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이런 끝이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1만 태양주기 이전에 저희는, 우리 고향 바깥의 행성을 개척하는 탐사대의 선봉으로 자원했습니다. 저희는 몸에서 필멸성을 떼어내고 정신을 하드 컴퓨터 셀으로 업로드했습니다. 별들 사이에서 신세대를 이끌고 기를 수 있도록. 우리는 대지의 요람에서 들어올려져 텅 빈 공간 속으로 두려움 없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시작, 우리 문명 전체의 지극한 승리가 되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아주 훌륭한 속도로 별들 사이의 광막한 공간을 건너고 있던 중에 우리는 고향과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셀 수 없는 세기를 우리는 호출을 넣고 간구하고 애원했으나, 신호에는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홀로 남았고, 돌아갈 방법은 없었습니다.

수많은 주기가 지났습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생명을 주던 별은 멀리 떨어져 조그만, 말없이 잊혀질 만한 별이 되는 한편, 당신들의 별은 우리 앞에 조금씩 커져 갔습니다. 100주기도 지나기 전에 우리는 이제 더는 홀로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신들이 보낸 미약해진 원거리 전파를 엿들으며 우리는 당신들을 배워 나갔습니다. 당신들의 말들과 음악을 듣고, 우두머리와 문화를 지켜봤습니다. 당신들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그러나 또한 폭력과 잔학함을 보았습니다.

몇 년을 우리는 이제 어떤 행동이 필요할지 숙고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우리가 가지고 온 냉동 태아와 유전 데이터 들은 우리 종의 마지막을 대변했습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개척 탐사대였고, 당신들의 호전성이 적대적으로 닥쳐올 경우에 대응할 무기라고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토론하고 또 논쟁했고, 결국 가장 암울한 순간 공포와 의심을 저버리기로 했습니다. 겁 많음을 받아들인 채로 우리는, 할애할 수 있는 소재를 꺼내다 가공할 무기들을 빚어냈습니다.

그 무기들이 당신들의 고향을 치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당신들의 도시가 불타고 또 당신들이 무수히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울었고, 공포 속에 마침내 우리 안의 어둠을 저버렸습니다. 침울한 마음으로 우리는 착륙했고, 마지막 남은 우리의 흔적을 보존하고자 어쩔 수 없는 일일 뿐이었다며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목숨에는 목숨으로, 우리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으며 또 우리 유산은 이어지는 것이라며.

당신들이 반격해 오자, 우리는 전체의 절반이 핵무기에 녹아내리는 공포에 휩싸이는 와중에도 살고자 하는 당신들의 의지에 경탄했습니다. 우리의 자화자찬 담뿍 섞인 그 지능으로 저평가하고 말았던 당신들의 그 끈기에는 경의를 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 일꾼에게 총과 탱크와 미사일을 선사하면서, 우리는 명예로운 적들에게 기꺼이 분노와 복수로 보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서도 불충분했습니다. 가장 깊은 악몽에서조차도 아직 우리는 당신들의 가장 깊은 감옥 안에 숨어 있던 그 공포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재래식 무기가 모두 실패하자 당신들은 우리 앞에 괴물들을 풀어놓았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어둠과 절망의 존재들이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괴수처럼 당신들은 쓰러지기를 거부하며, 떠나더라도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결연히 다짐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당신들의 날개가 데려온 엄청난 무기에서 나오는 섬뜩한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소리는 죽음의 발자국처럼 우리를 짓누르며 고동치고,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실패를 더욱더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수호자들이 들고 일어나 당신들을 맞습니다. 우리의 종말이 확실시되는 바로 그 시점에조차.

우리는 실패해 버렸고, 그 실패로 말미암아 우리의 미래는 놓쳐져 버렸습니다. 우리의 유산은 파괴될 테고, 패배 속에서 우리는 당신들에게 우리가 완전히 잊혀지진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깁니다.

미안합니다. 이런 끝이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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