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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제목: 들겨울달
저자:romrom
사진: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Winter_of_GImgea(Korea)_2.jpg
나머지 자체 촬영. CC BY-SA 3.0
해원읍의 겨울은 고해소이다.
그리 춥거나 하진 않다. 고해소라 함은, 서울이나 강원도 한복판에서 만나는 무자비한 바람 따위도 이곳에선 교화된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정지와 순백으로서의 겨울이다. 늪도 얼어붙고 연못도 새들도 어딘가로 떠나가니 주민들도 딱히 할 일이 없다. 대부분은 여름이나 가을 즈음 쌓아둔 돈으로 적당히 놀고 먹는다. 불이 켜져있는 곳은 중심 상가 정도. 몇몇 개 남아있는 서비스업이나 자영업들이 문을 여는 것이다.
한울은 문을 닫았다. 장사가 성공적이지 못 하다는 의미에서의 개폐는 아니고, 물리적으로 닫는다는 의미의 개폐. 바깥은 바람이 불지 않지만 여전히 추웠다. 확실히 동장군이 들어오는 것보다야 문을 닫고 환기는 나중에 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었다. 사실, 문을 닫아도 여전히 추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개인 사정" 으로 세탁소를 닫아놓고 쉬던 때에 방한 대비를 못 한 탓도 조금 있었다.
세탁소에 가지런히 놓인 간이식탁을 바라본다. 후줄근한 황갈색 깔깔이를 입은 남자가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강나루, 능구렁이 손의 맹원. 언뜻 봐서는 반재단 게릴라 저항 단체 소속원이라고는 알아볼 수 없는 모습. 솔직히 말하자면 말괄량이 아이를 키우는 아빠 같다고도 한울은 생각했다. 물론 물어보지는 않았다. 여부에 상관없이 꽤나 큰 실례니까.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정말입니까?"
"측신이 죽었다는 것이."
남자의 기묘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물론 전에 카페에서 만난 적이 있긴 하면서도, 비밀 지하 투쟁단체 산하 요원은 여전히 편하게 대하기는 살짝 부담스러운 직위였다. 물론, 그를 먼저 부른 사람은 한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죽은 신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에 재단이나 연합은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한울은 아직도 해원분소에서 이루어진 면담을 기억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인류 보호를 위한 궁극적 목적 아래 적절히 서로 입을 닫고 지낸다는 결론으로 끝난 면담을. 연합은 한울을 "청산"하지 않는다. 재단 역시 한울을 "확보" 하지 않는다. 한울 역시 저 둘이 껄끄러워 할만한 일을 벌이지 않는다. 나머지는 알아서 뜯어고친다. 역시나 이… 잔재를 처리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기관이다.
"사실입니다. 측신은 죽었습니다. 창에 찔려서."
한울은 빨래방 구석에 가 자그마한 색상자를 꺼낸다. 빨간 한지가 겹겹이 쌓인, 작은 상자. 뚜껑을 열자, 네 단 정도 길이의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이게 측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울이 말을 자른다.
"흔적. 흔적이죠."
깃창으로 찔러 죽은 측신은 완벽하게 소멸했다. 또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끝내고 해원읍의 세탁소로 돌아온 날, 한울이 자신의 옷을 다시 세탁하려던 그 날,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뭉치가 만져졌다. 분명 측신의 것이었다.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살짝 고운 옷감을 만질 때와 같은 기분만 느껴졌다. 한울이 아는 한 측신의 자리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혹여나 사라진다 하여도, 그건 그저 신앙이 망각되며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인과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누구도 앉아있지 않았다. 과연 이걸 유품이라 부를 수 있을까.
"… 그렇습니까."
회색의 남자는 조심스럽게 상자 뚜껑을 열어, 머리카락을 걷어올려본다. 모래시계가 흘러가듯 가닥들은 서서히 떨어진다.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저도 서천이랑 더 상관도 없는 마당이고. 그냥… 안전하게 보관해주셨으면 합니다. 저같은 놈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야 유익하겠죠."
"어째서 재단이나 연합에 주지 않고..?"
한울은 다시 생각해본다. 그들이 가끔 꽉 막힌 관료주의 꼴통이라는 사실 빼고는 딱히 장애물이 없긴 하다. 재단은 분명 무속공학이든 무엇이든 사용해 이 머리카락을 안전하게 봉재할 것이고, 연합은 석탄 대신 겨울날 땔감 용도로 사용해 탄소공해를 줄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가능성이 없었다. 태우고 집어넣는 행위는 몽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혹여나, 만약 저 머리칼의 주인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정상성이라는 이름은 그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혹시 모르잖아요. 뭔가 일어날 지."
"측신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강나루가 긴장한 듯이 시계를 다잡았다.
