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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아마테라스와 달빛 제5장Amaterasu to Tsukiakari Chapter 5
저자:
ProfoundAbyss
이미지 출처: https://pxhere.com/en/photo/683587 (CC0)
Thula thul, thula baba, thula sana......
울지 마라, 아이야, 울지 말거라......
제5장
달이 떨어지다
Moon Falls
2019년 10월 12일 저녁, 일본 아오모리
10월의 싸늘한 바람이 한 차례 스쳐가는 것을 느끼며, 파스칼은 몸을 움츠렸다.
그는 일단의 현장 요원들과 함께 언덕에서 BE 소유의 비밀 연구 시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위성을 통해 SCP-940-KO를 추적한 결과 그녀를 태운 검은색 호송 차량이 이 시설로 들어가는 것이 포착되었고, 파스칼은 이 사실을 공작관에게 보고했다.
덴브래스 공작관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자신 휘하에 있는 신참 요원들 대여섯 명을 파스칼이 잠복해 있는 장소로 파견했다. 파스칼은 그들의 면면을 보자마자 공작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재단 정보부는 이 아마테라스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이 처참하게 실패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거대한 규모와 위험성을 생각했을 때, 프로젝트의 실패는 곧 연구 시설의 파괴 또는 최소한 치명적인 손상을 야기할 것이다. 그때 파스칼의 팀이 (보안에 집중한 탓에) 한 줌 뿐인 경비들의 감시망을 피해 잠입해서, 재 속을 뒤져서 남은 것들을 회수하라는 것이 정보부의 지령이었다.
파스칼은 그 지령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재단은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고 교활한 집단이었다. 재단의 결정권자들이 프로젝트의 실패를 말했다면, 프로젝트는 아마 실제로 실패할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연구소가, 솔러스 사이언스가 그러했듯이, 엔트로피를 넘어서도 치명적인 오판을 저지른 것이다.
그는 강나루를 떠올렸다. 시즈오카에서 파스칼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그 젊은 기적사는 어리석게도 자신이 재단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고 믿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소심함보다 이용하기 쉬웠기에, 파스칼은 그에게 장단을 맞춰 주며 새로 사귄 친구를 연기했다. 오판의 결과 나루는 이천에서 마음이 무너졌고, 곧이어 말 그대로 숨통이 끊겼다. 그의 죽음이 파스칼에게 뭔가 충격을 남긴 것도 아니었다. 재단과 임의로 협력했다가 배신당한 사람을 파스칼이 처음 본 것도 아니었으니까.
갑자기 언덕 아래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파스칼의 연쇄된 생각이 끊겼다. 파스칼은 소리를 내지 않게 주의하며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요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총을 꺼냈다. 언덕 위에는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았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누군가의 검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원들이 그에게 총을 겨누었다.
파스칼은 그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언덕 위로 올라온 침입자는 검은 코트 차림의 훤칠한 청년이었다.
신참 요원들은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긴장한 얼굴들 뿐이었지만, 파스칼은 소스라치게 놀라 외마디 소리가 입에서 터져나오려는 것을 온 힘을 다해 억눌러야 했다.
밝지만 이상하게도 우울감이 감도는 듯한 청년의 얼굴에는 약간의 혼란과 엄격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 강나루? 어떻게 한 거야?" 파스칼은 얼이 빠진 표정을 하고 말했다.
"짐작 가는 게 있기는 해." 나루가 느릿느릿하게 답했다.
파스칼은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자신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정체를 밝혀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어디서도 붉은 깃발이 올라가질 않았다. 그는 분통이 터져 자기 감각 기관들의 태업을 의심했지만, 결국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대신 사실을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바로 강나루, 이천에서 죽었으나 지금 아오모리에 다시 나타난 프리랜서 기적사였다.
"그런데 여기는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건데?" 파스칼은 여전히 얼이 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해명되지 않은 미스터리가 산더미였다.
"몰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였어." 혼란이 담긴 나루의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긴 한데, 이야기 보따리는 나중에 풀고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
파스칼은 어깨를 으쓱였다.
"보아하니 저 언덕 아래에 고다 박사가 새살림을 차렸더군." 나루가 이제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야겠어. 계획은 세워 놓았지만, 네 도움이 필요해."
"왜?" 파스칼이 반문했다.
