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공기를 덩굴처럼 휘감으며 안개가 섬의 도로 위로 피어올랐다. 허옇게 부어오른 검은 도로 중앙의 노란 선을 수레가 지나가고 있었다. 안개를 이리저리 헤집으며 수레와 함께 한 남자가 항구를 향해 한없이 걸어가고 있다. 손은 수레를 밀고 있었고, 다리는 수레에 치일세라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시체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휘청였다.
수레에 실린 또 다른 남자의 피부는 창백하기 그지없었으나, 눈은 감지 못하고 뜨여있었다. 반면에 남자의 걸음걸이는, 보이지 않는 대장장이가 이리저리 갈 길을 두들기는 듯 구불구불했다. 수레의 앞면은 바위들에 쓸리면서 지나가 갈라져 가늘은 가시들을 가로로 뾰족하게 사이사이로 세우고 있었다. 이런 가시들이 가끔 남자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가곤 했다. 남자의 다리 뒤는 가느다란 상처들로, 수레의 앞은 피가 끄트머리에 묻은 가시들로 파이고 세워져 있었다. 그와 비슷하게 안개로 뒤덮인 이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고 또 나뉘었는데, 길목마다, 그리고 아무 때마다 비린내를 머금은 바람이 살며시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도로는 울퉁불퉁하고 바람은 좀처럼 잡을 수 없어서 그저 가끔씩 항구의 불확실해보이는 존재가 상기되곤 했다. 사실 남자가 항구를 실제로 본 것은 아주 어릴 때여서, 남자에게는 더 이상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얼마나 걸어왔든지 간에 바닷내는 항상 갑자기 나타나고 사라져서 냄새로 이 길이 언제 끝나는지 어림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가끔씩 저 멀리 바다의 푸르고도 어두운 색이 보이고는 했으나 안개가 짙어진 사이 형형색색의 기둥들로 변해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변해가는 배경들 사이로 길만은, 항상 구부러진 그것만은 언제나 변함 없이 우뚝 서 있었다.
다른 요일 같은 시각에, 빵모자를 쓴 한 의사가 인도를 재빨리 걷고 있었다. 횡단보도 3개를 지나고 코너 약 14개를 지나 그는 한 집 앞에 멈춰 섰다. 의사는 손을 뻗어 초인종을 눌렀다. 두껍고 발랄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 지 한 7분쯤 뒤, 한 학생이 나와 용건을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일찍 오셨네요, 상태는 좀 좋아지셨습니다."
"너무 일찍 온건 아니겠지?"
"저번에 놔주신 주사가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학생이 허리를 피면서 말했다.
"여하튼, 들어가 보세. 상태가 어떻다고 했었지?
의사가 문을 열면서 말했다. 딱히 대상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등이 아파 죽겠어."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가 말했다.
"이러다가 진짜로 죽을 것 같은데. 병명이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나? 얘야, 물 좀 가져와라. 찬 물로다가. 자꾸 떨어뜨리지 말고."
"모르겠네, 폐렴의 일종인 듯 한데."
병자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시계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서는 물컵을 받아 조용히 물을 들이켰다.
"왜 폐렴인가? 이렇게 뜬금없이? 난 등이 아픈데?"
"세균이니 뜬금없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 밖을 그렇게 종횡무진하니 들러붙을 수밖에."
의사는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청진기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항구를 돌아다녔든… 안 돌아다녔든 폐렴에 걸리는 건 똑같았을 거야. 이게 폐렴이 맞고 또 내가 항구를 돌아다니지 않을 수 있었다면."
의사가 청진기를 귀에 꽂고 환자의 가슴을 진찰하기 시작했다.
"여하튼 고마워. 이리 새벽부터 달려와 주고."
"배 타고 떠났으면 병원 갈 돈도 없어서 찜질방에서 끙끙 앓고 있었을걸세. 정작 기회가 오면 또 망설이면서. 이번에도 탈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타지도 못하고 이렇게 환자 신세 아니냐 이 말일세. 이러다 죽으면 영영 이 섬에서 썩을 거야."
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좀 나아지고 있는 듯하니 다행이네. 조금만 더 있으면 팔팔해질 거야."
"…자네 이거 메스인가?"
"아니."
"메스가 있다면 좀 빌려줄 수 있나? 항구에서 나는 들킬까 봐 무서워서 밀항하지 않은 게 아냐.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의사가 청진기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메스랑 무슨 관련이 있나?"
"몰라. 아닐걸."
"일단 좀 나아진 것 같으니 가보겠네. 푹 쉬게."