"그런 말은 아니죠. 확신도 아니고, 그냥 제 망상일 뿐인데. 그냥 재단이나 연합이나 이런 물건을 내밀면 앞으로 더 귀찮게 할 것 같아서요. 전 그냥저냥 살고 싶거든요."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저희 능구렁이 손에서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적절한 때에 오시면 근황도 말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상자의 뚜껑이 다시 닫히고, 천천히 그 소유권이 옮겨간다. 그리고 한울이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회백색 깔깔이 사이에 나타난 구멍이 상자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근황은… 긴급하지 않은 한 필요없습니다. 다만."
"다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측신이 부활한다면. 이렇게 말해주세요."
"거 보니까 열정이 갸륵하던데, 하고 싶은 일 찾는 데에 써보는 건 어떠냐고."
사육사 분들께 공지!
안녕하세요? 저는 말랑이예요! 특수사육팀이 키우는 초상동물 중 하나죠! 저는 곧 한국으로 국제입양을 가게 된답니다! 그곳에서 초상직물과 세탁물에 정통한 주인님이 절 돌봐줄 예정이예요! 그러니까, 행정적으로 필요한 모든 절차와 추가 권고 사항, 그리고 입양자 관련 업무는 최소한 이번년도 1월까지는 끝내주세요! 그리고 사육팀이 준비한 롤링페이퍼가 탕비실에 있으니, 한국 입양자 분에게 같이 보내고 싶은 말들을 그곳에 적어주면 제가 안전하게 꼭꼭 접어서 한국으로 배송할게요!
— 앤더스 윌슨 게시함
2 급 비 밀
S E C R E T
| 정책실 기획국 |
| 6급 조 명 헌 |
| P-████ (███-████) |
| 미상 B71호 사건 추가 사후처리 보고서 |
| 2021. 12. 30. |
미상 B71호 사건 관련 초상생물은 한국 내 활동하던 신격독립체의 일부로, 휴면 상태에서 깨어나 활동하여 본인의 위격을 올리고 무속학적 효능을 위해 민간인 학살용으로 사용됨. 이후 해당 신격독립체는 탄천 수처리시설로 이동해 대규모 재해를 벌임. 초상위협은 방재원 지원 하에 SCP 재단과 세계 오컬트 연합 (GOC) 이 처리. 민간인 피해 존재.
한국을 향한 대규모 신격 / 형이상학적 재해 계속 일어날 가능성 有, 이러한 방재 사각지대 제거 촉구됨.
- 8월 말 발생한 탄천수처리시설 및 인근 지역 대규모 재해는 무사히 처리. 관련 증거물 재단 및 연합이 은폐. 민간인 피해와 재산피해 관련 역정보 시나리오 발령 완료됨.
- 당시 재단과 연합 요청 하에 지원하던 TF 사건 후처리로 목표 임무 변경. 11월 초에 완료 후 해체됨.
- 사건 전개, 미상 초상생물 연관성 규명, 교전 보고와 재단 및 연합의 대응 상세는 별첨문서 참고.
- 당시 재단과 연합 요청 하에 지원하던 TF 사건 후처리로 목표 임무 변경. 11월 초에 완료 후 해체됨.
- 사건 당시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 ██명, 주말이라 근무자 적었지만 주변 산책로 민간인들이 피해 범위 진입함.
- 발생 후 연합 소속 제9126타격조가 보호 조치 취하여 주변 피해 전무.
- 수처리시설 및 주변 건물, 인프라 복구 완료됨. 여름 폭우로 인한 대규모 정비라는 역정보.
- 발생 후 연합 소속 제9126타격조가 보호 조치 취하여 주변 피해 전무.
- 재단, 연합, 교전했던 개체 관련 정보 공유함. 사건 현장 물리적 흔적 데이터베이스 공유함. 일종의 신격독립체임을 판단.
- 교전 중 얻은 정보 및 추후 분석을 통해 한국 무속신앙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가택신 , 특히나 "측신"일 가능성이 높다 판단.
- 개체의 소멸 불분명. 그러나 무속공학적 분석을 통해 무력화 확실하다 판단됨.
- 이상과학수사연구소는 데이터베이스 사용, 속히 조사 시행해 사건의 진상 및 추후 방재책 개발할 것.
- 교전 중 얻은 정보 및 추후 분석을 통해 한국 무속신앙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가택신 , 특히나 "측신"일 가능성이 높다 판단.
- 최근 대한민국 내 무속학적, 형이상학적 위협 증가하는 추세.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해야 할 것임.
- 정책실, 작전실, 첩보실 합동 회의 개최 예정. 이와 동시에 각 국별 행동지침 하달될 것.
- 전반적인 대한민국 내 대규모 재해 관련 가이드라인 점검 예정.
