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의 날

kawai-zintarou 2021/12/12 (토) 19:30:34 #2012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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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의 날』이라고, 아는 사람 좀 있으려나.

지역마다 다른 것 같은데, 내가 사는 이와테현에서는 12월 12일이 산신의 날이다. 이 날, 임업 종사자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입산하지 않거나, 일찍 산에서 내려온다. 그러고 나서 안전기원제나 망년회를 하기도 한다.

나한테 벌채의 기본을 가르쳐 준 사장(師匠; 스승 장인)은 구식 인간이라, 정말 산에 한 발짝도 들이지 않았다. 숲길 입구에서 가지 끝을 잘라내 그루터기에 꽂고 합장을 하기도 했다.

왜 입산을 꺼리는 것일까? 우리 사장 왈, 산의 신님이 나무의 그룻수를 헤아리는 날이라, 금기를 깨뜨리면 〈나무가 되어버린다〉고 진심으로 그러더라. 그렇게 되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외치는 사장의 눈을 보니, 마음 깊이 산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산의 은혜를 받는 일꾼으로서, 산의 신은 수호신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이기도 하다. 산에서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한 룰 가운데, 당연하다는 듯 산신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한 룰이 섞여서 녹아든다. 그렇게 사람은 산과 공존한다.

kawai-zintarou 2021/12/12 (토) 19:45:48 #2012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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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 떠들었지만, 젊었을 때는 솔직히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산의 무서움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외경이라던가 공포라던가 존숭이라던가 그런 감정은 희박했다.

게다가 당시 나는 산일이 바빠서, 그런 정신적인 사고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었다. 맡은 일의 납기, 마친 일의 대금이 언제 들어오는가. 그런 것만 생각하며 흘려보낸 시절이었다. 일이 많은 때면 다소 몸에 무리를 해서라도 산에 들어가고 했다.

쉽게 말해, 신바람이 나 있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었을 무렵이었으니까. 즉, 가장 위험한 ”익숙해져서 방심”해버리는 나이였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산신의 무서움의 편린을 맛보았던 것이다.


10년쯤 전 『산신의 날』. 나는 아마 측량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해는 눈이 적게 내린 해였다. 작업 진척이 느려서, 나는 초조하게 혼자 산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 느낌으로 입산했던 탓에, 나는 자꾸 실수를 연발했다. 우선은 목적지를 향하던 도중 길을 잘못 들어 버렸다. 그것을 깨닫고 급히 돌아나오려던 순간, 발이 미끄러져 완만한 비탈로 굴러떨어졌다.

떨어진 낙차는 몇 미터 정도. 하지만,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움직임이 곤란해져 버렸다.

거기서 더욱 판단을 잘못 했다. 나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비탈을 도로 올라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선택지에서 제외해 버렸고, 어떻게든 하산할 수 있겠지…하는 안이함으로 길을 잃은 상태로 비탈을 내려가는 것을 선택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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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탈을 20분 정도 내려가서, 살짝 안개 낀 것처럼 되었을 무렵, 묘한 것을 발견했다.

등산로였다.

아무 것도 없던 비탈 도중에서, 돌연 하산 전용 등산로 같은 것이 시작되었다. 분명히 짐승의 길은 아니고, 이런 데에 숲길을 내 봐야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제대로 정비된 길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길인 것 같은, 쎄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거기까지 무언가를 느끼면서, 결국 그 길을 타고 산을 내려가기를 택했다. 내려가면서 표식삼아 나무에 분홍색 마킹 테이프를 잘게 자른 것을 묶어가며 내려가고 있으니, 최악의 경우 그것을 되짚어 돌아가면 조난당할 일은 없으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완전히 판단착오였다.

kawai-zintarou 2021/12/12 (토) 19:52:08 #20124421


그 길은 내려가기가 정말 편했다. 양 옆으로는 조릿대와 억새가 깎여 있고, 키 작은 풀밖에 없었다. 내가 원래 사용하던 하산로도 나소 벌초를 하긴 했지만, 그 길 주변은 분명히 특이했다. 게다가, 정비 상태가 내려갈수록 훌륭해졌다. 누가 정비한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왜 여기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려가다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평성 일구년 십이월 십이일 오전 십육시 사공분경
이 부근에서 ■■■ ■■씨(당시 육십오세)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씨에 관해 짐작가는 바 있으신 분은 다음으로 연락 주십시오
(전화번호)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이름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여자 이름이었던 것 같다. 얼굴 사진이 붙어 있었을 법한 자리의 흔적도 있었지만, 사진은 떨어지고 없었다.