"메스를 배에 대고 직선으로 그어버리면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자꾸 들어. 소금물에 떠다닐 페인트 조각이 모든 차이를 만들 거라고."
"그리고 메스는 끝이 둥글지, 헛소리 좀 그만하고 제발 누워서 쉬게."
그날 밤, 의사는 가래와 발열, 흉통과 두통으로 드러누웠다. 환자와 같은 의미에서의 폐렴이었다.
그다음 날도 의사는 집을 나섰다. 다만 이번에는 지팡이가 손에 들려있었다. 그가 지팡이를 잡는 방식은 특이하기 그지없었는데, 지팡이의 손잡이와 윗부분을 팔뚝 바깥쪽에 대고, 지팡이의 중간 부분을 팔 안쪽으로 움켜쥐는 형태였다. 마치 판자로 고치면 그만이라는 듯이. 그렇게 최 씨는 비틀거리는 육체와 함께 어제와 같이 횡단보도 3개와 코너 약 14개를 돌고 9분을 기다린 후 어제와 같이 문을 두 개 지나 친구의 병상 앞에 도착했다. 어제와 같이 가죽 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 가만히 있는 가슴에 갖다 대보았고 어제와 같이 쓰러졌다.
학생이 한 번 엎지른 냉수를 떠 오자 시체 두 구가 쓰러져 있었다. 시체가 쓰러진 방향은 똑같았다. 한 명은 편안히 침대에 누워있었고, 다른 한 명은 쓰러지면서 코를 바닥에 박아 코피가 나오고 있었다. 학생은 잠깐 둘을 응시하다가, 서둘러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삼십 분이 지나가고 나서, 한 남자가 집에 도착했다. 의사의 아들은 두 개의 문을 지나 가느다란 팔다리가 누워있는 방에 들어섰고, 천천히 시체를 수레에 실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장장 한 시간째 열려있던 반지하의 문으로 회색의 안개가 조용히 스며들었고, 창문은 수증기로 가득 덮이기 시작했다. 의사의 아들은 조용히 시체를 들어 수레에 눕혀놓았다. 시체의 사지가 단정하게 아래로 세워져 있었다. 수레가 콘크리트 기둥들을 휘감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한편, 쓰러진 의사를 뒤로 한 채 학생은 조용히 어디론가 다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 자신도 전화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리라. 의사는 구겨진 옷을 입고 청진기를 귀에 꽂은 채로 여전히 누워있었다. 병상은 비어있었다. 청년은 계속해서 안개 속에서 헤엄치듯이 항구를 향해 나아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약 세시간 하고도 또 세시간, 그리고 세시간 후, 수레는 드디어 항구에 도착했다. 남자가 콘크리트로 세워진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사슬이 세워진 새하얀 샛길을 수레와 사내가 살며시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선박장이 보일 터였다. 그리고, 사내가 발을 헛디디고야 말았다.
옆이 바로 바다인 이 길에는 물이 항상 고여있는 지점이 있다. 매일 몰아치는 파도가 만든 웅덩이였다. 파도가 칠 때마다 물은 매번 달라졌기에 깊게 고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웅덩이 자체는 항상 그 자리를 지켜온듯 했다. 그 바닷물에 옆으로 미끄러진 남자는 수레를 순간 놓치고 말았고, 땅과 사슬 사이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남자를 뒤로하고, 수레는 계속해서 항구로 미끄러져 갔다. 그러나 곧 굴러가던 바퀴가 힘을 거의 다 했고, 장애물을 피하지 못해 결국 쓰러지고야 말았다. 충격으로 시체가 길에 떨어져 부딪히고 다시 난간 위로 튀어 올랐다.
이후 소리를 들은 선원들이 서둘러 달려왔고, 시체가 새벽때처럼 쓰러져있었다. 사슬 위에 쓰러진 시체는 머리와 함께 팔이 바다를 향해 늘어지고, 다리가 땅을 향해 늘어져 위태로운 상태였다. 수레의 손잡이는 아스팔트와 부딪혀 모서리가 박살이 나 있었다.
시체는 섬의 한 산에 묻혔다. 섬의 중심에서 새벽안개처럼 솟아오른 이 산에는 공동묘지가 하나 있었다. 고개를 구부정히 숙인 풀 위로 이슬이 양껏 맺혀있었다. 이름과 4자리 수 두 개, 그리고 그 사이로 구부정한 직선이 새겨질 각진 묘비 뒤로 둥근 흙이 높게 쌓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