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와 채찍
평가: +1+x
blank.png
people-3192204_640.jpg

늑대와 지내려면 늑대처럼 울어라С волками жить ── по-волчьи выть.


20██년 ██월 러시아 사이토 미치카

그것은 단순한 문화교류를 겸한 연수의 일이었다. 러시아지부의 공기를 배우고 오라느니 거창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깊이 담가주기 위한 덫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발단은 사소한 ”트집”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실수를 저질러 그 페널티로 연수를 받게 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선택할 참이었던 것이다. 단언컨대 간수치가 시험대에 오르는 별 볼일 없는 여행 이라던가 하는 하찮은 빈정거림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 다만 정신을 차려 보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형 헬기에 실리게 되어 노보시비르스크1 라는 시베리아의 벽지까지 날아가게 되었다. 현지에서는 안내역의 남자가 담뱃대로 연초를 뻑뻑 피우며 기다리고 있었고, 도착한 나를 정말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환영의 뜻을 전달했다.

「유착과 회뢰에 물든 악덕의 땅에 어서 옵쇼」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안내역 남자는 그 매서운 안광으로 이쪽을 사살하듯이 노려본 후, 그대로 나를 저 시설로 데려갔다.


20██년 겨울 콘스탄티 알렉세예비치 이바노프

「무서운 눈매를 한 여자였지요」

그렇게 말하고, 과거의 자그마하면서도 뒤숭숭한 추억에 마음을 할애하고 나서 알마간의 일이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내가 팔아넘겨졌음을 확신했다. 짐을 싸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긴 인수절차를 마친 후, 러시아지부 정보국의 공작담당이사관이 돌연 방문하여 임명장을 주고 간 것이다.

「내가 그랬지? 조만간 또 본다고」

그러면서 내민 서류에는 자기 전속에 관한 명령서와 이동처가 적혀 있었다.

제8100기지 재단 일본지부이사회 막료부 정치국 행정감독부

머리를 싸매는 나를 보고 그 공작담당관은 낄낄 웃어냈다

「미안하지만, 이건 일종의 선물페널티이다. 한동안 밸런서로서 일본과 우리들의 권익을 조정하도록 노력해 줘라. 다행히도 머리칼이 짧고 지혜가 긴 그 여자2와 눈에 띄지 않는 얼굴의 FSB3도 동료가 된다고 하더라. 부디부디 일 잘 하고, 선물받은 말 이빨은 세어보지 않는 법4이다」

따위 말을 지껄이고는 잽싸게 퇴장했다. 형식상의 귀국과 제3국을 경유한 재입국을 통해, 서류상 다른 사람이 되어 임무를 맡게 된다는 것 같다. 팔리는 것도 입장을 바꾸는 것도 익숙한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 이상으로 나라와 떨어진 후에 나라에 봉사하게 될 것 같다.



20██년 ██월 러시아 제215유물기지 사이토 미치카

그 어쩐지 기분나쁜 남자는 적어도 일만큼은 제대로 하는 것 같다. 데려온 시설의 역할, 하고 있는 업무와 주의사항, 그 밖에 숙박장소나 향후 스케줄 등을 차질없이 전해줬다.

아무래도 나를 데리고 온 격리시설은 SCP-1991-JP라는 장소에서 유래한 오브젝트를 격리하는 시설이며, 그 경위부터 러시아 정부와 재단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국가간 연계제휴의 모범케이스 같은 시설이란다. 재단이 오브젝트를 관리하고, 재단을 국가가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 정부가 재단과 교섭을 위한 빨대를 만들거나, 정보를 제공받기 위한 빨대를 만들고 할 때, 그것을 위한 대의명분 중 하나라고 했다…… 뭔가 동전의 앞뒷면을 보는 듯……한데.

「뭐어, 실태는 차차 말씀드리도록 하고. 지금은 쉬어두쇼. 내일부터는 보여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정보실의 일을 보여줄 테니」

놈은 점잔을 빼면서 그 다음 말은 하지 않고, 그대로 나를 숙박장소로 데려가 사관용 개인실에 밀어넣었다. 그 날은 느긋하게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방 냉장고에 들어 있던 발치카를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마시고 비교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고 생각한다.5


그리고 며칠 동안, 이바노프라고 이름을 밝힌 통역관이 러시아 정부와 재단 러시아지부가 평소 어떤 업무를 하는지 견학을 시켜 주었다.
외무부가 습격당했을 때의 생존을 중점으로 한 실무훈련, 뇌물을 먹이는 방법 etc……. 귀찮다는 얼굴로 고지식하게 설명한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붙임성도 나쁘고 일도 맡은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치 기계처럼 일하는 것 같다.

