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얼굴을 한 15명의 남자가 작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맨 앞에 선 남자는 방 한가운데 놓인 원형 테이블 옆에 섰고, 13명의 남자가 뒤따르며 테이블을 둘러싸고 일제히 착석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늙은 남자는 옆에 마련된 의자에 홀로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옆에 선 남자가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17분 남았습니다."
테이블에 앉은 13명의 남자 중 검은 눈을 가진 사나이가 말했다.
"센트레일리아 시 시민의 20%가 나무로 변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격리 및 회수팀이 현재 그곳에 도착한 상태입니다. 규모가 큰 사건이니만큼 평소의 격리 절차를 적용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 회의 소집이 요청되었습니다."
"워싱턴 주의?"
"아니, 펜실베이니아 주입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기억 소거제를 이용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짙은 눈썹의 남자가 물었다. 검은 눈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센트레일리아 시의 인구는 1만 5천여 명에 육박합니다. 우리는 그만한 기억 소거제도 없고 그들을 오래 잡아둘 수도 없습니다."
"기자들이 이동 중입니까?"
갈색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말하자 테이블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헬기를 띄우는 것은 막았지만 이미 많은 차량들이 이동 중입니다. 통제가 불가능할 첫 번째 무리의 예상 도착 시간까지 17분입니다."
그는 덧붙였다.
"16분 남았습니다."
"기자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까?"
새된 목소리의 남자가 얘기했다.
"인원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금 파견된 팀은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시민들을 붙잡아두는 것에도 애를 먹고 있을 겁니다."
항상 눈이 반쯤 감긴 상태의 남자가 말했다.
"센트레일리아 시를 통째로 격리시키는 건 불가능할텐데, 이런 경우에는 보통 다른 사건을 터뜨리는 것이 정석 아닙니까?"
"언론 쪽에서도 이만한 사건은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안경 쓴 남자의 말에 금발 머리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사건을 은폐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관심을 끌 사건을 만들어야겠군요."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를 읽던 남자가 말했다.
"그것도 센트레일리아 내에서 말이죠. 기자들이 이미 그곳으로 이동 중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금발의 남자가 지적했다. 그 때 째진 눈을 한 남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화재는 어떻습니까?"
"센트레일리아를 불태워버리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무들도 다 타버릴 테니 모든 흔적이 인멸될 겁니다."
키 작은 남자는 반대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센트레일리아는 지하 전반에 무연탄이 매장된 도시입니다. 불이 거기까지 옮겨붙는다면 겉잡을 수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 편이 좋습니다. 불이 쉽게 꺼지지 않을테니 시민들을 모두 대피시킬 이유도 충분하겠지요. 더군다나 우리는 사라진 20% 이상의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앙의 이름을 빌릴 수 밖에 없습니다."
"15분 남았습니다."
테이블 옆에 서서 손목시계를 보고 있는 남자가 말했다. 단정하게 가르마를 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사건을 너무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불은 몇 년 동안이나 꺼지지 않을 겁니다. 쓸데없는 인명 피해도 발생할 거고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안경을 닦으며 말을 받았다.
"지금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최근 있었던 격리 실패를 포함한 몇몇 사고들 때문에 우리들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곧 베트남을 침공할 거라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실현된다면 우리의 실효성에 대해 압박을 넣을 겁니다. 이런 와중에 SCP의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진다면 재단이라는 존재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덩치 큰 남자가 첨언했다.
"소련도 우리를 돕지 않을 거요. 총리가 끌어내려질 위기니까. 정국이 혼란스러운데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거야. 까딱하다간 미국이 여길 꿀꺽할 겁니다."
키 작은 남자가 다시 반박했다.
"하지만 그런 측면이라면 오히려 센트레일리아는 더욱 보호받아야 할 곳 아닙니까? 그곳에 매장된 자원들을 모조리 버리게 된다면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엄청납니다."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남자가 표적도 없이 흘리듯 말했다.
"석탄은 빛이 바랬습니다. 이제는 석유의 시대죠. 이미 많은 사업체들이 길을 틀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바라봐도 센트레일리아를 잃는 것은 큰 손실이 되지 않을 겁니다. 손실이 된다고 해도 광산 하나 때문에 그들이 최후의 보루라고 믿고 있는 우리에 대한 지원을 그만두지는 않습니다."