"아마테라스 프로젝트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 지연이는 죽었지만, 소연이는 여전히 표본으로 사용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안정적이거든. 지금쯤 그 아이를 새로운 태양신으로 만드는 작업이 60% 정도는 진행되는 중일 테지. 만약 작업이 완료되고, 우리가 너무 늦으면, 그때는 재단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래서 연구실 안으로 침입하겠다? 이 연구 시설 내에서 가장 잘 보호되어 있을 게 분명한 구획에? 그게 저 건물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아까도 말했잖아, 계획이 있다고. 난 고다 박사와 소연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어떻게 침입할 수 있을지도 알아. 내가 모르는 건, 그쪽이 날 도와줄 의향이 있느냐 하는 거지."
"내가 받은 지령은 어디까지나 프로젝트의 진행을 감시하는 거다. 요원들의 생명과 이 지역에서의 재단 활동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아마테라스 프로젝트를 막을 생각은 없어."
"다른 요원들은 필요 없어. 재단이 모습을 드러낼 일도 없고.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잿더미에 나앉은 BE 혼자서만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거라고 약속하지."
"만에 하나 네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내가 왜 너를 믿어야 하지? 죽었다 살아나서 기억을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전에 널 배신한 전적이 있어."
"기억하고 있지. 네가 배신자라는 걸 인정해주다니 고맙군."
"집어치워. 이 상황에서 내가 널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아니면 끝나고 나서 내가 지연이의 복수를 당하게 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나?"
"나는 네게 누구의 죽음이든 보복할 마음이 없어."
"보장할 수 있느냐고?"
"맹세하지."
"그걸로는 부족해."
파스칼과 나루 간에 무언가 날카롭고 위험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요원들 중 몇몇은 총을 너무 꼭 쥔 탓에 손가락 관절이 허옇게 질렸다.
나루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밤하늘의 한 부분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뜬 달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그의 시선이 가 닿았다. 파스칼은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달이 사랑하는 마술사 강나루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둘 사이에서 퍼져나오던 위험한 기운이 사라졌다.
"나와 달이 맺은 계약의 증표인 달의 파편을 걸고,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서도 네게 보복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현재 진행도 95%입니다."
상황을 모니터링하던 연구원이 그렇게 보고한 순간, 격벽 안에서 폭발음 비슷한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퍼져나왔다.
연구실 전체가 진동하면서 그 안에 서 있던 사람들이 비틀거렸다. 승연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고다 박사는 침착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승연이 다급히 물었다.
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봐, 박사!"
잠시 후 고다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코에 걸린 안경을 집었다.
"태양신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박사는 그렇게 말하며 안경을 벗었다.
"진행도 98%!"
연구원들이 자기 옆에 놓아두었거나 옷에 넣어두었던 검은색 고글을 착용했다. 고다 박사 역시 품에 넣어두었던 고글을 착용하고, 다른 한 개를 승연에게 건넸다.
"이걸 쓰게. 시각 필터가 달린 고글이야."
"왜?"
"곧 격벽을 개방할 거야. 눈이 멀기 싫다면 쓰는 게 좋을 걸세."
"99%!"
"그거 괜찮은 건가?" 승연이 고글을 쓰면서도 물었다.
"지금까지 학대하던 여동생이 태양신이 되니까 슬슬 겁이 나나?" 고다 박사가 날카롭게 물었다.
"박사, 그건-"
"신소연 양의 의식은 사실상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네. 새로 태어날 태양신의 인격은 갓난아기나 다름없고. 우리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네."
"그럼 다행이군." 승연은 진심으로 안도했다.
"100%, 유전자 재조합이 완료되었습니다."
"격벽을 해제한다."
격벽이 다시 올라가자 가둬져 있던 자욱한 연기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연구실을 가득 채웠다.
연구실 중앙에서 마구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순간 숨이 막힌 승연과 고다 박사 휘하의 연구원들은 콜록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눈을 들어 연구실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연기가 서서히 걷히며, 태양광과 극도로 유사한 빛이 연구실 안의 모두를 내리쬐었다. 빛의 근원은 바로 연구실 한복판에 서 있는, 온몸이 횃불처럼 불타오르는 여성형의 생명체였다.
"성공했군." 나루가 말했다.
파스칼이 나루를 돌아보았다.
강나루는 언덕 위 연구 시설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눈을 감고 앉아서 아까부터 아주 복잡한 마법진 수십 개를 만들어 조작하는 중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성공했다니?" 파스칼이 물었다.
"달의 파편이 내게 보여주고 있어. 아마테라스 프로젝트는 완료되었고, 소연의 육신에 새로운 태양신이 강림했다."
"그럼 이미 늦은 것 아닌가?"
"아니. 하지만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는 건 맞아."
파스칼은 눈을 굴리고는 자신이 타고 왔던 흰색 차량의 문을 열었다. "아까 네가 지시한대로만 하면 되는 거지?"
