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동쪽에서 솟아오른다. 검푸른 빛이 아직 가시지 않은 하늘에는 얇은 구름이 뿌린 듯 펼쳐져 있으며, 건물 잔해가 서릿발처럼 솟아난 들판을 감싸고 산이 푸른빛을 뽐낸다. 얼음 서릿발 위의 콘크리트 서릿발, 그 위에 철근콘크리트 거인들이 옛 영광을 뒤로하고 쓰러질 날 만을 기다리고 있다. 산의 푸른 그림자가 짧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들판의 가에 한 짐승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표지판이 솟대처럼 서 있고 군데군데 지도가 붙어있는 도시도 길을 잃기 쉽다. 페인트가 벗겨져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 같은 고층 빌딩이 여러 군데 쓰러지고 군데군데 시멘트 더미와 가시 같은 유리 조각까지 쌓여 있으면 더더욱 복잡한지라,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사거리의 미로에서 헤매다 아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짐승은 구부정한 몸을 끌고 들판 외곽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딱따구리가 나무 둥지를 떠나면 울새, 직박구리, 부엉이들이 그 둥지를 차지한다. 사람의 아파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서히 삭아가는 침대, 곰팡이가 가득 슬은 서재, 썩은 음식이 가득 담긴 영원히 작동하지 않을 냉장고. 이 모든 것들이 좀, 거미, 응애, 파리, 바퀴 그리고 수많은 절지동물의 차지가 되었고, 그를 따라 까치, 까마귀, 비둘기, 참새, 직박구리가 갑각류, 협각류들을 먹어치우며 둥지를 짰다. 그리고 그 둥지를 반려 없는 '반려동물'들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약탈하는 것이다.
짐승은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허옇게 얼룩진 비둘기들이 20층 복도 난간으로 몰려 들어간다. 낙오된 비둘기 몇 마리가 까치 떼에게 둘러싸여 고깃덩이로 해체된다. 무너진 방구석에 웅크린 멧돼지가 눈에 알을 까려는 검정파리에게 꼬리를 마구 휘두른다. 계단에서 잠시 머물던 바퀴 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흩어진다. 짐승이 계단을 올라간다.
하늘색 페인트는 벗겨진 지 오래고, 붉은 녹이 페인트의 자리를 차지한 철문은 땅에 쓰러져있다. 날아온 돌덩이를 미처 못 피한 비둘기가 좀 몇 마리 위에 으깨진다. 꺼먼 앞발이 길고 마른 손가락 다섯 개로 시체를 감싸 쥐고, 누런 이빨이 시체를 물어뜯는다.
다른 돌조각을 찾던 짐승은 깨진 찬장을 보았다. 먼지가 금속 쪼가리와 유리병, 쟁반 위에 두껍게 쌓여있었다. 그와 함께 바퀴, 좀, 응애 그 어떤 벌레와도 닮지 않은 절지동물 화석 하나가 삭아 부서질 것 같은 종이와 함께 놓여있었다. 화석을 집으려던 짐승은 문득 꼬부라진 손으로 종이를 집어 들었고, 몇천 년간 잊혔던 기호들은 흐릿하던 그의 눈에 광채를 잠시 번뜩였다. 비둘기의 뼈와 내장이 장판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계단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도심으로 마구 내달리는 손에 구겨 쥔 종이에는 영어 글자가 쓰여 있었다.
Endops yanagisaw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