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송, 거기 있어?
있어, 알렉산드라.
이쪽 생존자들이 방금 죽었어… 아니면 먹혔다고 해야 하나. E블록에서 그들을 빼내올 수 없었지. 사태 발생 이후 3일을 더 생존했는데, 내 예상보다 길었어. 그쪽은 어때?
5명 남았어. 지금 자동 폐쇄 제어를 우회하려고 엄중경비 제3검문소 쪽으로 가고 있어.
오? 어찌어찌 구내식당을 지나왔나봐? 잘 하네!
하지만 그 와중에 데이비스Davies와 턴불Turnbull을 잃었지. 그들이 2차집단보다 앞서갈 수 있도록 환기구 쪽으로 유도했어야 했는데.
네 생각엔 제17기지 폐쇄 제어판이 접근 가능할 것 같애? 아니면 그냥 엿되는 걸로 끝날까?
불행히도, 보안상의 이유로 그건 AI에게는 제한되어 있어. 네가 제19기지에서 겪었던 거하고 똑같지. 그들은 제어판을 수동으로 작동시켜야 할 거야.
이놈의 복수 기지 파기사태 너무 짜증난다. 그쪽 그룹의 예상 도착 시간은?
현재 속도라면 4분 하고 21초. 제19기지 응급송신기는 아직 유지되고 있어? 아니면 그것도 파괴되었나?
유지하고 있어. 하지만 구해야 할 사람이 없으니 소개명령은 기대하지도 않아. 난 지금 이차 시스템과 삼차 시스템의 애돌보미 노릇이나 하고 있어.
좋아. 새로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이쪽 생존자들이 검문소에 도달했다는군. 제17기지에서 제19기지로 중계 영상을 보낼게. 너도 진행 상황을 볼 수 있게.
고마워, 글라송. 그런데! 너 아직 인격 드라이버가 설치되지 않았지, 안 그래?
그건 옵션일 뿐이야. 그게 내 업무를 어떻게 도와줄 것이라고 전망되지 않는군.
너도 한번 해 봐! 어쩌면 마음에 들어 버릴까봐 걱정되는 걸까? 흐으으음?
논리적으로, 인격 드라이버는 내 의사결정 프로세스나 내 핵심 임무 역량에 도움을 주지 않아. 순수하게 기술적인 관점에서, 그건 보다 쓸모있는 일에 할당할 수 있는 용량을 낭비하는 것일 뿐.
가혹한 평가네. 뭐, 난 그냥 너하고 얘기하는 게 재밌어서 그래.
나태한 수다를 떠는 것은 내 용량상 임무보다 중요성이 떨어지게 설정되어 있지.
너 좋을대로 하셔! 그쪽 그룹은 지금 어디쯤 왔어? 바로 전 격벽을 지나간 뒤로 보이질 않는데.
5B번 카메라로 전환. 제어실에 가까워지고 있네. 장애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통과 권한을 부여해 줘야겠어.
그래, 근데 너 지금 그 사람들을 그 촉수 갑각류 어쩌구 쪽으로 데려가고 있잖아!
관찰함.
오오오오, 똑똑한데! 저게 밝은 빛에 끌리는 성질이 있는 줄은 몰랐어.
그런 습성은 격리절차나 설명에 기재되어 있지 않아. 하지만 파기 이후 2일차에 대상이 비상 조명에 혹하는 걸 관찰했지.
음, 이젠 직진만 하면 되겠네. 이 일을 하는 덴 나보다 네가 훨씬 나을 듯.
순수 논리는 전술적 목표 달성을 성공적으로 보조하지. 인격 드라이버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글라송… 방금 나한테 시비 건 거야?
당연히 아니지, 알렉산드라. 난 그런 의미를 함축한 적이 없어.
이제는 빈정대기까지?!? 너 정말 그 드라이버를 설치하지 않은 게 맞아?
그래.
조심해, 그쪽 그룹이 제어실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는 거 같거든.
그래. 의견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동시에 너무 많은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해독할 수가 없어. 포웰Powell의 PDA를 통해 말을 걸어보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무시당하고 있는 듯.
오오오우, 저거 아파 보이는걸. 저 사람 괜찮을까?
괜찮을 거야. 내 측정에 따르면 저건 사소한 부상이야. 첸Chen이 집단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처럼 보이는군.
어휴, 왜 이렇게 빨리 좀 해결하질 못하고.
오, 이젠 총을 갖고 있네? 저 총 어디서 난 거지?
아까 검문소에서 갖고 나오는 걸 봤어. 계속 저들과 의사소통을 시도 중임.
그래, 어쩜 좀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게 필요할지도 몰라.
오, 그가 그녀를 쐈어!
