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파도가 코끝을 향해 밀려온다. 노란 햇살은 우릴 향해 방긋 웃고 있다. 주위의 고요한 배경 음악 속에서 한쪽에선 젬베를 두들기며 본인 만의 리듬을 찾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고뇌에 빠져있었다. 그 둘 속에서 나는 한가로운 낮의 여유를 즐기며 이렇게 외쳤다.
“니미 씨발.”
우리는 표류 중이다.
“아 왜 또 뭐여.”
옆에서 젬베를 두들기던 청년은 확연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한다.
“아직도 불만 있어?
“아니…하아…그냥 답답해서…”
표류 건으로 싸운 지 1시간도 안 지났으니 명식이가 저런 반응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짠 내가 올라오는 바다, 찌는 듯한 더위 이런 불쾌지수가 폭발하는 환경이지만 아까 전에 한번 부딪혀서 감정의 마모가 한계치에 다다른 탓인지 나도 모르게 먼저 꼬리를 내렸다. 이 와중에 찌푸린 미간 그대로 고정한 채 책을 읽는 대호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대호야. 뭐 어떻게 될 거 같냐?”
“잠깐만…일단 배터리 쪽에 박혀있는 초상역학 구조의… 이게 문제가… 하 씨발 가지 새끼들, 예체능 아니랄까 봐 존나게 글 못 쓰네 씨벌 것. 뭔 매뉴얼이 이렇게 알아먹기 힘드냐.”
“우리도 예체능이야 병신아”
“이과였으면 벌써 유턴해서 부산항 입항했제. 창수 인정?
“인정”
“대호도 인정?”
“아 닥쳐봐 씨발.”
처음에는 좋아라 했다. 가지 측에서 요트를, 그것도 변칙 뭐시기가 박혀서 요트 운전을 몰라도 쾌적하고 빠르게 항해가 가능하다는 말만 듣고 우리 셋은 곧장 요트를 받아 들고 태평양으로 달려든 것이었다. 물론 주의사항이니 설명서니 씹어버리고 출발한 우리 문제도 있기야 하다만 그래도 출발한 지 며칠도 안 지나서 GPS를 비롯한 모든 게 망가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배 이름도 극단 이름을 따 떡갈나무로 짓고 야심 차게 출발했건만…
“대호야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
“하…그래 썅…”
‘사람이 쌀밥만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은 영양실조에 걸릴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야채도 먹고 고기도 먹고 가끔은 간식도 먹는 거죠. 뮤즈도 마찬가지입니다. 뮤즈의 양식은 경험이고, 다양한 경험에서 뮤즈는 성장한 채로 찾아오는 겁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공연하던 때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 정확히는 유랑극단의 가지였던 ‘개척자’의 리더가 입단을 제안하면서 나한테 한 말이었다.
솔직히 딱히 이야기에 집중 안 했다. 내가 집중한 때라고는 우리가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게 지원해주겠다는 말 한마디. 아마 나머지 둘도 똑같았을 거다. 명식이는 입단하고 1달째까지는 무슨 국비 지원인 줄 알았다고 했으니깐. 변칙 뭐시기 뭐시기 음악도 처음에는 뭔 신기술 비슷한 거 싶었지만 입단한 지 2달쯤에 ‘떡갈나무의 날’에 참가했을 때…하, 그때 대호 새끼 표정 등신 같았는데.
우리는 찻잔 속의 개구리였다. 그래서 국내외 여러 잎과 가지 분들에게 변칙효과를 가르쳐 달라 부탁했고 생각보다 쉽게 음악에 적용시켰다.
정확히는 간단한 변칙 효과만으로도 우리가 만족했다는 뜻이겠지만, 어쨌든 입단한 지 1년 조금 안 되고 나서 우린 다시 공연을 나섰다. 하지만 우리의 세상이 바뀐 만큼 우리의 공연 또한 만족스럽지 않았고 마음 편히 공연할 수 없게 된 걸 알게 되었다. 그때쯤 해서 이 떡갈나무 호 이야기를 들었고 지금…
“아니 씨발 물 아깝게 그렇게 처마시냐?”
“아, 그럼 목 맥히는데 걍 뒤져?”
저러고 있다… 씨발…
떡갈나무 호는 바다 한 켠에서 며칠 동안 둥둥 떠다니고 있다. 멀리서 보면 참 아름다운 광경일 건데…
“아 시발 배부르다… 나 좀 자도 되냐?”