"그래."
"난 할 일 하고 바로 빠져나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내 걱정은 마, 파스칼."
파스칼은 차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파스칼이 지시한 대로 언덕 아래로 내려가 있었던 다른 요원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본인 차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는 파스칼을 바라보았다.
언덕 주변이 갑자기 밝아지자 이상을 느낀 요원들이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그 위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언덕 위에서는 나루가 만들어낸 마법진들이 발광하며 사라지는 중이었다.
"소연이는 아직 그곳에 있어. 분명해." 나루가 눈을 뜨고 땅을 짚으며 일어났다.
그가 두 손을 밤하늘을 향해 뻗었다. 이번에는 공중에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향한 채였다.
"자애로운 빛을 다루시는 위대한 여신이시여, 당신은 실로 고귀한 밤하늘의 주인이십니다. 당신께서 내게 내려주신 달의 파편을 통하여 나는 비전을 깨우치고 빛의 힘을 다룰 수 있었습니다."
나루가 만들어 낸 마법진들이 빠르게 빛이 되어 흩어지고, 이제 가장 작은 하나만이 나루의 두 손 위에 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이 말을 전하는 것은 저를 위함이 아니라 저 아래에 고통받고 있으며 저 말고는 누구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소녀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 마법진으로부터 한 줄기 강력한 빛이 뻗어나와 달을 향해 날아갔다.
"위대한 여신이시여, 하늘에 걸려 있는 우리 계약의 증표를 그 아이에게 보내 주소서. 그 대가로서 저는 당신과의 계약을 통해 받은 힘을 모두 포기하겠습니다."
자그마한 유리잔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지막 마법진이 산산이 부서지며 수천 개의 빛 조각들로 나눠져 떨어졌다. 조각들이 장작에서 튄 불티처럼 사라지자 언덕 위에 한 차례 강력한 바람이 불었다.
이윽고 정적이 언덕을 감싸자 재단 요원들은 어디서 이상 징후가 나타날 지 몰라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나루는 징후가 어디에서 처음으로 나타날 지 완벽히 알고 있었다. 그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밤하늘의 한 지점을 올려다보았다.
나루가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반짝임과 함께 점점 커지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소음이 굉음이 되고, 구름 사이로 은빛 불꽃에 감싸인 유성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낙하했다.
"그동안 당신과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나루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유성처럼 낙하하던 달의 파편은 연구 시설의 옥상을 직격하며, 연구실이 있는 지하까지 무자비하게 파고 들어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고다 박사나 신승연을 포함해서 연구실에 있던 그 누구도 이런 방식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연구실에는 연기가 자욱해졌으나, 이번에는 미상의 물체가 연구실 바닥을 박살내고 그 아래의 콘크리트 지반을 깨트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매캐하고 숨막히는 먼지였다.
연구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바닥에 엎드렸다.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승연이었다. 그는 머리에 쌓인 먼지를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털어내고 폭발의 진원지를 찾았다.
아까 격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연구실 한가운데가 마치 운석공처럼 움푹 패여 있었다. 콘크리트 파편과 깨진 유리 등으로 가득찬 그 구덩이 한복판에 흰색과 회색 사이의 빛깔을 띠는 사람 머리 크기의 돌 하나가 박힌 채였다.
승연은 그때까지도 콜록거리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고다 박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저게 대체 뭐지?"
박사는 머리를 휘휘 내젓다가 승연이 본 물체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운석인가?"
그때 연구실 가운데에 있던 빛나는 생명체가 연구실에 새로이 나타난 물건에 흥미를 가졌다. 그녀는 발을 땅에 붙이지 않은 채로 유유히 부유해 운석공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타오르는 플레어가 구덩이 한가운데 처박힌 정체불명의 물체를 향해 일렁이며 움직였다.
그제서야 고다 박사는 물체의 정체를 깨닫고, 경악 속에 소리를 질렀다. "월석이다!"
"월석이라고?"
생명체는 월석의 앞에서 멈춰 땅에 내려왔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두 빛나는 손으로 월석을 집어들려 했다.
"안 돼!" 고다 박사가 외쳤다. 그는 황급히 제일 가까운 콘솔로 가서 연구실 기기에 무언가 명령을 내렸다.
스파크와 함께 충격음이 들리며 가까스로 붕괴를 피해간 연구실 천장의 중력장이 가동되었다. 생명체의 몸이 다시, 그러나 이번에는 훨씬 덜 부드러운 방식으로 공중에 떠올랐다. 생명체는 월석을 붙잡지 못해 아쉽다는 듯이 팔을 허우적거렸다.
