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말

신은 강해지고 있다. 몇 번이나 깨달았듯이.

이유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계획대로였다. 먼저, 쇼코를 시켜서 사람들을 괴질로 앓게 만들면서 받은 공포와 증오였다. 역병신으로서의 그의 근간을, 뿌리에 비료를 주듯이 자라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 몇백 년 이상 저택에 축적했던 저주를 다시 흡수한 것이다. 비록 오행결사가 결계를 찢는 바람에 조금 바깥으로 흘러버리기는 했으나 충분한, 아니 과분한 양으로 주인에게 되돌아온 것이었다.

셋, 일전의 저주를 해방시켰을 적에 오행결사 한둘을 죽였다. 바깥에는 이미 오행결사나 연합의 군세가 포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계는 지금 그들의 시선을 벗어나 저택째로 하늘로 떠오르고 있다. 소위 정상성 유지기관들이 느끼는 그 위협조차도 신은 맛있는 공물로서 받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세 사람의 합공과 수단이 이 결과를 최대한 늦추었으나, 나비가 번데기를 찢고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지금 결계째로 상공으로 치솟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저주가 물든 유령 저택을 높은 상공에서 깨뜨려, 역병의 기운이 묻은 분진을 도시에 추락시킬 예정이었다.

그 결과는, 다시 메아리칠 공포였다.

"봐라. 윤성재."

남자는 저택 지붕에서, 팔을 벌리며 그를 올려다본다. 마치 거대한 예수상이나, 수호하는 당산나무라도 된 듯이. 음울한 격을 발산하면서 선언하고 있다. 지금 상태에서, 윤성재가 어느 순간 유령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한들 저 존재를 치기라도 할 수 있을까.

완전무장한 유서진이나, 건재한 나라시라면 어쩌면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는 윤성재뿐이다. 사토 나나는 방전되어 있고, 츠키시마는 일어난다고 해도 당장 싸우기에는 힘들 것이 뻔하다.

윤성재는 잠시 시선을 돌린다. 쇼코는……

"이제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아."

신은, 그렇게 무시한다. 이미 저택의 공기 중에 여남은 저주는 없음에도 그 시선과 말만으로도 충분히 흉악한 뜻을 제멋대로 들이민다. 성재는 모여드는 서리와 추위를 손으로 쥔다.

"쇼코를 소멸시키다니. 대단하지만, 지금의 나에 비하면 하찮은 계집애야."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윤성재. 지금의 내게 버러지가 아닌 것이 있겠느냐?"

"쇼코 양은 당신을 아버지처럼 따랐던 모양인데요."

"아버지라? 신님이겠지."

신은 미소를 지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들어 다리 가운데 놓았다. 오른손은 무릎을 향하게 뻗어 다섯 손가락을 폈다. 가느다란 손가락과 손톱이 땅바닥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형상. 그 뒤로는 그림자가 커다란 짐승의 모양처럼 드리워서 변하고 일그러지며 울부짖었다.

"특별한 게 아니라네. 신에게는, 그 정도의 믿음이 필요한 거야."

그림자가 황금색 빛이 별처럼 번쩍이는 광륜이 되어 천천히 회전했다. 남은 그림자에서는 무수한 까마귀, 박쥐, 부엉이 떼가 태어나 날아올랐다. 마지막으로 그림자 그 자체는 검은 독사의 모습이 되어 그의 위로 우산처럼 모가지를 드리웠다.

모든 것을 낳는 검은 숲처럼 몸을 떨며 우짖는다. 성재는 인상을 찌푸린다. 이제, 인간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심야클럽의 이념과 반대로 도는 어떤 역주행 도로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가거라. 윤성재."

무수한 날짐승들이 공중의 윤성재를 덮친다. 맹금의 발톱과 부리가, 그에게 파고들었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몇 마리의 새를 부수어버린 성재도 두 번, 세 번의 공격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이내 까만 날개의 짐승들이 시체를 뜯는 파리처럼 달려들었다. 새들의 황금빛 눈알이 번뜩거렸다.

한편, 무릎을 꿇은 사토 나나는 공중의 상황을 주시했다. 더는 이변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방전된 상태다.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겨우 일어나 츠키시마의 등에 손을 짚었다.

"켄지. 일어나."

켄지는 숨은 쉬고 있지만, 탈진한 상태다. 몸의 양상방사선이나 에너지를 죄 써버린 것에 대하여, 매개체인 플라스틱 칼날도 녹아버렸다. 나나는 입술을 깨문다. 짜증 나게, 굴고 있어. 하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하는 인간이 그때는 왜 혼자만 늙는 게 두렵다고 말했느냐고.

