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CP-023의 그 뭐냐, '사람을 죽이는 눈동자' 있잖소. 희생자가 일어난 사건들을 조사해오라고 했지? 죄다 사고사더군. 자연사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병으로 죽은 사례도 거의 없어. 붕괴, 지진, 폭발, 테러…… 뭐, 사실 당연한 바였지만. 그건 그렇고, 그쪽 말대로 규모가 큰 재난이 일어나기 1년 전에는 꼭 탈출이 시도된 전례가 있던데. 그래, 모두 성공했었지. 이렇게 보니까 또 다른 생각이 들더군. 혹시 그놈이 사라지는 게…… 예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그놈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일 년 뒤에는 정말로 뭔가 터진다, 같은, 그런 거지. 뭐? 어, 알았어. 목록 여기 있네. 근데 이런 걸 뭐하러 시킨 건가? 혹시 그놈이 또 탈출한 건 아니겠지? 하긴, 그래, 격리 절차는 이제 고착화됐잖아.
2. 본문: XL 가상 시나리오 #2
(3) 보호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요기 베라
종말의 징조와 펜리르라는 존재에 대한 발견 이후 간부들은 펜리르의 봉인을 대체할 새로운 소재를 찾는데 주력했다. 한편 루핀 박사가 SCP-19██의 보고서를 읽은 뒤 이성을 잃어 기지 내에서 문란을 일으키고 있었으나, 기어스 박사는 그에게 신경 쓸 겨를 없이 기지의 차폐로 인한 '보다 큰 규모의 혼란'을 안정시킨 뒤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을 받아보는 중이었다. 루핀 박사의 행동은 지휘부에 보고되었으나 지휘부는 이례적으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제17기지 보안 기록(██.██.████)
루핀 박사: 다리를 쏜다, 칼로 찌른다, 눈알을 파낸다, 자동차로 친다, 비닐로 질식시킨다, 바다에 빠뜨린다, 아사, 압사, 추락사, 감전사, 실족사, 동사, 폭사, 쇼크사, 참살, 교살, 독살, 가스살, 주사살, 지금 장난쳐?! 이렇게 파리 때려잡듯 죽여놓고 알아낸 게 고작 '생명에 위기가 닥쳤을 때에만 최면이 풀린다'야? 이게 무슨 개지랄이냐고, 이따위 집단이 정말로 세상을 '보호'해? 정신 차리라고 사람을 죽인다고! 이 또라이 자식들…….
앨버트 박사: 박사님, 제발…….
루핀 박사: 자넨 알고 있었나?
앨버트 박사: 예?
루핀 박사: 알고 있었느냐고? 이 정신병원에서 자행된 똘추 같은 짓거리들을 자네도 알고 있었느냔 말이야!
앨버트 박사: …….
루핀 박사: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군…… 내가 대체 왜 여길…….
앨버트 박사: 그렇지만…… D계급들은 모두 극악무도한 범죄자─
루핀 박사: 이 빌어먹을 자식아, 내가 전에 말했던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
앨버트 박사: …….
루핀 박사: 집어치우게. 이딴 자식을 가장 믿는답시고 혼자 감성적으로 떠들어댄 내가 병신이지.
(문을 세게 닫고 나가버린다)
알베르토 박사의 증언
루핀은 점점 자제심을 잃어갔소. 크로우 교수나 브라이트 박사 같은 간부급 인원들에게는 아주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고, 밥도 안 먹으면서 자기 방 안에만 틀어박혔지. 룸메이트가 자의 반 타의 반 울며 겨자 먹기로 나오더군. 심지어 그 인간이 지나가던 말단 연구원 아무나 붙잡고 욕을 하는 모습까지 봤다오. (킬킬거리며) 그래, 아주 된통 당했었지, 기억나지?
기록 41DX-1000(Lv5)
크로우 교수: 지금 루핀이 문제가 아니야. 펜리르의 봉인을 보강할 방법을 찾는 게 이 회의의 목적이란 말일세.
앨버트 박사: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루핀 박사님의 언행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기지 내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니까요. 한 번은 정말로 SCP의 격리가 해제될 뻔했어요.
브라이트 박사: 어허, 앨버트. 여긴 제17기지야. 위험한 SCP는 없다고.
앨버트 박사: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 말이군요.
