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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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대치는 기묘했다. 식은땀을 흘려가며 몸을 떨고 있는 남자와 너무도 대비되는 상대방의 여유.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시점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괴한 처지에 놓인 그 남자가 지은,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표정이 걸작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두 사람의 모습이 한 치도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는 점이다.

“너…… 넌 누구냐?”

제이미가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들어 자신의 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 문가에 서있던 남자는 팔을 내저으며 씩 웃었다.

“너도 잘 알잖아. 나야, 제이미.”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바른 대로 말해.”

그는 재빨리 베개 밑에서 권총을 빼들고 겨누었다. 자신을 제이미라고 소개한 남자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빈정거렸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너만 총 있는 줄 알아?”

남자는 재빠르게 웅크리며 주머니에 넣은 손을 뽑아 올렸다. 제이미는 움찔했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는 빈손이었다. 제이미를 지켜보던 남자가 한숨을 쉬고는 두 손을 들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느긋함이 흘러넘쳤다.

“후, 진짜 쏘면 어쩔까 사실 좀 걱정했어. 그래도 역시 내가 널 잘 아니까.”

“질문에나 대답해. 누구냐?”

“미안하군, 정식으로 소개하지. 내 이름은 제이미 애로우, 미래에서 찾아온 너다.”

제이미는 그의 말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겨누고 있던 총부리를 내렸다. 자칭 미래의 사나이는 한 눈을 찡긋하고 제이미의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제이미는 총을 든 손을 멈칫거리며 말했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미…… 래라고? 개풀 뜯어먹고 있는 소리하네.”

“목소리에 자신이 없군. 역시 믿음직스럽다는 말이겠지?”

“장난 그만 치고 증거를 보여줘.”

“증거라고? 네 잘생긴 외모를 거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또 보게 된 걸로는 안 되는 거냐?”

제이미는 또 다시 말문이 막혔다. 남자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뭐 어차피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 증명할 필요도 없겠지. 방금까지 펠릭스랑 싸웠지, 안 그래?”

“그걸 어떻게…….”

“난 미래의 너라니까 그러네. 혼란스럽겠지. 아, 물론 내가 찾아온 부분 말고 말이야. 방금 전에 오간 대화 내용도 다 알아. 펠릭스가 너보고 그만 이 일에서 빠지라고 했을 테고, 넌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겠지. 하지만 그녀가 네게 뭔가 미심쩍은 말을 했기 때문에, 발을 뺄까 망설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그렇지 않나?”

“네가 상관할 바 아냐.”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제이미는 그의 몸짓이 자신과 너무도 닮았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상관할 바 아니라고? 네가 어중간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난 지금 큰 곤경에 처했어. 까딱하면 죽을 지도 몰라. 제이미, 경고하는데, 이건 단순히 아이작을 구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야. 혼돈의 반란이 이 기지에 심어둔 첩자는 아이작을 원하지. 그런데 네가 그를 구하면 임무에 실패한 녀석은 무슨 행동을 취할 것 같아? 더군다나 한 기지 지붕을 이고 살 정도로 가까이 있는 녀석이라면?”

“……복수?”

“그래, 그거야. 물론 굳이 복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원인 제거를 해놓지 않으면 아이작이 늘 위험에 처하는 상황인건 마찬가지지. 그래서 넌 지금 아이작도 구해야하고 첩자도 색출해서 처단해야하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는 거야. 내 시점은 빼놓고 생각하자구. 나 역시 곤란한 건 마찬가지라는 것만 알아둬.”

남자는 마치 제 것이라는 양 제이미의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이미는 그의 모습이 자신이 습관적으로 앉는 자리와 자세까지 완벽히 일치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가 자기 자신이 맞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할 생각이지?”

“글쎄…… 펠릭스는 내가 여기 끼어들면 안 되는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다, 뭐 그렇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어쨌든 나는 빠져있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이 되겠지.”

“흥, 역시.”

남자는 다시 일어섰다. 제이미는 자신과 쏙 빼닮은 남자와 좁은 침대 사이의 틈바구니에 나란히 서있다는 사실이 문득 부담스러워졌다.

“그런가? 빠져있을 생각이야?”

“아니.”

제이미는 총을 다시 숨겨놓으며 말했다.

“난 도망치지 않을 거야. 펠릭스는 요즘 너무 불안정한 상태야. 그런 녀석에게만 맡길 순 없는 노릇이지.”

“맞아, 너도 이미 눈치 채고 있군.”

“뭐라고?”

“그래, 펠릭스…… 그 녀석이 널 빼고 싶어 하는 이유. 인정하긴 싫지만 너도 이미 느끼고 있지 않아?”

“무…… 무슨…….”

제이미의 머릿속에 불안한 생각이 다시금 스쳐지나갔다. 요즘 들어 유난히 초조해하던 그녀의 모습, ‘TP'에 대해서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 서버실에서 아이작의 데이터가 지워졌을 때 자리를 피했던 것도 어쩌면……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그녀가 방문을 나서기 전에 했던 말이 제이미의 머릿속을 때렸다. ‘만약 사실을 알게 되면 네가 날…….’

“그 녀석이 뒤에서 꾸미고 있는 짓을 알면 너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거야.”

그는 비아냥거리는 듯했다. 제이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뭐라고?”

“나도 녀석에게 한 마디 해봤지…… 하지만 포기하질 않더군. 너도 우리 둘이 만나는 걸 봤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그 때 나눈 대화가…….”

제이미는 그들이 나눈 대화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보이던 펠릭스의 반응을 기억했다. 부끄러움, 혹은 수치스러움…….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모양이지만…… 너와 노선을 같이 하진 않아.”

“…….”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의 말마따나 간단하게 끝낼 수 없는 문제였다. 아이작에 첩자에 펠릭스 문제까지. 제이미는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냐?”

남자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다.

“그래…… 딱히 콕 집어 말할 이유는 없어.”

그는 다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난 단지 방향을 제시해줬을 뿐이야. 네가 외면하던 쪽을. 넌 이제 이 꼬인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생각해내야 하지. 네가 맡겠다고? 그건 좋아. 그럼 어떻게 이 모든 총체적 난국의 끝을 낼 건데?”

제이미는 고개를 숙이고 그가 펠릭스에 대해 한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남자는 다시 웃어보였다.

“네가 펠릭스를 특별히 여기고 있다는 거 알아.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애쓰지 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풀어야지. 그렇지만, 날 곤란에 빠뜨리진 말라구.”

제이미가 얼굴을 붉히며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의 뒤로 돌아가서 방을 나가려는 중이었다. 또 다른 제이미는 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다가 멈칫하고 뒤돌아보며 말했다.

“참, 네게 줄 선물이 하나 있어. 리지웨이 박사님께 가면 될 거야.”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밖으로 사라졌다. 제이미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이미 마음을 굳게 정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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