"……일어나라고."

그때 깨달았다. 죽는 것은, 사토 나나가 혼자 남는다는 것을. 눈을 비빈 사토는 천천히, 켄지의 혼으로 몸을 던진다. 빙의한다. 육신 속으로 정신을 스민다. 충격을 견디면서, 하나로 형성된다. 냉기가 퍼진다. 츠키시마이자 사토. 그 사람이 천천히 눈을 뜬다. 비틀대며 일어난다.

"가자. 켄지. 인사부장을 구하자."

츠키시마의 손아귀에서 미약하지만 푸른 빛이 발생한다. 평소 출력의 겨우 30%가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전력으로 사토 나나는 다시 본 모습을, 아니 정신과 위력을 유지한다. 걸음을 옮긴다. 떨어져 있는 칼을 주워들었다.

남아 있는 힘이 정도라면, 앞으로의 일들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써야 할 것이다. 검을 바짝 붙인 후, 일시에 내지른다.

"쏘아라."

'엎는' 것으로 발산하는 전뢰나 '오르는' 것으로 봉쇄하거나 묶어버리는 인발과는 달리, '쏘는' 것은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파칭코에 명중시켜 봉인했듯이. 퍼져나가려는 것을 지금 봉인한다.

꺄아아아악—

공격을 맞은 새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곳저곳 옷과 심령질이 찢어진 윤성재가, 후들거렸다. 그러나 신은 그 기습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단지 조용히 광륜만이 회전하고, 커다란 독사만 시커먼 혀를 날름거릴 뿐.

"……귀뚜라미 소리 같군."

신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사토가 몸을 움츠렸다. 최소한 주술이 전도되어 신 본체까지 어느 정도 약화되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여전히 너무나 건재했다. 연못에 도토리 하나 던진 듯이.

"이제 끝을 내 주마."

독사가 이빨을 벌리자, 불꽃과 독기가 사방으로 이글거렸다. 남자의 손아귀에서 금강저와 신창을 닮은 황금빛 광채의 무기가 거친 기운을 뿜었다. 성재는 생각했다. 견딜 수 있을까. 폭발을 앞두고 셋은 그 바로 앞에 서 있다.

그 강렬한 살기가 퍼지는 순간—

"…….큭?"

신이 허탈한 신음을 토했다. 그의 명치에 단검이 꽂혀 있었다. 오행결사가 날린 바로 그 단검이었다. 그 칼자루를 마른 손에 온 힘을 담아 쥐고, 공포로 몸을 떨면서, 흐느낀다. 쇼코의 묶은 머리카락이 마구잡이로 흔들린다. 신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입과 상처에서 시커먼 피가 흘렀다.

"쇼코……?"

"선생님. 그만해요."

북풍 앞의 등불처럼 쇼코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쓰러질 듯이 위태로워 보이는 그 모습을 성재는 놀란 듯이 응시했다. 삶을 이야기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미래도 이야기했다. 그럼 그 찰나의 결과로 쇼코의 선택은 이런 식이 된 것일까. 환멸했을까. 두려워했을까.

"돌아가요. 우리, 이런 거 그만하고 싶어요."

독사가 얼어붙은 듯 입을 닫았다. 법륜의 자전이 중단되었다. 신이 입을 달싹거렸다.

"우리 그냥……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살 수 있잖아요."

"쇼코."

신의 입이 더 벌어졌다.

"그건 미물의 생각이다. 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야. 섭리에 간섭하고, 인간에게 두려움을 받아야 한다고."

"왜 신이 되어야 하는 건데요…? 선생님은, 신이 되지 않아도…"

"내가 너를 쓸 만하다 여겼건만 너도 인간이구나."

거대한 뱀이 다시 입을 벌렸다. 뱀의 커다란, 어둡고 검은 아가리가 쇼코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울먹이며, 핏발 선 눈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독사의 커다란 목구멍을 노려보았다.

"잘 가거라. 네 힘은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리니."

그리고, 닥쳐오는 뱀의 대가리가 쇼코를 집어삼킨다.

그리고 독사는 몸을 떨었다.

