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석류를 처음 맛본 건 일본 유학 때였습니다. 교토 근교에 있는 ██대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음, 사실 유학이라기보다는 쫓겨난 겁니다. 집에서 저를 영 탐탁치 않아했거든요. 사춘기가 지나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가족과도 마찬가지였고요. 잘 대화가 되지 않는 분위기. 대놓고 배척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저를 빼놓았을 때 더 화목했습니다. 그러니 모두를 위해 적당히 멀리 떨어져야겠다, 고 생각한 거죠.
아키츠(秋津) 선배는 겉도는 저를 처음부터 잘 챙겨주었습니다. 같은 수업이 두 개인가 겹쳤는데, 4월 초였던가, 아무튼 벚꽃 봉우리가 막 영글 때쯤, 수업이 끝나고 불쑥 저에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유학 왔냐면서, 자기도 한국인들 많이 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술자리에 나가서 소개받았을 때는 조총련계 사람들이라 어색하긴 했지만서도, 챙겨준 건 정말 고마웠습니다.
선배는 늘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어요. 그렇다고 열성적인 전도가 타입도 아니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나서서 도와주고, 잠든 노숙자 앞에 빵과 우유를 사서 놓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선배는 노숙자를 개인적으로는 정말 싫어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아, 네. 개인적이라는 건, 입맛 얘기입니다.
알고 지낸지 한 1년쯤 됐으려나, 아직 날씨가 쌀쌀할 때쯤, 산책하러 집 앞에 나가니 선배가 예의 그 밝은 웃음을 지으며 저를 불렀습니다. 어디 갈 곳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갑자기 표정이 진지해지면서 여자친구 관련 이야기라고 하는데, 솔직히 그 대목에서는 조금 소름 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선배의 여자친구를 죽인 다음날이었거든요. 평소에는 인간 관계 밖에 있는 인간들을 골라 죽였는데, 한밤중에 공원에서 비틀거리는 여자를 벽돌로 내리쳤더니, 얼굴이 아는 얼굴이지 뭡니까. 평소 하던 대로 뒷처리는 잘 했는데 어디서 걸린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따라나섰습니다.
그런 광경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다다미 다섯 장도 안 되는 음침한 방 안에 열 명 좀 안 되는 사람들이, 각자 점잔을 빼놓고는 여자 알몸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뇨타이모리인가, 싶었는데 위에 음식 같은 건 없고. 자세히 보니 선배 여자친구의 시체였습니다. 말문이 막혀 어버버 하고 있는 저를 선배가 사람들에게 소개했습니다. 갑자기 고풍스러운 말투로 바뀌어서 반쯤은 못 알아들었습니다만, 한국에서 온 동료, 그 정도로 말했던 것 같습니다.
예, 나잇대는 다양했습니다. 솔직히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골라온 사람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로 간의 공통점이 없었습니다. 서로 조용히 말을 나눌 뿐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완전 겁에 질려서, 다음 차례는 나인가,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선배 옆에 앉았는데, 선배가 싱긋거리는 얼굴로 긴장을 풀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수고를 덜었다, 뒷통수를 함몰시킨 건 아쉽지만 한번에 죽여 품질이 좋다면서요. 선배는 제가 뭘하고 다니는지 진작부터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세달에 하나는 꼭 죽였으니까요. 들키지 않으려고 멀리 오사카까지 가서 죽이고도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나중에 설명하기로는 왠지 모르게 비슷한 냄새가 나서 주시하고 있었다던가. 긴장이 완전 풀려서, 웃음이 다 나오덥니다. 그래도 잡히는 건 싫었거든요. 일본은 사형도 실제로 집행하니까…
음, 그러고 앉아 있으니까,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일어서서 뭐라 중얼댔습니다. 아키츠 군이 무려 반 년 간 공들였다, 귀한 국산이다, 좋은 것만 먹여서 튜닝해뒀다, 그런 말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메스를 들어서 한 번에 배를 확 가르는데, 와, 왜 석류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싶더라고요. 평소에는 사람 시체가 그렇게 아름답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시취(屍臭)도 안 나고, 조명을 받아서 발갛게 빛나는 게, 먹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은 정말 배불리 먹었습니다. 완벽한 첫 경험이었죠.
20██/██/██
면담자 분은 이곳에서 어느 정도 등급이십니까? 물론 D인 저보다는 높으시겠지만요. C요? 생각보다 높진 않으시네요. 대리, 뭐 이런 직급이십니까? 아하, 연구원.
