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가 지저귄다
평가: +5+x

카나리아는 상담실 안에 앉아있다. 며칠 전과 같은 장소이지만 그 사이에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카나리아는 그것들을 조금씩 곱씹어보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문이 열리면서 면담자가 들어온다. 카나리아는 기지개를 펴면서 살짝 감았던 눈을 뜨고 상대방을 확인한다.

"늦었잖아." 그리고 입을 열어서 말했다.

상대는 잠깐 멍하니 쳐다보다가 할 말을 미처 내뱉지 못하고 여러 번 오므렸다. 그 사람이 결국 할 말을 포기하고 자신의 반대편에 앉는 것을 보고, 카나리아는 지금까지 자기도 저렇게 보였을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면담자는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아까 못다했던 말을 얘기했다.

"말을… 하시네요?"

"어, 뭐, 한동안 말을 잘 하는 환경이 되가지고. 몸이 바뀌어도 익숙한 느낌대로 하다보니까 잘 되네."

"다행입니다."

"유란 씨는?"

"더 높으신 분들하고 할 얘기가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대신 들어왔습니다."

"그래, 그럼. 시작하자고."

그 이후론 형식적이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부분에 있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등등등. 10년이 넘어서 말을 하게 되는 상황인데도 이런 재미없는 문답을 한 것 때문에 카나리아는 슬슬 지겨워졌다.

"네, 그럼 이 정도면 과거 일은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이 안 물어봐도 되는 거야?"

"O5와 연계된 이상 카나리아 씨에겐 많이 알아낼 것이 없거든요. 그냥 아시는 걸 재확인하는 용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카나리아는 팔짱을 끼고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눈치챘는지 면담자는 실실 웃음을 흘리면서 말을 이었다.

"대신 이젠 미래 애기를 해볼까 해요."

면담실 문이 열렸다. 어딘가 익숙한 인상의 소녀가 들어왔다.


"싫다."

소녀는 꼿꼿한 자세로 말했다. 옆에 앉은 카나리아라는 여성은 팔짱만 낀 채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빛으로만 면담자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소녀는 자신이 더 강하게 반항심을 담아 말했다.

"싫다고!"

"저희로서는 최대한 편의를 봐준 겁니다. 아니면 그대로 그냥 격리실로 들어가 계실래요? SCP-2662?"

"내 변칙성은 다 없어졌다니까!"

"거대 촉수 괴물이 어린 카나리아처럼 변한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죠. 당신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최대한의 자유를 주려면 이 방법 밖에 없어요."

"하지만…"

소녀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생각보다 귀여운 모습에 면담자는 아빠같은 미소를 지었다. 밖에서 지켜보고 있을 다른 연구원들도 내심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녀는 카나리아를 가리키면서 큰 목소리로 삐약거렸다.

"왜 내가 얘 동생이란 말이야! 난 500살도 더 먹었거든!"

카나리아가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흘깃 쳐다보았다. 소녀는 동의를 구하는 표정으로 카나리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는 그 입꼬리를 보았을 때, 소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카나리아에게 연신 주먹을 날렸다.

딱히 아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게 더 화가 났기 때문에 소녀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햇볕은 따사로웠다. 비록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얼굴을 감싸는 따스함은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만큼 충분했다. 하지만 유란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음을 알면서도.

"나도 직원이었을 시절에는 많은 실수들을 했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기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기도 했어."

O5-2가 말했다. 유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네는 희생의 가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유란은 과찬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네가 나와 같은 직위를 마다한다는 것은 꽤나 아쉬운 일이군."

O5-2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유란은 그보다는 짧은 숨을 뱉었다. 그리곤 간단하고 형식적이지만 진심인 대답을 그에게 얘기했다.

"이번 임무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지만, 제가 받은 임무로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족한 능력으로 그 큰 지위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O5-2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살짝 미소지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정석적인 사람도 평의회에 꼭 필요할 텐데 말이야. 하지만 이번 임무의 공적에 따라,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줘야겠지. 대신 다른 일을 하나 맡길가 한데…"

"다른 일이라면?"

"이번에 O5말고 기지 이사관 내에서도 공석이 많이 생겨서 말이야. 마침 제19기지에 딱히 인재가 보이지 않거든. 자네가 거길 맡아줬으면 하네."

유란은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뜻밖의 일은 아니었지만 받아들일지는 고민되는 얘기였다. 정말로, 자신은 그런 가치가 있는 것일까?

"침묵은 응낙으로 알아도 되는 것이겠지?"

유란은 O5-2를 더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얼굴은 웃는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이것이 본인의 미래와 같다고 유란은 생각했다. 지금 이상으로는 언제나 시험만이 가득한 삶이 거라는 예측이 들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나아갈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O5-2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유란은 따라 일어서지 않고 앉아서 그의 제안을 곱씹어봤다. 그 저작 작용에 도움이라도 주듯이, O5-2는 문고리를 잡으며 말했다.

"자네는 무거운 책임 아래에 뛰어난 임무를 보인 적이 있지. 제19기지에 이사관에 어울리는 인재는 없지만, 보좌하는 데에 인재는 차고 넘쳐나네. 그들과 함께라면 자네의 실력도 어느 순간 만개하게 될 거야. 난 그 때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내가 살아있다면 말이야."

문이 열리고 닫혔다. 유란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갔다.


