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참고: 이 이야기는 SCP-1440을 토대로 합니다. 그러니 먼저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노인이 깨어나자, 마음속으로 자신의 숱한 실패들이 또 한 번 단번에 밀어닥쳤다. 재단 기지가 무너진 것은 죄책감의 바다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일 뿐이었다. 가끔은 그조차도 잊어버렸다. 왜 아직도 자신에게 방황할 기력이 남았는지. 왜 자신이 절망과 광기 속으로 깊이 잠겨버리지 않았는지. 왜 자신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종족들에게 연연하기를 그만두지 못하는지. 어쩌면 그저 앙심 때문일지도, 불씨만 남았을지언정 자신을 괴롭히는 자를 아직도 가리키는 반항심 때문일지도. 이유가 별로 중요하진 않았지만.

그가 있는 사막은 적막하고 텅 빈 곳이었고, 그래서 그는 기뻤다. 이곳에서 자신이 피해를 끼칠 것은 별로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맥으로 그는 걸어갔다. 오래 전 저항하지 못함을 깨달은 자신의 충동을 따라서. 언젠가 그는 깊은 협곡으로, 강물로, 바다로 몸을 던졌다. 자신이 끼치는 피해들을 물이 막아주기를 바라며. 그러나 형제들은 물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땅 속 깊이 누워보기도 했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은 위 세상에 다시 있었고, 눈앞에 역병 전파자처럼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만이 다시 펼쳐져 있었다. 형제들은 집요하기로 견줄 자가 없었다.

발밑으로 부드러운 사막 모래를 뽀드득 밟으며, 그는 문득 떠올렸다. 이 모두를 이끌어낸 저주받은 세 게임을, 자신의 운명을 봉인한 세 가지 어리석음을.

첫째 어리석음은 게임이었다. 그들에게 도전하지 말아야 했고, 좀 더 신중히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그때 그는 젊었고 자만심으로 차 있었기에 잃을 것이 많았다. 한창 때의 나이에 그가 쓸데없는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어느샌가 그는 형제들의 어두운 홀에 있었다. 그 주위로 동료 병사들이 저 멀리 있는 빛으로 묵묵히 걸어갔다. 그 길을 가리켜 주는 말라빠진 세 인물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채로. 그러나 그는 걷지 않았다. 운명에 순응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젊고 어여쁜 아내가, 잘나가는 농장이 있었고, 그 모두를 잃을 수도 없었고 잃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놈들을 그는 바보 쫄보라서 죽음을 마지못해 받아들인다고 여겼다. 그 허영심 때문에 그는 길 안내자들에게 도전했고, 나아가기를 거부하다 기어코 싸워볼 기회를 얻어냈다. 그는 그 기회를 받아들였고, 결국 이겨냈다. 너무 크게 이겨냈다.

둘째 어리석음은 탐욕이었다. 형제들은 그가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미처 몰랐다. 그는 판마다 번번이 이기고, 수마다 번번이 파훼하고, 결국 잔꾀와 기술로 죽음의 손아귀에서 삶을 다시 훔쳐냈다. 형제들은 못마땅했으나 패배를 받아들이고 이승으로 돌아가는 문으로 그를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문앞에 섰을 때 그는 갑자기 생각했다. 꼭 지금 멈춰야 하나? 내가 살아서 가장 실력 좋은 카드게임 플레이어라면, 이보다 더한 것도 따낼 수 있는걸! 살아 있는 데서만 그치랴, 영광과 권력과 불멸을 거머쥘 수 있는걸! 그래서 그는 돌아가 테이블 앞에 다시 앉았다. "받고 두 배로"라고 말하며. 그리고 그는 다시 이겼다. 그리고 또 이겼다. 그리고 또. 형제들은 덜 상냥해졌지만 어쨌든 패배를 받아들였다. 세 가지 보물을 그는 얻어냈다. 유리잔, 카드팩, 자루. 이 셋은 형제들이 아끼던 물건이었고, 형제들은 이들을 돌려준다면 부와 행운과 건강과 영광 등 더 많은 것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욕보이고 싶어했다. 죽음이 자기 앞에서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전리품을 챙겨, 화만 삭이는 형제들과 마주앉았던 자리를 떠났다. 그 허영의 대가를 어떻게 치를지도 모르는 채로.

셋째 어리석음은 낭비였다. 전리품들이 품은 힘은 아주 막대해서, 형제들마저 그 힘에 꼼짝하지 못했다. 첫째에게 얻은 유리잔에는 불로불사의 영약이 있었는데, 한 방울이면 첫째는 그곳에서 쫓겨났으며 가장 아픈 자마저도 그 손아귀에서 빼낼 수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의 어깨 뒤로 작은 죽음Small Death이 어슬렁거릴 때마다 그자에게 영약 한 방울을 뿌렸고, 그때마다 첫째는 달아나며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한 방울은 너무나도 적어 보였고 유리잔에 들어 있는 방울은 많았기에, 그는 허투루 영약을 뿌리고 다녔다. 아무리 늙고 허약한 자라도, 아무리 첫째가 마땅히 데려갈 만한 자라도 첫째를 쫓아내 살려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유리잔은 말라버렸다. 아내가 중병으로 쇠약해져 갈 때 그에게는, 뿌려줄 영약이 한 방울도 없었다. 첫째는 그를 비웃으며 아내를 데려가버렸다.

