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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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아무튼 덥다. 정말 이상기후다. 지구온난화인지 뭔지가 까불고 지랄이야. 북해도에는 냉방기가 없다고.

결론부터 쓰자면, 어제 저녁에 마누라년을 한 대 쳤더니 그년이 아침 일찍 짐 싸들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애새끼가 없으니 이럴 때 몸 가볍고 좋구만. 대체로 그년이 잘못한 거다. 내가 심혈을 기울인 혼신의 작품을 제멋대로 깎아내리다니. 자기가 「1차심사 통과했으니까 읽어줄게♪」 그러면서 보여달라 한 주제에.

「시사 소재가 과격하다」느니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느니 「성적 묘사의 의미를 모르겠다, 기분나쁘다」, 「여성차별로 느껴진다」 ……나는 그런 것쯤 이미 다 알아서 그렇게 쓴 거라고. 사회풍자라는 거다. 읽히기 전에 미리 설명했는데도 왜 내 의도가 전달되지 않은 걸까. 어차피 생무지의 독해력이란 이 정도인 건가.

일기로 투덜거려도 소용없지만, 아무튼 마누라가 도망간 것도 이번이 두 번째고, 나도 어지간히 진절머리가 나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한다. 그래봐야 내가 입상만 하면 다시 고개를 숙이며 기어들어올 것임에 틀림없다. 당신의 재능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잘못했어, 그러면서.

7월 23일

기온은 아직도 30도 이상. 냉방기 없이는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돈은 없고, 마누라가 가출하는 바람에 요리도 여의치 않다. 별 수가 없어서 낮에 2시간 정도 편의점을 어정어정거렸다. 계산원 언니의 눈이 차가웠다.

네모토根本군에게 답장이 왔는데, 내 작품이 재미있다고 칭찬했다. 이거 봐라, 프로가 보면 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다니까. 네모토도 무사히 1차심사를 통과한 것 같다. 우리 둘 다 입상하면 좋겠어요, 라고 하길래, 그런 건 당연하다. 누가 더 높은 상을 받느냐는 경쟁인 거라고 대꾸해 주었다. 아무래도 네모토도 신작이 완성도에 고민하고 있었던 듯, 입상에 자신이 없는 듯했다. 미리 읽어 본 느낌으로는 문제없어 보였지만, 이렇게 매번 카이도海棠의 일인천하니 푸념하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겠지. 이번에는 다를 거다. 내가 10년만의 괴기대상을 수상해서, 카이도 놈이나 심사위원의 코를 눌러 줄 테다.

7월 30일

너무 더워 참을 수가 없어서, 신작 소재라도 생각할 겸 도서관에 갔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실패. 여름방학을 맞은 애새끼가 시끄러웠고, 사서 언니의 퉁명스러운 태도도 거슬렸다. 사십 넘은 아저씨는 낮부터 도서관에 있으면 안 되는 거냐? 몸이 조금 더럽다고 무슨 부랑자 취급을 당했다. 진짜 부랑자들이 역이나 공원에서 쫓겨나 도서관이나 공민관에 붙어 있는 것 같으니, 경계받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싫은 세상이다, 정말.

오랜만에 도서관에 왔으니, 공포소설 서가에 내 작품이 있는가 확인해 보았지만, 한 작품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대출 중인 것이라고 봐야 하는가, 아니면 폐가에 들어갔다고 봐야 하는가? 여름방학 때니, 대출 중인 것이라고 믿고 싶다.

카이도의 작품은 인기가 높아서, 몇 주는 기다려야 빌릴 수 있다고 POP가 붙어 있었다. 그렇게 읽고 싶으면 그냥 사서 읽으라고.

8월 4일

지옥 같은 더위는 변함이 없다. 최근에는 찌듯이 무더울 뿐 비도 안 온다. 이 염천하에 밖에 기어나가는 놈들의 생각을 모르겠네. 집 안에만 있어도 그건 또 그것대로 멸망하는 길임은 사실이지만.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2차심사를 하고 있는 편집부의 반응이 좋지 않다고 한다. 씨발. 공포물로서 꼭 맞게 무섭고, 시사성과 풍자성도 도입해서 나무랄 데가 없다고 그랬었잖아. 그건 아부였냐?