소름이 끼친다고 할까, 조용히 술렁술렁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날짜부터 오늘은 『산신의 날』이었음이 강하게 재인식되었다. 어째서인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산신 이야기를 하던 사장의 눈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조금 더 갔더니, 한층 더 묘한 것을 발견했다.

나뭇가지에 누군가의 쌕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집어 보니, 동물이 물어뜯은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안에는 몹시 낡아 보이는 카세트 녹음기가 들어 있었다.


에스오에스 에스오에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길을 잃고 다쳐서 몸을 못 움직이겠다
장소는 골짜깃가 노란색 테이프를 두 개 묶은 커다란 삼나무 근처
제 이름은 ■■■ ■■입니다.
(수십 초 잡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가슬가슬거리는 소리 때문에 듣기가 힘들었는데, 그렇게 들렸다. 이름은 잊어버렸다. 좀전의 실종자 간판은 여성이었는데, 이건 또 완전히 남자 목소리였다. 녹음된 것은 이것 뿐이었고, 그 남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살아남았는지, 산중 어딘가에서 숨이 끊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남자가 무언가에게 사과하고 있었다는 것 뿐이었다.

kawai-zintarou 2021/12/12 (토) 20:00:00 #20124421


그 즈음부터, 왠지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춥지는 않았다. 그런데, 닭살이 가라앉질 않고 치아가 따닥따닥 울렸다. 삐었던 다리는 욱신욱신 열을 내며 다시 심하게 아파왔다. 뭐랄지 끔찍히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이 길을 계속 가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산에서 수도 없이 「뭔가 위태로운 느낌」을 체험했다. 그와 비슷한 감각이, 그러나 다른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져서 닥쳐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뒤돌아본 순간이었다.



길을 잃었나요?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있을 수 없다. 이런 산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쿵쿵대서 아팠다.



「아뇨, 돌아가는 길은 압니다」



일하시나요?



「네, 근데 이제 내려갈려구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핑크 테이프를 믿고 지금까지 내려온 비탈을 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픈 다리를 감싸며 비탈을 오르다가, 딱 한 순간 뒤를 돌아봤더니, 새하얗고, 둥그스름한 곡선이 잡힌, 뭐랄까 여성의 나체의 모양 같지만 〈다른 무언가〉가 흘끗 보였다.

kawai-zintarou 2021/12/12 (토) 20:06:57 #2012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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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악으로 깡으로 발이 미끄러졌던 지점까지 올라가서, 숲길을 되돌아나왔다. 그 도중에는 딱히 아무 일도 없었다.

덧붙여, 주워온 카세트 녹음기는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재생해도 잡음밖에 나오지 않아서,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들어갔던 산에서 행방불명자가 나온 일은 없다고도 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계속 물고늘어졌지만, 「그럼, 그 사람 이름은?」이라고 경찰이 묻자, 왜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단순 분실물로 처리되었다.

나중에 그 산에 다시 올랐다. 아까부터 덕지덕지 첨부한 사진은 그 때 찍은 것들이다. 누군가가 정비한 수수께끼의 등산로도 확실히 있었다. 내려가 보니 평범하게 포장도로로 연결되었고, 길 끝에 무언가 있다는 느낌 같은 것도 없었다.

그 길을 찾은 김에 행방불명된 할머니에 관해 쓰여진 간판도 찾아 보았는데, 그건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뭐라도 답 같은 무언가가 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결국 내가 보았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산신〉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신님답고 어울린다. 그래서 나에게 그것은 〈산신〉이라고 치면 그만이다.

어쨌든, 산에 <그러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처음에도 말했지만, <그러한 존재>와 공존하기 위한 룰이, 산에는 있다.

『산신의 날』에 입산해서는 안 된다는 룰. 이것은 경계를 넘어 산신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산신의 날』은 다른 영역을 헤메이기 쉬운 날이니까, 산에 오래 있지 말아라…고. 옛사람들은 가르쳐 왔던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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