네, 음, 선배랑은 그 이후로도 쭉 관계를 지속해 나갔습니다. 선배 덕분에 새로운 취미에 제대로 흥미를 붙였죠. 알고 보니 선배는 작업에는 큰 소질이 없더라고요. 먼젓번 여자친구도 6개월을 공들였다기보다는 잡을 타이밍을 놓쳐서 묵혀둔 것에 가까웠고요. 그래도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아서, 선배가 고르면 제가 죽이고, 뭐 그런 식으로 1년 가량을 지냈습니다. 작업 빈도가 그렇게 잦진 않아서, 여섯 명도 안 됐을 겁니다. 노숙자 싫어하는 건 그때 알았습니다. 아무거나 먹어서 싫다던데요. 저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라.
아무튼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이 한번은 완전 들떠서 어려운 자리를 간신히 초대받았다고 하는 겁니다. 선술집에서 그 얘기를 하는데, 물론 용어를 바꿔서 얘기를 했습니다만은, 주변 사람들이 알아들을까 무서웠다니까요. 얘기를 들어보니, 비슷한 취미를 가진 부자 노인네가 주최하는 프라이빗 파티랍니다. 드레스 코드니 뭐니, 귀찮은 말들이 쏟아져서, 그저 네, 네, 하다 보니까 동반자가 되어 버려서, 이도 저도 못하고 참가했습니다.
여름이었을 겁니다. 선배가 사준 정장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해보니 번쩍번쩍한 고층 빌딩이었습니다. 교토에도 그렇게 높은 빌딩이 있는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로비에 들어서니까, 왠 새빨간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얼굴은 희게 해서 맞이하더니, 지하로 안내해줬습니다.
선배는 식장에 들어가서야 만났습니다. 예? 아, 결혼식장이요. 결혼식이라고 해봤자 이름만 결혼식이고, 하객도 저랑 선배 포함해서 열댓 명도 안 됐습니다. 조그마한 강당 같은 곳을 꽃 같은 걸로 나름 야무지게 꾸미고, 원형 테이블도 여러 개 놓고. 가운데에는 버진 로드라고 단차도 만들어 놨습니다. 하여튼간 선배를 찾아서 그 옆에 앉았는데, 글쎄 얼굴에 심통이 가득하더랍니다. 자꾸 말을 붙여봐도 대답하지도 않고, 씨부렁대는 것이, 뭔가 단단히 마음에 안 든 것 같았습니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주례가 서고, 식이 시작됐습니다. 마이크 음질 상태가 안 좋아서 뭐라 하는지도 모르겠고, 선배는 설명해주지도 않고, 목소리도 단조로워서 하품만 자꾸 났습니다. 그렇게 흥미로운 내용은 아닌지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아예 주무시던데요.
그런 분위기가 신부의 등장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 그 드레스 위에 떨어지는 피눈물. 식장을 어둡게 하고, 핀 조명을 딱 쏘는데, 와, 정말이지 압도당했습니다. 뭔가 어색하지 싶어서 잘 보니까, 눈꺼풀을 커팅해놨더라고요. 잘린 단면은 감쪽같이 마감해놓고, 가짜 속눈썹까지 붙여놨는데, 기술이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신부 등장과 동시에 앞의 테이블에 눈꺼풀 조각을 얇게 슬라이스해서 거품 같은 것 위에 올린 게 서빙됐습니다. 그 작은 걸 가지고 10인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맛은 그냥 식당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선배는 입에도 안 대더군요. 그걸 보고 더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팔짱 끼고 결혼식이나 구경했고요. 저는 솔직히 그런 변태적인 세레모니를 즐기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워낙 화려하게 연출해 놓은지라, 순수하게 감탄하며 봤습니다. 신부 입장이 끝나고 펜필드의 호문쿨루스 같이 변한 신랑이 나오는데-
아, 예. 선배 얘기를 더 해보면, 음, 아마 본식이 거의 끝날 때쯤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알 수 없는 욕설들을 막 지껄이면서, 석류를 모독하지 말라는 식으로, 뭐라뭐라 하더군요.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면서 성을 냈습니다. 식은 중단되고, 관객들은 웅성웅성하고. 그러더니 선배가 제 팔을 확 잡고 나가버리지 뭡니까. 그리고, 막, 음, 뭐라 그랬더라.
사르킥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날 그대로 헤어지고, 한참 못 봤습니다. 연락도 완전히 두절됐고요. 귀국 직전에야 한 번 봤습니다.
20██/██/██
안녕하세요, 연구원님? 제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거 맞나요? 주로 어떤 걸 연구하십니까? 박사 학위도 있으신가요?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박사를 수료만 해서. 박사 학위 있으신 분들 보면 괜히 부럽고 합니다. 중국어입니다. 일본까지 가서 중국어 배워온 게 좀 우습죠?