"중력장이 얼마나 버틸 수 있나?" 고다 박사가 다급하게 모니터링 담당 연구원에게 물었다.
"어, 손상도 20, 아, 아니, 25%입니다." 연구원이 허둥지둥 상황을 점검하며 대답했다. "처음 산정한 시간의 30% 동안만 작동합니다, 그러니까…… 15분입니다."
그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다시 연구실 전체에 스파크가 일어나며 조명 몇 개가 깨졌다.
중력장에 가둬진 생명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타오르는 주황빛의 긴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한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하고 있는 것은 연구 시설의 보안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요원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연구 시설 진입로에 세워진 검문소는 그나마 정신을 차린 네 사람 만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간신히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긴 직선 진입로를 따라 흰색 차량이 미친듯이 속도를 내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요원들은 각자 소지하고 있는 소총으로 운전석에 사격을 가했다.
파스칼은 몸을 숙여 유리창을 뚫고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면서도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그가 탄 흰 차는 전속력으로 진입로를 내달려 검문소를 부수고 바로 그 검문소에 엄폐하고 있던 요원 한 명을 덮쳤다. 간단하게 난장판이 된 연구 시설 한복판에 침입한 파스칼의 차는 요란한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멈췄다.
정문에 아직 남아 있던 요원들 세 사람은 그들 사이에 끼어든 상태로 정지한 차 때문에 둘로 양분되었다. 파스칼은 신속하게 차에서 내리며 운전석 방향의 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쓰러뜨렸다. 그리고 반대편 조수석 방향에서 총을 난사하는 요원 두 명을 그대로 무시하면서 연구 시설 정문으로 들어갔다.
붉은색 경고등과 사이렌 소리로 인해 연구 시설 안은 혼란스러웠다. 파스칼은 패닉에 빠진 보안 요원들과 연구 인력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사각 지대를 찾아가며 폭발로 인해 생겨난, 고다 박사의 연구실이 들여다보이는 구멍 앞까지 이르렀다.
파스칼은 바로 그 구멍 앞에서, 자기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놓았던 황동색 회중시계를 꺼냈다.
"내가 이딴 짓을 하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군."
파스칼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회중시계를 구멍 안에 던져넣고 자리를 떴다.
연구실 안에서는 수 분 째 고다 박사의 동료들과 중력장 안의 생명체가 서로 대치 중이었다. 고다 박사는 일단 중력장을 가동시켜 아직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태양신이 월석과 융합하는 것은 가까스로 막았지만, 중력장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때 월석이 떨어지면서 난 구멍으로 무언가 반짝이는 물건이 떨어졌다. 승연은 짧은 순간에도 그것이 회중시계라는 걸 알아차리고 총을 뽑아들었다.
회중시계가 바닥에 닿기 직전에, 나루가 잔상을 남기며 엄청난 속도로 구멍을 통해 연구실에 내려왔다. 승연은 그것을 보고 회중시계 주변에 총을 갈겼지만 나루는 움푹 패인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승연이 발사한 총알은 전부 그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나루는 왼손으로 회중시계를 받아내고, 오른손에 들린 리볼버로 탄두가 파란색인 총탄을 발사해 승연의 가슴을 세 번 맞혔다. 승연은 외마디 소리를 내며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갔다.
구덩이의 경사 때문에 약간 비틀거리던 나루는 갑자기 자기 등 뒤에서 말 그대로 뜨거운 시선을 느꼈다. 그는 뒤로 돌아 자기 눈 앞에 있는 온 몸이 불타는 여성형 생명체가 자신에게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열기가 나루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지만, 미리 예방 조치를 취해 놓은 덕분에 그는 중력장 속의 생명체를 두 눈으로 보고도 눈이 멀지 않았다.
"제 말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나루가 스스럼없는 말투로 물었다.
그녀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요. 소연이 거기 있죠?"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강나루라고 합니다. 소연이의 후견인이에요. 잠시 그 아이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무슨 짓이야?!" 바깥에서 고다 박사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나루 오빠?" 중력장 속의 생명체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나왔다. 정작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치 이 목소리가 자신의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랜만이야, 소연아." 나루는 소연의 목소리에 이렇게 대답하고, 며칠 전 양산에서 똑같이 말했던 것이 떠올라 유쾌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
나루는 됐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 질문 너무 자주 듣는다."
갑자기 중력장 속의 생명체가 몸을 움츠렸다. 밝은 주황색으로 타오르던 그녀의 불꽃이 약간 사그라들었다.
"안심해요." 나루가 겁먹은 중력장 속 생명체를 다독였다. "소연이가 감정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요."
