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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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제 소개는.. 필요 없겠네요. 일단 각설하고 시작하죠.
지금 재단이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엄청난 위기 상태라는 걸 알 겁니다. 그게 왜인지 아십니까? 바로 어떤 빌어먹을 '플롯' 때문이라는군요. 우리의 세상이 막장 연극의 각본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능력없는 삼류 작가가 쓴 것 같지만요.
그런데 말이죠. 소설에서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모두 묘사하는 걸 본 적 있습니까? 아니겠지요. 보통은 우리같은 엑스트라를 위해 분량을 할애해주지 않으니까요. 그 말인 즉슨.

우리는 '플롯'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

O5같은 중요 인물들은 이미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죽거나, 미쳐 날뛰고 있거나, 어쩌면 변칙적 능력을 얻거나, 뭐 하여튼 멀쩡하진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기어스나 브라이트 같은 유명한 인물들도 예외는 아니겠죠.
사실을 직시하자면, 이 메일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만큼 대단하지 않을 겁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죠. 각본에 이름도 안 올라가 있는. 누가 우리같은 사람들을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겠습니까? 아마 등장할 일도 없을 겁니다.

그렇기에 이 일은 우리와 같은 엑스트라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유명한 인물은 피하고, 최대한 사람을 모으십시오. 이미 요원 측의 팀과 연구원 측의 팀이 결성되어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요주의 단체 소속 인원도 있을 겁니다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다들 협력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여기에 사람을 모아서 합류하시기 바랍니다. 연락 방법은 따로 별첨해 놓았습니다. 아, 리더는 없습니다. 있다면 '플롯'에 지배당할 테니.

목적은, 최대한 이야기의 메인 스트림에 연루되지 않은 채로 계획을 진행시켜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플롯'이 최대한 개연성 있도록 흐름을 바꿔놓는 겁니다. 이 '플롯'을 진행하기 어렵도록 변칙 개체를 다시 격리하든, 사태가 커지는 것을 막든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하십시오. 작가로 하여금 멸망으로 치닫는 '플롯'을 전개할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을 때까지 말입니다. 어떤 의미냐 하면, 예를 들어 작가가 핵무기를 사용해 끝을 보려고 할 경우를 대비해 핵무기를 미리 무력화시키는 행동이 있겠군요. 작가가 미처 이야기를 전개할 생각이 없었던 곳에서 말이죠. 그렇다면 작가는 핵무기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이야기를 짜야 할겁니다. 이걸 반복해서, 지쳐 나가 떨어지게 만드는 거죠. 그럼에도 작가가 이 '플롯'을 계속 진행시키려 한다면… 우리에겐 방법이 없겠군요.

다시 한번 당부하겠습니다. 주의할 점은, 이야기의 핵심을 차지하지 말라는 겁니다. '플롯'의 지배를 받게 될 테니. 전 전산 분야라는 위치를 사용해서 제가 가능한 범위의 모든 인원들에게 이 메일을 보냈고, 이 메일이 도착해 읽혀질 때쯤은 저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겠죠.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인데, 만약 제가 자살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제 상상력으로는… '플롯'에 의해 이 메일에 뒤이어 예방접종이 존재하지 않는 밈적 살해인자를 보낼 수도 있었다는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군요. 어쩌면 더 끔찍할 수도 있겠지요. 하여튼, 자신이 세계를 되돌리기 위해 한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이 선을 넘는 시점을 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무언가 핵심적인 부분을 이뤄냈다고 하면… 바로 자살하는 게 좋을 겁니다. 작가가 관심을 가지기 전에.

무운을 빕니다.

한 연구원은 자신 앞으로 온 메일을 읽었다. 잠시 후, 자신이 첨부된 파일을 열어보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삭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상은 서술하지 않겠다. 다만 알려줄 수 있는 건, 이 연구원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자유의지를 행사했다는 것 뿐이다.



클라이맥스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작가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작은 변수들이 집결하여, 세계멸망을 향한 플롯을 방해하고 있다.

뭐, 의도한 대로 끝나든 아니든 재미있기만 하면 아무래도 좋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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