크로우 교수: 수호자는 지금 뭘 하고 있지?
클레프 박사: 누구?
크로우 교수: (인상을 찌푸리며) 그림 말이야.
클레프 박사: 아, 그 녀석,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겠지.
크로우 교수: 추측인가?
클레프 박사: 아마.
크로우 교수: 젠장, 클레프, 이번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해주면 안 되나? 아까 루핀 자식한테 욕을 한 바가지씩이나 얻어먹었단 말일세. 나도 화가 난다고.
클레프 박사: 흥, 크로우, 네 이빨에 대한 대비책도 미리 해뒀다고. 이제 너 따위는 내 상대가 안돼.
크로우 교수: 내─씨발─좆같은─앞발을 계산하긴 했나?
클레프 박사: 불가능한 것이라─ 뭐가 있을까? SCP-682를 죽이는 거? SCP-058이 갑자기 발 한 개를 치켜들고 '안녕, 여러분! 오늘부로 착하게 살 거예요!'라고 말하는 건 어때?
브라이트 박사: (낄낄거림) SCP-173이 멋진─
크로우 교수: 다른 SCP가 끼어들어선 안 돼. 그리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각할 수 없는 소재를 찾아내야 해.
브라이트 박사: 이봐, 너무하잖아!
클레프 박사: 방금 거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게 맞지 않았나?
앨버트 박사: 너무 어렵군요. 어느 정도 범위까지 포함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일어날 수 없는 줄거리를 만들어서 괴물을 봉인한다니.
크로우 교수: 불가능한…… 신화에서는 펜리르를 어떻게 봉인했지?
앨버트 박사: (종이 하나를 집어 들며) '고양이 발소리와 여인의 수염, 산의 뿌리, 물고기의 영혼, 새의 침, 곰의 발뒤꿈치로 만든 밧줄'을 이용했다는군요.
크로우 교수: 당시 구하기 불가능하리라고 여겼던 것들이군…….
클레프 박사: '기어스 박사의 인간성'은 어때? (고개를 끄덕거리며) 흠, 내가 생각해도 훌륭한 제안인걸.
브라이트 박사: 아니면 아이스버그 박사가 존대─
크로우 교수: 일말의 가능성도 남겨둬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루핀을 봐. 그렇게 순진하던 인간이 지금은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앨버트 박사: …….
브라이트 박사: ……내 말 좀─
앨버트 박사: 그렇게 따지면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형편이라고요. 봉인이니 뭐니 해도 비유적으로 얼추 말만 들어맞으면 죄다 풀려버릴 게 틀림 없을 것 같은데요.
크로우 교수: 그래! 그거야!
앨버트 박사: 예?
클레프 박사: '펜리르를 영원히 봉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으로 만든 밧줄?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우린 불가능한 주제를 구체화시켜야 한다고. 이 소재로 밧줄을 만들려면 펜리르를 깨워서 그걸로 자기 자신을 묶어야 한다는 소리잖아.
크로우 교수: ……제길, 답이 안 나오는군.
브라이트 박사: '세상에 [편집됨]이 사라진다'라는 건? 모두가 그걸 하잖아, 안 그래─
클레프 박사: 그만, 이제 잠깐 쉬지.
브라이트 박사: ……당신네들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펜리르 봉인의 주된 요지는 '불가능을 구체화한 것'이라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애초에 구체화를 한 시점에서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수께끼의 정답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거나 추상적인 것, 혹은 이야기와 같이 가상의 어떤 것으로 범위가 제한되었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던 조건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불가능한 것'과 펜리르가 어떠한 방식으로나마 연결을 시켜야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화 속의 늑대'처럼.
제17기지 보안 기록(██.██.████)
크로우 교수: 뭐 하는 건가, 루핀?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몰라. 왜 엄한 사람을 붙잡고 있지?
루핀 박사: 그럼 자네한테 묻지. (연구원 XX XX XXX 도망침) SCP-19██이 나타나는 걸 막을 방법을 말해.
크로우 교수: 지금까지 우리가 하던 일이 그거였어. 자네가 자네 입으로 우리들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 않았나?
클레프 박사: 살벌하군.
브라이트 박사: 무지하게.
루핀 박사: 안 할 거야. SCP-19██에 대한 정보만 말해주면 지금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드리지.
