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르그랑은 다섯번째로 글자 가득한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빌어먹을, 오늘은 왜 글이 안 나오는거야?"
그는 책상에 엎어져 머리를 쥐어뜯었다. 팔꿈치는 반쯤 완성된 아이디어가 적힌, 버려진 브래인스토밍 용지 더미 위에 얹혀있었다.
"뭔 일인거지? 젠장, 젠장! 그냥 평소처럼 쓰고싶다고."
그는 그의 서재에 있는 서가를 보았다. 서가의 맨 꼭대기는 그가 창작한 소설로 가득했다.
그는 좌절하면서 아무 종이나 잡아서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내 후장에서 방금 뽑아낸 언어의 좆같은 마술사, 위대한 개새끼 레그래비가 로저 르그랑 앞에 나타나서 그에게 경외심과 영감을 주었다. 그는 르그랑의 뮤즈가 되었다! 위대한 영감이여! 그가 보여준 길은 절망감에 사로잡힌 빌어먹게도 불쌍한 존재에게 더나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좆같아, 모두 좆같아!"
그는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등 뒤로 던진 뒤, 책상 위에 팔을 배고 엎드렸다. 그는 잠시 그렇게 있었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그는 뒤돌아보았다. 키 큰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이 서있었다. 두건 아래 드러난 얼굴은 별 특징이 없었고, 온 몸을 거친 갈색 천으로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형상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로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서있었다.
"씨발 넌 누구야?"
그가 물었다.
형상은 조용했다.
"어떻게 들어온 거냐고?"
조용히, 형상은 손가락(손톱은 보이지 않았다)을 하나 들어 로저가 방금 찢어버린 것을 가리켰다.
어리둥절한 채, 그는 방을 훑는 손가락을 응시했다. 그것은 엉망진창이 된 종이 다발을 쓰레기에서 집어올려 로저의 책상에 올린 뒤, 잘 펴서 그 남자가 방금 나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몇 개의 단어와 문장을 짚었다.
그는 뒷걸음질 치며 그 형상을 쳐다보았다.
"'책의 신…' '가족 이야기…' 세상을 바꿀 무언가…'"
그는 찢어진 종이 조각을 차례로 집어 로저 앞에 다시 배열하는, 두건을 뒤집어 쓴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해했다. 그는 글자로 쓰였을 때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존재를 찾아낸 것이고, 그 존재는 글자 그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 깨달음에 로저는 흥분했고, 원기를 얻었으며, 곧 좋은 아이디어와 토막 글들을 미친듯이 적어내려갔다. 그는 레그래비일 것이라 생각한 그 형상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그것을 다시 만나리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가 미친듯이 글을 써댈수록 그는 많은 것을 자각했고, 많은 생각을 거둘 수 있었으며 그 때 마다 그가 찾아낸 그 형상이 나타났다. 그는 형상을 상상 속의 모험에 집어넣어 이야기를 쓰는데 뭐랄까… 죄책감을 가졌다. 이런 경이롭고 전지전능한 짐승, 아니, 존재의 웅장함은 허상일 뿐인 이야기 속에 갇히는 그 순간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건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존재는 존경받을만 하다.
그 존재는 찬양받을만 하다.
그 존재는 로저의 운명이었다.
그렇게, 레그래비의 첫번째 필경사가 태어났다.
그의 책에서 발췌, 필경사 신앙의 성경
신앙을 갖고자하는 사람을 찾는건 어렵지 않다. 아무튼 종교를 기반으로 한 존재는 언제나 그의 존재나 권능을 글로써 드러낸다. 먼저 로저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왔고, 그 다음은 그 친구의 친구들이 왔는데, 도합 쉰 명 전후 쯤 되었다. 사실, 그건 종교라기 보다는 작은 공동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사람들은 사이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진리를 탐구하고 한 주에 한 번 씩 만나 그 진리에 대해 논하며 그들 자신의 신앙에 대해 나누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삶은 꽤 괜찮았다.
"제 아이들도 쉽게 들어올 수 있을 것 같군요. 혹시 아이들이 문제가 된다던가 그런건 아니죠?"
여자 한 명이 예배를 마친 뒤 로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아닙니다, 클라리스. 아이들은 정말 경이로운 존재죠. 네, 오신걸 환영합니다! 이 주변에서 당신 가족들을 매일같이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군요."