“쌉소리 말고 대책 좀 생각해 봐.”
속은 이미 멍청이 3명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 편하게 밥이나 먹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멀리서 본 절경은 가까이서 보면 곪아 부르터져 있던 것이다.
“에이 씨… 알았어. 그럼 잠깐 보러 간다.”
대호가 말을 남기고 요트 뒤편으로 멀어지자 우리 둘은 서로 한숨을 쉬며 식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대호 새끼가 그래도 머리 좋아서 다행이지.”
“그니깐 말여. 대단하지 저 녀석도. 악기 하나 배우는 것도 버거운디.”
“솔직히 우리 둘은 머리 두드리면 네 젬베보다 더 좋은 소리 남.”
“어헣어허헣. 그런가?”
일부러 멍청한 소리로 웃는 명식이의 얼굴을 보니 식기를 치우는 손이 가벼워진 듯하였지만 이내 다시 현 상황이 머릿속에 들이쳤다.
떡갈나무 호의 물건 중 작동하지 않는 물건들만 해도 엔진, 자동 항행 시스템, GPS, 국소 공간 단축기, 긴급 초상 신호기 등 견식이 모자란 내가 봐도 중요한 물건들이 산더미였다. 대호 말로는 배터리에 장착된 부품의 문제인 것 같다 하였으나 대호도 이걸 잘 아느냐 하면은 그것도 아닌 게 대호는 그저 우리 중에 가장 잘 아는 것 뿐이지 전문적으로 관련 내용을 배운 녀석이 아니였다.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당장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극단의 기술 감독님 영상과 처음 가지에게 받았던 매뉴얼과 잡지 및 몇몇 책자, 그리고 대호 왈 "존나게 기초적인 지식"에 의존하여 이리저리 만지고 있을 뿐이였다.
“야. 얼굴 풀어 또 뭔 생각이여?”
“…뭔 생각 하겠냐."
에휴. 긴 한숨 소리를 뒤로 한 채 명식이는 식기를 정리한다. 여기서 내 고민이 끝나면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 유랑의 목적은 '떡갈나무의 날'의 음악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재현하겠다는 목표를 이루는 것이었고, 그것은 우리 셋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아직도 그 시행착오 중이다.
그러던 와중에 길어봐야 3, 4일이라고 생각했던 바다 생활, 더 정확히는 악기에 치명적인 짜디짠 습기가 가득한 바다 생활을 하게 되니 연습은커녕 제습제를 어떻게 하면 오래 쓰고 재활용할지 걱정해야 할 판이였다.
이렇게 고민으로 가득한 나를 신경이나 쓰는지 명식이는 젬베를 다리 사이에 끼운다. 손을 잠시 풀던 그는 손바닥으로 젬베의 중앙부터 시작해서 이리저리 통통 튀어 다니기 시작했다. 손바닥에서 만들어내는 청명한 소리는 듣는 그 잠깐에는 고민을 녹여주기에 나는 내심 걱정했던 부분을 조심히 물어보았다.
“그거 괜찮아? 바닷바람 계속 맞혀도?”
“걱정 말어. 내가 알아서 잘 할테니껜.”
확실히 그의 젬베는 매끄러운 울림통을 통해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 소리에 군더더기나 잡음따윈 없었다.
퉁퉁 소리와 통통 소리가 어우러짐에 나도 하나 얹어야 한다는 생각에 뒤편에 있던 기타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습도 조절기와 방습제로 덕지덕지 쌓여 있는 노란 빛 기타를 꺼내어 줄을 감고 쳐보니 소리가 먹먹한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니 몇 마디 쳐 보지만 거슬리는 잡음만 되어 이내 젬베의 소리마저 멎게 되었다.
“어허…거 제대로 물먹었구먼”
“하 씨… ‘떡갈나무의 날’ 때 쓸려고 이것저것 해놨는데… 넌 젬베에다가 방습제를 얼마나 넣었어?”
“나? 뭐 그냥 대충 넣었는디.”