8월 8일

머리가 아파서, 하루종일 마루바닥에서 뒹굴었다. 마누라가 가출한 이후 편의점 밥밖에 먹지 않아서 탈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밤도 너무 더워서 제대로 잠도 못 잔다.

하릴없이 냉장고에 남아 있던 생선을 구워먹었다. 조금 상한 것 같지만, 시커멓게 탈 정도로 구워 버렸으니 아마 괜찮을 것이다.

내가 입상을 놓쳐서 낙담했을 때, 마누라는 아무 말 없이 야채수프를 만들었었다. 마누라의 양념은 독특해서, 나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었다.

8월 10일

죽어

8월 11일

낙선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다시 오늘 편집부에 항의전화를 넣었지만, 「시사 소재가 과격하다」느니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느니 「성적 묘사의 의미를 모르겠다, 기분나쁘다」, 「여성차별로 느껴진다」……, 마누라와 똑같은 말을 늘어놓아서, 이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씨발. 그래봤자 카이도님께 아양이나 떠는 삼류잡지로 전락한 주제에.

네모토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단 2차심사를 통과한 것을 축하해 주었다. 아무래도 내가 낙선한 것을 모르고 전화한 것 같다. 이야아 사실 이번에 자신작이었거든요, 그러면서 손바닥 뒤집듯 자랑을 하기에, 아아 그래요, 라고만 대꾸했다. 이제 저 새끼 글은 미리 읽기 안 해 준다.







8월 16일

더워

글이 안써져

죽고싶어







8월 18일

조그마한 동거인이 생겼다. 너무 작아서 라고 이름붙였다.

치비는 내 앞에 돌연 나타난, 뭔가 작고 귀여운 놈이다. 내 손가락 끝보다 작으면서 요령껏 몸을 비비꼬고 춤도 추고, 내게 볼을 비벼오거나 한다. 어지간히 귀엽다.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이것은 흔히 있는 싸이코호러의 도입부일지도 모른다. 절박하게 내몰린 시원찮은 남자에게, 환각인지 악령인지 분명하지 않은 존재가 나타나, 그 마음을 치유해 가는……. 낙선 이후 아무 것도 쓸 마음이 들지 않고 바닥까지 떨어진 내 앞에 이런 게 나타나는 것은 참으로 진부하고 편의주의적인 전개다. 옛날의 내가 쓸 만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젊었을 때는 이 손으로 판타지스런 호러를 양산해서 상도 몇 개 받았으니까.

다만, 호러의 주역이라기에는, 치비는 좀 귀여운 것이 아니다. 자세히 보면 작은 눈이 있어서 되룩되룩 내쪽을 쳐다본다. 이런 건 펫이다. 공포 이야기가 될까보냐.

8월 20일

치비가 때때로 재촉하여 오랜만에 일기 이외의 용무로 컴퓨터로 향했다. 라고 말해도, 움직일 기운이 없었기 떄문에 잠결에 움직였지만.

그토록 무거웠던 손가락이 움직였다. 아무래도 내 몸은 예전의 감을 되찾고 있었다. 어쩌면 치비의 불가사의한 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단순히 내가 이 녀석에게 치유된 것일 뿐인가?

치비는 작은 눈을 되룩되룩 굴리며 내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설마 잡아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하며 밀쳐냈더니, 미안한 듯이 울망울망거린다. 정말로 귀엽다.

공포물 작가는 때려치우자.

마누라도 몇 번이나 절필하라고 타일렀었다. 어차피 내게는 카이도나 네모토 같은 풍부한 재능은 없었던 거다. 내게는, 상상한 그대로를 문자로 끌어낼 수 있는 표현력이 없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시덥잖은 에세이 정도 뿐이다. 치비와의 유쾌한 생활 에세이.

