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역행

이전 이야기 » 2013년 1월 23일

제이미는 자신이 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방금 제이미가 캐버너 소령에게 총을 맞고 쓰러졌다. 펠릭스는 절규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소령은 그녀와 아이작을 카트에 싣고 벽 뒤로 사라졌다. 그는 권총을 든 손에 준 힘을 천천히 풀었다.

그는 제이미를 죽일 작정으로 기회를 엿보며 그를 뒤쫓다가 리지웨이 박사와의 대화를 반쯤 엿들은 후 바로 D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보안 요원들의 눈을 피해 몰래 진입하기에는 쉽지 않아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막상 제이미를 찾고 보니 어쩐 일로 그보다 먼저 도착한 녀석은 이미……. 당황스러웠다.

그는 제이미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펠릭스가 기절할 정도로 격하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음이 순간 흔들렸다. 자신은 대체 무엇을 바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려고 한걸까? 착잡한 마음으로 권총을 매만졌다.

그의 본연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그러면 이제? 그의 자리를 내가 대신 꿰차야겠지. 하지만 어떻게? 혼돈의 반란 첩자였던 캐버너 소령이 제이미를 죽였는데. 그럼 캐버너를 죽이고? 죽은 줄 알았던 제이미가 ‘뿅’ 나타나면 펠릭스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물론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렇지만 펠릭스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제이미는 펠릭스가 아는 제이미처럼 행동할 자신이 없었다. 만약 '오리지널'이었다면, 방금 전의 자신과 같이 자기 자신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생각을 했을까? 물론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오리지널과 지금의 '나'를 같은 인물로 볼 수 있을까? 이미 변해버렸다,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전처럼 그녀를 대할 수가 없다면, 그건 정말로 '가짜 제이미'가 되는 셈이다. 그조차도 견딜 수가 없을 뿐더러 펠릭스가 변한 자신을 알아챘을 때 태도의 변화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그는 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방법이 없을까?

제이미는 그가 엿들었던 리지웨이 박사와 자신의 원형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시간 역행. 정말로 가능하다면야…… 펠릭스에게 그를 되돌려줄 수밖에. 그는 리지웨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리지웨이 박사가 커다란 캠핑카를 몰고 나타났다. 그것이 첩자들의 눈에 띄지 않을까 굉장히 염려스러웠던 제이미는 D동 외곽을 한참 벗어난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서 만났다. 상황을 정리한 뒤, 그들은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돌진하죠?"

"개소리 집어치워. 장치 사용법을 알긴 하냐?"

사실 그건 두 사람 다 몰랐다. 그렇지만 제이미는 막무가내였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각오는 되어 있고?"

그는 진지했다.

"클론 인생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좋아."

리지웨이 박사는 캠핑카를 천천히 몰았다. 실험 장치가 위치한 광장과 가장 가까운 입구를 찾아 D동을 둘러 이동하는 중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장치는 직접적으로 사용된 건 아니다. 일단 커다란 물체를 샘플로 이용하는 건 보류된 상태였으니까……. 쉽게 말하자면, 보조 장치를 이용한 샘플 투입을 스위치로 해서, 거대한 구체 모양의 본 장치에서 타키온 반응이 일어나면 보조 장치의 에너지 공유 기술을 이용해 샘플을 시간 역행시키는 방식을 썼지."

"그러니까 샘플을 투입해서 본 장치에서 반응이 일어나면 거기로 뛰어들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때려 맞춘 거냐?"

"아무렴요."

"진짜 똑같이 복제됐구만."

제이미는 쓸쓸하게 웃었다. 리지웨이 역시 씁쓸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샘플이 뭐죠?"

"그게 문제다만,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난 연구원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면 되는 거죠?"

제이미는 주머니 속의 권총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그로서는 굉장히 난감한 것이, 그건 리지웨이의 것이다. 그가 이걸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확신하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운에 걸어봐야죠. 어쩌면 혼돈의 반란 놈들이 제멋대로 가동해버릴 수도 있고요."

"정말 운이 좋아야겠지."

차가 멈춰 섰다. 가까운 입구까지 약 200m 정도 남은 지점인듯 싶었다. 마지막으로 의논을 하면서 잠시 동안 서있는 동안, 두 사람은 숲길 저 끝에서 작은 행렬이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한 명씩 검은 막대기를 쥐고 있는 것이 총 같았다. 차를 움직이거나 조금만 더 다가온다면 소리로 보나 크기로 보나 들킬 것이 뻔했다.

"혼돈의 반란인 것 같은 데요."

"역시, 그렇지?"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다. 고개가 끄덕여진 뒤, 제이미는 문가로 가 몸을 숙였다. 리지웨이는 곧장 엑셀을 바닥까지 밟았다.

10초 정도 달려 숲길로 튀어나오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어디서 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차체 여기저기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고함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쓰며 리지웨이는 반쯤 무너진 D동 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제이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잔뜩 웅크린 채였다.

"이거 진짜 비싼 건데!"

박사가 으르렁거렸다. 캠핑카는 구멍이 뚫리면서도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들은 입구를 넘어 잔해만 남은 D동의 넓은 복도로 진입했다. 뒤쪽에서 총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지만, 이제 그들을 향해 날아오지는 못했다.

중앙 지역으로 다가갈수록 벽의 형체가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박사의 커다란 차체는 튀어나온 벽돌과 시멘트 조각에 긁혀나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리지웨이 박사가 소리쳤다.

"제이미, 여기서부턴 차로 갈 수 없다! 달려!"

제이미는 즉시 뛰어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 때 중앙 복도였을 이 커다란 길을 따라가면 광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뒤에서 리지웨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놈들이 쫓아오는 걸 막아보마! 행운을 빈다!"

제이미는 뒤를 돌아보았다. 캠핑카가 어느 새 방향을 돌려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저씨는 과연 무사하실까? 그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겨를도 없이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이건 정말이지 미친 짓이었다. 장치 작동법도 모르는 와중에 좌표나 시간축 따위를 조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장치 주변에도 분명 혼돈의 반란이 보초를 서고 있을 텐데. 제이미는 비로소 기밀 프로젝트용 장치에 잠금 장치가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냈다. 사실 모든 것이 절망 그 자체였다. 난 어쩌자고 이런 생각을 해냈지? 리지웨이 아저씨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계획에 찬성한 걸까?

물론, 이 방법 밖에는 없었으니까. 단지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을 뿐인데 말이다!

2분, 아니 1분밖에 달리지 않은 것 같은데 커다란 공 모양의 실험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구체 안에서 눈부신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설마, 진짜로 벌써 가동 중인건가? 그는 심장이 터지도록 달렸다. 우연의 일치,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짓는다곤 하지만, 여기까지 왔음에도 과연 어느 시점까지 역행할지 그조차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시간이 없었다.

섬광이 구체 안을 거의 가득 채웠을 무렵, 제이미는 겨우 장치 앞까지 달려왔다. 구체 반대편에서 캐버너 소령이 당황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이 개자식아. 내가 돌아왔다. 소령이 입을 벌린 채 다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제이미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주변이 온통 환해졌다. 끊어져가는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저 한 마디 말만이 맴돌고 있었다.

'과거를…… 바꾼다!'
 

다음 이야기 » 리지웨이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