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해피엔딩을 원한다고?

보내는이: 라일 네이스미스Lisle Naismith [pcs.noitadnuof|htimsianl#pcs.noitadnuof|htimsianl]
받는이: 라일 네이스미스 [pcs.noitadnuof|htimsianl#pcs.noitadnuof|htimsianl]
제목: 내게 쓰는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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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러 이래야 하냐고?


예를 들어 보자. 주홍왕이 깨어났다. 주홍왕은 아침마다 제물로 바쳐진 처녀 4,000명을 잡아먹는다.

2,374번째를 한창 잡아먹는 중에, 주홍왕은 되게 재밌는 "똑똑 누구세요?" 시리즈 농담이 생각난다.

주홍왕은 웃다가 갑자기 숨이 막힌다. 종들 중에 CPR할 줄 아는 이는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살덩어리 신과 기계 신이 서로의 갈등에 최후의 종지부를 찍기로 결정한다. 둘은 사르킥 숭배자들 모두를, 그리고 부서진 신에게 충실한 전사들 모두를 최후의 전투로 데려간다.

전장은 웜홀의 저쪽 편 끝이었고, 그 웜홀은 닫히고 다시 열리지 않는다.

누가 이겼는지 모른다는 점은 문제다. 하지만 몰라도 우리는 잘만 산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서랍이 빼곡하게 들어찬 무한히 큰 벽을 찾아낸다.

우리는 서랍 하나마다 변칙개체 하나씩을 집어넣고, 개체들이 완벽하게 만족하고 있다가 나중에 우주의 열죽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죽어가며 비명을 지른다.


뭐하러 이래야 하냐고?


2016년 5월 12일. 봄날의 며칠 안 되는 쉬는 날이다. 나는 주전자에 담긴 우유를 유통기한도 확인하지 않고 직접 입속에 들이부었다. 아무래도 이틀 전에 상했을 텐데. 상하지는 않았다. 아직 신선했다.

8:00, 우리 페니Penny 네이스미스가 학교로 가고, 우리 로사Rosa 네이스미스는 오늘은 나중에 페니 때문에 학부모 면담을 갔다와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갈게." 내가 말했다.

"당신이 왜 가." 로사가 말했다. "당신 모처럼 쉬는 날인데."

"지난주엔 침입성 생각으로 이루어진 뱀이 D계급 하나 산 채로 잡아먹는 것도 봤어. 개싸가지 선생님 만나보는 건 일도 아니지."

로사가 얼굴을 찡그렸다. 의심쩍어하는 표정이다. 글래스맨 씨인가 보네. 내가 생각했다. 생각 독사가 벌써부터 그리웠다.

오전 9:00. 미모사 칵테일 한 잔을 했다. PBS 방송에서 닥터후 클래식 시즌 연속방송이 나왔다. 그 옛날 톰 베이커 닥터 하던. 주제곡이 나올 때 내가 입이 귀에 걸리게 웃는 모습을 로사가 봤다. 그리고는 웃었다.

오후 3:00. 글래스맨Glassman 교감이 우리 딸이 "불량배한테 잘 대처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그럼 우리 딸을 도발하는 애들한테 뭔가 조치를 해 줘야 하지 않겠나요?"

교감이 말했다. "아버님, 페니가 다 크면 더 강인하게 페니를 키워 줄 시간도 없습니다. 평생 강보에 싸서 기르실 겁니까, 아니면 페니의 성격을 뜯어고쳐 주시겠습니까?"

반 시간 동안 웃으면서 끄덕끄덕 하고 있다가, 나는 지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페니가 막 세례를 받을 때라면서.

사실은 이 사진은 퇴역된 지 얼마 안 된 나르키소스 등급 시각적 인식재해 개체였다. 교감이 입에 게거품을 보글보글 무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로서 보람찬 일 하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리면 O5 평의회한테 죽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글래스맨 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건강하다. 달라진 점은, 이제는 페니가 울면 시야 밖에 숨어 있던 7피트짜리 장어 인간이 교감의 눈알을 먹어치워 버릴 거라는 강박증을 갖고 계시다는 점이랄까.

오후 6:00. 페니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가 페니한테 세상에 무슨 욕이 있는지 가르쳐 줬다. 페니는 너무 웃은 나머지 헉헉 숨까지 찼다.

오후 8:00. 페니는 흐뭇하게 일찍 자러 갔다.

오후 8:30. 재단 이메일 서버에다 자세히 쓰긴 좀 난감한 이야긴데, 10년이 지나도 로사는 실력이 여전하다. 생각하려니 아직도 골반이 아파온다. 갓 블레스 아메리카.


해피엔딩을 원한다고?

엿먹어.

새드엔딩을 원한다고?

또 엿먹어.

다만 엔딩 자체만이 있을 뿐이다. 15년이나 이 그림자 파시스트 조직에서 온갖 악마들을 상자 속에 가두는 데 열중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좋고 나쁜" 것은 완전히 주관적 개념이란 것이다. 누군가에게 ZK급 현실 오류인 것도 누군가에겐 오르가슴일 뿐이다.


그러니까.

뭐하러 이래야 하냐고?


왜냐하면 가끔은, 잠시만이라도, 잘되는 때도 있으니까.

어떤 상황이든, 얼마나 나쁘게 돌아가든 - 살아 있는 한 잘되는 날은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알겠지, 라일. 페니랑 로사한테 너는 자랑스런 사람이야. 어딨는진 몰라도 헨더슨 박사에게도.

허무주의자, 포기꾼에게 유혹되지 마. 그 새끼들만 잘 가둬 놓는다면, 2016년 5월 12일은 얼마든지 다시 찾아올 거야.

그래도 정 어쩔 수 없다면, 적어도 기지 핵탄두 폭발시키는 건 톰닥 에피소드 다 본 다음으로 미뤄 줘.

사랑을 담아,
재단 제59기지 이사관
라일 네이스미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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