예, 저번에 다른 분이 오셔서 서면으로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읽을까요? 예, 그럼 읽겠습니다.
선배는 완전히 바뀐 모습이었다. 항상 정돈된 머리에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던 그는 머리가 완전히 산발이 된데다 해쓱해져 못 알아볼 꼴이었다. 그럼에도 눈만큼은 예전같이 빛났다. 아니, 예전보다 더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어린 아이의 느낌이랄까. 그는 한밤중에 불쑥 집앞에 나타나,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어디 갈 곳이 있다고 따라오라 했다. 그의 말을 들어서 크게 손해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이득을 얻은 일이 더 많았기에, 별 의심없이 따라나섰다.
봉고차는 산 속 깊숙히 들어갔다. 활엽수 사이로 포장조차 되지 않은 길을 한참이고 달렸다. 믿는 사람이기에 따라나선 것이었지만, 어두컴컴한 밤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 속을 지나는 건 역시 무서웠다. 선배는 길을 아는 듯 능숙하게 운전했다. 이윽고 거대한 창고 같은 것이 드러났다. 그러한 창고가 몇 개고 있었는데, 빽빽한 숲속에 있다고 믿기에는 어려울 정도였다. 선배 말로는 각종 사술을 사용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못 오게 막아뒀다고 했다. 예, 사람 못 오게 하는, 뭐 귀신 나오는 그런 거였습니다.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흠, 흠. 막아뒀다고 했다, 그 다음에… 낡은 창고인데다, 난방이 돌지 않아 으스스했다. 선배는 뭐가 그리 급한지 나를 재촉해 창고 안으로 몰아넣고는, 문을 잠그고 불을 켰다. 드러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어림잡아도 수백명은 우습게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알몸으로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깨끗한 돼지 축사 같은 곳이었다.
이게 뭡니까? 예, 읽어 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뒷부분에 그 얘기가 있는데… 남자로 보이는 것도, 여자로 보이는 것도 양성의 생식기를 모두 달고 있었다. 선배는 익숙한 듯 차분하게, 그러나 눈빛은 더 반짝이면서 그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전국 각지에서 끌어모은 지적 장애인들로 최고품질의 석류를 생산하고 있다, 소고기로 따지면 고베규 중 최상등급 정도는 될 거다 말하며 시설을 구경시켜 주었다.
솔직히 좀 역겨웠습니다. 선을 넘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을 먹는 것과 사육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지 않습니까. 예쁜 여자들 데려다가 벗겨놓고 기르는 수준도 아니고, 모자란 사람들 강제로 교배시킨 다음에 신생아를 먹는 건, 연구원님도 솔직히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음, 다음. 선배는 신생아실까지 모두 보여주고 나서 나에게 감상을 물었다.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 눈에 띄었는지, 선배는 멋쩍게 웃으면서 본인도 썩 유쾌한 짓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닭을 대량생산하게 된 건 다 이런 사육시설의 발전 덕분이듯이, 석류 역시 제대로 된 사육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으로는 육아와 교육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 예정이라 하면서, 언어 선생님을 맡아 주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그만 골치가 아파져 옆에 있던 가위로 선배를 찔러 죽였다. 우측 가슴에 한 번, 복부에 여섯 번 찔렀다. 선배는 나보다 체구가 작은 편이라 작업하기 쉬웠다.
이전에 죽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순간적으로 역겨운 감정이 확 치밀어 오르기도 했고, 선배 눈이 완전 돌아 있어서, 아, 이거 지금 끊어내질 않으면 계속 시달리겠다 싶더라고요. 안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서 손 좀 털고 살아보려고 했는데 자꾸 관심도 없는 거에 끼라고 하니까, 귀찮은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왠만한 식당 저리가라 할 정도로 대형 조리 기기들이 많아서 뒷처리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먹일 입도 많았고요.
그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에 귀국했습니다. 그 뒤로는 석류 먹는 사람들이랑도 연을 끊었고, 개인적인 일에만 몰두해서 살았습니다. 결국은 잡혀서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20██/██/██
오랜만입니다, 연구원님. 들어오시는 줄도 몰랐네요.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해드려야 하나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놈들 중에 뒤가 좀 구린 녀석들이 있는데,
아, 오늘이 마지막입니까? 그렇게 됐군요. 하긴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요. 한 달이 참 빠르네요. 솔직히 얘기만 듣던 재단에 끌려간다고 했을 때는 겁을 많이 먹었습니다. 소문이라는게 원래 그렇잖아요. 한번 끌려가면 반미치광이가 되어서 나온다는 소문도 있고, 인체실험에 쓰이다가 괴물한테 잡아먹힌다느니, 그런 소문들만 듣다가, 너무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시니까, 개인적으로 재단에 대해 호감을 참 많이 갖게 됐습니다.