라고는 하지만, 퇴근 후의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유쾌하게 국가를 부르며 술을 권한다. 휴가 직원이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가져온 병생맥주는 신선한 경험이었고, 1리터짜리 캔맥주는 일본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풍경이었다. 러시아식 커틀릿과 교자를 함께 먹으니 낮의 일을 잊기에 충분했다.


체류 마지막 날, 이바노프는 귀국 전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주겠다며, 군용 무기 케이스에 잔뜩 채워진, 시리얼넘버가 붙은 보드카를 들고 나왔다. 만약 자기를 인사불성으로 취하게 만들면 러시아지부에 연줄을 마련해 주겠다며.

나는 놈과 승부를 했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그 불쾌한 남자는 나를 손쉽게 인사불성으로 취하게 만들어 체류 일수를 늘리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숙취 상태로 요주의 단체에 붙잡혔을 경우의 생존연수를 받게 했다. 마지막으로 두통과 구토감 속에서 간신히 기어나온 나에게 유열에 찬 얼굴로 『좋은 경험이지?』 라고 지껄인 놈의 명치를 걷어찬 것은 별로 잘못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경험이었잖아. 다음에는 질 게 뻔한 승부는 하지 말라고. 난수방송 같은 걸 듣게 되는 날이면 돌이킬 수 없어지니까」

라고 지껄이는 놈의 악역 같은 미소는 형용하기 어려웠다. 기념품으로 술 한 병도 주지 않은 주변도 참 눈치가 없다. 완전한 바보를 가르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같으니.


20██년 12월 동경도 모처 사이토 미치카

머리가 쿵쿵 울린다. 직장에서 맥주를 깐 김에 술로 밤을 세웠다가 운노가 바래다준 것까지는 기억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적당히 벗어던진 작업복과 빈 캔맥주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그 가운데 쓰레기 궁전의 주인이 된 나는 유일한 안전지대인 옥좌침대에 나뒹굴고 있는 모양새다.
아픈 머리를 누르며 쓰레기와 옷을 걷어차면서 방구석에 놓인 냉장고에 다가가, 제대로 된 마실 것을 찾아 냉장고 안을 뒤진다. 산 기억이 없는 생수가 눈에 들어오고, 후배가 나를 챙겨 작성한 메모가 있다. 어렵지 않게 집어들어 단숨에 절반을 마시고 나머지를 머리에 들이부었다. 투명한 액체가 몸을 타고 흐르며, 겨우 몸에 걸치고 있는 속옷이 피부에 붙는다. 기분 좋은 냉기가 머리에 깜빡이는 이것저것들을 쫓아내주는 느낌이 든다.

물이 몸을 지나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몸의 라인을 타고 찰박찰박 튀는 물방울이 바닥에 자신의 존재를 마킹하듯 카페트에 스며든다. 이런 데서 등목 따위 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이걸로 당분간은 휴가다. 적어도 해가 바뀌어 새 임무를 받기 전까지는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또 다음이 있고, 채찍으로 도끼를 깨뜨릴 수는 없지만 휘감아 가로챌 수는 있으니, 다음에도 또 잘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나는 거기서 생각을 그만두고, 감깐의 쾌락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샤워실로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20██년 1월 제8100기지 콘스탄티 알렉세예비치 이바노프

손을 써보기는 했으나 결국 이동이 취소되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양보를 얻은 것은 제215유물기지의 사유물과 “개인적인” 정보들을 반출할 수 있는 것 정도였다. 일본에서는 적은 수표로 변통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말이지, 이게 무슨 놈의 선물이냐.

「작파토……. 적어도 우리나라보다는 낫다면 좋겠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중에 투덜거리자, 안내역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내 쪽을 쳐다보았다. 적당히 둘러대고 지나쳐서 나뭇결 무늬의 문을 밀고 안으로 나아간다……. 원컨대, 내가 나아가는 길이 불길에서 화염길로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피서, 닥터, 솔저, 스파이〉
제2화

« 201█년 겨울 | 도끼와 채찍 | 황제폐하의 성조 전편 »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