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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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빙빙 돌아. 색깔들- 주위에 온통 강렬하고 날카로운 색깔들.

"D-3975."

위도 아래도 없어. 왼쪽도 오른쪽도.

"D-3975."

돌아가고 굽이치고 내려가고 솟구치-

"D-3975!"

더그Dug가 눈을 와짝 떴다. 어두운 방에서, 드러누운 채로, 천장이 보이며. 눈이 차차 적응해 가는 중에, 더그는 공기 냄새를 맡아봤다. 이 냄새는…

페인트?

여긴 어디지? 마지막 기억은… 고글 벗고 나서는 없었다.

"D-3975! 제 말 들립니까? 다른 사람은 어딨나요?"

더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다른 사람. 친구들. 재러드Jared, 크레이Cray, 네이선Nathan, 펠릭스Felix. 서로서로 붙들고 천천히 고글을 벗어서 그림을 봤지. 이상한 침착함, 에너지가 살살 빠져나가며 하얘지는 몸 색깔- 그리고

모든게잘못됐어아무것도제대로있지않고세상이돌아가고

"모…르겠어요, 박사님." 더그가 일어섰다. "안 보이는데요." 왼쪽 뒤로 목을 돌려봤다. 방 한구석에 가죽 리클라이너가 있었다. 살짝 해진 듯했다.

"뭐가 보이나요, D-3975?"

"별거 없는데요, 박사님." 더그가 대답했다. "가죽의자하고… 서랍? 하고 깔개."

"그것뿐인가요?"

"웬 소녀가 있어요."

뭐?

"자기 이름이 태냐Tanya래요."

왜 자기가 그런 말을 했는지, 더그는 알 수 없었다. 자기 뜻이 아니었다. 조금 있다, 다시 박사가 말했다.

"태니Tanny..? 아니 그럴 리가- 아 지금 저희가 그림 속에서 두 명 이상을 봤던 적이 없어서요. 태- 그 소녀가 저희는 안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 안 보이는 건가요."

"저도 안 보여요."

"찾아보세요."

더그는 리클라이너에 다가가 한 손으로 어루만졌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촉감. 딱 가죽 느낌이었다. 발을 옮겼다.

방에는 창문이 단 두 개뿐이었다. 더그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크고 널찍하고 휘황찬란한 창문 너머로 바깥 세상이 보였는데

무것제대로 있지 않고 아무것도 말지 않 아무것도지 않이 돌

더그가 손을 내려다보자 갈색, 짙은 갈색- 의자 가죽 갈색- 이 묻어 있었고, 리클라이너를 다시 쳐다보자 의자에 자기 피부색이 묻어 있었고 또-

찾았어요, 박사님

"여기에는 없어요, 박사님. 소녀는 아직 있네요."

소녀가 어디 있어

"다른 사람들 아무도 찾을 수 없나요?"

바깥에 있어요

"소녀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데요."

"다른 사람들 보이는 겁니까 안 보이는 겁니까, D-3975?"

더그가 창밖을 다시 바라다보며, 마음속의 뭔가 이상한 기분을 애써 제쳐두고 박사에게 본 것을 이야기하려 입을 열었다. 친구 레의 얼굴이 나무껍질에 아름답게 묻어 있다는 것을, 나무의 매력적인 가지가 옹이지고 휘어진 의 팔이라는 것을, 화사하기 그지없는 하늘에 눈부시게 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스런 표정들이 기발하게 일그러지고 뒤틀려 채우고 있는 캔버스를.

"소녀가 그립다고 해요, 아빠."

"뭐라고?"

이거 누구야? 내가 한 말이야?

"소녀가 아빠가 보고 싶고, 여기 같이 왔으면 좋겠어요."

대체뭐야이게

"태니…?"

"2년 됐잖아, 아빠, 왜 집에 안 와?"

"아아 태니, 정말 미안해, 아빠도 보고 싶어, 우리 딸…"

더그는 움직이는 자기 입을, 말을 내뱉는 입술을, 자기가 한 적 없는 그 행동들을 지켜봤다. 몸에게 멈춰달라 빌어도, 명령 좀 따르라고 부탁해도, 세상에 이 목소리는 애초에 대체 누구지?

"일요일에 같이 아침 먹고 싶어, 아빠, 아빠 요리하는 거 보고 싶어! 엄마랑 나 먹을 거!"

박사가 우는 소리가 더그에게 들려왔다.

"태냐, 우리 착한 태냐, 정말 미안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그때- 그때 그 차를 정말 못 봤어, 태냐, 느닷없이 튀어나온 그 차를- 너랑 너네 엄마랑, 세상에…"

더그가 이를 빠각 악물고, 몸을 꿈틀거리려고라도 해 봤지만-

"나 아직 살아있어, 아빠, 여기 있어! 여기 나랑 같이 있자, 일요일에 아침 다시 같이 먹어! 엄마랑 나랑 아빠랑!"

내가 왜 이런 말 하지 대체 뭐야 제발 멈춰

"박사님, 고글!"

"기다려 태니!"

안돼

"아빠?"

안돼

"태니, 아빠가 갈게!"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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