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발작하던 독사는, 먼저 비늘이 부서졌다. 회 쳐지기 직전의 생선처럼 검은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피부가 갈려 나가고, 사과 껍질 같이 스러졌다. 눈이 폭발했다. 근육이 찢겨 나갔고 뼈가 드러났다. 뼈가 부글거리더니 증발하거나 녹아내렸다. 내장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뱀의 존재조차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신이 당황했는지 손을 뻗었다. 역귀를 삼켰다 해서 병을 앓지 않을 신의 짐승이다. 더구나 저리도 무참히 찢겨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듯한 현상이었다. 쇼코는 웅크린 채로 그곳에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신은 외치면서 손에 든 빛의 무기를 쏘려 했으나, 그 역시 소멸해 버렸다. 깨달았다. 그것을 만들어낼 힘의 일부, 사실 힘의 다수가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쇼코는 성재와 츠키시마를 슬쩍 바라보고는, 눈물을 닦는다. 그리고 대담하게 일어선다.

"선생님의 힘을 없앴어요. 내가."

"……그러니까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나를 시켜서 사람들을 앓게 했잖아요. 내가 그 사람들 싹 다, 낫게 했거든."

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극의 삽화처럼. 눈앞에선 이제 날짐승들도 소멸해 가고 있었다. 신은 심호흡하면서 상처를 재생했다. 그러나 단검에 입은 상처가 도통 낫지 않았다. 츠키시마에게 빙의한 사토가 히죽거리더니 깔깔 웃었다. 그 모습은, 사실상 원래의 켄지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오행결사의 칼은 '역병신'을 죽이려고 갖고 온 건 아십니까? 그리고 이제 당신은 신이네요."

"하찮은 개수작이다… 나는!"

"그래요. 뭐, 오행결사 놈들의 취미가 그런 거잖아요."

사토는 걸어오기 시작했다. 녹아내린 플라스틱 검을 쥐고서. 저택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신은 이를 악물고 이리처럼 으르렁거렸다.

"배신자에 신성모독자라."

그러나 그 말조차 윤성재가 날린 칼바람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겨우 바람을 손으로 막아낸 신은, 헛기침과 심호흡을 반복하더니 다시 힘을 끌어냈다. 직전보단 못했지만, 무수한 쥐와 새들이 솟아올랐다. 손에는 황금빛 일본도가 쥐어졌다.

아직 흡수한 힘은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힘만으로도 그는 여전히 신이었고, 가공할 만한 괴물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만만하게 처마 끝에 섰다. 그러나 한 가지를 간과한 모양새였다. 모든 신력을 다시 자신에게로 돌리자, 천천히 다시 저택이 착륙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힘은… 네놈들에게서 앗으마."

그는 일갈했다. 쇼코는 딸꾹질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어느새 옆에 도착한 성재는, 돌개바람과 저주를 헤치면서 미소를 지었다. 사토 역시 검을 휘두르면서 씨익 웃었다.

"켄지였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겠죠?"

성재는 고개를 끄떡였다. 쇼코만이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로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허세보다 그 머리로 생각이란 걸 좀 해 보시라고."

격노한 신의 검이 무차별적으로 휘둘러지자, 검기의 참격이 난사되었다. 쇼코를 등 뒤에 둔 성재가 박수 치듯이 합장하자 냉기가 역신의 공격을 상쇄했다. 사토는 내달려서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쳐내거나 피했다. 고작 이런 수로 막힐 만큼, 신은 본래의 '역귀'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녹아내리듯이. 혹은 쓰러지듯이.

그럼에도 신은 멈추지 않는다. 그가 합장하자,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가 선언하고 지배했던 영역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결계를 회수해 가면서, 검은 머리를 휘날린다. 고함을 친다.

"이 자들이…… 나가주마. 오냐, 나가서 무력한 자들을…"

"……소용없습니다. 여기 있는 저주는, 당신이 전부 흡수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신의 표정이 굳었다가, 이미 시허연 미소로 돌변했다.

"오냐, 그럼 풀어주마."

남자는 윤성재를 노려보며, 힘을 풀기 시작했다. 다시 저주가 공중으로 안개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저주마저도, 수챗구멍으로 흘러드는 피처럼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쇼코가 이미 흘러나오는 맹렬한 독기를 휘감아 소멸시키고 있었다. 신의 힘이, 족족 소녀에게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신은 그제서야 저주 방출을 멈추었다. 탄식을 흘린 신이 도약하여, 쇼코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은 순식간에 곰팡이처럼 뒤덮는 서리와 얼음에 뒤덮이고 말았다. 그의 뒤에 내려앉은 윤성재는, 시퍼런 눈동자로 신을 바라보았다. 아니, 역귀를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손날을 펼쳤다. 그 귀살스러운 추위가 이제 왼손 전체를 말려버리고 있었다.

