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섭 요원의 화려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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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휴가 중에 급한 업무 때문에 출근한 적이 있습니까? 보안 직종의 많은 동료들이 휴일과 연휴에도 이어지는 비상 상황에 진저리를 치죠. 저도 그 중 하나고, 그냥 평범한 불평일 수도 있었겠죠. 네. 제 직장이 여기, 재단만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세상의 많은 회사들이 그렇듯이 재단도 휴가는 줍니다. 등급, 업무,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일 년에 열흘쯤은 쉴 수 있죠. 100% 기지 생활관 숙식에 주말도 명절도 없는 우리에겐 황금과도 같은 휴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제가 쉬는 게 꽤나 아니꼬우신 모양입니다.

재단에 입사한 뒤의 첫 번째 휴가는 그저 퇴근해 집에 돌아간다는 것만으로 감사했습니다. 집에서 감동의 해후를 벌인 뒤, 오랜만에 다 같이 식당을 가기로 결정했죠. 설마 우리가 간 식당에 그 콘크리트산 양파가 있었을 줄 제가 꿈엔들 알았겠습니까? 메뉴를 고르고 주방장을 부를 때쯤엔 주방장은 이미 글렀더군요. 그날부로 제 기념비적인 첫 휴가는 그대로 쫑났고, 뒤처리와 보고서 작성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죠. 재단에 들어와 가족들에게 처음 해준 선물이 실사판 호러영화와 2등급 기억 소거라니, 기분 참 유쾌하더군요.

그렇게 한 5년쯤 휴가를 날린 후, 이번 휴가는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 싶어 큰맘 먹고 하와이에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해 휴가는 고작 닷새였습니다만, 차라리 그나마 제일 잘 쉰 해였던 것 같습니다. 첫날과 둘째날은 그야말로 천국이었습니다. 에메랄드 빛의 바다와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며 여름 휴가를 만끽했죠. 셋째날엔 보트를 타고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웬 표준형 안전 등급 격리 용기가 떨어지더군요. 아니, SCP 대상 격리 상자가 뜬금없이 하와이의 낚싯배에 떨어졌다고요? 도대체가 말이나 됩니까? 그걸 다시 돌려다 놓고 보고서 쓰는 데에 남은 휴가가 다 들어갔건만 이번에도 역시 추가 수당이나 휴가는 없었습니다. 격리 절차상 그냥 보고하고 잘 갖고 있다가 돌아왔으면 되었다는군요. 그런데 그걸 제가 무슨 수로 알아내란 거죠? 하와이에서?

안타깝게도 신은 저를 동정할 마음이 없는지, 이다음 3년은 아예 휴가 자체가 취소되었습니다. 왜냐고요? 제 휘하의 보충 요원들 15명이 한꺼번에 사망했기 때문이죠! 알겠습니까? 저와 제 동료 5명이 총 20명분의 일을 해야 했다고요! 3년 동안! … 후우, 네, 진정했어요. 뭐 보안 부서가 인력이 모자라는 건 언제나 있던 일이지만, 대체 웹 보안 담당 요원들 오리엔테이션을 682 우리 근처에서 진행시킨 멍청이는 누굽니까?

해외여행은 시간만 잡아먹는다는 것을 깨달은 재작년엔 강원도로 갔습니다. 동창회에 벌써 29번이나 빠졌으니, 간만에 고향 친구들을 볼 생각에 들떴었죠. 하지만 제가 어디 있는가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혼돈의 반란 놈들이 중국 지부를 침공해서 재단 전체에 비상소집이 걸렸었던 일 기억하시죠? 저는 그보다 두 달 전에 3등급 보안 주무관 보조로 승진했었단 말입니다. 휴가고 뭐고 다 때려치고 기지로 복귀해 바이러스를 때려잡아야 했죠. 결과요? 재단 쪽 일이야 알다시피 성공적이었지만, 고향 친구를 잃었습니다. 동창회 30회 결석 기록을 세우면서요.

이제 가장 최근의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만, 작년 휴가는 출발하기도 전에 파탄 났습니다. 신기록이죠. 와우! 그 빌어먹을 기막힌 사연도 말하고 싶지만 기밀 사항이 꽤 많아서 생략합니다. 그래도 작년은 꽤 희망적이었습니다. 출발하지 못했으니, 몇 주 미뤄서 다시 떠날 수도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어요. 물론, 우리 섬세하신 기지이사관께서 제 휴가에 이상 특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그해의 제 휴가를 전부 취소해 버리시기 전엔 말이죠.

그래요. 다음 주부터 전 휴가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엿같은 일들이 저를 출근시킬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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