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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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침이 째깍거렸다. 어느 새 그들만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리지웨이 박사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한 불안과 근심이 가득했다. 제이미는 펠릭스에게 몇 번이고 했던 말을 또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지금은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들통 날 위험이 정말 크다구.”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제이미에게 그만하면 되지 않겠냐는 눈길을 보냈다. 제이미는 그녀에 비해 자신이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펠릭스는 다시 시계를 바라보았다. 제이미의 말마따나 이번 일은 그야말로 도박에 지나지 않았다. 재단의 귀에 들어가면 목숨 하나 사라지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며, 사실 성공한다고 해도 원하는 수확을 얻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리지웨이가 돌아왔다.

“궁금해 할 테니 바로 말하지. 뭔가 잘못됐어. 아이작의 번호가 올라와있는 실험 요청 내역이 하나도 없다.”

제이미와 펠릭스의 반응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무신경했다. 리지웨이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가를 어루만지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는 앉은 채로 두 손을 깍지 끼고 배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목소리 역시 앞의 두 사람만큼이나 차분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는 거냐?”

“아이작이 진짜로 재단의 ‘기밀’ 실험에 참가하게 됐다는 거죠.”

제이미의 대답이었다. 펠릭스는 눈을 감았다.

“아이작이 생존할 가능성은?”

“0 퍼센트.”

“그렇다면 그 수밖엔 없겠군요.”

리지웨이의 눈썹이 한 쪽으로 들렸다.

“정말로 할 생각인가? 아이작도 구하지 못하고 다 같이 붙잡히는 결말도 있어.”

“어쩔 수 없겠죠, 이 상황에선.”

“혹여나 탈출시킨다고 해도, 재단에서 다시 잡아온다면?”

“관련 데이터를 모조리 삭제해야죠. 추적할 건덕지도 없게 하나도 남김없이.”

“결국, 데이터베이스 해킹이야?”

제이미는 머리를 문질렀다. 말하자면 죽음을 향하는 길이었다. 그는 자신들이 너무 저돌적인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렇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봐도 이 이상의 수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아마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팔을 흔들며 푸념했다.

“……언젠가는 웃을 날이 오겠지.”

“뭐라고?”

소심한 현장 요원은 청승맞은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 말을 돌렸다.

“나 참, 이렇게 상쾌한 날엔 데이트라도 해야 하는 데.”

“하고 있다고 생각해, 제이미.”

“넌 이렇게 칙칙한 사무실에서 데이터베이스나 들여다보는 게 데이트라고 생각해?”

펠릭스는 기가 막혔다.

“아니, 모름지기 데이트라면 어디 가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하는 게 제대로 된 시작이지! 됐어? 내 취향 알았으면 그만 일이나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진정한 데이트는 그런 외간에서 만들어준 인스턴트보단 직접 정성스레 만들어준 음식을 싸들고 함께 먹는 게 진국이지! 그리고 네 취향엔 관심 없어.”

“그만, 그만!”

삼천포로 빠지는 대화를 지켜보며 속이 끓은 리지웨이가 두 사람의 머리를 딱 소리 나게 치고 노트북 화면 속에 떠있는 재단의 데이터베이스를 가리켰다. 펠릭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부 접속이 차단된 비공식 문서는 메인 서버에서 직접 들어가야 해. 내 노트북 가지곤 기밀 항목은 어림도 없어. 거기서 아이작의 번호를 검색하면 관련 항목이 나올 거야. 웬만한 정보는 리지웨이 아저씨의 인가 코드로 볼 수 있겠지만, 만약 접속이 안 된다면 이 USB 속에 넣어둔 프로그램을 실행해. 지정된 항목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줄 거야.”

펠릭스는 작은 검은색 USB를 꺼내보이며 얘기했다. 제이미는 그것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확실해? 네가 컴퓨터를 잘 하는 건 인정하지만, 그런 마법 같은 프로그램을 직접 짰다고는 생각이 안 돼.”

“제이미, 난 서버 관리팀이야. 직접 액세스할 권한은 없지만 서버 자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눈에 훤해. 그리고 내가 설명해 줘봤자 어차피 못 알아들을 거 아냐?”

“모르는 일이지. 한 번 해 봐.”

“좋아. 이 프로그램은 데이터베이스 검색 기능의 허점을 이용한 거야. 검색어와 일치하는 구간 일부를 노출시키는 방법이지. 대부분의 검색 엔진이 사용하는 출력 방식을 생각하면 될 거야. 너도 쓰는 거니까 알겠지?”

“날 무시하는 거야? 전문적으로 말해봐.”

“진짜로? 어, 우선 서버는 암호화된 항목의 문자열을 패턴화해서 전체 데이터베이스를 대상으로 그걸 검색해. 자료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서버가 네 검색어와 자료의 본문들을 일일이 대조하잖아? 그 때 서버의 임시 캐시 저장소에 저장된 내용을 그대로 끌어다가…….”