“하 씨… 난 너처럼 온종일 친 것도 아닌데 뭐냐”
한숨 쉬면서 괜히 기타의 바디와 넥을 쓸어보니 미세하게 변형이 일어난 거 같아서 마음 한구석에 돌덩이 하나 얹혀버렸다. 썩 맘에 드는 녀석이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손으로 바디를 더듬어 봤지만 쓰다듬으면 쓰다듬을수록 어떻게 변형됐는지 더 확실히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다시 방습제를 갈아주고 주섬주섬 기타를 집어넣었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 보니 따가운 바람에 괜스레 눈살이 찌푸려진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찌르니 속마저 역해진다. 멀미가 올라오는 듯하여 한구석에 앉으니 이번엔 잡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려 하니 밀려오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지친 정신을 싸매고 잡념을 피하기는 무리인 듯하여 그대로 눈을 감고 잡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음악 장비를 한 아름 끌어안고 한 도심을 달린다. 장비 일부가 떨어지고 서로 부딪혀서 울림통이 일그러진다. 거친 숨소리와 대호의 고함소리, 그리고 멀리서 중무장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토가 나올 정도로 달려가니 명식이와 선배 잎의 일원분이 탄 벤 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팽개치듯이 벤에 타니 악기가 우그러지고 줄은 끊어져 있다. 우리들의 게릴라 공연의 모습이었다.
“야 거기서 뭐 하냐? 할 거 없으면 이리 와 봐 새끼야!”
우그러진 악기와 내 기타가 겹쳐 보이던 그 순간 대호가 또 어디선가 찾은 스패너를 손에 쥐고 뒤에서 외친다. 가서 대호를 도와주면 갑갑한 마음을 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직접 가보니 복잡한 기계 사이에서 다른 스패너 하나가 기계에 박혀있었다.
“거 스패너 잡고 존나 재껴서 벌려. 너랑 내가 아무리 지랄해도 안망가지니깐 그냥 존나게 벌려. 힘 풀릴 거 같으면 무조건 말해. 아니면 나 손 잘린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스패너를 붙잡으니 생각보다 묵직했다. 잠깐 놀랐지만 이내 손가락에 힘 꽉 주고 팔 근육을 있는 힘껏 부풀리니 잡념은 사라지고 온 신경을 스패너에 집중시켰다.
“자 벌려. 더! 더! 존나 세게 벌려봐! 그렇지! 그대로 유지해!”
끼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기계 사이를 젖히니 대호가 벌어진 틈 사이로 손에 든 스패너로 무언가 통통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슬쩍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드라이버로 무언갈 더 조이는듯한 행동을 하였다.
“됐어! 확 놓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놔”
조금씩 힘을 풀어서 무거운 쇳덩어리를 원상태로 되돌리니 별로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팔 근육이 아리고 손바닥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깨나 힘을 쓰니 기분이 개운해져서 이런 땡볕에서라도 조금 더 힘을 써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우 씨 손 아파…대호야 얼마나 걸릴 거 같냐?”
“하아…모르겠다. 시발… 솔직히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일단 해볼 수 있는 부분만 해보고 있긴 하는데…뭐 악화만 안 되길 빌어야지…”
달아오른 손바닥이 이젠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다시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하는 대호 뒤에서 공구를 전해 주고 간단한 일을 도와준다. 그의 손짓이 지나갈 때마다 일말의 기대와 희망이 눈앞에 아른거리다가 가끔 내뱉는 대호의 한숨과 욕지거리에 희망이라는 환상은 우울감과 고통으로 바뀐다. 먹먹한 표정으로 대호 옆에 있으니 대호의 손짓도 이내 멈춘다.
“아니 근데 씨벌 명식이 새끼는 뭐하고 너 혼자 도와주냐?”
“몰라. 안에서 젬베 두들기고 있겠지.”
“씨벌놈이. 오라고 해. 넌 가서 좀 쉬고”
“아냐. 좀 더 도와줄게”
“그 새끼 버릇 나빠져서 안 돼. 빨리 불러”
대호의 호령에 손에 들고 있던 공구를 놓고 주섬주섬 일어났다. 고된 노동으로 피하던 잡념이 이때 다 싶어 비집고 들어온다. 명식이에게 향하는 그 짧은 순간 잡념은 나에게 보기 싫은 기억을 보여준다.