안심한 듯 약간 표정이 풀어지는 그녀를 보고 나루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소연아, 아직 거기 있어?"
소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꼭 대답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지금 하는 말은 꼭 들어 줬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연구실에 스파크가 튀었다. 중력장이 꺼지면서 생명체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다.
"너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나는 너가 계약으로 매여 있는 태양을 미워해 왔어. 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가 태양빛이 아니라 그 어떤 빛도 볼 수 없는 상태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녀의 불꽃이 약간 밝아졌다.
"그래서 나는 달의 힘을 빌려서 너와 태양이 맺은 계약을 강제로 끊으려고 했어. 너를 비참한 운명에서 해방시키고, 승연이 녀석이 널 가스라이팅하는 것도 그만두게 만들고, 지금 너의 몸을 빌려 태어난 태양신도 아예 존재할 수 없게 만들려고. 아, 죄송." 마지막은 크게 충격을 받은 생명체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루는 위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구덩이 너머를 쳐다보았다. 태양신에 대한 얘기를 듣고 하얗게 질린 고다 박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이천에서 지연이가 먼 곳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고통스럽긴 하지만…… 지연이는 재단이 죽였어. 아마테라스 프로젝트의 진행을 막으려고."
생명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더 거세졌다. 주변에 있던 기기 몇 개에 불이 붙었다.
"그래, 나도 너처럼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나더라. 처음에는 재단이 정말 증오스러웠지. 그런데…… 아, 이거 참, 있는 그대로 말하기 힘드네."
열기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걱정 마. 널 탓하려는 게 아니야. 흠흠." 나루는 헛기침을 잠깐 했다. "그래, 나는 이천에서 죽었고, 눈을 떠보니 이곳에서 다시 깨어나 있었지."
나루의 얼굴에 행복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나루 앞의 생명체는 약간 의아하게 여겼다.
"소연이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난 상황을 이해하고 나니까 기쁘더라. 너가 여전히 나를 잊지 않았다는 걸, 우리 사이의 유대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그리고 그때야 깨달았지. 모두가 똑같은 마음을 품고 네게 접근했다는 걸 말이야. 승연이도, 재단도, 나도."
그녀의 발이 땅에 닿았다. 살포시 땅에 내려선 생명체를 바라보며 나루는 말을 이었다.
"우리 모두는 너를 각자의 목적에 강제로 맞추려고 들었지. 승연이는 너를 꼭두각시로 이용하다가 BE에 팔아넘겼고, 재단은 널 격리 대상으로 취급해서 깜깜한 방에 가둬놓았고, 나는 네게 달과의 계약을 맺어주려고 했어. 너의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나루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생명체의 시선이 나루를 따라 아래로 향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이유에서든지 못할 짓을 한 사람이야. 소연이 몸에 깃든 당신도요. 그쪽은 소연이가 당신 때문에 무슨 짓을 겪었는지 전혀 모를 테지만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서 다른 해결책을 생각해 봤어. 어쩌면 소연이 너가 원했던 것들이 있었을지도 몰라. 네가 하고 싶었던 것, 네가 보고 싶었던 풍경, 네가 살고 싶었던 삶, 그 모든 걸 빼앗기기 전에 네 마음 속에 있었던 그 모든 것들."
나루는 몸을 굽혀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혀 있는 월석을 두 손으로 집어들었다. 고다 박사는 뭐라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만약 네가, 어, 그리고 지금 너와 함께하고 있는 좋으신 분도 같이, 자유롭게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면, 나는 네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널 도울 거야. 선택은 온전히 네 몫이야. 나는 네 결정을 기다리겠어."
소연은 아주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월석을 든 나루와, 자기 안에 있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듯 눈을 감고 서 있는 생명체, 그리고 구덩이 바깥에서 그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고다 박사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아무 행동도 안 하고 멈춰 있었다.
그때 타오르는 생명체가 눈을 떴다.
그녀는 나루의 두 눈을 바라보며, 힘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루의 언제나 우중충한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월석을 내밀었고, 그녀는 나루가 내민 월석에 불꽃으로 감싸인 두 손을 짚었다.
"오늘은 하늘이 정말 맑아." 나루가 말했다. "가자, 내가 보름달을 보여줄게."
은색의 빛줄기가 월석으로부터 나와, 하나의 거대한 빛 기둥이 되어 월석을 든 두 인격체를 따뜻하게 감쌌다. 구덩이 전체를 가득 채운 빛 기둥은 서서히 희미해지고, 그 안에 있던 것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태양신은 연구실을 떠나고, 오직 밤하늘의 보름달만이 밝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