“그럼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기만 하면 내용을 볼 수 있다는 거지?”

제이미가 귀를 막고 말을 끊자 펠릭스는 그에게 탁자 위의 책받침을 집어던졌다. 주인인 리지웨이는 그것을 매우 불편하게 지켜보았다.

“꼭 그런 건 아냐. 이건 보안 모듈을 우회하는 개념이 아니고 문서에 포함된 검색어를 발견해서 그 근처 문맥만 띄워주는 거라 해당 항목에 직접 접속할 수는 없어. 재단의 데이터베이스야 워낙 방대하니 이 정도만 해줘도 내용을 추측할 수는 있을 테지만…….”

“무슨 말인지 좀 어렵긴 한데, 뭐 그때 가서 이해하면 되겠지.”

펠릭스는 제이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했다.

“혹시라도 완전히 독립된 내용이라면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져도 연관 항목이 없을 테니 한 가지 힌트만 가지곤 내용을 유추할 수도 없겠지. 내 검색 프로그램엔 옵션 설정을 통해서 데이터베이스에서 지원하지 않는 세부 정보까지 긁어모아주는 기능도 있긴 하지만…… 이 경우에는 딱히 도움이 안 될 거고.”

“그럼 그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는데?”

“플랜 B."

“플랜 B도 있어? 그건 또 뭔데?”

“하나. 아이작의 면담을 신청한다. 둘. 면담실 벽을 부수고 아이작을 탈출시킨다.”

제이미는 책받침을 펠릭스에게 도로 집어던졌다. 리지웨이는 더욱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펠릭스가 제이미의 손에 들린 USB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안 통한다면, 정말로 딱히 방법이 없어. 그러면 아이작이 아직 자기 방에 있는 현재 시점에서 최대한 빠르게 탈출 계획을 세우고 실험에 끌려가기 전에 실행해야겠지. 그렇지만 그건 실험 일정을 모르면 너무 불확실한 내기야. 아이작의 행방을 항상 감시해야하고 돌발 상황에 대한 즉흥적인 계획까지 미리─말이 안 되지만─ 마련해 놔야하겠지. 지금 하는 짓은 여기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거야.”

“기분이 날아갈듯 하군.”

제이미가 빈정거리자 펠릭스는 다시 책받침으로 손을 뻗었다. 리지웨이가 황급히 그것을 집어 들고 자신의 책상으로 옮겨놓으면서,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 계획은 누가 실행하는 거지?”

“어? 정해진 거 아니었나요? 제가 해야죠.”

펠릭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만, 그러고 보니 왜 제이미 네가 이걸 하는 구도로 흘러가? 컴퓨터는 내가 더 잘 다루잖아.”

“USB는 내 손에 있어, 펠릭스. 네 손으로 건네준 거고, 내 손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녀석이지. 넌 이미 늦었어.”

리지웨이는 붕 뜬 제이미와 착 가라앉아있는 펠릭스를 번갈아 보다가 팔짱을 끼고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제이미, 그만 웃어라. 네 손에 달려있는 아이작의 생사에 대해 예를 갖추고 엄숙함을 보여. 펠릭스, 넌 좀 웃어봐라. ‘기지의 자랑’이라는 별명은 받아뒀다 뭐하니? 그렇게 안달복달한다고 일이 어떻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냐.”

“아저씨나 잘 하세요!”

두 사람이 입을 모아 외쳤다.

“……성질하고는. 잘 해봐라, 누가 하던 난 빠지련다. 커피나 한 잔 뽑아 오마.”

리지웨이는 혀를 차며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싸웠다.

“제이미, 이건 장난이 아냐. 네가 할 수…….”

“나도 장난 아냐, 펠릭스.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야.”

“컴퓨터는─”

“네가 다 설명해줄 수 있잖아. 서버 컴퓨터는 엄중하게 감시 되고 있고, 순찰하는 보안 요원의 출입도 잦겠지. 누군가는 망을 봐야할 텐데, 그렇다면 서버 관리팀인 네가 서있는 게 차라리 더 자연스럽지 않겠어?”

제이미의 웃음기 어린 얼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진지하게 임무를 자신만의 것으로 떠안겠다고 선언했다. 결심은 확고해보였다. 펠릭스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손을 내저으며 항복했다.

“좋아,”

그녀는 노트북을 두들겨 화면에 기지 지도를 띄웠다. 제이미는 옆에 바싹 붙어 그녀의 브리핑을 경청했다.

“마음대로 해. 그러면 네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보자구. 두 번 말할 시간 아까우니 잘 들어. 이 시간에 보안 요원들이 순찰을 도는데, 경로는 이렇게 되어있어. 카메라는 별 수 없으니 제끼고, 감시팀이 카메라에서 눈을 뗄만한 교대 시간은 이 때. 리지웨이 박사님이 끼어들면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겠지. 네가 서버실에 출입할 만한 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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