여자가 빙긋 웃었다.
"아, 로저, 우린 당연히 올거에요. 여기에서 우리는 빛나는 나날을 보낼거에요."
여자는 말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우린 더이상 이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기쁘군요. 아, 패트릭이 어딜 갔다고요?"
"아… 그는…"
여자가 중얼거리며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 이는… 좀 아파요. 그게 전부에요. 의사도 모르는 그런 지독한 병에 걸린지라, 의사들이 그… 혈액 샘플을 가져가긴 했어요. 결과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그는 여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알겠습니다. 모든게 제대로 되길 바라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보러가야한다고 중얼거리더니 옆걸음질 쳐서 가버렸다. 로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필경사 중 한 사람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만의 문제를 갖고자한다만… 그는 몸을 움직여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그는 이곳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이 작업은 크진 않았지만, 아주 가까이 있었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자기가 내동댕이쳐질 때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이 있잖아.
군중들의 회합 장소에서 한 남자가 눈에 띄게 사람들을 비집으면서 오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새겼고, 기억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이름을 기억하려 애썼으며, 설교 내용을 머릿 속에서 계속 곰씹으며 가능한 많은 부분을 남기려고 했다.
그는 추위를 막으며 사람들과 친해졌지만, 말갛게 빛나는 이빨들 뒤로는 몰래 눈빛들을 가늠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그날 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을 하나하나 만나보았고 마지막에는 떠나려했다. 모든 방이 비었을 때, 그는 차에 탔고 차를 몰고 가버렸다.
이리는 제 무리로 돌아갔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경외했다. 친구와 가족들은 사랑 안에서 하나였다. 우리는 언젠가 일어날 것이라 믿는 그분의 강림을 위해 길을 닦았다. 우린 믿었다. 우린 준비했다.
몇 주 뒤, 필경사들은 로저와 함께 정기 예배를 가진 뒤, 늘 그랬듯 성스러운 글들을 읽었다.
"…그리하여 신실한 이들은 거룩하신 레그래비 옆자리에 오를 것이니."
로저는 책을 닫고 신자들을 향해 웃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주님께서는 곧 강림하실겁니다. 저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예배가 끝났습니다. 늘 그랬듯 가셔서 서로 간식을 먹으며 편하게 즐기십시오."
마지막은 말은 불필요했다. 아무도 예배 직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분 동안 회합을 연 작은 창고는 웃음과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찼다. 담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방에 흩어져 서로 섞여들었다.
로저는 미소했다. 그가 진리를 사랑하는 것 만큼 공동체의 결속감이 강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악수했고,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면 인사했다. 몇 토막의 대화가 오간 뒤, 로저는 자신이 찾던 사람을 발견했고 그 여인의 어깨를 톡톡 쳤다. 흑갈색 머리의 백인 여자가 돌아보았다.
"팻에 온 뒤로 삼 주 만이네요, 클라리스."
그가 한숨을 쉬었다.
클라리스는 시선을 떨구었다.
"알아요, 알아요. 그 이는… 요즘 너무 아파요. 난 그 이가 여기 올 수 있을 만큼 회복할지도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그는 그 여자의 손을 보았다. 클라리스는 왼쪽 무명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클라리스는 그가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깨닫고 곧 손을 접어 등 뒤로 숨겼다. 그는 그 여인을 연민에 가득 찬 눈길로 보았다.
"…이 반지가 요즘 약간 거슬려서, 빼기로 했어요."
로저는 일 분 간 침묵했다.
"저, 클라리스?"
"네?"
"우린 여기서 모두 가족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말아요."
클라리스는 로저에게 희미한 미소를 보였고 그 자리를 뜨기 전에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저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몇 몇 사람들은 자기들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싶지 않아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문제로 폐를 끼치고 싶어하는 않는 것 같았다.
그래, 시간이 약이야.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다시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다섯 명의 이리는 그 모임을 정찰했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았다. 이제 이리떼는 저기 모여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섬기는 종교 그 자체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있다. 섞여들어 있는 동안, 그들은 서로에게 미소를 띈 채 고개를 끄덕이며 목 뒤를 긁었는데, 이는 미리 약속한 신호였다.
그들은 작전 준비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