- 정책실, 작전실, 첩보실 합동 회의 개최 예정. 이와 동시에 각 국별 행동지침 하달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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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 식별문구: KTE-1819-블랙-언터쳐블-블리트 ("뒷간들The Bathrooms")
- 블랙 (Black): 반신.
- 언터쳐블 (Untouchable): 비물질적.
- 블리트 (Blit): 인식재해.
수권대응기준: 4 (심각한 위협) N/A (파괴 확인, 파일 보존)
…
긴급상황전파체계 공지
AO-819288 관련 발령된 모든 긴급상황 코드 해제됨. 직원들은 평소대로 업무로 복귀하라.

연말이란 각지 정상성 기관 인원들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영향이 관여하는 변칙이란 인간이 가장 미련이 남는 때에 활발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바쁜 때에 두 정상성 기관 요원들이 공원 벤치에나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은 그리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이례적인 상황에는 분명 측신이 벌인 난장판을 처리하는 작업에 놀라우리만치 긴 시간이 투입됐다는 사실이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은폐와 거짓과 모략, 기만과 역정보의 할당량은 기어코 11월 말쯤에 바닥났다.
"춥네."
곰보는 유충마냥 둘러싼 롱패딩을 당겼다. 어째서인지 오늘, 재단 특무부대 소속 도리채는 그와 개인 시간을 가질 것을 요청했다. 별 생각 없이, 곰보는 수락했다. 애초에 타입 블랙 청산 후에 쥐어지는 휴가를 보낼 방법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고 말이다. 다른 타격조원에 대해 굳이 첨언하자면, 하지는 난데없이 등산을 갔다. 책벌레는 추운 날씨가 싫은지, 베트남 호치민에서 안마나 받고 있었고, 형광조끼는… 굳이 신경쓰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오직 곰보만이 혼자 남아 추위에 떨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곰보 군. 연합 쪽 업무는 좀 어떤가요? 그, 측신 건은. 재단은 이미 대충 끝난 상태인데 말인데."
곰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도리채의 옷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눈 내리는 날에 러닝 집업 하나만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거기다 저런… 존댓말.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다. 물론 작전 때는 반말을 사용했다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기가 눌리게 된다.
"저기, 곰보 군?"
도리채가 까닥하고 고개를 든다.
"어, 어. 듣고 있죠. 대충 끝났습니다. 할 일도 없고, 휴가도 애매하게 남았고. 그냥 이러고 있는거죠."
"이러고 있다" 라 함은 결국 할 일이 없음을 함축한 말이다. 곰보는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중학생 몇 명이서 서로에게 눈덩이를 던지고 있었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고음이 이따금 몰아친다. 자그마한 점들이 서로 뿌리는 백색은 서서히 물들어, 결국 모두가 지쳐 하예질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겠지. 눈을 닦고. 눈덩이를 뭉치며.
"… 공원에 앉아서 사람들 바라보는 것이요?"
"음… 대충 그렇죠?"
정적. 받아마땅한 반응이다.
도리채는 일어섰다. 둘 다 할 일도 없는 시점에서 공원에 하루종일 죽치고 있어봐야 백해무익했다.
"결국 신에게 도움받은걸까요, 재단이나 연합이나. 곰보 군은 어찌 생각하는지요?"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비록 도리채던 재단이던 무언가가 아무리 신을 증오한다 해도, 결국 이번 사건 자체는 한울이 큰 도움을 준 것이 자명했다. 갑자기 연합 조직원과 나타나더니, 결국 자신들은 내보내고 자기 혼자서 가장 위험한 일을 처리했다. 도리채는 작전을 완수한 직후 휘하 부대원들이 유독 샌드백을 자주 갈아야 한다며 불평하던 것이 기억났다. 신의 도움. 신이라. 생각이 깊어짐과 동시에 얼굴의 주름도 깊어졌다.
머리를 좀 비워야겠군.
"공원에서 할 것도 없으면, 같이 어디 밥집이나 가지요. 내가 자주 가는 곳으로."
암묵의 동의 속에서 두 요원은 일어섰다. 그러고는 순백색의 눈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갔다. 아이들은 여전히 낄낄거리고 있었다.
"갑시다. 리채 요원님."
한울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참 전부터 오던 눈들은 아직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세탁소 앞이 꽉 막힐 판이다.
한울은 창고에서 삽을 꺼내 세탁소 앞을 치우는 대신, 세탁소 안쪽 방으로 들어가 한숨 자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고, 손님은 없었다. 저 정도 눈이면 내일 치워도 될 일이었다. 한울이 살며시 침실 문을 연다. 얼마나 오랜만에 평화로운 잠을 자보는가, 하며 한울은 침대에 눕는다. 씻는다거나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하는 번거로운 절차는 잠시 생략하자. 딱 한두 시간 정도만 누워있자.
그렇게 해원읍의 하루가 저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