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룡의 벗

karkaroff 2019/10/09 (수) 21:21:18 #82965128


러시아에는 ZATO, 요컨대 폐쇄도시가 여럿 존재한다. 도시의 출입이 엄격히 관리되고 도시에 따라서는 도시의 존재조차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아직 공식 지도에는 실리지도 않은 ZATO도 존재한다.

이것은 어떤 ZATO 출신자의 이야기다. 그는 아프간 귀환병으로, 소련에 귀국한 뒤 당시 상사의 주선으로 그 도시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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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그는 우랄산맥 근교의 ZATO에서 정부시설의 건설에 종사하고 있었다. 메즈고리예와 달리 그 도시는 평화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전장에서 돌아온 전직 군인 같은 사람들 중심으로 주민이 모집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매일, 오직 한결같이 지하에서 실드머신을 굴리고, 보강하고, 격벽을 세워 외부와 단절시키고, 시설 내부도 구획구분을 하는 등, 냉전 초기부터 끝없이 수십년 간 계속된 공사가 아버지 세대 때부터 계속되고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정부용 핵대피호 건조인지, 군의 비밀기지인지, 믿기 힘든 일이지만 소련 정부는 그런 종류의 시설을 우랄산맥에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묘한 것을 맞닥뜨렸다.

karkaroff 2019/10/09 (수) 21:29:44 #82965128


단단한 암반 틈에서 발굴된 “그것”은 낡은 석실이었다고 한다. 검과 미이라가 안치된 관과 용이 그려진 방패가 1개씩 놓인 작은 방이었던 것 같다. 방패에는 한 마디 짧은 말이 새겨져 있었다.

「즈메이라는 용사 여기에 잠들다」

그것 뿐이었다. 이것뿐이면 신기한 발견으로 끝났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다. 당시 지도부는 석실을 메우고 역사적 발견은 못 본 셈치고 석실을 우회해 작업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무슨 영화에서처럼 석실을 부수고 미이라를 불태우거나 그런 부정탈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못 본 일로 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 나름 경의의 표시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부터 기묘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몸에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 여기저기에 비늘이 솟아나오고, 눈을 감고 있어도 사람의 체온을 느껴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덧니가 이상하게 날카로워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파충류의 신체 특징이 아프간 귀환병 출신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석실이 발견된 블록을 굴착하던 작업원들, 이어서 이를 감독하던 정치장교, 나중에는 그 블록에서 떨어진 곳에서 일하던 작업자들에게까지 증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karkaroff 2019/10/09 (수) 21:37:19 #82965128


당연한 일이지만 고위층이나 지도자들은 전염병, 기생충, 마약 부작용 등을 의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토양 샘플을 채취해 봐도 문제가 될 법한 병원체는 검출되지 않고, 헌병이 조사해 봐도 불법 약물이 발견되지 않고, 인원이나 일부 정치장교들을 검사해 보아도 이상다운 이상은 그 신체적 특징 뿐이었다.

증상이 생긴 작업원들은 그대로 작업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건강이 문제가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고 국가에 충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노동해서 보여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파충류의 특징이 나타난 자들은 그들 나름 국가에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지도부와 정치장교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았나보다. 지도자들은 우회한 무덤을 파내서 단서가 없는지 조사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동방교회가 나타났다. 현대에도 이단심문을 하는 러시아의 성직자들 말이다.

karkaroff 2019/10/09 (수) 21:43:10 #82965128


교회는 증세가 나타난 작업원들을 심문하여 악마의 소행이다, 나쁜 용이 악마처럼 사람에게 붙어 재액을 일으켰다, 그렇게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놈들은 현대에까지 악마를 잡고 있었다. 성수에 빠뜨리고, 불에 가까이 하고, 성인을 새긴 인두로 단근질을 했다. 결과는 엉망이었다. 몇 명이 희생되었고, 그 중 한 명은 익사였다. 누군가는 쇠약해져 죽음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날이 찾아왔다. 악마사냥이 시작된 지 2주 정도가 지난 날 아침이었다. 동방교회의 이단심문관들이 모두 아무런 예고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숙청? 도주? 그런 소문이 떠돌면서도 수색대가 파견되었고, 마침내 비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그들 전원이 석실에서 심장이 도려내진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벽에 옛 말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용의 벗을 더럽힌 짐승에게 갚아주다

동방교회는 이후 손을 떼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지도부는 작업원들을 내보내 치료한 후 작업에 복귀시켰다고 한다. 이후 그 작업장에서는 예전처럼 큰 증상이 나오는 일은 없지만, 지금도 그때의 모습이 몸에 나타나는 작업원들이 나온다.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준 그는 술자리에서 14잔째 보드카를 한 손에 들고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확실히 농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때 분명히 보았다.

팔에 남은 군청색 비늘을…… 그리고 ZATO에 대해 말하는 그의 그 기묘한 눈동자를.

아직 그 땅에는 용의 가호가 숨쉬며,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시간을 느끼게 하는 의미있는 헛소리였다. 북녘 땅에는 용의 피가, 그 마음이,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과 함께 숨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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