한 남자가 씁쓸한 표정으로 공구를 들고 온다. 우리에게 변칙성을 알려주던 잎의 리더다. 그의 뒤에서는 관객이었던 사람들이 웃고 있다. 사람의 표정이 아닌듯한 얼굴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웃고만 있다. 얼굴 근육만 움직이는 그것들을 뒤로한채 공구를 든 남자는 악기에 장착된 기계를 분해하며 이리 되뇐다. 그나마 우리가 수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는 대충 명식이를 부르고 갑판 위에 앉아 기댔다. 멀리서 지켜보니 대호의 움직임이 꼭 그때의 그 리더의 모습을 닮았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몸을 배의 움직임에 맡기니 아직도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떡갈나무 위의 자신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석양을 배경으로 요트 위에서 분위기 있게 연주하는 우리 셋의 이미지를 상상했건만 실상은 우리의 미숙한 행동과 떡갈나무의 고장으로 고친 파도 위에서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표류하는 멍청이 셋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 우리의 연주를 들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타는 틀어지고 기계도 다루지 못하니 공연도 못 하고 사람들의 억지웃음만을 끌어내는 말라붙은 우리의 떡갈나무만이 있었다.
“뭐하냐.”
명식이가 나 있는 곳으로 와서 뚱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보아하니 대호 녀석이 힘 좀 쓰는 거 시켰다고 도망쳐 온 것이 분명했다. 어떤 말을 해야 이 새끼한테 내가 기분이 별로라는 걸 안 들킬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네 놈의 썩어빠진 근성을 고칠 방법이 뭐가 있나 고민 중”
“응 니 얼굴”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해서 고른 실없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니 그사이에 젬베와 간이의자를 꺼내와서 다리 사이에 끼우는 명식이가 보였다. 다시 한번 명식이의 손바닥이 젬베 위에서 통통 튀어 오른다.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니 잡념을 뒤로하고 소리와 마주 볼수 있었다. 명식이의 젬베 소리에 마치 파도마저 잔잔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좀 더 가까이 몸을 당겨 보니 젬베의 울림통이 살짝살짝 울리고 있는 것이 낯설었다. 본능적으로 울림통의 라인을 따라 쓸어본 나는 젬베의 울림통이 육지에 있을 때와 다르게 뒤틀려 있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은 습기에 의한 뒤틀림이었다.
“니 뭐하냐? 젬베 처음 보냐?”
“…야.”
“왜?”
“너 젬베 습기 엄청나게 먹었는데?”
“응? 아 거 방습제랑 습기조절에 넣었는데도 그러던디.”
“근데 너 그걸로 어떻게 연주했냐?”
“뭘 어떻게 연주해. 지금 이거밖에 없으니깐 될 때까지 계속 쳤제.”
명식이의 대답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있던 그 순간 귀가 째지는 소리와 함께 뒤편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으아 씨이바아알!! 됬다아아아!!!”
“뭐시여? 진짜 된겨?"
“야 대호야! 뭐가 된 거야!”
괴성의 진원지로 달려가니 바닥에 엎어져서 고성을 지르고 있는 대호가 외쳤다.
“하…씨발…. 가지가 구조 신호 받았어…회신 신호도 보냈어, 그 시발새끼들이. 이걸 못 받았으면 가지 새끼들 내가 다 분질러 버리려고 했는데…. 아아!”
대호가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명식이는 대호에게 달려가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해대며 서로 끌어 앉고 바닥에 뒹굴었다. 그동안 나는 멍하니 있었다. 대호가 뜯어내고 조이던 기계의 점멸하는 빨간 불빛은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불러왔다.
왜? 짠 내가 가득한 습기에 흠뻑 빠진 젬베에서 어찌 그런 청명한 소리가 나는가?
아주 기초적인 지식과 책자 몇 개 가지고 저런 복잡한 기계를 고치는 것이 가능한가?
나는 분명 현실을 살고 있건만 그런 이상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때 내 머릿속에 잡념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그 우그러진 악기를 실은 벤을 타고 달리는 동안 남은 악기로 창문을 열고 크게 연주하는 우리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그 리더가 고장 난 기계를 뜯어고쳐 작은 오르골로 만든 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아이에게 선물해주는 모습을 본 우리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바보처럼 그저 현실에 부딪히던 우리의 모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내 홀린 듯이 그저… 그때처럼 그저 웃었다. 다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상을 찾아 헤매는 둘의 모습과 현실에 순응하고 가만히 있으려 하는 나의 모습을 보니 시원하게 웃어 재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요트가 고쳐져서 좋아하는 줄 아는 둘도 따라서 호탕하게 웃어 재낀다. 멀리서 보면 현실에서 이상을 쫓는 멍청이 3명의 웃음이 오히려 실소를 불러일으킬 테지만 적어도 난 이 둘과 같이 멍청한 동네 바보 형과 같은 이상을 좇으리라.
우직하게 닿을 수도 없는 하늘로 뻗어가는 커다란 고목, 그것이 떡갈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