문 옆 복도에서 여자 두 명이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대어 서있었다. 한 명은 편한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를, 똑같은 얼굴에 키가 훨씬 작은 다른 한 명은 어린이용 원피스를 입었다. 둘 모두 유란이 안에서 생각했던 얼굴들과 같았다. 마치 자매같은 두 사람의 포즈에 유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이 다소 풀린 모습이 카나리아도 코웃음을 쳤다.

"오랜만이에요, 카나리아."

"반가워요, 이사관님."

"방금 소식 들었나요?"

"네, 방금 나간 당신 상관으로부터요."

권력이 높을 수록 건방져지는 카나리아의 특성은 여전했다. 서로가 여전함을 확인한 세 사람은 복도를 지나가면서 얘기를 나눴다.

"다른 개체가 어떻게 됐는지 들었나요?"

"그거 까진 설명 안 해주시더라고요. 어떻게 됐나요?"

"일단 대부분의 개체가 무효 처리 된 건 아실테고… 682는 이제 협조적으로 나서서 염산 구덩이에선 벗어날 거라네요. 조만간 연구원 자격증을 딴다는 얘기도 있어요."

"푸앗, 그 덩치에요?"

"그리고 2662느은…"

"나 불렀냐?"

"… 제 동생이 됐죠. 귀여워 죽겠어."

"세상 최악의 여동생이 되어주겠다고 맹세했다."

"어머, 여자애가 됐는데 괜찮으신가 몰라."

"애초에 무성이었으니까 오히려 재밌어지고 좋아. 그냥 이 녀석 동생인게 맘에 안 들 뿐이야."

"타우-9은 앞으로 군소 사이비 종교 타파 전문으로 운용된다고 해요. 앞으로도 적성 살려서 잘 일해봐야겠어요."

유란은 걸음을 멈췄다. 2662와 카나리아는 한 걸음 더 내딛었다가 뒤를 돌아 유란을 쳐다봤다. 그리곤 유란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겠어요, 카나리아? 계속 그렇게 살아도?"

"제가 하든, 하지 않든, 죽은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아요. 그럴 바엔 복수가 속이 더 편하죠."

"그래도 저는 걱정이에요. 카나리아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봐."

"아뇨, 그러진 않을 거예요."

2662와 카나리아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젠 가족이 있으니까."

자매가 웃었다.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카나리아에게서 나오는 온기에 유란도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갈라서야 하는 복도의 갈림길 앞에서, 유란은 두 사람을 껴안고 힘내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두 사람도 포옹을 받아주며 힘내라고 유란의 등을 더 세게 두드렸다.

그렇게 세 사람은 헤어졌다. 각자의 길을 향해서.











에필로그

컨벤션 센터 앞에서는 분수가 하나 있다. 보호자에게 있어서 자녀가 물에 젖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에게는 도심 속 워터파크나 다름 없는 자리였다.

카나리아는 멍하니 분수대에 운집한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리곤 저 나이대에 자신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봤다. 이런 저런 행복했던 때가 떠올랐지만 이내 흐려졌다. 정말로 오랜 세월동안 악에 받친 복수귀로서 살아오지 않았나 싶었다.

회상할 때마다 끊은 지 몇 년은 된 담배가 생각난다. 그럼에도 손을 대지 않는 것은, 신이라는 것이 공평해서 자신에게 그만큼의 삶을 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니, 신은 죽었다. 결국 카나리아가 스스로 균형을 이뤄낸 것이겠지. 그런 자부심 덕분에 카나리아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수대 너머에 보이는 센터의 입구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고생이 나왔다. 양손에는 분명 자신이 모르는 어떤 10대 문화의 굿즈로 가득찬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소녀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카나리아를 마주하고 얼굴에 미소를 띄며 다가왔다. 카나리아는 단순한 코웃음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를 맞이하러 나왔다.

"형부는 어디가고 언니가 왔어? 남편 노릇 제대로 못하는구만."

"내가 졸라서 나왔어. 너 사고 칠까봐 두려워서."

"내 능력은 다 사라졌다니깐 그러네. 지금은 인간 여자로서의 삶을 행복하게 보내는 중이라고."

소녀가 카나리아의 눈 앞에서 종이가방 두 개를 흔들었다.

"그래, 그럼, 너한테 무슨 일 생길까 두려워서 나왔다. 내가 네 형부보다 싸움을 잘하잖니."

소녀는 미심쩍게 카나리아를 올려다봤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위아래로 스윽 훑어보다가 중간에서 소녀의 시선이 멈췄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소녀는 친근하게 카나리아를 옆에서부터 껴안았다.

"내 조카 생각해서라도 무리하지 말라고! 부모가 쌍으로 애들 마음을 몰라!"

카나리아는 웃으면서 소녀의 어깨를 감싸고 눈을 맞췄다. 자신의 없어졌단 10대의 모습에 소녀의 얼굴이 저절로 덧씌워졌다. 자신이 살지 못했던 10대의 삶을, 이 아이에게는 언제나처럼 주고 싶었다. 그러면 마치, 비참했던 자신의 과거마저도 함께 반짝이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카나리아의 양육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카나리아는 10대의 행복을 얻으며, 어른이 되고 나서의 행복도 함께 가졌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카나리아는 자신에게 이런 행복이 주어질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없어서 한참동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젠 카나리아는 실감이 갔다. 신은 없다. 카나리아를 탄광에 가둔 운명의 족쇄도 없다. 카나리아는 훨훨 날아가면 됐다. 앞으로도 그러하듯이.

카나리아는 한 번 크게 웃었다. 소녀는 그 소리가 마치 새가 지저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