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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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이토록 순수한 빨강. 생명의 진정한 정수. 그 생명이 이렇게나 반듯이 물결치며 내게서 주르륵 흘러나온다.

내 옆에 움직임 없는 경비원 두 명은 벌써 죽어 있다. 매섭던 두 눈은 이제 허공만을 흐리멍덩 바라보고, 그 안에 깃들었던 소중한 생명은 이제 공상으로 변해버렸다. 날카로운 알람 소리, 생명의 정수만큼이나 뻘겋게 깜빡이는 불빛, 이 속에 있자니 완전 비현실적 광경이다. 두 세계 사이를 떠다니는 기분이다. 지금 드러누운 차가운 방바닥마저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저 멀리서 포효와 귀 먹먹한 소리를 뿜으며 기관총이 치명적인 포탄을, 금속으로 된 죽음을 퍼붓는 게 들려온다. 배에다 두었던 손을 들어올려 감상하며 매력을 느껴본다. 두 손이 뒤덮여 있다. 우리를 이루는 그 소중한 빨강색으로 온통 뒤덮여 있다.

잠시 눈을 감고, 내가 재단으로 들어오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그 사람이 떠오른다. 태도는 거만하고 눈빛은 또 이렇게 말하는 듯했지. "내가 니 상사다." 그 위선적인 미소를 딱 한번 보자마자 나는 토가 막 쏠리고 사무실에서 나가고만 싶어졌다.

하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 사람이 말했다. "곧 보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한가하고 위험성 없는 직장입니다. 안전 등급에다 배정되시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요."

그렇게 아무 의심 안 하고 서류에 사인한 게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악수할 때 맞잡은 그 사람의 손바닥이 느껴지면서 또 소름이 돋고 역함이 밀려왔다.

다시 눈을 뜬다. 현재로 돌아왔다. 총성은 약간 잦아들었지만 아우성은 여전하다. 녹음된 메시지가 울려퍼진다.

"10초 후 핵탄두 폭파. 격리를 복구합니다."

인생 최대의 실수… 꼭 그렇진 않을지도. 그 이전의 인생은 무미건조했다. 재단 덕분에 신기한 존재들을 수없이 만났다. 인간이 상상조차 미처 못 할 존재들을. 그리고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대부분이 죽어버렸지만, 뭐, 그래도 친구였던 건 마찬가지니까. 함께 했던 좋은 시절이 기억난다. 식당에서 떠들었던 헛소리, 서로에게 던지던 농담들… 그 녀석들이 지금 나한테 몸 기울여 웃음짓는 게 어렴풋이 보인다. 몸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냥 환각이 생겼을는지도 모르겠다. 뭐 상관은 없다. 나도 웃음을 지어보며, 눈을 감는다.

스피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이제는 아무 상관없다.

이제 친구들이랑 같이 있어. 아무 후회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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