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0을 위한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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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그곳에 있었다.

처음에, 아이는 즐거웠다. 전혀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하늘 높이 치솟던 골판지 우주선.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과 세상. 아이는 언젠가 에버랜드에서 탔던 롤러코스터를 떠올렸었다. 덜컹거리지만 하늘 높이, 하늘을 넘어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느낌. 자신이 바라던 그러한 우주여행이 시작되는 찰나였다.

여행 중에도, 아이는 즐거웠다. 칠흑처럼 새까만 어둠, 그리고 책에서만 보던 우주의 만물. 그 모든 것들이 아이를 스쳐 지나가고 비껴가고 지나쳐 가는 그러한 순간들이 한없이 이어졌다. 아이는 수많은 소행성과 유성우를 보았다. 다양한 천체들을 눈에 담았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을 모든 장면을 머릿속에 담아냈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즐겁지 않았다.

아이는 추위에 떨다가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배터리가 떨어지면서 정체불명의 사람들과의 통신도 끊어진 지 오래였다. 이제 아이를 세상과 연결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는 온 우주에 홀로였다.

어찌해야 할지 아이는 알 수 없었다. 집에서 그랬듯이 여기서도 집으로 슝, 하고 날아가기를 바란 횟수를 셀 수 없었다. 골판지를 이리저리 누르면서 '집'이라고 쓰인 가공의 버튼을 누를 수 있기를 빈 횟수를 셀 수 없었다.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아이는 배웠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사실도, 아이는 배웠다. 아이는 알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자신이 갇혀 있는 이 행성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자신의 엄마가 왜 매일 그렇게 여행을 떠나 있는 건지도.

점점 희미해져 가는 정신 사이로 드문드문 짧은 기억의 편린이 날카로운 아픔처럼 아이의 뇌리를 찌르고 사라졌다. 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 다섯 번째 생일잔치.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 엄마의 웃음소리.

엄마, 엄마.

아이는 엄마를 부르면서 울었다.

엄마, 나 집에 가고 싶어.

온 내장이 뒤틀리면서 살아있음의 울부짖음이 자꾸만 몸을 때렸다. 아이는 갈증과 배고픔의 정의를 자세히 알지 못했고 아직은 그러한 것들을 알려고들 나이도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그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직결되는 단어들의 의미 역시 깨달았다. 갈증, 배고픔, 고통, 고뇌, 향수, 분노, 회한, 슬픔. 그것은 일종의 탯줄과도 같았고 아이는 세상과 연결된 그 유일한 동앗줄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며 버텼다. 그러나 씹으면 씹을수록 언젠가 엄마가 사준 단팥빵의 맛만이 입안에서 감돌 뿐이었고 결국 갈증과 배고픔은 유이한 개념으로써 아이의 내부에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지워지지 않는 어떤 운명의 표출처럼.

아이는 지독하게 고독했다.

이제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독한 잠은 다친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천천히, 그리고 여지없이 다가왔다. 잠과 싸우는 아이의 정신은 점차로 몽롱하고 흐릿해졌다. 마치 언젠가, 아주 어릴 적에 느꼈던 엄마 품에서의 노곤한 낮잠처럼. 그런데 왜 엄마는 늘 그렇게 바쁜 걸까. 아이는 그 이유가 자신의 아빠가 벌인 어떤 일련의 행위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탓에 자신의 부모가 완전히 갈라진 것도 알지 못했다. 아이의 존재가 머나먼 간극을 잇는 가냘픈 널빤지 역할을 하고 있었음도 알지 못했다. 이제 아이가 없어졌으므로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며 그중 누군가는 평생을 어떤 죄책감 속에 살 것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아이는 자신이 어떤 단체에 의하면 타입 그린으로 분류되는, 현실조정자인 것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으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나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저 비는 것밖에 없었다. 아이는 종교에 대해 무지했으므로 저 멀리서 비추어 오는 거대한 빛에 빌었다. 거대하고 따뜻한, 엄마를 닮은 빛.

제발요, 집에 가게 해주세요.

아이는 시퍼레진 입술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목이 너무 말라요.

거실 한쪽에 있던 정수기가 너무나 그리웠다.

배가 너무 고파요. 반찬 투정하지 말걸.