둘째에게 얻은 전리품은 더욱더, 둘째만큼이나 아주 강력했다. 카드팩만 있으면 그는 둘째의 권위에 대항할 수 있었으며, 큰 죽음Great Death의 힘을 묶어버릴 수 있었다. 전쟁으로 들끓고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현장으로 가서 그는, 둘째에게 대항하여 불과 철의 물결을 잠재웠다. 그러나 생명의 물처럼 운명의 카드 역시 낭비되었다. 그는 카드를 아무 국경 분쟁에서나, 아무 민사 분쟁에서나, 아무 커져 가는 혁명에서나 내보였고, 한 번 쓸 때마다 카드팩은 조금씩 닳아 갔다. 생명의 물보다는 오래 갔으나 결국, 둘째는 마침내 카드의 소리를 더는 따르지 않았다. 세상이 지금껏 상상하던 어느 규모보다 큰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수백만 사람들이 진흙탕에 처박혀 죽어가는 것을,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고 피흘리고 불타는 것을 그는 보아야 했다. 둘째는 웃으면서 그들을 데려가버렸다.

셋째에게 얻은 전리품이 제일 강력했다. 완전한 죽음All-Death이 갖고 있던 자루는 무엇이든 가둘 수 있었다. 아무리 큰 재난이든지 넣어버릴 수 있었고, 아무리 악독한 군대든지 그 분노를 이 땅에 쏟아내기 전에 막아낼 수 있었다. 자루로 그는 온 도시를 집어삼킬 만한 폭풍과 불길을 억눌렀으며, 이상하고 잔학하며 이 세상에서 오지 않은 생물들의 행동을 멈추었다. 자루는 보물들 중에 가장 오래 버텼으나, 이 또한 연약해졌다. 그렇게 강력한 힘들을 자루의 솔기가 영영 버텨낼 수는 없었기에. 자루를 그는 다른 덜 강력한 보물들 못지않을 만큼 멍청하게 사용했다. 지나가는 비바람만 있으면 멈춰세우고, 끌 수 있는 불을 보더라도 잡아넣었다. 낭비보단 죄가 더 컸다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자루는 항상 마지막으로 써먹을 상황이 생겼고, 항상 마지막으로 뭘 넣을 공간이 남아 있었다. 셋째를 찾아다니며 그는 어두운 힘이 계속해서 커지는 것을 느꼈고, 재단에서 본 것처럼 자기를 가두려고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용감한 남녀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자루를 마지막으로 쓰기를 멈추지 못했다. 이것만이 자신의 전 재산이요, 마지막 희망이었다. 셋째가 이 끝없는 고통 속에서 자신을 풀어줄 유일한 방법은, 셋째를 붙잡아 자루 속에 넣어 죽음 형제들을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임을 그는 알았다. 그러나 완전한 죽음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조소하러 오지도 않았다. 이름 모를 힘들이 희생자를 요청하자, 오직 침묵만이 그들을 맞았다.

전리품이 모두 수명을 다하자, 그에게 불어닥친 운명의 공포가 뚜렷해졌다. 형제들은 더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용서하지도 않았다. 그의 허영을, 낭비를, 그리고 죽음을 갖고 논 것을. 형제들은 그가 고통받기를 바랐고, 죽음은 고통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벼웠다. 대신 그는,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오게 되었다. 셋째를 영원히 찾아다니고, 눈을 뜨는 곳에서 인간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도록. 그에게 씐 저주는 그가 얻었던 전리품처럼 셋이었다. 죽지 못하는 것, 항상 찾아다니는 것, 항상 무너뜨리는 것.

산이 점점 더 가까워졌고, 노인은 잠시 길을 멈추고 쉬었다. 잠깐일망정 그도 자신의 충동을 통제할 수는 있었다. 모래밭에 그는 앉아 고개를 위로 쳐들을 별들을 올려다봤다. 어스름 띤 남색 아침 하늘에 별은 조금밖에 안 보였지만, 그래도 밝고 청아하게 빛났다. 별들을 바라보다 노인은, 그제야 왜 자신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가장 큰 어리석음일지도 몰랐지만, 꼭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은 순순히 무너져 버리기에는 그에게 너무 아름다웠고, 인류는 멍청한 노인 하나의 실수 때문에 멸망하기에는 너무 귀중했다. 그들을 해치기를 그가 멈출 수는 없었으나, 그가 단 한 가지를 선사할 순 있었다. 희망. 언젠가 그는 마침내 멈추어 서리라. 세상 모두에게 잊혀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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