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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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수북이 쌓인 지하 복도는 보기만 해도 음침했다. D동이 폐쇄된 이후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듯 했다. 이곳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제이미는 이 비밀 통로를 타기 위해 서둘러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거미줄도 드문드문 쳐져 있는 폐허보다 더한 공간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먼지 위로 발자국이 찍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펠릭스일 것이다. 제이미는 종이 가방 속의 샌드위치를 다시 한 번 살펴본 뒤 휴대폰의 플래시를 켜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복도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물품들을 보고 미묘한 감회에 사로잡혔다. 가끔 부모님을 따라 기지에 놀러왔을 때 본 것도 있었다. 무려 10년 전의 물건이다. 그 프로젝트만 아니었더라면 부모님도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자신이 이렇게 존재했을까? 제이미는 그 때도 '타임 패러독스'에 혼돈의 반란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굳이 떨쳐버리려고 하지 않은 채 그는 계속해서 걸었다. 펠릭스가 어떻게 되었을 지 걱정스러웠다. 그녀가 아이작을 찾았을까? 첩자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한숨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신이 택한 길이건만, 여전히 피하고 싶기는 매한가지였다.

과연 나라는 녀석이 이 총체적 난국을 끝장낼 수 있을까? 어찌되었건 자신의 역할은 정해진 상태였다. 그로써는 모두의 행복을 비는 수밖에.

'첩자 자식만 빼고 말이지.'

우울한 기분을 안고 그는 길을 막고 있는 거미줄을 치웠다. 저 멀리 통로 오르막 끝으로 붉은 하늘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해가 지기까지 아마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끝마무리에는 어울리는 배경이었다.

그는 통로를 빠져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심했다. 지붕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부서진 벽 사이로 건물 잔해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두 배는 넓어진 통로로 트럭도 지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이 붕괴가 사고 당시에 벌어진 것인지 이번 습격을 통해 혼돈의 반란이 자행한 것인지는 그도 확신할 수 없었다. 제이미는 자신의 기억에 의지하여 시간 역행 실험 장치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장치는 기지 한 가운데, 속이 빈 네모 모양의 건물을 벽으로 두고 만들어진 광장에 있었다.

놀랍게도 별 방해 없이, 그는 광장에 도착했다. 뻥 뚫린 하늘 아래 웅장한 구형의 실험 장치가 그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커다란 아치 모양의 지지대겸 제어 장치 두 개가 꼭대기를 기점으로 교차하고, 그 사이에 보조 제어 케이블들이 제어대와 나란히 포물선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제이미는 잠시 동안 재미있다는 듯 그 거대한 실험 기구를 지켜보았다.

신기하게도 계기판처럼 보이는 장치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실험 기구고 뭐고 그 때 사고로 D동 자체가 거의 다 날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혼돈의 반란이 손을 본걸까. 하긴, 저게 저렇게 멀쩡하게 서있으니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겠지.

장치는 거대했지만, 불안정한 실험의 특성상 실제로 사용되는 샘플의 크기는 한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으로 한정되었다. 대체 시간 역행의 성공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는 지 제이미로서는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거나 한 줌의 물건은 장치 옆에 자그마하게 딸려있는 에너지 공유 장치를 통해 과거로 보내지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사람을 과거로 보내는 실험에 투자하다니, 미친 놈들. 그들은 대체 무슨 결과가 나올 줄 알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미친 짓을 하는 걸까? 그는 이 부질없는 생각에 잠시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일단 장치까지는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할까?

제이미는 부서진 벽 뒤를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불안하게 걸음을 옮겼다. 벽이 거의 다 허물어져 있어서 시야가 사방으로 탁 트여있었다. 분명히 첩자 하나 정도는 이곳을 지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자꾸만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이작이나 기억 재생 장치를 숨길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찾아보았다. 어디에 숨겼든, 광장 근처일 거라는 생각에 주변을 뱅뱅 돌았다. 그나마 건물의 뼈대가 남아있는 곳이 그가 지나온 곳이었다. 그는 혹시나 자신이 다른 생각을 하다가 놓치지는 않았나 싶어 다시 발길을 돌렸다.

방 두 칸 정도를 건너자 넓은 창고가 나타났다. 아까 들어올 때도 본 곳이지만, 부둣가 화물 창고 수준의 커다란 방이 텅텅 비어있어 굉장히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삼각으로 세워진 유리 지붕 사이로 들어오는 노을빛이 분위기를 더했다.

다시 보니 여기저기에 버려진 보급품 더미가 아무렇게나 쌓여져있었지만, 워낙 넓다보니 여전히 방은 거의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물건으로 쌓아올린 탑 뒤를 확인해보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상자들 뒤, 비었고. 운반용 카트들. 흠, 비었고. 휴게실 책장용 잡지들. 이만한 높이에 뭔갈 숨길 수는 없겠지…… 오. 그는 뒤돌아보자마자 또 다른 가구 더미 뒤에 놓여진 공중전화 부스 같은 물체를 발견했다. 리지웨이 아저씨가 말해주었던 기억 재생 장치다. 그리고 그 옆에는…… 펠릭스가 아이작과 함께 반쯤 쓰러진 듯이 기대앉아있었다.

"펠릭스!"

제이미는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펠릭스가 힘겹게 움찔거렸다. 아이작은 아예 정신을 잃은 듯 했다. 그는 약간 겁이 났다.

"펠릭스, 어떻게 된 거야?"

두 사람은 손이 뒤로 묶인 채였다. 그는 우선 아이작의 상태를 관찰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펠릭스가 입술을 달싹거리자 그는 얼굴을 숙였다.

"빠…… 빨리……."

"괜찮아?"

그녀는 말하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언뜻 보니 이마 한 쪽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상태였다. 머리를 맞기라도 한 듯 그녀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제이미는 오싹했다.

"빨리…… 여기서……."

"그래, 나가자, 펠릭스. 네가 아이작을 구했구나. 이제 다 된 거야, 멀쩡해."

제이미는 일어서서 아까 본 카트를 쓸 수 있지 않을까하고 그것들이 쌓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멀리서 보기에도 멀쩡한 녀석들이 있었다. 그래, 저걸 이용하면…….

그의 뒤에서 바닥을 딛는 구두 소리가 울렸다.

"동작 그만."

제이미는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뒤? 눈동자가 자신의 떨리는 손을 향했다. 종이 가방의 면이 서로 부딪히면서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제이미는 본능적으로 뒤쪽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한 명? 도망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지만 온 몸이 싸해졌다. 벌써. 그는 눈을 감았다.

'왔구나.'

뒤에서 권총의 안전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이미는 침을 삼켰다. 뒤에서 놀란 펠릭스의 숨소리가 들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추스리고 눈을 깜빡거리자 타오르는 태양이 보였다. 끝마무리할 시간? 그는 갑자기 맥이 풀리는 기분이 들어 숨쉬는 것도 잊은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빨갛게 빛났다. 해가 진다. 그는 몸을 돌렸다.

"안 돼!"

펠릭스의 비명 소리와 함께, 총구가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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