아이는 떠나기 전날 밤 콩자반을 먹지 않은 것을 기억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아이는 반쯤 짓이겨진 골판지 우주선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울었고, 온전히 혼자만의 고독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을 바랐다.

통신이 완전히 끊어지고 모든 것이 아이로부터 떠나갈 때, 아이는 마지막으로 추위 속을 응시했다. 추위 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주 깊은 어둠뿐. 아이는 반쯤 감긴 눈으로 무언가를 응시하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아이의 내부에 남은 한 조각 기억이 조용히 눈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저 멀리서 어떤 빛이 떠오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주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이는 눈을 떴다.

추위는 잦아들어 있었다. 아이는 눈을 부비며 이전과는 다르게 약간의 힘이 몸 안에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인지 몸이 가벼웠다. 마치 오랜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나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양이 울음소리.

아이는 몸을 일으키면서, 방금 자신을 깨운 것이 어떤 치즈 빛깔 고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양이가 아이의 옆구리에 두 발을 올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아이가 몸을 일으키자 그제야 바닥에 앞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아이의 다리에 머리를 문질러댔다.

넌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아이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특이한 옷차림 — 고양이에게 옷차림이란 말이 어울린다면 — 을 하고 있었다. 녀석의 털빛과 비슷한 색상으로 만들어진 우주복이 눈에 들어왔다. 헬멧 부분은 없고, 꼬리가 튀어나올 수 있도록 엉덩이 부분이 구멍 난 우주복. 정신은 잠깐 새 몽롱함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기 고양이가 있다니. 그것도 우주복 입은 고양이가.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시야에도 그 사실은 어딘가 기이하게 비추어지고 있었다.

멍해진 아이의 시선 끝에서, 고양이는 다시 가르랑대었다. 녀석은 여태 아이에게 머리를 문지르고는, 살짝 열린 텐트 문을 앞발로 톡톡 치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밖으로 나가자는 뜻 같았다. 아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녀석을 지켜볼 뿐이었다. 분명 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이윽고 고양이가 아이의 손등을 깨물었다.

아야!

녀석은 금세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열린 문틈 사이로, 거의 날아가듯 도망친 고양이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망막에 남았다. 아이는 왠지 녀석을 쫓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자신이 만들어낸 동굴에서 몸을 일으켰다. 몸은 지치지 않았고 뻐근하지도 않았다. 새로 태어난 것처럼.

아이는 텐트 문을 열고 나와 푸른 땅 위에 발을 내디뎠다. 두려움과 고통이 사라진 아이의 얼굴은 어느새 그 나이 특유의 호기심으로 덮여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이내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행성의 표면을 딛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공기는 상쾌했고, 배는 더는 고프지 않았다. 시원한 기분이 들면서 여태까지 마음을 잠식하고 있던 고통과 두려움이 차츰 스러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뛰어간다면, 정말로 어쩌면, 엄마를 만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리라. 우주로 나가, 혜성도 보고 운석도 보고, 여러 달들과 행성들을 본 이야기를 하리라. 정말 아팠다고 이야기하리라. 정말 무서웠다고 이야기하리라. 하지만 이제 괜찮다고 말하리라. 엄마를 다시 만났으니까. 이제 무서울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나 어디론가로 열심히 달려가던 아이가 만난 것은 엄마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이었다. 아주 거대한 불. 사람의 형체만큼이나 커다랗고, 동시에 이글거리는, 불.

아이는 달려오던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는 약간 무서워하는 얼굴로, 약간 호기심에 찬 얼굴로 불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불은 차분하게 타오르더니, 이내 일렁였다. 마치 사람이 껄껄 웃는 듯.

아, 안녕하세요?

아이는 불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윽고 불은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그 안에 들어있었던 한 존재를 드러냈다. 그는 짙은 피부에,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인간이었다. 성별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가 인간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언젠가 자신의 엄마가 이야기했던 그 존재, 그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이 사람이 아닐까 궁금했다. 신이라는 존재가 이 사람이 아닐까.

너 날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네.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고, 뒤이어 수줍게 말을 이었다.

무서운 사람 같지 않아요.

그러냐.