"윤…… 성재…… 하찮은… 객사자 놈…!"

역귀는 이제 쭈그러든 노인처럼 보였다. 그는 뜨거운 숨을 토하며, 윤성재에게 힘을 짜내 저주를 날렸다. 그러나 그 저주는 애당초, 성재에게 닿지도 못했다. 신체(神體)를 유지할 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감입니다."

"신을 동정하지 마라, 벌레 주제에……"

그 순간, 전뢰가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 뒤에서는 거칠게 숨을 쉬는 츠키시마가 창백하게 웃고 있었다. 신의 핏발 선 눈이 경악한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검은 피가 흐느끼는 듯이 떨어지고 시커먼 이빨로부터도 피가 추락했다. 츠키시마는 거칠게 검을 뽑았다. 신이 종이인형처럼 쓰러졌다.

"내 이름을, 내 진정한 이름을…"

신은 중얼거리면서, 저택 지붕 아래로 추락한다. 겨우 걸어서 손톱으로 결계를 뚫었다. 밖은 어느새 먹구름이 드리웠던지,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흐린 밤. 저택은 이제 어느 숲에 내려앉아 있었다. 공중에 떠오르는 데는 실패했으나, 오행결사가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역병신으로선 천재일우의 자비나 다름없었다.

"잘해주었구나…… 저택이여. 너만은… 내게 충실하지… 그래…! 나가서 다시 신이 되어 보자꾸나."

역병신은, 부들대는 다리로 도망쳤다. 그러다가 엎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억척같이 땅을 기고 습한 웅덩이에 흰옷을 적시면서 걸어 나갔다. 안개가 무성했다. 풀벌레 무리가 울었다. 성재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은 어떠한 하찮은 잡귀에게서도 본 적이 없었다.

"……팔백만… 신이시여…"

패착이었다. 역병신의 공포를 퍼트리는 도구도, 그의 유일한 신자도, 그리고 심지어는 그의 유일한 인간관계도, 쇼코 하나뿐이었다. 그가 배신했다. 아니, 돌아섰다. 그 순간 그를 지탱할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젠, 기어가는 역신의 몸 전체가 부서질 뿐이었다.

"나를 기억하라…"

신의 눈이 흐려졌다. 다리부터 서서히, 바람에 날리는 재처럼 바스라져 버린다. 자랑이던 옷자락도 너저분하게 흩어진다. 신은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앞의 모든 것이 흐려져, 겨우 왼손으로 잡초와 흙을 붙잡고 기어간다. 그때, 환상일까.

벚꽃 같은 작은 빛이 팔랑거리면서, 하늘거리며 그에게 추락해 내린다. 꼭 발진처럼 분홍빛이다. 허나 희기도 하다. 쇼코의 창백한 분홍색 옷처럼. 그 벚꽃의 잎 같은 것에, 신은 눈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힘을 짜내 손을 뻗는다.

"너도…… 봤느냐, 나도 신에 다다랐……"

그 말을 끝으로 손이 스러진다. 목울대가 바스라진다. 마지막으로 뇌를 지키던 두개골도, 이빨도, 혀도 날아갔다. 뇌가 있을 자리에 있던 것만이 땅에 떨어졌다. 그것은 한 마리의 비참한 귀뚜라미였다. 뛰지도 날지도 못한 채 이름도 없이 땅을 기었다.

그 상태에서도, 귀뚜라미가 된 역신은 작은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럼에도, 성큼성큼 다가선 운동화가 귀뚜라미를 짓밟았다. 그리고는 비틀어 뭉개고 나서야 발을 뗀다.

츠키시마는 한숨을 쉬면서, 붕괴되는 저택 근처의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가장 먼저 약간 웃고 있는 사토 나나가 잰걸음으로 나왔고, 성재는 쇼코를 부축하면서 걸어 나왔다. 저택 역시 그 주인이 죽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들보도 서까래도 붕괴되고, 연못이 있던 구덩이도 분화하듯 사라져 버렸다. 버드나무는 이미 오래전에 꺾여 있었다. 깃들었던 저주 역시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가운데 번쩍이면서, 소멸해 버렸다.

"……끝났네요."

성재는 힘겹게 웃었다. 그리고, 나무 그루터기에 주저앉아 버렸다. 오후 9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역병신은 소멸했다. 영원히, 수천 년의 증오마저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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