8월 22일

치비 녀석, 살이 좀 붙은 것 같다. 먹이를 준 적도 없는데, 뭘 먹은 거지. 요 전에 내 손가락을 물어뜯긴 했지만, 저 턱으로 육식은 무리일 터. 어쩌면 내 때를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벌써 며칠째 목욕을 하지 않았는데, 최근 이상하게도 악취가 나지 않는다.

글은 점점 진행된다. 이런 느낌, 데뷔 이래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쓴다. 써진다. 지금의 나라면, 호러는 아니지만 분명히 카이도보다 재미있는 소설이 써진다. 내 재능은 완전히 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짞 눈물이 나왔다.

8월 26일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말하기도 뭣하지만, 이건 내 최고 걸작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치비 놈, 아무래도 암컷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아니, 가족을 데리고 온 건가? 어느새 열 마리, 아니 열 명이라고 해야 할지, 수가 늘어났다. 내 손 안에서 원기왕성하게 뛰어다닌다. 점점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오싹했지만, 뭐어 귀여우니까, 먹이도 내 때라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니 그냥 내버려 둘까.

밤에는 특히 글이 빠르게 진행된다. 치비들도 응원할 생각인지, 내 눈 옆에서 춤을 춘다. 고맙구만. 침식을 잊어가며 계속 글을 쓰고 있으니, 내가 밤의 어둠에 녹아가는 감각을 느낀다. 나는 어둠 속에 문자를 새기기를 계속하고 있다.

8월 27일

나의 창작의욕은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다. 방 안에 내 상상이, 밤의 어둠과 일체화한 내 몸이 뻗어나가는 감각이 있다. 기묘하지만, 너무 상쾌한 기분이다. 나는 밤에 녹아들고 있다.

글자들이 컴퓨터 안에서 튀어나와, 방 안에 퍼지는 환각을 본다. 글자 위에는 많은 치비들이 있고, 제멋대로 춤들을 추고 있다. 귀엽고 아름답다. 나는 이제 소재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거나, 이것저것 상상을 짜낼 필요도 없다. 내가 쓸 것은 모두 이 방 안에 있다.

8월 29일

내 손가락이 점점 느려지는 감각이 있다. 상상력보다 체력이 먼저 고갈된 것일지 모른다. 치비들도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죽어 버린 건가? 씨발. 이런 곳에서 끝나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작품을 끝까지 써내야 한다. 이것을 출판해서, 다시 한번 작가로 부활할 거다.

내가 슬럼프에 빠져 글을 쓰지 않고 정신과 신세를 지고 있을 때, 마누라는 아무 말도 없이 자기 집에 내가 살게 해 주었다.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다. 아직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무렵이었다. 내게는 과분한 여자였다.



8월 30일

조금만

조금만 더


환성





 월  일




                          는






         다



















memo: AO-9419-JP(가칭) 초기수용 기록

memo: 수용 계기: 근린주민의 악취 신고

memo: 소문 자체는 20일경부터 시작된 모양. 근린 커뮤니티로부터의 고립이 배경에 있다?

memo: 시체의 최초발견자는 아내 ████씨. 경찰의 연락을 받고 내방한 것. 방 내부를 목격하고 다대한 정신적 쇼크를 받았으며, 면담 후 기억소거를 하고 훈방함.

memo: 방 전체에 흩뿌려져 있는 것은 신체조직에서 유래한 물질로 생각됨. 어떻게 외부까지 스며나올 수 있었을까? 그 프로세스는? 검증 필요

memo: 비록 수만에 이르렀으나 모두 비변칙적인 것으로 확인되었기에 통상의 수단으로 처분 완료. 발견된 일기장과의 관계성은 불명.

memo: 방 내부에 각인된 대량의 문자군=인식재해해석반 대기. 문자군이 비변칙으로 판정되는 차제에 변칙(Anomalous)으로 정식 수용예정. 역정보 후보=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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