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안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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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월 ██일 ████ ██ █

언제 적 일이었을까? 아름다운 호반가, 석양녘 잔교에서의 일이다. 나는 예스러운 비즈니스 수트를 몸에 걸친 남자와 조용히 홍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눈 앞에서는 낚싯대가 흔들리고, 수면에 찌가 둥둥 떠다닌다.

부드러운 빛이 어둠과 뒤섞인 밤을 맞아가는 그 안에서, 그는 나에게 조용히 고해왔다.

「앞으로 며칠 안에 끝이 찾아온다. 자네의 끝일까, 세계의 끝일까, 어쨌든 끝이 찾아온다」

「끝? 모처럼 꾸는 꿈인데 재수없게…… 무슨 소리요」

「글쎄, 자네는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흘러간 냉전의 잔재인 예스러운 비즈니스 수트를 몸에 걸친 남자는 내게 고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고하지 않고, 잊을 수 없는 신사는 그것만 고하고 떠났다.

그 때의 나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러나 그 때 그 자리에서 나는 확실히 내 운명을 깨달았다.
  


200█년 █월 ██일 제███기지 카미토리 우메

내열유리잔에 예술가의 천계를 주는 생명수비유 퐁타를리에(佛 Vieux Pontarlier)를 부었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녹색 액체에 나는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향을 즐긴다. 편백 같은 상쾌감과 깊이있는 불가사의하게 단 맛을 즐기면서 조용히 한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충분히 묽어진 암생트에 얼음을 떨어뜨린 뒤 목을 축이도록 한 입, 두 입 맛을 본다.

「휴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대낮부터 술이라니 참 팔자 좋네요」

「휴일이라 가능한 사치야, 허니. 자네도 어떤가?」

처와 함께 온화한 휴일을 즐긴다. 블루치즈를 안주 삼아 마지막 평화를 보낸다…… 지금 생각면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때의 나는 받아들이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괴팍한 단 맛과 향쑥 맛이 섞인, 기묘한 인생 같은 맛을 혀로 느끼면서, 나는 생애 마지막 휴가를 느긋하게 보냈다.

그날 밤, 나의 시간은 영원에 멈추었다.


████년 █월 ██일 ████ 카미토리 우메

그리고 나는 다시 석양녘 잔교에 있다. 긴의자에 걸터앉아서 찻주전자의 홍차를 조용히 홀짝거리는 시간이다. 눈 앞에는 낡은 낚싯대가 시끄럽지만 변함없이 물고기가 낚이는 모습은 없다.

「결국 나는 혼자 적적히 끝을 맞았다……는 건가」

「글쎄, 자네의 경우는 그렇게 끝내는 것을 허용했을 뿐이다, 라는 이야기지」

얼굴도 몽롱한 검은 수트의 남자가 옆에 걸터앉는다. 끝없는 석양 가운데 나는 그저 그와 잡담을 한다. 변하지 않는 세계에서 영원히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빌어 보아도 밤은 오지 않고, 찌는 가라앉지 않고, 그저 그와 이야기만 나누는 세계.

「요컨대 결국 이건 꿈인가?」

「자네는 틈새기에 있다. 그게 자네의 악몽이지. 구조될 때까지는 어울려 주는 거다」

나는 홍차를 홀짝이며 “허어” 소리로 숨을 돌리고 검은 수트의 남자에게 말한다.

「그럼 싫증날 때까지 어울려 달라고 할까…… 꿈 꾸는 사람아」

「가끔은 긴 이야기도 좋지, 그걸 자네가 원한다면야」

우리는 다하지 않는 시간 가운데 이야기를 나누었다…… 끝을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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