그자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뒤에서 천천히 타오르고 있는 불가로 아이를 이끌었다. 우주복을 입은 고양이는 어느새 그곳에 앉아 있었다. 아이가 푸른색 바위에 털썩 주저앉자, 녀석은 자연스레 아이의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녀석인데, 거 별나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불가로 다가갔다. 모닥불은 초록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 위에, 무언가가 맛있는 냄새를 내며 끓었다.

수프다.

그가 냄비 뚜껑을 열고 국자로 내부를 휘저었다. 아이의 입에 군침이 고였다. 코를 찌르는 고소한 내음. 언젠가 학교에서 한 번 나온 양송이 스프의 맛이 떠올랐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따뜻했던 맛이었다.

그자는 이내 어디선가 청황색 도자기 그릇을 꺼내서 수프를 한 국자 담았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푸른 숟가락을 불러내었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먹어.

저어, 혹시 마술사에요?

왜?

이런 걸 마구마구 만들어내잖아요.

네가 여기까지 골판지를 타고 날아온 건 마술 같지 않고?

어라,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아는 방법이 있지.

그는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그릇을 건넸다. 아이는 두 손으로 그 그릇을 받아들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은 함부로 먹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지금 아이의 정신은 오로지 허기와 갈증의 해소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수프를 한 술 떠먹었다. 곧바로 따뜻한 느낌이 목을 타고 흘렀다. 온몸에 새로운 온도가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너 아주 실력이 좋던데. 혼자 여기까지 오고.

근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긴장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이었다. 고양이가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이에게 뺨을 문질렀다. 아이를 위로하기라도 하는 듯.

나는 물기만 하더니 얘 좀 봐라.

그 존재가 부루퉁하게 내뱉고는, 다시 아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직접 쓰지 않았냐. 다르바라고.

진짜로 있는 곳이었어요?

네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그게 존재하지 않을 리는 없지.

그는 어느새 그릇을 다 비운 아이에게 수프 한 국자를 더 퍼주었다. 아이는 거절하지 않고 넙죽 받아들었다. 허기가 채워지려면 아직 멀었으므로.

그 행성들이 단지 네 우주에 존재하지 않을 뿐이야.

그게 무슨 말예요?

설명하려면 길어. 단지, 이 세상에는 하나의 우주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우주가 있고, 너는 그걸 넘나들며 여행을 한 거라는 것만 알아둬라.

그, 그럼 저, 집에 돌아갈 수는 있는 거에요?

아이는 문득 심각해져서 수프를 떠먹는 걸 멈추고 그에게 물었다.

물론, 너 혼자론 역량이 부족하단다. 그러나 걱정 마라. 내가 있잖아.

도와주실 거에요?

그럼.

그가 조용히 미소지으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어쩌면 도와주는 것 이상일 수도 있지.

네?

네겐 특별한 능력이 있어. 허나 넌 그 능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아무도 네게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까… 가르쳐 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아이가 그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았다. 그가 손가락 끝에서 불꽃을 만들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네게 그 능력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마.

그럼, 저두 나중엔 그렇게 불꽃이 될 수 있는 거에요?

아니, 이건 이 불꽃을 네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가능한 거야. 아직은 아냐. 네가 좀 더 자라서,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때…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그는 피식 웃으며 불꽃으로 무지개를 만들었다. 무지개는 이윽고 수백 마리의 작은 말로 변하더니, 공중을 돌아다녔다. 아이의 눈망울이 커졌다.

당장 배우면 안 될까요? 저 학교 쌤한테 칭찬도 들은 적 있단 말예요. 잘 배울 수 있어요.

일단 네 여행이나 끝마치고 생각하자꾸나. 네가 네게 스스로 건 제약을 풀지 않으면 어떠한 능력도 쓸 수 없어. 배우는 건 물론이고.

알겠어요.

어서 먹고, 일어나자. 갈 길이 멀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프는 먹을수록 기운을 돋우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더는 아프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어떤 기대감이 골수에서부터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는 문득 궁금해져 말을 꺼냈다.

그런데… 누구세요?

참 일찍도 물어보네.

아이는 머쓱해져 배시시 웃었다.

난 이름이 많다. 사람들이 별의별 걸로 다 불러대거든. 허나 너는 날 이름 하나로만 부르면 된단다.

그게 뭔데요?

팡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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