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개들은 한국에 간다

20년 전

매끈하되 각진 모습을 드러내는 건물이 사방을 둘러쌌다.

는 주변을 바라본다. 넓은 초원. 윌슨 야생동물대책의 제1울타리, 육생 구역이다. 자신을 받아들여준 수 번째 장소이자 현재의 안식처. 1997년의 야생동물대책은 현재보다 몇 배나 작을지언정 초상동물 보호에 관한 사랑은 그대로였다. 개 또한 그걸 느낄 수 있는듯, 가만히 풀밭에 앉아 바깥을 바라본다. 제1울타리, 특히나 개가 기거하는 장소 근처는 적절한 정도의 자연으로 둘러싸여있다. 보링읍 시골에 위치한 동물보호소란 그런 법이다. 고요하고, 가끔 탈출 소동이 일어나고, "원청" 이라 불리는 자들이 기어들어오는 곳. 평화로운 곳.

난데없는 고함소리에 개는 등을 돌린다.

사람이 있다.

오, 키가 큰 남자다. 개는 키가 큰 사람들을 좋아했다. 자신에게 항상 밥을 주러 오는 사람도 키가 큰 붉은 머리칼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 남자는 그리 편안하지 않은 듯 했다. 뒤에 다른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도 공놀이를 하고 있는걸까? 어쩌면 남자가 공을 던지는 대신 공이 되기로 하고 돌아다니는 새로운 놀이일지도 모른다.

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남자는 그저 키만 큰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덩치도 큰 것 같았다. 수십 개의 검을 주렁주렁 몸에 매달고 있다. 검. 그래. 검이다. 이건 개의 본질이기도 했다. 사용되기 위해, 길러지기 위해, 누군가에게 검증받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도구. 주인을 기다리는 도구. 개는 자신의 주인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났다. 주인은 스스로를 "왕" 이라 부르는 특이한 키 큰 남자였다. 가끔 밥 주는 걸 까먹었고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나름의 형제자매도 있었다. 개는 아직 그들의 냄새를 기억했다.

그리고 어느 날, 어째서인지 이 세상에서 깨어났다. 왕은 없었다.

키 큰 남자가 다가온다. 칼들이 서로 부딪히며 청량한 소리가 난다.

남자는 아쉽게도 왕은 아니었다. 남자의 머리는 꽤나 길었는데, 한쪽 눈을 덮고 있을 정도였다. 생긴 것은 다른 사람들과 꽤나 비슷해 보였다. 코가 조금 높았고, 한 손에 열쇠 모양 단검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녹내가 났다.

"마루."

남자는, 자신의 형.

아홈.

마루. 돌아다니며 찾은 받은 수백 개의 이름 중 가장 먼저 부여받은 이름이었다. 시작은 "왕" 이라는 사람이 자길 마루라 부른 것이었다. 딱히 별 생각은 없는 듯싶었다. 이유는 없지만 다른 형제자매들도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이 시점, 개는 마가린이라 불리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렇기에 꼬리를 살짝 내리며 불만을 표한다.

"어째서 이런 외딴 곳에서… 살고 있는거야..?"

개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아홈은 잠시 고민하더니, 뒤에 몰려온 사람들을 바라본다. 개가 아는 사람들도 조금 있었다. 이들은 전부 검은 조끼를 입고, 위협적으로 아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공 던지기 놀이보다 더욱 심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했다. 조금 집중해보니, 조끼에 달린 작은 금속 조각에 세겨진 단어가 보였다.

윌슨 야생동물대책 보안팀

"지금 당장 멈춰! 동물을 건드리는 순간 발포한다!"

아홈은 잠시 멈짓하더니, 다리를 뒤로 빼고…

순식간에 개에게 모래를 흩뿌린다.

"너에게 결투를 신청하마."

먹먹한 동전 던지는 소리가 주변을 감싼다. 눈을 뜨자, 개는 자신 주변 풍경이 울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수십 발의 총알이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하려 노력하다 찌그러져 떨어졌다. 아홈의 능력이었다. 누군가와 결투를 신청하고, 그 둘을 고립시키는 것. 무색, 무형, 무음의 고립된 돔을 만드는 힘. 개는 현재 그 돔 속에 들어가있었다.

"다치게 한 건 사과할게. 내 능력의 한계가 이래서야."

개는 고개를 끄덕인다. 개는 남에게 뒤끝을 가질 정도로 쪼잔한 동물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할게. 나와 함께 떠나자. 나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우리와 같은 검들을 모으는거야. 그리고 언젠가… 언젠가. 아버지를 만나자."

개는 별 말 없이 앉아있었다.

"거절… 인가."

정적. 오직 "결투" 의 막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이들을 감싼다. 장막은 그 소임을 다하여 모든 총알을 으스러뜨렸다. 다행히도 윌슨 보안팀은 돔으로 다가올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대신, 가능한 한 최대한의 투사력으로 돔을 부수려 했다.

개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왕이 다시 여기로 올 것이라고 믿는거지? 그래서 기다리는거고. 그렇지?"