그의 옆에 앉아있던 남자는 계속해서 종이를 읽어내려가며 말했다.
"화재는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촉박하죠."
"하지만 행정부가 좋아하지 않을 텐데."
갈색 수염을 가진 남자의 우려에 째진 눈의 사나이가 말했다.
"물론 이 일은 비밀에 부쳐져야 합니다."
"그렇군요, 민간 시설에 대한 공격이니 이 일은 약점으로 작용될 겁니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겠지요."
검은 눈의 남자가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테이블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다시 시간을 알렸다.
"14분 남았습니다."
"인명 피해는?"
테이블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하나 더 많아진 남자가 대답했다.
"석탄이 폭발하지는 않을 겁니다. 문제가 되는 거라면 유독 가스인데 시민들이 대피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고집쟁이만 제외하면 별로 사람이 죽는 일은 많지 않을 겁니다."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는 것치고는 말이지."
덩치 큰 남자가 말했다.
"도시 하나 치곤 말이죠."
남자는 벽 쪽에 앉아있는 노인을 힐끗하며 상대의 말을 반복했다.
"그럼 정해진 겁니까?"
새된 목소리의 남자가 물었다. 반쯤 눈이 감긴 남자가 말했다.
"준비를 시켜둬야겠습니다. 결정이 어떻게 나든 말입니다."
가르마를 탄 남자가 말했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눈에 띄는 무기는 안됩니다. 지금은 살벌한 분위기니까요."
"평범하게 기름으로 합시다."
안경 쓴 남자의 말에 눈 째진 남자가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대며 제안했다.
"알겠습니다."
테이블 옆에 서 있던 남자가 휴대 전화를 꺼내며 방 밖으로 나갔다. 금발 머리 남자가 물었다.
"센트레일리아를 불태우고 나서는 어떻게 됩니까?"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멈추며 그 남자가 말했다.
"그곳에 묻힌 석탄의 매장량을 생각할 때 불은 적어도 200년 이상 지속될 겁니다. 처음에야 거주민들이 버티고 있을 수 있겠지만 반세기 안에 센트레일리아는 유령 도시가 됩니다."
짙은 눈썹의 남자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그곳이 쓸모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은 눈의 남자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 건은 나중에 다시 다루도록 하죠. 우리들이 의심받을 위험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새된 목소리의 남자가 대답했다. 검은 눈의 남자는 고개를 돌려 원탁의 반대편을 바라보며 물었다.
"추후에 발각될 위험은요?"
"인공위성으로 우리 측의 요원들이 포착될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인 신상은 분간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들에게 화살이 쏠릴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바라본 남자는 종이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 때 밖으로 나갔던 남자가 휴대 전화를 손에 든 채 들어왔다.
"절차가 준비 중입니다. 13분 남았습니다."
갈색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물었다.
"화재로 인해서 변칙적인 위협이 가해진다면 어떻게 됩니까?"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검은 눈의 남자가 차분히 그것을 깼다.
"운에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시민들이 나무로 변했다는 것 뿐입니다. 불이 이 현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하고 그것의 여파 또한 감당해야 하겠죠. 그럼 투표하겠습니다. SCP를 은폐하기 위해 센트레일리아 시에 대화재를 일으키자는 제안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테이블을 둘러싼 남자들이 순서대로 거수하며 발언했다. 검은 눈의 남자도 손을 들고 말했다.
"동의합니다. 만장일치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묻겠습니다."
그는 벽 쪽의 의자에 홀로 앉아있는 노인을 향해 물었다. 노인은 옅은 숨을 내쉬며 눈을 감더니 천천히 다시 뜨며 말했다.
"윤리위원회는 이번 회의의 결정에 동의합니다."
테이블 옆에 서 있던 남자가 휴대 전화에서 귀를 떼고 말했다.
"회수팀이 개체를 발견했습니다. 대상은 수송 가능하며 안전합니다. 현재 최소한의 요원들이 그것을 가지고 복귀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작전을 실행합니다."
"작전명을 정해주십시오."
"작전명은…… '방화벽'입니다."
13명의 남자와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테이블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휴대 전화로 지시를 내렸다.
"작전을 실행하세요. 작전명은 '방화벽'입니다. 12분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