여하튼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제가 인간 쓰레기라는 거 저도 잘 압니다. 자랑스럽게 사람 먹은 얘기나 늘어놓고, 연구원님께서도 듣느라 진짜 고역이셨을 겁니다. 사회 다시 나가면 정말 잘 살겠습니다. 아, 아니면 재단에 취업은 안 되려나요? 어차피 저는 정상적으로 살긴 그른 사람이고, 제가 뭐하고 다녔는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다 까발려진 마당에 조용히 살기도 힘들고. 재단에서 일하면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니까, 저 정말 잘 할 자신 있습니다. 어디 특무부대, 아니면 저 같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데라도 괜찮습니다.
아하, 음. 이게 주사기군요. 맞으면 기억을 잃는다는 그 주사기. 다들 실물은 본 적이 없다곤 하는데, 사실 보고 까먹은 거겠지만, 저도 까먹겠죠? 음, 알겠습니다. 잠깐 마음의 준비를 좀.
음.
흐음.
됐나요?
밖에서 거울 너머로 쳐다보고 계신 분들도 보이셨을려나요? 아무래도 보이셨겠죠? 아마 안 보이셨으면 진작에 비상벨을 누르셨을 테니까. 일본에서 배워 온 동작인데, 효과가 꽤 괜찮습니다. 앞에서 보든, 옆에서 보든, 뒤에서 보든 신경이 딱! 끊기거든요. 실제로 끊긴 건 아닙니다. 다들 숨은 쉬고 계시죠? 연구원님 보니까 쉬고 계신 것 같네요.
역시 기억이 사라지는 건 싫네요. 죄송합니다. 아셨겠지만, 석류 먹는 사람들이랑 연을 끊었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 손 터는 게 쉽진 않더라고요. 귀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배가 몸 담았던 그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공급 계약을 맺지 않겠느냐고요. 자기네들 일원을 죽였으니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저는 정식 멤버로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기대도 살짝 했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항상 그런 거에 폐쇄적이잖아요. 한류 열풍 덕분에 저도 요건이 좋았다, 이런 식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쨌든 경찰에 잡히기 전까지는 거의 오십여 명 정도를 일본에 보냈습니다. 품질 관리를 잘해서 그룹에서 좋아하더라고요. 물론 진짜 최상등품은 제가 먹었습니다. 그룹 안에서도 나름 방목해서 자란 걸 좋아하는 계파가 있었는지, 수요는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보내니 덜미가 잡힌 거죠, 뭐. 저도 나름 각오는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충격은 없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나이도 먹을 대로 먹었고.
재단이라는 건 솔직히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룹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걸 보고, 사람 잡아먹는 사람들도 저런 미신 같은 걸 믿는구나 싶었는데, 진짜였네요. 진짜 맞으시죠? 몰래 카메라 같은 게 아니죠?
자, 이제 다 됐습니다. 저는 역시 연구원님처럼 예쁜 사람이 좋아요.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잖아요? 아픈 건 죄송합니다. 저도 스트레스를 받아 육질이 딱딱해지는 건 싫어서, 산 채로 먹을 때면 약을 놓아주는 편인데, 여긴 뭐, 보시다시피 제대로 된 장비가. 그래도 오늘 먹을 건 스트레스에 큰 영향은 안 받아 다행입니다. 머리뼈도 얇은 편이시라, 여러모로 운이 좋네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음. 절묘하네요.
이쪽은 어떨까요?
역시.
아마도 옛날의 야만인들은 모두 사람을 먹었을 테지요. 어떤 사람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사람을 먹으려 하지 않고 오직 착하게 되려 했기 때문에 사람답게 변하였고 또 참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한데, 어떤 사람은 여전히 사람을 먹었겠지요.
허!
대처가 빠르시네요.
곧 나갑니다! 걱정 마세요.
와, 쿵쿵 소리. 연구원님도 들리시나요? 제가 측두엽을 먹었나요?
우와, 총.
무리들이 슬금슬금 문안으로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복면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퍼런 얼굴에 흰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히죽 웃고 있습니다. 복면 뒤로 웃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야, 그렇게 하시면 아픕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당신들도 사람을 먹고 싶지요? 그렇지요? 당신들의 입가에도 사람의 기름이 묻어 있습니다. 제 눈에는 보여요. 당신들의 마음 속에도 사람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하. 인사할 기회는 주셔야죠. 그렇게 막무가내로.
연구원님,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