아홈은 잠시 뒤를 돌아본다. 수십 명의 사람들은 슬슬 무용을 눈치채고 어딘가에 전화하고 있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재단이나 연합,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눈빛은 비록 짐승의 것일지언정 완강했다.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을 하자.

"그리 기다릴 생각이라면, 나와 약속하자."

아홈은 무릎을 굽혀 마루를 마주봤다. 약속이란 동등한 높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법이다.

"너가 원하는 만큼 여기서 기다리게 해줄게. 언제까지나 여기 있어도 괜찮아.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왕을 찾았다고 하는 날에는… "

"날 따라와줘. 그게 전부야."

개는 아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뜻이냐?"

손을 맞잡는다. 고소한 냄새가 났다. 아홈은 잠시 그 냄새를 느꼈다. 가족과 함께 있던 시간과 조금이나마 비슷한 기분에 산뜻해한다. 아홈은 아직 왕과의 순간을 기억했다. 가장 존경하는 군주이자, 도구의 소유자이자, 아버지. 그와 만날 수 있다면 수집가로서의 무게 정도야 몇 번이고 견디리라.

그리고 한순간에, 열쇠 모양 칼을 돌리더니 바닥을 찍는다. 아홈과 그의 형체가 마치 배수구 바닥에 빨려들어가듯 사라진다.

그리하여 맹약은 맺어졌다.

허나 이것도 수십 년 전의 일화일 뿐.


현재, 미발굴 가야 유적지 근처.

수 개의 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밤중의 대초원은 흉터가 벌어진 채로 누워 있다. 유물 발굴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자연과 건축물, 과거의 추억을 보존하려는 사람들과 현재의 새로움을 위해 희생시키려는 사람들. 그 둘 간의 시간을 넘어선 결투라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현재 이 초원 또한 그 결투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야 양식의 거대 돌덧널무덤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 결투에서는 과거가 승리했고, 그렇기에 수십 인부는 부단히 땅을 파고 있었다.

발굴 캠프는 간단한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숙소였는데, 몇 가지 발굴 도구가 창문 옆에 비스듬히 놓여있었다. 발굴 캠프 옆에는 거대한, 층 단위로 파인 발굴지가 보였다. 발굴지 위에서는 돌덧널무덤의 꽁지가 제 모습을 삐죽 보이고 있었다. 밤의 캠프는 역설적으로 발굴지를 비추는 강출력 조명 덕분에 역설적으로 밝았다.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반원을 그리며 금속 날이 돌을 파고든다. 으레 그러하듯 모든 절차의 기본은 땅을 충분히 넓게 파고 난 뒤, 조금 더 정밀하게 파고, 그 다음 아주 정말하게 더더욱 파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부는 그렇게 했다.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물리 법칙을 통감한다. 땀방울이 늘어난다.

옷깃과, 삽날과, 땀방울과, 바람. 모두가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폭발음.

웅웅거리는 소리. 바스락거림. 비명. 질척거린다. 아프다. 흙과 뒤섞인 피는 잠길 정도의 갈색 사이에서 적색을 발한다. 이명이 울리고, 정신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트인다. 수백, 수천 배 응축된 힘이 순식간에 풀려나갔다. 어떠한 에너지— 아니지, 인상이라 할 수 있는… 마치 듬직한 주군이나 "왕" 과도 같은 것이 스쳐지나간다.

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몸이 끌려가고 있었다.

몸뿐만이 아니다. 잡초가, 돌무더기가, 사람이, 도구가, 자신이 땅을 밀어내는 힘 그 자체가. 모두 무덤 안으로 천천히 굴러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땅바닥을 끄집어 힘을 준다. 그 힘은, 몸뚱아리가 끌려가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한다. 팔이 일으킨 장력은 다시 제 팔을 잡아 안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호작용이다. 패닉 상태에 빠진다.

무덤 안으로 다리가 들어간다.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가 사라져있다. 아무도 없었다. 끌려간 수십 수백개의 모든 구조물. 방금 전까지 우뚝 서있던 모든 캠프는, 이제 부재한다.

부재라.

상체가 무덤으로 들어간다. 이제야 알 수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모두 꾸겨진 것이다. 모두 들어가, 흡입되어, 무덤 안쪽의 무언가가—

짓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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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후, 세계 오컬트 연합 거해기지.

한여름철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기지 안은 조용했다.

울산시 부두에 위치한 수상할 정도로 세련되고 봉쇄된 사유지에 위치해있는 등록번호 850번 "거해" 기지는 당연하게도 한여름철에는 그 이명답게 끔찍하리만치 더웠다. 재단이 어련이 하는 짓거리처럼 산속에 박혀있는 별장이나 군사시설, 벙커 등으로 위장하는 대신 바다 고옆 중대규모의 부두 건물 겸 인근 창고로 위장하길 택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시설 지하는 지상에 비하면 꽤나 시원했다. 애초에 17년도에 신축된 시설이니만큼 사실 이 기지 또한 일종의 "신축 아파트" 취급인 것이다.

