의 자금 세탁이지. 그 돈은 자네들 현장 활동가 제군과 본부의 연구진을 위한 예산이 되네. 알겠나? 내가 없으면 BE도 없다, 이 말이야.
음. 협박할 의도는 없었네. 사과하지. 그저 앞으로 활동 자금을 충분히 지원받기를 원한다면 나에게 밉보여서 좋을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싶었을 뿐일세.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의 활동과 자네들의 역할을 이야기할 차례로군. 여기 있는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 BE를 알게 되고 또 합류하게 되었을 테니 다들 알고 있으리라 보지만, 다시 확실하게 말해두자면, 우리는 사회가 알아선 안 될 방법을 통해 대자연을 지키고자 움직이는 비밀 단체일세.
사회가 알아선 안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할 게야. 왜 모두를 위한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도리어 우두머리가 횡령 혐의로 비난받는 것마저 감수해 가며 비밀을 엄수해야 하는가? 그건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너무나 혁신적이기 때문이네.
잠시 영상들을 좀 보도록 하지. 수십 년 전 우리가 입수한… ESC를 BE로 바꾸어낸 시발점이 된 자료들일세. 조작되지 않은 원본 영상이야. 어디. 이 영상은 동력도 없는 비둘기 모형이 무거운 추를 단 채 비행하는 장면을 찍은 것일세… 그리고 여기에는 거대한 파충류가 폭발과 공격으로 엉망이 된 신체를 한순간에 회복해내는 모습이 담겨있고… 또 이 영상에선 조그만 병에서 수없이 많은 생물체가 쏟아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지. 다른 영상들도 모두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장면뿐이네.
알겠나? 열역학 제2법칙을 무시하는 존재들이, 외부 엔트로피의 실존을 증명하는 존재들이 이 지구상에 여럿 존재한다는 말일세.
우리는 이 존재들을 알게 되었고, 오랜 추적 끝에 몇몇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자네들도 견학하게 될 게야. 여하튼 우리는 엔트로피의 끝없는 증가를 저지하기 위해 그것들을 연구하고 있네.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고 말이야. 아직 본격적으로 열역학 법칙을 거스르기엔 부족하지만 현대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물건들까지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우리는 이르렀네.
아직도 궁금한 표정이군. 그렇다면 그것을 그냥 발표하면 될 것이 아닌가? 어째서 이런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활동한단 말인가? 충분히 가질 법한 의문이지. 이해하네. 허나 우리가 숨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네. 바로 우리만이 이런 사실들을 아는 유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게지.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움직이고 있네. 어떤 이들은 대중으로부터 그것을 숨기려고 하고, 어떤 이들은 파괴해 버리지. 또 누군가는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하고 말이야. 그들 모두는 자신 외의 집단이 이 불가사의한 물체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특히 재단이라는 단체는 그러한 변칙 현상으로부터 인류를 지킨다고 자부하면서, 자신들이 SCP라고 부르는 그런 모든 것들을 수집해서 대중으로부터 숨기려고만 하지. 우린 그러한 단체들로부터 많은 위협을 받았고, 한 번의 처참한 패배 이후 조직을 지하로 옮겨야만 했네.
이런 사정으로 지금 당장 우리의 성과를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네. 공개한다고 해도 대중의 비웃음만 산 뒤에 다른 경쟁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게야. 그래선 안 될 일 아니겠나.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확실한 이론 토대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뒤가 되어야만 하네.
그래, 물론 그것은 연구진이 맡을 일이지. 내가 자네들을 너무 기다리게 했구먼. 자네들 활동가 제군은, 우리 BE 조직의 눈과 손이 되어 움직여줘야 하네. 필요한 정보와 변칙적인 개체를 손에 넣고, 경쟁 단체들의 활동을 방해하며, 더 나아가 다른 평범한 환경 단체들이 손 쓸 수 없는 현장에서 자연을 보호해야 하네. 실제로 그들과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일세.
이렇게 말했다만 우리가 자네들을 통제하고 수하로 부린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네. 자네들은 기본적으로 명령이 아닌 자신의 판단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활동하면 돼. 단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보고는 올려야겠지. 나를 비롯한 지도부는 자네들의 계획안을 보고받고, 예산을 지급하고, 종종 필요한 때에만 특별히 임무를 부여할 걸세. 이런 특별 임무를 제외하면 자네들은 전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활동에 매진하면 된다네. 물론 그 성과 역시 보고해야 하고, 이후 예산은 개별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될 게야. 승자는 먹이고 패자는 굶길 때 조직의 효율은 최상이 된다는 게 나의 지론일세. 수십 년간의 활동으로 증명되었고 말이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수도 있을 걸세. 대부분의 신입들이 겪는 일이지.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생각하고 행동하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상황에 부닥치면 많은 인간은 잘할 수 있는 것마저 힘겨워하는 법이거든. 계속 얘기하겠네. 우리의 주요한 목표는 물론 외부 엔트로피의 증명과 지구 환경의 보호를 위해 변칙 개체를 다루는 것이지만, 환경 운동에 해당하는 모든 활동이 우리 조직을 필요로 한다네. 다만 BE에 발을 들인 이상 그것이 보통의 평화로운 활동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말게. 그런 걸 원한다면 당장 꼬리 말고 도망쳐서 그린피스에나 가보라고.
음, 현역 활동가들의 예를 들려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군. 이들은 각자의 활동 영역에서 작은 세포 조직을 구성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지. 어떤 활동가들은 재단의 손에 고통받는 변칙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생물종을 구출하러 다니고 있네. 다른 누군가는 변칙 개체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는 현장에서 피해를 저지하고 있고. 이미 확보한 변칙 물체를 사용해서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있는 활동가 집단도 있고 말이야. 본부에 남아 연구에 뛰어든 이들도 여럿 봤군 그래. 음,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세포 조직들의 자세한 설명과 목록은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에 배부해 줄 것이네. 잘 읽어보도록 하게.
선택은 자네들의 몫일세. 자신의 성향에 맞는 세포 조직이 있다면 그곳에 합류해 활동하면 되고, 새로운 세포를 직접 만들 수도 있네. 건투를 빌어주지.
자, 이걸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도록 하지. 질문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