크로우 교수: 눈물 나게 고맙군. 마스터 코드는 [데이터 말소]. 데이터베이스나 알아서 열심히 뒤져봐.
브라이트 박사: 한 달은 걸린다는 데 그거 걸겠어.
클레프 박사: 두 달.
루핀 박사: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이나?
크로우 교수: 뭘 더 바라는 건가?
루핀 박사: SCP-19██과 관계된 걸 모조리 뱉어놓으란 말이야.
크로우 교수: (싸늘하게 바라보며) 그러니까 내가 방금 그걸 찾을 수 있는 문자와 숫자의 조합식을 말해줬을 텐데?
(연구원 XX XX XXX가 다시 달려옴)
XX XX XXX: 교수님, 큰일 났습니다. '농가' 근처에서 거대한 검은 개들이 마구잡이로 출현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SCP-023과 동일한 놈들 같습니다…….
크로우 교수: 뭐라고?
XX XX XXX: 한두 마리가 아닙니다, 완전 떼거지라고요! 그 '눈'을 본 사람만 해도 벌써 몇 백 명에 달할 겁니다!
(그림이 달려온다)
그림: 얘기 들었소? (크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건 펜리르가 곧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또 다른 징조요,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합니다!
크로우 교수: XX, 비행기 대기시켜, 자네들도 모두 따라와. 루핀은 여기 남는다.
루핀 박사: (크로우 교수 일행을 노려보며) 무슨 일을 꾸미든 간에…… 이번엔 아무도 그렇게 의미 없이 죽게 두진 않을 거야.
클레프 박사: (과장되게 놀라는 동작을 하며) 지금 우리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주겠다는 말 한 거 맞지?
루핀 박사: 머저리들. (돌아서서 가버림)
앨버트 박사: (눈썹을 찡그리며) 대체 여기 박사님들은 왜 이렇게 정신이 한 단계 떠다니는 거죠? 루핀 박사님을 이렇게까지 대할 필요는 없잖아요?
클레프 박사: ……흥.
크로우 교수: XX, 비행기 부른 뒤에는 루핀이 무슨 짓 못하게 보안 팀들한테 보호 대상 1호로 지정하라고 해 놔. 강제로 구속시켜도 상관없다.
XX XX XXX: 알겠습니다. (달려감)
(크로우 교수, 루핀 박사와 반대 방향으로 뛰어감)
앨버트 박사: 이해가 안 돼요. 아까 회의도 그렇고, 여기서는 모든 게 장난으로 통하는가 보군요. 한 사람을 두고 여럿이 둘러싸서 실실대는 꼴이라니. 대체 뭐예요? 두 사람 모두 루핀 박사님과 친구 아니었습니까? 브라이트 박사님 생일날 케이크를 사들고 온 사람이 루핀 박사님 아니었나요? 클레프 박사님 우쿨렐레가 사라졌을 때 전 기지를 뒤져서 찾아낸 게 루핀 박사님 아니었냐고요? 바로 내일 세상이 멸망한답니까? 그래서 그래요? 이딴 식으로 웃고 즐기는 이유가 그거에요?
브라이트 박사: 그만두게, 앨버트. 우리가 이러는 건 그저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야.
앨버트 박사: 뭐라고요?
브라이트 박사: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일세.
앨버트 박사: 그래도 이건 좀─
클레프 박사: 저런 친구들은 이제까지 수천 명이 넘도록 봐왔어. 재단의 성질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 그런 사람들이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맨정신으로 버틴다는 건 그야말로 불가능해. 이건 펜리르의 봉인에 써먹을 구체적인 사례조차 존재하지 않을 거야.
앨버트 박사: 그래서…….
브라이트 박사: 을러보고 달래본 것만 몇 번인지 모를걸. 모든 녀석들에게 모든 경우의 수를 시도해보았지. 아무것도 소용없었네. 결국은 무너졌어. 본성은 변하지 않아. 게다가 루핀은 너무 깊숙이 관여했으니, 기억을 지우고 재단에서 내보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테지.
앨버트 박사: 그럼 저대로 내버려 두겠다는 겁니까?
클레프 박사: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저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지.
앨버트 박사: 뭘요?
브라이트 박사: (복도에 울리는 루핀 박사의 고함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자네도 곧 알게 될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