기지 지하 회의실로 지친 몸을 끌고 가는 것은 다름아닌 타격조원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일반인에 가까워보이는 단발의 중년 남성이었다. "피구 로도 불리는 그는 제1212타격조장이라는 근엄한 직책과는 다르게 딱히 멋드러진 언행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는 너무나도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그는 요주의 인물 및 위치 암행 타격조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을 몰래 죽이는 것에 많은 기술은 필요 없었다. 그저 잊어버릴 법한 얼굴만이 필요했다.

수 기둥을 지난다. 지하기지답게 부자연스럽시리 밝은 조명 앞으로 늘어진다. 상대적으로 멈춰있는 조명들이 숭숭 지나감 밤길의 가로등같다. 거듭 방을 거닐던 피구는 이내 자신이 들어가야 마땅한 회의실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직장인의 이야기는 건조하고 지루한 업무용 방에서 시작했다. 이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합의를 수호하는 이들이라고 그런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가긴 어려운 법이다.

조용히 문을 열자 문짝 오른쪽 벽에 기대고 있는 기인이 드러난다. 희끄므레하게 빛나는 긴 흑발, 작은 몸, 그리고 그 작은 몸을 빈틈없이 가린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 거기다 피구의 피로가 비춰보일 정도로 박박 밖인 안경알 두 쪽. 눈앞의 마흔다섯 살 여성은 미동없이 피구의 미간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잘 오셨어요. '피구'. 여전히 구별도 안 가는 얼굴이군요?"

피구가 헛기침했다. 세실리아 "태평소" 김, 거해기지의 총 작전관— 으레 다른 조직들이 표현하는 식으로 부르자면 이사관이나 사장 정도의 인간— 은 그 명성에 반비례하는 성격을 가졌다. 한국 분소 말단에서 시작해 나이 마흔 살 중반에 극동지부 거해기지의 지위권을 따낸 능력자인 그녀는 자주 아랫사람들이 찔려하는 부분을 건드리는 취미가 있었다. 그렇게 작은 키와 어긋나는 큼직한 언행으로 그녀는 "태평소" 라는 이명을 얻었다. 언제나 부조리나 갈굼의 선을 넘지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그리 호감가는 취향은 아니었다.

"얼굴 정도는 기억해달라고 했잖습니까. 그리 큰 부탁도 아니고…"

잠시 푸훗, 하고 웃은 그녀는 살짝 들뜬 듯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고 하던가. 피구는 애써 무감각하게 착석한다.

"미안. 미안. 그냥 한 번 불러봤어요. 요즘도 모른다고 하면 삐지나 궁금해서."

피구는 이 또한 전혀 엄격하지 않아보이는 작전관이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의 일환임을 알고 있었다. 딱히 관심이 없는 인물이라면 애초에 놀려먹을 생각도 안 하는 인간이기에— 이러한 조롱은 어찌 보면 피구가 그녀의 "인맥" 안에 들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저희 타격조를 '긴급 호출' 하셨던데."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미 태생이 장기 추적 및 암살 타격조인 곳에 긴급 호출을 넣으셨습니까?"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란 목에 칼을 대는 것 다음으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솔직해지기 좋은 방법이었다. 세실리아는 잠시 꿈지럭거리더니, 품에서 서류를 한 장 꺼내 내민다. "기밀 지정" 표시가 비스듬하게 찍힌 서류는 늘 그렇듯 연합 표준 서식대로 포장되어 있었다.

"열어봐요."

위협 식별문구: KTE-2119-면벨벳-일라스틱 ("진공 무덤")

  • 면벨벳 (Velveteen): 살아 움직이는 물체.
  • 일라스틱 (Elsatic): 공간 왜곡.

수권대응기준: 3 (보통 위협)

"이건…"

"최근, 가야 유적지로 추정되는 발굴지에서 면벨벳이 하나 나왔어요. 사람 수십 명을 죽이고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죠."

고정된 위협존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특히나 전국의 오만 이상한 사람과 장소를 추적하고 파괴하는 팀에게는 더더욱. 재단이 하듯 그 자리에 진입 금지 표시만 적당히 붙이거나, 아예 불태워버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을 자신에게 맡긴다는 시점에서,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가야 때부터 내려져온 사람 먹는 괴물보다는 조금 더 중요한 일이.

"사람, 캠프를 다 빨아들이고 나서는, 이제 그 땅 자체를 빨아먹고 있어요."

작전관이 위성 사진 몇 개를 가리켰다. 자그마한 무덤군 주위에 있는 발굴지 캠프는 대략 300 제곱미터. 그리고 두 번째 사진에서, 모든 캠프는 사라져있었다. 잔디조차 나지 않은 빈 땅이 캠프의 자리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지난 일주일간의 경과예요. 연합 쪽에서도 당장은 접근 방법을 고려하는 중이지만, 이렇게 빨리 행동하는 위협존재라면… 리스크를 안고도 청산할 수밖에 없지요."

피구는 흐르는 땀을 잠시 닦았다.

"최대한 빠르게, 이 위협존재에게 접근해서 청산할 방도를 찾아보세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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