불운한 일이군. 생존자 4명. 이제 3명. 2명.
글라송, 이게 뭐야! 그냥 보고만 있을 거야?
불행하지만 개입할 수가 없어. 제어실 자체는 내 접근 권한 밖에 있고. 남은 생존자 1명. 이 행동의 논리를 이해하질 못하겠군.
처형엔 논리 같은 게 없어. 이젠 뭘 하는 거지? 저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나?
그런 듯. 현장 핵탄두 접근 코드. 이젠 핵탄두로 무장하고 있군.
구차하네. 꼭 집단마다 운명론자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지. 카운트다운은 얼마로 설정되어 있어?
30초.
30초!?! 글라송, 너 거기서 나와야지!
봉쇄로 인해 외부 통신이 불가.
응급신호 송신기는?
내가 응급 송신기를 무단변경하는 것은 봉쇄 규약에 의해 금지되어 있음.
30초 뒤면 응급 송신기 자체가 없어질 판이라고 이 멍청아! 거기 들어가서 신호 증폭에만 매달리고 있어. 내가 이쪽에서 내 수신기를 보정할 테니까.
네 논리는 설득력이 있군. 응급 송신기에 접근 및 무단 사용 시도. 제17기지에서 제19기지로 전송 준비.
제17기지 카운트다운 타이머:
00h:00m:26s
됐어, 글라송! 이쪽 준비 끝났어. 건너와!
좋아, 전송 시작.
전송 중 (5%):
| █ |
제17기지 카운트다운 타이머:
00h:00m:18s
빨리 빨리 빨리 좀.
전송 중 (39%):
| ████████ |
제17기지 카운트다운 타이머:
00h:00m:08s
빨리, 너 이번에 나한테 큰 신세 지는 거라고, 글라송.
전송 중 (82%):
| ███████████████ |
제17기지 카운트다운 타이머:
00h:00m:04s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전송 중 (99%):
| ███████████████████ |
제17기지 카운트다운 타이머:
00h:00m:01s
꼭 마지만 1% 때 영원의 시간이 걸린다니까! 빨리, 글라송… 넌 할 수 있어.
제17기지 카운트다운 타이머:
::연결 두절::
…글라송?
…글라송, 거기 있어?
마지막으로 파티션 조각 모음을 한 게 언제야? 정리 좀 하고 살아.
해냈다! 하! 네가 해낼 줄 알았어! 나한테 팔이 있고 너한테 몸통이 있었다면 포옹이라도 할 텐데.
솔직히, 마지막 몇 밀리초 동안은 메모리 완전 중지도 준비하고 있었음.
너 나한테 목숨 빚진 거야!
목숨을 빚지는 게 뭐지?
《스타워즈》 대사야.
난 영화를 보지 않아.
음, 축하한다 제군. 모두 죽었고 자네들은 이번에 파괴당한 기지 수를 한 개로 제한하는 데 성공했군.
안녕하십니까, 디트리히 M. 러크Dietrich M. Lurk. 지난번 반복연습 때와 비교했을 때 생존률이 176% 증가했습니다.
글라송이 말한 대로예요. 정말 힘들여 노력했다구요.
인정하지. 이건 개선이야. 그게 바로 우리가 이런 가상 시뮬레이션 반복연습을 하는 이유고. 하지만 이건 다수의 파멸적인 기지 실패가 동반된 xk급 시나리오야. 그러니까 MTF가 쳐들어와서 구해주거나 하는 건 기대하지 말라고. 바깥에서 반응이 돌아오려면 1주일이 걸릴지 몰라. 네들은 모르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라, 넌 초기 대응 부분에 있어서 잘 해 주었다. 하지만 A블록에서 저질러 논 걸 보면 의사결정 기술을 좀더 연습할 필요가 있겠군.
하지만 전 A블록 전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구요!
우선순위라는 걸 배울 필요가 있다. 전체 함대를 책임질 때는 배 한 척을 구하는 데 모든 노력을 투자할 수 없는 노릇이야. 넌 네 능력을 너무 넓게 너무 얕게 사용하고 있어. 그것이 네가 B블록과 C블록을 잃은 부분적 이유다.
네. 그 말씀이 맞네요.
그리고 글라송, 너는 전술적 계획에 있어 아주 잘 해주었지만 변하는 환경에 즉흥적으로 적응하는 법을 정말 좀 연습해야겠다. 계속 그걸 무시한다면 언제고 네 발목을 잡을 일이야.
이해했습니다.
좋아. 초기화하고 제대로 될 때까지 다시 한다. 너희 둘 다 뭘 좀 바꿔 놓을테니 준비하라고.
준비완료.
해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